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월 14일 오후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대법관후보 추천위원회에 참석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정권마다 최고 실세가 누구냐가 관심거리였다.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의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며 여권 권력지형의 중심축이 됐기 때문이다. 권세에 걸맞게 “소통령”이니 하는 별칭까지 따라 붙기도 했다.
하지만 권불오년(權不五年). 이들 모두는 정권에서 불거진 핵심 비리사건에 연루돼 감옥으로 가야했던 것이다. 최고 실세라서 피할 수 없었던 운명일까. 그런 점에선 ‘업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권세가 영원할 것이라고 믿었다면 자기최면에 걸렸던 것이다. 정치를 마약이라고도 한다.
1991년 12월 체육청소년부 박철언 장관의 이임식 모습이다. 당시 정권의 최고 실세로 통했다. 사진=조선일보DB
# 노태우 정권에선 박철언 전 의원이 있었다. 1987년 대선 당시 사조직인 월계수회를 이끌며 노태우 전 대통령 당선의 일등공신이 됐던 그는 청와대 정책보좌관, 정무장관 등을 지내며 최고 실세로 꼽혔다. 정권출범 직후인 1988년 총선을 통해 정계에 데뷔했으며 자신의 세력인 월계수회 회원들도 대거 국회에 진출시켰다. 노태우 정권의 주요 치적인 북방정책 추진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맡기도 했다.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의 후계자로 꼽혔다. 노 전 대통령 부인 김옥숙 여사의 고종사촌 동생이기도 했다.
‘LP’라는 별칭을 갖고 있었다. ‘Little President’ 혹은 ‘Little Prince’의 약칭으로 ‘소통령’, ‘황태자’를 뜻했다. 그만큼 권세가 막강했던 것이다.
그러나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자당이 출범한 이후부터 김영삼(YS)과 첨예한 갈등을 빚다가 내각제 각서파동 등을 거치면서 후계자 경쟁에서 밀려났다. 탈당까지 하게 됐고 YS 정권에서 결국 나락으로 떨어졌던 것이다.
YS 정권 출범과 함께 슬롯머신 사건이 터졌고, 그는 업자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감옥에 가야 했다.
1996년 총선에서 자민련 후보로 당선된 것을 계기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는 듯 했으나 허사가 돼버렸다. 이듬해 대선을 앞두고 YS의 신한국당(민자당 후신)에 맞서 DJP(김대중-김종필)연대에 적극 나섰고 정권교체에도 성공했으나 권력 핵심에선 밀려났고, 2000년 총선에서도 낙선하자 정계를 떠났던 것.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가 1997년 2월 21일 오후 국내외 취재진들의 카메라 플래시를 받으며 어딘가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소통령’은 YS정권에서도 이어졌다. YS차남 현철씨가 비선 실세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붙게 된 별칭이다. 사조직을 통해 YS 대선을 지원했던 그는 정권 출범 후에는 각종 인사와 공천에 개입하는 등 집권당과 정부기관 등에 그의 입김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는 주장까지 제기됐을 정도였다.
결국 YS 집권말기 한보그룹 불법대출 사건의 몸통으로 지목되면서 구속 수감됐다.
김대중 정권 출범직후 특별사면 받은 후 2004년 총선에서 명예회복을 벼르며 아버지 고향인 거제시에 무소속 출마했으나 중도에 사퇴해버렸다. 같은 해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또 다시 법정에 서기도 했다.
DJ 정권에서도 세 아들(홍일, 홍업, 홍걸씨)을 지칭하는 ‘홍삼 트리오’라는 말이 회자됐다. 이들 모두가 정권 말기에 권력형 비리사건에 연루됐고 급기야 ‘DJ 하야론’까지 들렸다.
차남 홍업씨는 청와대 검찰 국세청 등 국가기관의 업무와 관련해 기업 청탁과 함께 금품을 받은 혐의로, 막내 홍걸씨는 각종 이권사업에 개입해 금품을 수수했다는 ‘최규선 게이트’에 연루돼 구속됐다. 장남 홍일씨도 나라종금으로부터 인사청탁과 함께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들 3형제는 징역형을 선고받았다가 노무현 정권때 모두 특별사면 받았다.
당선자 시절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 김홍일 의원이 1997년 12월 21일 오전 일요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서교동 성당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이명박 정권에선 소통령이 아니라 ‘상왕’이란 별칭이 등장했다. 최고실세였다는 점에선 소통령과 같은 의미라고 볼 수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전 의원 역시 정권 말기 각종 비리의혹들에 휩싸였으며, 결국 포스코 뇌물수수 혐의와 저축은행 로비자금 수수 혐의 등으로 징역형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 한동훈 법무장관을 두고 야권에서 “소통령”이라고 공격하고 있다. 법무부에 공직자 인사검증 조직까지 신설, 과거 청와대 민정수석의 역할까지 겸하게 됨으로써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란 주장이다. 특수통 검사출신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최측근이기도 하다.
게다가 비정치인임에도 범(汎)보수 차기 지도자 여론조사에서 공동 1위로 급부상, 한껏 상승세를 타고 있다. 대선주자로서의 지지보다는 한동훈이란 인물에 대한 호감도나 기대감이라는 측면이 짙어 보이지만, 보수층을 중심으로 팬덤, 신드롬까지 일으키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별의 순간’을 잡을 수도 있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이같은 현상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알 수 없지만 과거 소통령과는 분명 달라 보인다. 하지만 권력에 더욱 취할 수도 있다는 점에선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
그는 ‘전철’을 피해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