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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은 결코 그를 배반하지 않았다. ‘늦깎이’ 검사 출신 윤석열이 대한민국의 제20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민심’을 빼놓고 설명할 길이 없다. 권력에 핍박받는 검찰총장을 제1야당 대통령 후보로 올린 것도 민심이고 그를 대통령에 당선시킨 것도 민심이다. 여당 후보에 겨우 신승(辛勝)한 것을 침소봉대한다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민주당과 이재명 후보가 어떤 부류인가? 안면에 철판을 깔아도 몇 미터짜리는 될 것 같은 후안무치(厚顔無恥)로 휘감은 세력이 아닌가? 그래서 윤석열의 대통령 당선은 ‘민심의 선택’이랄 수밖에 없다. 아니 운명이랄 수도 있다.
문재인 정권은 10년 집권을 넘어 20년, 50년, 심지어 100년 집권을 호언장담하던 세력들이다. 그랬던 그들이 5년 만에 정권을 빼앗긴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들의 오만과 독선으로는 이 정도 기간을 무탈하게 온 것만 해도 이상하다. 윤석열의 정치등판도 그들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다. 2019년 7월25일 주위의 반대에도 윤석열을 검찰총장에 임명한 것도 문재인 정권이다. 당시 만해도 윤석열은 문재인 정권에 적폐의 잔재를 완전 청산할 수 있는 ‘최종병기’였다. 하지만 그는 그만의 스타일이 있었다. ‘구적폐’든 ‘신적폐’든 적폐는 여전히 적폐였다. 조국을 압수수색했고 유재수 사건, 청와대 울산시장선거개입사건을 하나씩 쳐내갔다.
그렇게 문재인 정권과 윤석열은 각을 세워갔다. 추미애는 연달아 수사지휘권을 남발했고 징계청구와 정직2개월 징계로 윤석열을 몰아세웠다. 하지만 윤석열은 때릴수록 커졌다. 2020년 7월 헌정사상 2번째로 추미애가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때 윤석열은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단숨에 10.1%(리얼미터조사)를 기록했다. 정치라고는 생각도 않던 윤석열이 처음으로 대선 여론조사에 이름을 올렸고 민심의 부름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민심은 이렇게 윤석열을 갈구하고 있었다. 사납게 다수결만 믿고 횡포를 일삼던 문재인 정권에 염증을 느낀 민심은 윤석열이라는 ‘맞춤 후보’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민심’과 윤석열의 동거는 이렇게 부지불식간에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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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은 작년 3월4일 임기 4개월을 남겨두고 검찰총장직에서 물러났다. 표면상으로는 여권의 ‘중수청법’ 입법 시도에 대한 반발이지만 윤석열은 민심의 여망을 외면하지 않았다. 6월29일 그는 “국민약탈 정권을 막지 않으면 부패완판의 대한민국이 될 것”이라며 대선출정식을 통해 정권교체의 기수를 자임했다. 민심과 함께 정권교체의 대장정에 나선 것이다.
실제 윤석열이 국민의힘에 입당한 후 여러 도전에 직면한 것은 사실이다. 기존 야당의 대선후보들과 야당 기득권 세력의 견제가 만만찮았다. 작년 7월말 국민의힘 입당 후 이준석 대표와 홍준표 후보 등 기존세력과 경선룰 등을 놓고 벌인 신경전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에 야권의 전체 흐름은 윤석열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11월5일 야권 대선후보로 선출된 후에도 윤석열에 대한 민심의 지원은 견고했다. 지지율이 출렁이고 위기를 맞을 때마다 운(運)도 따라줬다. 두 번이나 뒷다리를 잡았던 이준석의 ‘몽니’도 특유의 뚝심과 소통능력으로 해소해 냈다. 이 과정에서 노회한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과 결별하는 과단성도 보여줬다. 부인 김건희씨 7시간 녹취록의 반전은 선거기간 최대 화제거리였다. 오히려 부인 김건희 씨 녹취록을 방영한 MBC는 ‘굴욕’에, 피해자 김씨는 ‘걸크러쉬’한 면모로 의혹을 일소하는 반전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재명 후보와의 대선 본게임은 난타전의 연속이었다. 이재명 후보는 현란한 말솜씨와 부끄러움을 모르는 뻔뻔함으로 대장동 게이트와 형수 ‘쌍욕’, 부인 김혜경씨 법인카드 유용 의혹 등 산적한 의혹을 미꾸라지 같이 빠져나갔다. 오히려 대장동이 ‘윤석열 게이트’로 둔갑할 지경이었다. 돈과 조직, 권력을 쥐고 모든 정책수단을 동원하는 여권은 선거막판 무슨 일을 벌일지 가늠이 안됐다. 야권과 윤석열 주위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싸였고 심지어 사전투표 개표부정 가능성도 제기됐다.
덩달아 국민의함 안철수 후보와의 후보단일화는 계륵(鷄肋)이었다. 후보단일화에 목을 매는 모습도, 단일화를 거부하는 모습도 보일 수 없는 곤란한 지경이었다. 그러나 윤석열은 원칙을 택했다. 단일화 협상은 협상대로 이어갔고 난항은 난항대로 공개했다. 결국 안철수는 야권 후보 단일화라는 명분을 택했고 공동정부 구성의 길을 걷게 됐다. 그런데 여기에도 역설이 있었다. 안철수가 단일화를 거부한 뒤 실시된 여론조사는 오히려 보수층이 윤석열로 더 결집하는 양상을 보였기 때문이다. 안철수와의 후보 단일화가 정권 교체에 그다지 변수가 안 된다는 점을 역으로 보여준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오늘 윤석열은 결국 대한민국 호(號)의 새로운 선장인 대통령 당선인이 됐다. 우리는 이미 지난 5년 전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를 경험한 적이 있다. 문 대통령은 또 ‘광화문 대통령 시대’ ‘협치와 소통의 대통령’도 약속했었다. 하지만 이 약속은 이미 공염불이 된 지 오래다. 오늘 이렇게 정권교체라는 민심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곤 애시당초 생각조차 않은 것이다. 윤 당선인은 오늘 기자회견에서 “오직 국민만 믿고 국민의 뜻을 따르겠다”고 했다. 오로지 민심 하나에 기대 새 대통령에 당선된 윤 당선인은 자신에게 민심이 얼마나 소중한지 아는 것 같다. 그래서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절대로 문 대통령은 따라하지 마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