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 10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마지막 합동연설회 모습이다. 대선후보로 선출된 이재명(좌측) 경기지사와 이낙연 전 총리가 꽃다발을 들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한때 미국 민주당이 보수 세력의 난립에 득의양양한 적이 있었다. 실제 오바마 정부 시절 미국의 보수 세력들은 극우 티파티(Tea-party), 리버테어리언(Libertarian 자유지상주의자), 네오콘(Neo-conservatives 신보수주의자),월가로 사분오열 돼 있었다. 당시 공화당 원내대표 경선에는 무명의 티파티 후보가 돌풍을 일으키는 등 공화당 지도부의 리더십도 붕괴 일보직전 이었다.
그런데 이런 미 보수 세력의 분열과 갈등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런 분파와 분열이 이들 보수 세력을 더 강하게 결집한다는 분석도 있다. 베스트셀러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의 저자 조지 레이코프는 “보수 세력내 분파가 그들을 약하게 하기는커녕 강하게 만드는 것이 사실이라면 진보는 이를 인식하는 편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그는 보수 세력의 분열은 근본적 차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각자 관점을 달리하는 관심영역 때문이라고 말했다. 보수주의 이데올로기와 근본 가치인 ‘엄격한 아버지’의 규율을 공유하면서 서로 관심 분야만 달리할 뿐이라는 것이다.
리버테어리언들은 무제한의 사익 추구를 위해 개인에 대한 국가 권력의 영향력을 제한하자는 것에 관심이 있고, 네오콘은 국내외 모든 분야에 국가 권력을 거침없이 휘둘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월가 보수주의자들은 기업 세계를 통한 부의 획득에 관심이 있고, 티파티는 자유주의자와 진보주의자를 상대로 한 문화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런 미 보수주의자들의 강점은 역설적으로 미 민주당을 긴장시킨다. 그들은 오바마 시대 보수 세력의 분열을 목격하고도 공화당에 권력을 내줄까 두려워했다고 한다. 힐러리 클린턴이 압도적으로 당선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트럼프가 당선된 것도 이런 영향이 있었다. ‘광기(狂氣)’의 트럼프가 비록 바이든 대통령에게 권력을 넘기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럼 한국의 상황을 보자. 국내 보수 세력은 박근혜 탄핵 이후 사분오열의 과정을 거쳤다. 20대 총선 이후 전국 단위선거에서 4전 전패를 거듭하다 올해 4.7 서울과 부산 시장 보궐선거에서 처음으로 승리를 맛봤다. 여세를 몰아 내년 3.9 대선에서 승리를 하면 보수 세력은 완벽하게 재기를 선언할 수 있게 된다.
10월 11일 국민의힘 대선후보들이 KBS광주방송총국에서 TV토론에 앞서 분장을 하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이를 위해 국내 보수 세력이 가장 먼저 경계해야 할 것은 내부 분열이고 갈등이다. 설사 분열하더라도 대선승리를 위해 ‘원팀’ 원칙이 훼손돼서는 안 된다. 집권과 동시에 ‘20년 집권’을 공언하며 막강한 인적 물적 자원을 축적하고 있는 여당 후보를 앞에 두고 사분오열로 갈라져 있어서는 상대 자체가 안 된다. 따라서 국민의힘 대선 후보들은 일찌감치 ‘원팀’정신으로 무장해 나머지 경선일정을 차질없이 치러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지난 10일 윤석열 후보가 상대인 홍준표 후보를 향해 “홍 선배님! 우리 깐부 아닌가요?”라며 한 팀을 강조한 것은 시의 적절했다. 앞으로 있을 10차례 TV토론과 각종 네거티브 공세를 미리 예상하고 선수를 둔 것이다. 그는 전날 홍 후보가 자신의 부인과 장모를 엮어 ‘범죄공동체’라고 한데 대해서도 “지나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마음이 복잡했다”면서도 “우리는 공동의 목표가 있다. 정권교체는 당원과 국민의 바람이고 우리에게 주어진 역사적 소명”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의힘 1위 후보다운 품격과 자신감이 돋보였다.
하지만 우려스러운 대목도 종종 목격된다. 지난 11일 있은 광주 첫 TV토론회에서는 지난 예비경선 때 논란이 됐던 윤 후보의 손바닥 ‘왕(王)자’문제가 거듭 재연되기도 했다. 특히 유승민 후보는 윤석열 후보를 상대로 ‘무속논란’을 이슈화하고 ‘도이치모터스 사건’과 관련해 부인 김건희씨 연루의혹을 부각시키는데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이같은 유 후보의 네거티브 공세는 기대와 달리 오히려 역풍을 불러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악연을 갖고 있는 유 후보는 대통령의 비선이나 무속신앙은 검증대상이라고 강변했지만 여론조사 지지율은 뒷걸음질을 쳤다. 경선 컷오프 4위를 한 원희룡 후보에게 밀리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것이다.
민주당은 지난 10일 이재명 후보를 최종 대선후보로 선출하고도 ‘대장동 게이트’ 몸통 논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낙연 후보측 공동선대위원장인 설훈 의원은 “이재명 구속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원팀’은 불가능하다”고 못을 박았다. 민주당의 내홍은 국민의힘에는 기회다. 장자(莊子)에는 서로 반목하는 사람과 세력에 빗댄 말이 있다. “서로 다른 입장이라고 보면 한 몸속에 있는 간이나 쓸개도 초나라나 월나라와 같이 멀다”는 말이다.
정권교체라는 한 목표에서 보면 약간의 차이와 다름을 놓고 벌이는 시비와 다툼은 허망하다. 공동의 목표를 위해 하나 되는 것에 능한 것이 진정한 보수의 가치이고 장기(長技)인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