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 3월 24일 오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친박연대 개편대회가 열린 가운데, 서청원 대표 최고위원(오른쪽)과 이규택 의원이 당기를 흔들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 친이(이명박), 친박(박근혜)으로 지칭되는 계파가 부상했던 건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였다. 당시 이명박, 박근혜 후보는 상대방을 겨냥해 네거티브 공세수위를 한껏 끌어올리며 팽팽한 싸움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당내 세력도 양분됐던 것이다. 당시 여권이 지리멸렬, 한나라당 경선에서 이기는 게 대권을 차지하는 것으로 인식됐던 만큼 싸움은 뜨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이 후보가 대선에서 당선된 후부터는 더욱 격렬해졌다. 집권에는 성공했지만 당내 비주류 처지였던 친이계가 당내 지지기반를 확대하는 게 절실했던 상황과 맞물려 있었다.
친이계는 결국 집권 직후 총선을 앞두고 친박계를 공천과정에서 대거 탈락시키는 ‘공천 학살’을 강행, 당을 장악해 나갔다.
그러나 친박계도 호락호락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낙천된 친박계는 탈당, 친박연대 혹은 친박무소속연대 후보로 출마했고 박 후보는 해당(害黨)행위라는 논란에도 “살아서 돌아오라”며 이들을 격려하고 나섰던 것. 친박계 상당수가 당선됐으며 이명박 정권 말기인 2012년 총선을 앞두고 박 후보가 비대위원장 겸 선대위원장으로 당권을 장악하자 복당, 설욕에 나섰다. 당시 총선 공천과정에서 친이계 상당수가 낙천됐던 반면 친박계는 대거 당선, 당내 주류로 복귀했고 박 후보는 같은 해 대권까지 차지했다.
1990년 7월 27일 김대중 평민당 대표가 한국종합무역전시장에서 열린 제1차 정기 전당대회에서 총재로 재임된 뒤 당기를 좌우로 흔들며 대위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 3김 시대 때는 이들보다 더 나갔다.
1988년 총선에서 통일민주당이 제 2 야당으로 전락, 차기 대권경쟁에서 위기감을 느꼈던 YS(김영삼)는 당 안팎의 거센 반발에도 자신이 창당했던 당을 해산시키고 신군부 세력 등과 손을 잡는 승부수를 던졌다. 1990년 지지세력을 이끌고 노태우 대통령의 민주정의당 및 JP(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과 합당했던 것이다. 합당 후에도 당내 세력구도에서 민정계에 크게 뒤쳐졌던 비주류였으나 민정계 일부 중진의 지원을 이끌어내는 등 당내 지지세력을 확산시키는 데 성공, 대통령이 됐다.
YS 집권 후인 1995년 당권 장악에 나선 민주계로부터 2선 후퇴 압박을 받던 당 대표 JP는 지지세력인 공화계 및 일부 민정계 인사들과 함께 탈당,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한 뒤 이듬해 총선에서 충청권을 기반으로 돌풍을 일으켰고 1997년 대선에선 DJ(김대중)와 연대, 정권교체를 통해 공동정권의 한 축을 떠맡기도 했다.
앞서 DJ는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됐던 1987년 대선에서 통일민주당 경선을 앞두고 불리해지자 당 안팎의 거센 반발을 무릅쓰고 지지세력과 함께 탈당, 평화민주당을 창당해 출마를 강행했으며 1997년 대선을 앞두고도 정계복귀한 뒤 민주당에 있던 지지세력을 끌어내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 출마한 끝에 결국 집권했다.
이처럼 자신이 창당했던 당을 깨고 합당하거나 창당을 통해 정치적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것은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콘크리트 지지세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3김 이후에도 탈당을 통한 창당 사례들이 있었으나 이런 지지세력이 제대로 없었기에 합당과정을 거쳐 흡수돼버렸던 것.
2014년 3월 26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중앙당 창당대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 ‘윤핵관’과 이준석 전 대표 간에 가열되고 있는 국민의힘 권력싸움은 당을 확실하게 장악해 나갈 계파가 부재한 상황과 맞물려 있다.
이런 상황은 윤석열 정부의 안착과 성공적 국정운영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집권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양상은 당내 세력 재편 움직임이다.
그 저변에는 1년 7개월여 앞둔 총선 정국이 자리해 있다. 현재의 권력싸움은 총선 공천권 싸움으로도 귀결되는 것이다. 이 전 대표가 주도했던 당내 혁신위에서 공천제도 개선을 제1과제로 상정한 데 대해 친윤측 의구심이 커지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당내 의원들 입장에서도 공천 문턱을 넘는 데 주력할 수밖에 없는 처지여서 향후 행보도 이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권력싸움에 잘못 찍혔다가는 공천과정에서 살얼음판을 건너야 하기 때문이다. 이 전 대표를 지지했던 정치인들이 거리를 두기 시작한 데서 당내 기류를 가늠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세력 재편과정에서 국민의힘보다 더욱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구주류 친문(문재인)을 포함한 비명(이재명)과 이재명 당 대표를 앞세운 신주류 친명 간의 힘겨루기 양상이기 때문이다.
앞서 대선에서 당내 비주류 후보로서의 한계를 절감했던 이 대표로서는 대선 재수를 위해서도 내부적으로 세력기반을 확실히 구축하는 걸 선결과제로 삼을 것이다. 결국 친명에 흡수되지 않은 비명의 잔류 규모가 얼마나 될 것인지가 관건인 셈이다.
특히 총선 공천문제와 관련해 어떤 식으로든 양측간 충돌은 불가피해 보인다. 이 대표 체제 출범과 함께 이를 둘러싼 힘겨루기가 본격화 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친명 측이 어떻게 대응해나갈 지가 주목된다.
분당설도 사그라지지 않은 상황이다. 전당대회 이후 분당된 사례가 실제로 있었다. 친노-비노 갈등이 고조됐던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때였다.
결국 양당의 세력간 갈등양상은 주류 계파 구축과정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더욱 격화될 경우 친이·친박 양상, 나아가 3김 같은 행보로 치닫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당시 후보)가 8월 22일 국회박물관 내 체험관에서 열린 박성준 의원(서울 중구·성동구을)의 출판기념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