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이 끝나고 생업에 쫒기다보니 다른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다행히 뉴스를 접하는 일을 하는 덕에 정치판 흐름은 지켜볼 수 있었기에 칼럼을 다시 쓸 용기를 얻었습니다.
무엇보다 진영간 첨예하게 맞서 혼탁해지는 총선 정국이 글을 쓸 계기를 마련해 줬던 것 같습니다. 다시 필봉을 세우겠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성원, 부탁드립니다.”
- 지난 1월 11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민주당을 탈당, 신당 창당을 공식 선언했다. 앞서 1월 8일 이준석 개혁신당(가칭) 정강정책위원장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언론 정책을 발표했다. 사진=조선일보DB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을 떠난 이낙연·이준석 전 대표를 중심으로 각각 신당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호남 출신인 이낙연 전 대표는 영남출신인 이재명 대표에 맞서 적자론(嫡子論)이라도 내세울 여지가 있지만 이준석 전 대표는 그런 것조차 없이 양대 정당에 맞서야 하는 고단한 처지에 놓여있다.
창당한다는 건 가시밭길이기 때문이다. 리스크가 크면 기대수익이라도 커야 하는 데 그럴 가능성도 낮다. 이낙연·이준석 전 대표가 이런 상황을 의식하고 있음에도 창당을 강행했다면 지난 대선이후 소속 정당과의 갈등이 첨예화, 갈라설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렸다는 판단이 우선적인 동인(動因)이었고 창당은 이같은 처지에서 외길 수순이었을 것이다.
사실, 총선때면 늘 회자됐던 게 신당설이다. 당내 후보공천 논란과 맞물려 주류와 비주류의 갈등이 증폭되는 시기였다.
특히 현역 의원들이 천당(공천, 혹은 당선)과 지옥(낙천, 혹은 낙선)의 갈림길로 내몰리는 상황이었기에 창당설은 가능성 있게 비쳐졌다. 경쟁정당 측도 상대 진영의 신당 움직임을 부추겼는데 차기 대선정국까지 겨냥, '분열'밑밥을 깔아놓는 것이기도 했다. 게다가 양대 정당의 정국운영에 대한 비난여론까지 확산될 경우 신당행보는 더욱 탄력을 받았다.
이같은 상황에 휩쓸리면 신당설에 쏠깃했던 정치인들은 현실판단에서 무뎌지기 시작했다. 2024년 총선을 앞두고도 양대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무당층이 여론조사에서 30%대로 나타나 고무되고 있다고 하나, 자기최면을 걸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론 지지율을 신당 지지표로 연결짓기에는 적잖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소선거구제 선거에선 유권자들의 사표방지 심리가 작용, 신당에는 크게 불리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창당을 이끌 주역이 여론 상승세를 타게 되면 신당 행보는 기세좋게 직진만 했다.
정치사를 되짚어보면 신당의 앞날은 험난하기만 했다.
무엇보다 소속 정당 측이 창당 움직임을 지켜보고만 있지 않았다. 어떤 식으로든 흠집을 내거나 회유와 압박을 통해 주저앉히려 했던 것이다.
창당에 성공했다고 한들 총선에서 맥을 못추고 정치권에서 잊혀졌던 게 대부분이었다. 다행히 총선에서 선전을 이끌어 냄으로써 제 3당으로 도약했던 적도 있지만 그렇게 됐다고 해도 몇 년을 못버티고 각자도생의 길로 들어서거나 다른 정당과 합쳐야만 연명할 수 있는 '반짝 승리'에 불과했다.
