- 16대 총선 당시 모 정당연설회 모습이다. 사진=조선DB
대선이든 총선이든 승부를 결정짓는 건 구도나 바람이었다. 막말 파문이나 의혹 폭로도 승부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지만 이것들에 비하면 부차적일 뿐이었다. 판세에 유리한 구도가 조성되거나 바람을 잘 타야 이겼던 셈이다. 지나온 선거사가 이를 뒷받침한다.
DJ 집권 초·중반기였던 2000년 총선에서도 집권당(새천년민주당과 자유민주연합)이 선거판 구도 때문에 패했다.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이 50%안팎으로 높았는데도 그렇게 됐다.
내각제 개헌 문제가 공동정부 균열의 뇌관으로 작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1999년까지 자민련 측 요구사항인 내각제개헌을 추진하기로 했던 DJP 합의가 총선을 불과 9개월 앞두고 유보되면서 균열이 본격화 됐다.
당 안팎의 거센 반발에 몰렸던 JP와 자민련은 민주당의 총선후보 연합공천 제의를 일축해 버렸고 결국 양당은 전국 곳곳에서 각각 후보를 출마시키는 분열양상으로 치닫았다.
2000년 3월 31일 열린 민주당 구례-광양 정당연설회에서 모 후보의 선거운동원들이 한복을 입고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사진=조선DB
이 같은 상황이 한나라당에 유리한 구도로 전개되면서 공동 정부의 패인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총선이 한나라당과 공동정부 간의 대결 구도가 아니라 한나라당, 새천년민주당, 자민련의 3자 대결구도로 치닫게 됐던 게 승부를 갈랐다. 여권은 투표를 사흘 앞두고 남북정상회담 개최 합의를 발표, 반전을 모색했지만 기울어진 판세를 되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구도 때문에 졌다는 건 총선결과에서 드러났다. 한나라당이 133석을 차지했고 민주당은 115석, 자민련은 17석에 그쳤으나 양당 의석을 합산할 경우 132석으로 1석밖에 뒤지지 않았다. 결국 공동정부 양측이 갈등에 휘말리지 않았다면 이겼을 선거였던 것이다. 실제로 수도권 등에서 양당의 분열 덕에 한나라당 후보가 이겼던 곳이 상당했던 것으로 분석됐다. 당시 선거에서 한나라당은 공동정부 분열에 편승, 과반수 의석(당시 국회 의석은 273석)에 육박한 승리를 차지했던 셈이다.
문재인 정부 중반기였던 2020년 총선에선 코로나 바람에 잘 올라탔던 집권당이 압승했다. 문재인 정부는 특히 ‘표(票)’퓰리즘 비난을 무릅쓰고 투표일 직전 긴급 재난지원방침을 강행했고, 결과적으로 표심에 먹혀들었던 것이다. 당시에는 조국 사태를 비롯, 권력형 비리의혹들이 불거졌고 야당도 소득주도성장론 등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를 쟁점화했지만 코로나 태풍에 휩쓸려 그다지 부각되지 못했다.
게다가 미래통합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와 맞물린 친박과 비박간의 갈등이 잔존해 있었던 데다 공천 파동과 막말 파문까지 겹침으로써 참패로까지 몰리게 됐던 것이다.
2000년 4월 7일 부산 영도의 남항부두에서 열린 한나라당 정당연설회에서 이회창 총재가 연설하고 있다. 사진=조선DB
앞서 2004년 총선 역시 노무현 당시 대통령 탄핵사태에 대한 비난여론, 즉 탄핵역풍이 선거판을 휩쓸어 집권당의 승리로 이어졌다.
대선도 예외가 아니었다. DJ와 YS 간의 후보단일화 무산으로 지역할거주의가 적나라하게 표출됐던 1987년 대선은 노태우·DJ·YS·JP 등 지역적 지지기반을 갖고 있던 후보들간의 4자 대결구도가 펼쳐졌고, 이같은 구도에서 집권당의 노 후보가 승기를 잡았던 것이다. 1997년 대선 역시 DJP 연대에다 집권당 분열에 따른 이인제 후보 출마 등 3자 구도로 전개됐던 게 DJ 당선의 일등공신이었다. 노무현 후보가 당선됐던 2004년 대선에선 노풍(盧風)이 선거판을 달구었다.
이번 4.10 총선은 어떤 구도로 귀결될까. 현재로선 양자 대결 구도로 치닫을 가능성이 높다. 거론되고 있는 신당들이 선거 판세를 뒤흔들 정도의 제3당으로 도약하기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양대 정당간의 진영대결이 갈수록 치열해지면서 제3당의 입지가 그만큼 좁아진 탓이기도 하다. 역대 총선에서 드러났듯 중도층 표심 역시 신당보다는 양대 정당 중 택일하는 선택으로 갈 공산이 크다. 소선거구제를 실시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신당이었던 자민련이나 국민의당이 총선을 통해 양대 정당에 맞설 수 있는 제3당으로 도약하는 데 성공했던 것은 충청과 호남이라는 지역적 차원의 압도적인 지지에 힘입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자민련은 2000년 2월 22일 마포 당사에서 중앙선대위 발족식 및 현판식을 갖고 총선 채비를 다지고 있다. 사진=조선DB
게다가 이번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이 병립형 비례대표제를 주장했던 것이나 더불어민주당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고수하면서 위성정당인 통합형 비례정당을 추진하는 것도 모두 양자 대결구도로 몰아가겠다는 전략과 다름이 없다.
이런 상황들을 감안할 경우 이번 총선에선 구도보다 바람몰이가 승패를 가를 가능성이 높다.
더불어민주당은 정권심판론을 부각시키고 있고 국민의힘은 86운동권정당 심판론으로 맞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신당 측도 양대 정당 심판론으로 바람을 몰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미풍에 그치고 있는 상황이다. 과거 총선에서도 정치개혁을 슬로건으로 양대정당 체제를 겨냥한 신당들이 숱하게 출현했지만 거의 대부분 미풍에 그쳐 단명하고 말았다.
정권심판론이든 86운동권정당 심판론이든 표심이 어느 쪽으로 얼마나 쏠리는 지에 따라 태풍이 될 수도 있고, 역풍에 사그라들 수도 있다. 게다가 선거판의 한 달은 1년이라는 말도 있다.바람을 일으키거나 그 바람을 잠재울 ‘돌발’ 변수들도 몇 번이고 터질 수 있다는 뜻이다.
어느 쪽이든 태풍으로 커질지, 미풍에 그칠지를 속단하기가 아직 이른 것이다. 승부를 갈랐던 태풍은 시대정신으로 읽히기도 했다.
이번 총선의 시대정신은 86운동권정당 심판일까, 정권 심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