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고발 사주' 의혹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조선DB
1392년 조선의 건국은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이라는 설계자가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이성계와 함께 공양왕을 세운 정몽주(鄭夢周)는 자기가 세운 왕을 끌어내릴 수는 없었다. 고려왕실을 그대로 두고 개혁을 하자는 입장이었다. 당시 고려는 ‘친원(親元)파’인 권문세가와 외척의 발호로 부패가 극에 달해 있었다.
하지만 조선의 태조 이성계는 자기가 세운 왕을 끌어내리고 자기가 왕이 됐다. 조선의 최초 혁명가이자 설계자 정도전의 작품이었다.
정도전과 정몽주는 고려 말의 같은 ‘친명(親明)파’ 신진사류로 동지였다. 정몽주는 정도전의 동문이지만 7살이나 많아 스승이나 마찬가지였다. ‘역성(易姓)혁명‘의 근거가 된 맹자(孟子)를 정도전에게 소개한 사람도 정몽주였다.
맹자에는 주왕을 벤 주(周) 무왕과 걸왕을 친 은(殷) 탕왕 이야기를 놓고 제(齊)나라 선왕(宣王)과 나눈 대화가 나온다. 맹자의 급진사상을 대표하는 대목이다. 맹자는 “왕이 왕 노릇을 하지 못하면 왕이 아니라 일개 평민”이라며 ”일개 평민을 죽였다는 말은 들었어도 왕을 시해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며 역성혁명을 편들었다. 맹자의 ‘왕도(王道)정치’는 이런 급진사상을 담고 있다.
정도전도 개혁을 위해 공양왕에게 끊임없이 상소를 올렸다. 하지만 공양왕은 전혀 듣지를 않았다. 정도전은 결국 도탄에 빠진 나라를 구하는 길은 혁명 밖에 없다고 결론지었다. 나라와 백성을 위해 비장한 결심을 하고 함길도 함흥까지 이성계를 찾아간 것도 이 때문이다.
이성계는 당시 외적을 물리쳐 고려의 새로운 영웅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나중에 “송현방(개국공신 남은(南誾)의 첩 집)의 술 한 잔에 허사가 됐다“고 했지만 정도전의 ‘역성혁명’은 이렇게 전개됐다.
정도전 사진=조선DB
5년이 다 되도록 갈등과 반목, 좌충우돌을 거듭해 온 문재인 정권의 운명도 이제 내년 3월이면 결론이 난다. 대선에서 정권의 기대대로 정권 재창출이 이뤄질지 아니면 과반이 넘는 유권자들의 열망대로 정권교체가 성사될지 그 때가 되면 결정된다.
그런 중차대한 대선을 앞둔 시점이라 그런지 정국이 너무 시끄럽다. 특히 야당 대권 주자에 대한 집권세력의 공세는 갈수록 맹렬해지고 비열해진다. 언론플레이를 시작으로 소위 ‘고발사주’ 의혹이라고 부풀려놓고 거의 야권 대선후보를 절단 낼 요량으로 덤비고 있다. 권력의 속성이 아무리 ‘정권연장’이고 ‘팽창’이라 해도 4년 넘도록 이념과 진영정치로 나라를 양단(兩斷)낸 정권이 야권 대선후보를 짓이기는 폼이 여간 가관이 아니다.
하지만 뭐라해도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여권이 만든 사람 아닌가. 누구 말마따나 윤석열을 대선 후보로 만든 8할은 추미애와 민주당이다. 그런 여권이 지금은 윤석열을 못 잡아 안달이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가 말했듯 차곡차곡 준비했던 ‘윤석열 X파일’을 하나씩 까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뭐하나 제대로 과녁에 꽂히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이번 소위 ‘고발사주’ 의혹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직을 이용해 고발을 사주했다며 곧 감옥에 라도 넣을 듯이 들고 일어났다. 인터넷 언론 ‘뉴스버스‘의 보도가 신빙성이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였다. 여권이 일제히 들고 일어나자 사정당국이 더 설쳤다.
검찰과 공수처는 즉각 수사 경쟁을 벌였다. 검찰이 감찰에 나서자 공수처는 아에 윤석열을 피의자로 만들어놓고 압수수색을 했다. 왜 그랬냐니까 “언론이 얘기해 강제수사를 했다“고 했다. 존립 근거를 의심받는 공수처라 그런지 ‘바람보다 먼저 눕는 게’ 눈에 보였다.
하지만 대검찰청은 이미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게 직권남용 혐의 적용이 어렵다는 보고서를 법무부에 냈다고 한다. 소위 ‘고발사주’ 의혹의 실체는 이처럼 엉터리다.
제보자 조성은의 실수(?)로 박지원 국정원장의 개입이 드러나면서 의혹은 ‘박지원게이트’로 옮겨 붙었다. 이제 여당은 ‘박지원 개입설’ 방어에 나선 30대 초반 정체불명의 여자 ‘정치건달’을 응원해야 할 처지다.
이런 와중에 윤 전 총장 관련 의혹이 또다시 불거졌다. 지난해 3월 대검이 윤 전 총장 장모 사건 관련 대응 문건을 만들었다는 보도가 나온 것이다. 여권은 또다시 파상공세에 나섰다. “윤석열이 온전히 야권의 대선 후보가 돼 대통령이 되는 꼴은 도저히 봐 줄 수 없다”는 억지가 다분하다.
맹자에는 제 선왕과의 대화에서 맹자가 답답해하는 구절이 나온다. ‘왕 된 도리’는 않으면서 영토 넓히는 데만 골몰하는 왕이 측은했던 모양이다. 맹자는 “왕이 크게 하고자 하는 것을 제가 들을 수 있겠습니까”하고 묻는다. 그러면서 “입으로 먹고 살찌는 음식이 부족해서 입니까? 몸에 입는 것이 부족해서 입니까? 아니면 왕이 부리는 신하가 부족해서 입니까?”라고 묻는다. 도무지 백성은 살피지 않으면서 왕 노릇만 하려는 왕을 에둘러 비판한 것이다.
맹자는 정치하는 사람의 여민동락(與民同樂 백성과 함께 즐거워 함)을 강조한다. 국민과 함께 하지 않아 민심이 떠난 정권은 필요 없다는 것이다. 권력 연장만을 위해 국민을 호도하고 공작정치를 일삼다가는 국민의 마음은 금방 떠날 것이라는 경고다. 그렇게 ‘역성혁명’의 논리가 펼쳐지는 것이 고전 ‘맹자’의 교훈이다.
대통령이 ‘우리 총장님!‘이라고 불렀던 검찰총장이 야권의 대선 후보가 됐다고 “내 편이 안 될 바에 죽는 게 낫다”고 생떼를 쓰는 정권 사람들이 충분히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