신당은 왜 단명에 그쳤을까? 땅(지역적 지지기반)이 없었기 때문이다. 선거판이 전장(戰場)이라면, 땅 뺏기 싸움으로 귀결되는 전쟁과 다를 게 없다. 정치생명을 걸어야 하는 전장에 뛰어들지만 자신의 땅이라고 변변히 없다면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과거 얘기일 뿐이라고? AI 시대에 살고 있다지만 정치판 행태가 별로 달라진 게 없기에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처럼 대통령제인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지역적 기반을 갖추지 못한 신당은 총선에서 반짝 여론을 등에 업고 선전할 수도 있었으나 다음 선거에서는 군소정당으로 전락하기 일쑤였다. 양대 정당의 지지기반을 잠시 차지했을 뿐이었지 자신의 땅으로 굳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때문에 DJ나 JP처럼 지역적 지지기반을 갖추고 있지 않다면 창당은 가시밭길을 걷기 십상이다. DJ가 통일민주당에 있던 계파 의원들을 탈당시켜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고 결국 대권까지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호남이라는 버팀목이 있었기 때문이다. JP가 민자당을 떠난 후 자민련을 창당, 녹색돌풍을 일으키며 제 3당의 자리를 굳히고 DJ와 공동정권을 세울 수 있었던 저변에도 충청이라는 뒷배가 있었다.
이번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도 영남의 경우 부산을 중심으로 보수정당 영향력이 약화되고 있다지만 여전히 강력한 상황이고 호남은 민주당 계열 정당 외에는 거의 난공불락지역이다. 영호남 이외 지역에는 특정 정당에 대한 쏠림현상이 상대적으로 약하다지만, 양대 정당을 중심으로 한 진영 대결양상이 특히 이번 총선에선 그 어느 때보다 첨예화될 것인 만큼 신당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신당을 주도하고 있는 정치인들 중에 이런 지지기반을 제대로 갖고 있는 인사들이 있을까?
이낙연 전 대표의 경우 전남출신인데다 DJ 키즈로 정계진출한 후 호남 기반 정당에 줄곧 몸을 담아왔으며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까지 지냈던 만큼, 호남 정서에 믿는 구석이 있을 것이다. 게다가 정치적 라이벌인 이재명 대표는 이 지역 사람도 아닌데다 각종 비리사건에 연루돼 있는 상황이다. 이낙연 전 대표의 심중에는 이 대표에 대한 호남 지지를 대안부재 상황으로 간주, 자신이 대안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자리해 있을 법하다. 하지만 신당을 뒷받침하는 호남의 정치세력이 제대로 꾸려지지않는다면 몽상에 그칠 수 있다.
게다가 호남 표심이 차기 대선정국까지 염두에 둘 경우엔 이곳출신이란 게 아킬레스건이 될지도 모른다. 과거 대선에서 정동영 후보가 맥없이 떨어졌고 DJ조차 충청권 맹주였던 JP의 손을 잡고서야 가까스로 이겼던 것이다. 신당이었던 국민의당이 2016년 총선에서 호남을 휩쓰는 등 제 3당으로 부상했던 것은 이 지역 유력 정치인들이 가세했던 데다 대권주자인 안철수까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준석 전 대표는 이낙연 전 대표보다 버거운 상황에 처해 있다.
부친이 대구 출신이라고 하나 이 전 대표 자신은 서울출신으로 영남과의 지역적 연고가 취약하다. 호남에서 지지율이 주목할만하다고 하나 이곳 출신의 중량급 인사들을 영입, 출마시키지 못할 경우 그런 지지율은 말짱 도루묵이 되기 십상이다. 양대 정당의 텃밭인 영·호남지역에서는 막판 표쏠림으로 인해 당초의 여론 지지율이 개표결과와는 크게 달랐던 것이다. 수도권에서도 양대 정당간의 대결이 격화되는 만큼이나 사표방지 심리가 더 크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이준석 신당에는 대선주자급 인사도 눈에 띄지않는다.
그렇다고 이낙연 전 대표 측과 이준석 전 대표 측이 합세, 신당을 추진한다고 해도 시너지 효과보다는 잡탕밥이라는 비난 여론에 휩쓸릴 가능성이 높다. 지지층 성향이나 정치적 지향점의 골을 메우는 과정이 쉽잖아 땜질에 급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양측간 주도권 다툼도 거세질 것이다.
신당 창당에 나선 두 사람에게 또 다른 길은 영 보이지 않을까? 정치적 승부수를 던졌으나 외통수가 될 공산이 적잖기에 하는 말이다. 신당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유지를 고대할 수 있겠지만, 양대 정당도 제도 자체를 폐지하거나 위성정당을 내세우는 등 손놓고 있지않을 게 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