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국민의힘 윤석열 전 검찰총장,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경기지사, 이낙연 전 당대표. /뉴시스
이제 대선에서 예능은 대세다. 코로나 시대, 과거 광장과 거리에서 하던 선거 캠페인은 아예 자취를 감췄다. 이제 선거운동도 과거의 관행을 되풀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거기에 TV 예능이 자리 잡았다.
SBS 예능프로그램 ‘집사부일체’는 추석을 전후한 대선주자 특집으로 대(大)히트를 쳤다. 추석 전인 19일에는 야당인 국민의힘 1위 후보 윤석열 전 검찰총장 특집프로그램을 방영해 기존 시청률 2배가 넘는 흥행을 기록했다. 추석이 지난 휴일인 26일에는 민주당 이재명 경기지사 녹화 분을 내보내 22개월 만에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대선주자 특집으로 한 때 프로그램 존폐가 논의됐던 집사부일체가 이 특집으로 예능 대표 프로그램이 됐다. 대선 시기 집사부일체 제작진들의 발 빠른 기획 능력이 프로그램을 단번에 회생 시킨 것이다.
덕분에 코로나 시대, TV 속에서 일상의 즐거움을 찾는 시청자들에게는 대선주자들의 면면을 속속 들여다 볼 기회가 됐다.
예능 속 윤석열과 이재명은 닮은 듯 닮지 않은 후보들 이었다. 두 사람의 뒤바뀐 처지가 눈에 들어왔다. ‘검찰총장’ 출신으로 민주당 집권세력과 한 배를 탔던 윤석열은 어느 새 비주류 야당 후보가 돼 있었고 ‘소년공‘ 출신 비주류로 살아온 이재명은 기득권 민주당의 대선 후보가 돼 있었다. 인생 공전(空轉)의 이치가 두 사람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났다.
윤석열 후보 편에서는 ‘쌈닭연대기’라는 코너가 있었다. ‘인간 윤석열’의 드라마틱한 인생역정이 그 코너 하나에서 그려졌다. MC 이승기는 윤 후보에게 “대통령만 보면 싸우고 싶은 가 봐요?”라고 물었다. 1991년 김대중 대통령 시절 경찰청 정보국장,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측근 안희정, 2008년 이명박 대통령 BBK 사건, 2013년 박근혜 국정원 선거개입사건, 2018년 최순실 게이트, 현 정권 조국 수사까지, ‘검사 윤석열’의 권력 수사 이력이 망라됐다.
윤 후보 ‘트레이드마크’인 공정과 상식, 원칙이 이 대목에서 거론되는 것은 당연했다. 그는 “권력에 대한 수사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국민들이 보고 있기 때문에 무조건 원칙대로 하는 것이다. 권력 수사는 원칙 수사”라고 말했다. 그는 결국 지난 3월 검찰총장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임기 2년은 국민과의 약속이지만 더 이상 자리에 있는 것은 굴욕이었다”고 말했다. 윤석열의 야당 대선후보로의 변신은 이렇게 이뤄졌다.
이재명 편은 뼈저린 가난에서 인생역전을 이룬 ‘이재명의 성공스토리’에 방점이 찍혔다. 시장에서 청소 일을 하던 부친, 아버지가 가져온 버려지기 직전의 과일, 돈이 없어 중학교에 못가고 ‘소년공’이 된 사연. 이 모든 가난이 그의 성공 스토리 원동력이 됐다. 그는 전국 3500등 안에 들면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대입 검정고시를 거쳐 학력고사를 치러 대학에서 20만원 장학금을 받았다. 첫 성공경험으로 입이 쩍 벌어질 정도로 기뻤단다. 당시 공장 월급이 7만원, 학원비가 7000원~1만원이었다니 소년 이재명의 첫 성공체험이었음이 분명하다.
그의 성공의 정점은 성남시장 당선과 경기지사 당선일 것이다. “장차 대성(大成)할 것”이라는 어머니가 전해준 ‘점쟁이’ 말을 믿고 한달음 달려왔다는 그는 이 과정을 거치면서 어느 새 주류 기득권 세력의 대표 주자가 됐다. 지난 2017년 성남시장 시절 문재인 대통령과 대선후보 경쟁을 벌인 것은 그에게 가장 큰 성공 모멘텀이었다. 그는 “수업료(?)도 엄청났지만 사실 후회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곧 여당의 대선후보가 될 순간에 와 있다. 그는 “스스로 어느 날 이 자리에 와 있더라. 어쩔 수 없었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고 운명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비주류 이재명의 주류 선언은 이렇게 운명적으로 이뤄졌다.
집사부일체 윤석열과 이재명 편은 시청률 만큼이나 화제를 낳았던 프로그램이다. 윤석열은 한참 어린 MC들에게 “형이라고 불러”라고 하는 등 소탈하고 친근한 이미지를 남겼다. MC들에게 직접 요리를 해 음식을 대접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逝去) 날 불렀던 노래라며 이승철의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를 열창해 노래실력을 뽐냈다.
이재명은 일상 대화중에도 ‘깨알 같은 자기 홍보’를 놓치지 않는 치밀함을 보였다. “부모님이 물려줘 몸에 점이 없다”며 배우 김부선을 의식해 한 발언은 MC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대화 중간 자신의 공약 이행률을 홍보하기도 했다. 정치초년병 윤석열과 다른 정치적 노련함을 과시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사이다’라는 별명을 얻게 된 이유는 민원인들을 ‘희망고문’하는 “적극 검토 하겠다”는 등의 말을 안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두 후보 예능은 일주일 간격으로 차례로 방영됐다. 출연자의 모든 것이 가감 없이 드러나는 예능의 특성상 두 후보는 모든 면에서 달랐다. 보수와 진보로 극명하게 갈려있는 우리 정치의 현주소가 후보 차이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났다. 후배 검사가 검사장에게 충성을 맹세하자 “충성은 국가와 국민에게 하는 것”이라고 나무랐다는 윤석열의 ‘충(忠)’과 배고픔과 가난의 소위 ‘바닥 인생’에서 성공경험을 축적한 이재명의 ‘근(勤)’. 이번 대선은 이 두 한문 ’키워드‘의 대결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