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월 24일 오전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야권 후보단일화를 위해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할 만큼 했다. 일찌감치 몸을 빼고 체면치레만 하려는 상대에게 아무리 구애를 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야권후보 단일화 협상이 시작된 지난 3일부터 사람들은 헛고생만 한 것 같다. 안철수의 13일 여론 조사 경선 제안이 단일화 협상을 ‘파투’ 내는 수순인 줄을 몰랐던 것이다. 단일화는 겉으로 내건 명분일 뿐 그 속내는 어떤 이중플레이를 하는지 모르는데 말이다.
실제로 27일 윤 후보 기자회견 후 SNS에는 민주당의 ‘안철수 완주 보상안’이 돌았는데 그 내용이 가관이다. ‘4년 중임제’ ‘결선투표제’ ‘내각 나눠먹기’ 등을 민주당 긴급 의총에서 확정한다는 거다. 그 사실 여부야 이재명 후보가 소집해놓은 민주당 긴급의총에서 결론 날 일이지만 기가 막힌다.
사실 안 후보에게 따라붙는 ‘간철수’ ‘갑철수’ ‘안초딩’ 등의 별명이 필자로서는 잘 이해가 안 됐다. 2011년 정치개혁을 내걸고 혜성과 같이 나타난 안철수는 신선했다. 정치불신 시대에 정치교체를 위한 기대주가 될 것으로 봤다. 그런데 2012년 대선과정에서부터 그에게 부정적 닉네임이 붙기 시작했다. 그의 인간미와 인색함이 회자되더니 늘 애매모호하게 현안을 피해가며 여기저기 간을 본다고 ‘간철수’란 별명이 붙었다. 19대 대선 토론 때는 문재인 후보에게 스스로 “제가 ‘갑철수’입니까? 안철수 입니까?” “제가 MB아바타 입니까?”라는 질문을 해 ‘안초딩’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순진하지만 너무 자기애에 빠져 상대방을 힘들게 하는 캐릭터가 돼 버린 것이다.
이번 후보단일화 협상과정에서도 안 후보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국민의힘 측에서 내놓은 협상 경과를 보니 안 후보는 13일 여론조사 경선 방식을 제안하고 일주일 뒤 단일화 논의 철회를 선언하는 사이에도 정작 협상의 끈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물밑에서 “시간이 더 필요하다” “완주 철회의 명분이 더 필요하다”고 요구한 쪽은 안 후보였다. 그렇게 최종 합의안을 마련 한 뒤 안 후보의 결심만 기다리는 상태에서 그는 그날 밤 목포로 향해 버렸다. 최종 회동 시간과 장소 통보만 기다리던 윤 후보로서는 황당하기 그지없다. 안 후보 측 대리인이던 이태규 총괄선대본부장도 협상 결렬 이유에 대해 “나도 모르겠다”고 했다. 부인 김미경 교수가 안 후보 결정을 좌지우지 한다는 사람들도 많지만 어쨌든 안 후보는 자신만의 캐릭터를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정권 교체를 위해 후보 단일화가 필요하다고 한 사람은 안 후보가 비교적 선도적이다. 안 후보는 4.7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끝난 후 호기롭게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양당 합당을 공식화 한 적이 있다. 언론 인터뷰를 통해서인 데 그는 작년 4월 27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양당 합당을 공식화하고 “윤석열, 국민의힘, 국민의당 트로이카가 힘을 합쳐야 한다”고 했다.
심지어 국민의힘과의 합당에 대해 “정권교체를 위한 합당이라는 방향성은 분명하며 야권 대선 후보 단일화를 위한 길로 일관되게 가고 있다”고 밝혔다. 당시에는 정치 입문 선언도 하지 않았던 윤 후보를 거론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정권 교체를 바라는 분들이 저를 포함해 기성 인물 중엔 마음에 드는 대안을 찾지 못했다. 그 민심을 모은 것이 윤 총장”이라며 국민의당, 국민의힘 후보 단일화 플랫폼 합류를 제안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제안만 놓고 보면 정치입문 10년을 허투루 보낸 것은 아닌가 싶다. 그런데 정작 야권 후보 단일화를 목전에 두고는 ‘삐딱선’을 타니 할 말이 없다.
공교롭게도 야권 후보 단일화 협상이 무산되는 날 한 여론조사가 눈에 들어왔다. 윤 후보가 이재명 후보를 앞서는 결과였지만 야권 후보 단일화를 하더라도 단일후보가 이 후보를 4자대결 때 보다 더 앞서지는 못한다는 결과다. 《서울신문》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지난 25~26일 대선후보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윤 후보 42.3%, 이 후보 37.2%로 5.1%포인트 격차를 보였다. 그런데 야권 후보들이 단일화를 해 윤 후보가 단일 후보면 윤 후보 44.8%, 이 후보 40.4%, 안 후보가 단일 후보면 안 후보 41.9%, 이 후보 38.3%였다. 이 후보와 지지율 차는 윤 후보는 4.4%포인트, 안 후보는 3.6%포인트로 4자대결 때 윤 후보의 5.1%에 못 미친다. 후보 단일화 여부가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시기가 지났다는 얘기다.
2월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여야 전직 국회의장·국회의원들의 지지선언’ 모임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윤 후보 대선 슬로건 중에는 ‘국민이 키운 윤석열’이란 말이 있다. 윤 후보는 지난 2021년 1월 추미애 법무장관 취임 후 ‘기승전-윤석열’로 지속적으로 사퇴압박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시 추미애에 의해 한동훈 검사장 등 윤석열 사단 전체가 해체되고 좌천된 후 ‘식물총장’으로 있을 때 친구들이 걱정스러워 “왜 바보같이 가만히 있는지”를 물었다. 그는 “그분(추미애)은 장관을 관두면 정치로 돌아가겠지만 나는 검찰조직, 식구들을 책임지는 사람이다. 이런 저런 일에 사사건건 반응하면 검찰조직이 어떻게 되겠느냐?”고 말했다. 서울법대 79학번 동기들이 만든 책 《구수한 윤석열》에 나오는 대목이다. 윤 후보는 이렇게 원칙과 상식에 기반한 사람이다. 정권교체는 국민들의 희망이고 명령이다. 때문에 윤 후보가 불려와 지금의 자리에 있는 것이다. 안철수의 철수(撤收)에 더 이상 기대할 것 없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