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3년 11월 11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우리당이 창당대회를 열고 있다. 김원기 전 국회의장 등 당 지도부가 당기를 흔들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우리 정치판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합집산을 거듭해 왔다.
3당 합당으로 출범했던 민자당에선 1993년 YS(김영삼) 집권 후 그의 계파인 민주계가 당권장악에 나서자 JP(김종필)가 탈당, 자민련을 창당했으며 1996년 총선과 1997년 대선 정국에선 TK 중심의 민정계와 이인제 세력 측도 탈당, 각각 무당파 국민연합과 국민신당을 만들었다.
DJ(김대중)는 집권 직후 전국정당화를 기치로 국민신당과의 합당에 이어 영남과 충청지역으로 외연을 확대하면서 2000년 새천년민주당을, 노무현 전 대통령 임기 첫 해인 2003년에는 집권당인 새천년민주당에서 노 전 대통령 지지세력이 탈당해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1996년 5월 31일 열린 자민련 창당 1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김복동(왼쪽부터) 수석 부총재, 김종필 총재, 박준규 최고고문, 이정무 총무, 김용환 총장이 건배를 하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2008년 이명박 전 대통령 집권직후 총선에선 한나라당 친박계가 공천학살을 당하자 탈당해 친박연대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정국에선 비박계가 탈당해 2017년 바른정당을 만들었다. 그러나 친박연대는 한나라당과, 바른정당은 이합집산을 거듭하다 2020년 총선을 앞두고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과 합치게 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집권하자 여권에서 ‘헤쳐 모여’ 신당 창당설이 들리고 있다. 대선정국에서 윤석열 당시 후보를 중심으로 신당설이 나돌았었고, 민주당 대표를 지냈던 김한길 전 의원이 최근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장으로 임명된 것도 예사롭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거대 야당을 상대로 국정을 운영해 나가는데 적잖은 부담감도 갖고 있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친명(친 이재명)계와 반명계간 갈등이 커지면서 분당설로 확산되고 있다.
양측 모두 언제 터질지 모르는 휴화산으로 비쳐지고 있는 셈이다.
2018년 2월 13일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합당으로 출범한 바른미래당 지도부 인사들이 경기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창당식에서 손을 들어 당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당시 주승용, 정병국 의원, 김동철 원내대표, 정운천 최고위원, 안철수 전 의원, 유승민·박주선 공동대표, 이혜훈 의원. 사진=조선일보DB
# 그러나 신당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합당 혹은 흡수당하는 단명에 그쳤던 게 대부분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경우 집권당을 새천년민주당에서 열린우리당으로 교체했고 탄핵 역풍이란 정치적 운까지 더해지면서 2004년 총선에서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는 등 한껏 상승세를 타는 듯했다.
열린우리당에는 민주당의 비호남계 의원들과 호남의 개혁세력으로 꼽혔던 천·신·정(천정배 신기남 정동영 전 의원) 등이 잇따라 합류했던 반면, 노 전 대통령 탄핵을 추진했던 민주당은 총선 결과 9석의 군소정당으로 전락해버렸다.
하지만 열린우리당도 창당 3년 9개월만에 문을 닫아야 했다.
2006년 지방선거와 재·보선에서 잇따라 참패하면서 내분이 심화됐고 대선을 앞둔 이듬해 초부터 탈당이 잇따랐던 것. 범여권세력들과 이합집산을 거듭하다 당을 해산하고 대통합민주신당으로 통합해 대선에 나섰으나 참패하자 새천년민주당 잔류세력과 다시 합쳐 ‘도로 민주당’이 됐던 것.
반면 JP의 자민련은 1995년 창당해 2006년까지 11년이나 존속하는 등 제3당으로는 가장 성공한 케이스로 꼽혔다.
창당과 함께 지방선거와 총선에서 잇따라 돌풍을 일으켜 YS 민자당과 DJ 새정치국민회의에 이은 3당으로서의 위상을 확실히 다졌으며, 1997년 대선에선 DJP 연대를 통해 정권교체에 성공, 공동정부의 한 축을 맡기도 했다.
2007년 8월 5일 대통합민주신당 창당대회에서 손학규 전 경기지사와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등이 손을 맞잡아 참석자들에게 답례하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 이처럼 열린우리당과 자민련이 엇갈린 운명에 처하게 됐던 저변에는 지역적 지지기반이 자리해 있었다. 자민련은 3김 시대의 한 축인 JP의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 아래 충청권이란 지역적 지지기반을 갖고 있었던 반면, 열린우리당은 이를 갖추지 못했던 것이다.
탄핵역풍 총선에서 참패, 존폐위기로 까지 내몰렸던 새천년민주당의 경우 열린우리당 세력을 흡수한 대통합민주신당과 합당해 민주당이란 당명을 이어갔다. 호남지역이란 전통적 지지기반과 전직 대통령 DJ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자민련은 그러나 내각제 합의가 깨지는 등 공동정부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을 기점으로 총선과 지방선거에서 잇따라 참패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고, 탄핵 역풍 속에서 치러졌던 총선에선 비례대표 1번이었던 JP까지 낙선할 정도로 위축돼 버렸다.
결국 JP가 정계를 은퇴하자 충청권에서의 영향력이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에 급격히 밀리기 시작하면서 소멸의 길로 접어들게 됐다.
# 신당의 운명은 거대 양당에 맞서 지지기반이 얼마나 견고한지, 그리고 이를 이끌어 갈 리더십이 건재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었던 셈이다.
그러지 못한 신당의 경우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대통령제와 맞물려 양당제가 고착화 돼왔기 때문이다. 새정치를 기치로 정치판에 뛰어들었던 안철수 의원도 신당 창당을 거듭하다 결국 국민의힘에 합류했다.
신당의 운명은 영남이나 호남 등에서 지역적 지지기반을 다질 수 있는 리더십이 존재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에서 이합집산을 통한 신당이 현실화되더라도 이같은 운명을 거스르기는 어렵다. 지역에 맞설 수 있는 새로운 지지기반을 구축한다는 게 우리 정치판에선 아직 힘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