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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럼

【이상곤의 ‘흐름’】 윤석열의 배틀필드(Battlefield)

이상곤  정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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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30일 오후 국민의힘 대권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세종시 국회 세종의사당 예정 부지를 방문해 주변을 살펴보고 있다. 왼쪽은 정진석 의원. 사진=조선일보DB

내년 3.9 대선의 최대 배틀필드(싸움터)는 충청지역이 됐다. 10월초 대선후보를 최종 선출하는 민주당이 순회 경선 출발지로 대전과 충남.북을 선택한 것이다. 31일 민주당 대전.충남 권리당원 온라인 투표를 시작으로 대선 후보 본경선이 실시되고 주말인 94일은 대전.충남, 5일엔 세종과 충북 경선 투표가 실시된다.

 

지난 2002년 민주당이 국민 참여 경선을 시작한 이래 충청지역을 대선 경선 첫 출발지로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 해 39일 제주를 시작으로 울산을 거쳐 광주에서 대세이인제를 꺾고 노풍(盧風)’의 주역이 됐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사조직인 민주연합청년동지회(연청)’가 광주에서 노무현을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이처럼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일정과 지역 선택은 대선후보 선출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그런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출발지가 이번에는 충청이다.

 

짐작컨대 민주당이 충청에서 대선 경선을 스타트하는 이유는 한가지 밖에 없다. 야권의 1위 대선주자인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때문이다. 그들 스스로 가장 버거운 상대는 윤석열이라고 자인한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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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9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부동산 정책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국회 사진기자단

 

윤 후보가 태어난 곳은 서울이지만 친가 고향은 충남 논산 노성면이다. 노성면은 윤 후보 조상대대로 300년 넘게 살아온 세거지(世居地)로 부친인 윤기중 연세대 교수는 최근까지도 시제(時祭)에 참석했다. 윤 후보도 논산지청장 시절 부친과 함께 가례에 참석했다고 한다. 이런 연고로 충청지역을 중심으로 윤석열 충청대망론이 일고 있다.

 

민주당이 충청지역 공략을 서두르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미 민주당의 이재명, 이낙연 두 선두 후보는 27일부터 사나흘씩 충청지역을 훑고 지역공약을 내놓았다.

 

윤 후보도 이런 민주당에 맞불을 놓았다. 윤 후보는 30일과 31일 이틀 동안 충남과 세종시, 충북을 방문한다. 30일에는 충남도당을 방문하고 충남지역 언론과 간담회를 갖고 국회세종의사당 예정지를 방문한다. 이어 31일에는 충북 옥천 육영수여사 생가 방문과 충북도당 방문, 오송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방문에 이어 충북도청 방문과 기자간담회에 이어 청주 육거리시장을 찾아 시민들과 만난다.

 

태어난 곳이 서울이라 상대적으로 지역 색은 덜하지만 윤 후보도 고향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 629일 대선출정식을 한 뒤 첫 민생투어로 대전을 찾은 것도 이 때문이다. ‘천안함과 탈원전에 대한 정책행보였지만 국립대전현충원을 시작으로 인근 카이스트까지 방문했다. 충청권 대망론에 부응하기 위한 행보로 비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당시 민생투어와는 성격이 다르다.

 

이번 방문은 올 3월 검찰총장 사퇴 전날 대구를 방문한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그날 윤 후보는 문재인 정권의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은 부패가 완전히 판을 치게 하는 부패완판’”이라며 정권과의 대결도 불사하는 루비콘 강을 건넜다. 문재인 정권의 윤석열 찍어내기를 정면 반박하고 나선 것이다. ‘강골검사 윤석열에서 야권 대선주자 윤석열로 변신을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번 윤 후보 충청방문은 제2의 대선 출정식의 의미가 있다고 봐야 한다. 비록 형식적인 대선출정식은 지난 6월 했지만 이번 주부터 국민의힘 경선버스가 출발하는 만큼 고향에서 대선 출정 신고식을 하는 것이다. 윤 후보가 대전현충원의 선영(先塋)을 참배하고 명재(明齋)고택에서 파평(坡平)()씨 종친들과 간담회를 갖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명재 윤증(尹拯)은 조선 중기 실용주의 개혁세력의 대표로 주류 노론(老論)과 반대되는 소론(少論)의 영수였다. 그는 부친 윤 교수와 함께 윤 후보 인성과 가치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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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논산시 노성면에 위치한 명재고택. 조선시대 학자 파평윤씨 명재 윤증 선생의 집이었다. 이곳 사랑채에 ‘이은시사(離隱時舍)’란 현판이 걸려 있다. ‘속세를 떠나 은거하며 나아갈 때를 아는 집’이란 뜻이다. 사진=조선일보 DB

 

백의정승윤증은 성리학자였지만 노론의 영수였던 우암 송시열과 같이 형식과 정통에 집착하지 않았다. 우암(尤庵)사문난적(斯文亂賊, 성리학에서, 교리를 어지럽히고 사상에 어긋나는 언행을 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으로 몰았던 북벌론자요 혁신유학자인 윤휴(尹鑴)의 독창적이고 참신한 사고를 높이 평가했다. 유학자들이 이단으로 보았던 양명학자들과도 교류했다.

 

이런 윤증에게 윤 후보는 원칙실용주의소신, 다양한 인간관계, 묵직한 처신과 실천력 등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특히 윤증에게서 누구와 협력하는 것이 중요하듯 누구와 갈등하는가도 중요하다는 점을 배웠다. 윤 후보가 국정원 여론조작 수사’ ‘조국 전법무부장관 수사에서 살아있는 권력과의 갈등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당시 주류 권력집단이던 노론이 소론인 윤증을 핍박한 것을 보면 윤석열 찍어내기에 몰두한 문재인 정권과 흡사하다. 당시 노론은 윤증을 트집 잡기 위해 명재고택 옆에 향교를 지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윤 후보 역시 검찰총장 재직 18개월 동안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월성원전 경제성 조작 사건등 살아있는 권력 수사의 포기를 지속적으로 종용받았다.

 

그랬던 집권세력이 뜬금없이 충청권을 시작으로 윤 후보 공략에 시동을 걸었다. “살아있는 권력을 보면 투지가 살아나고 찬바람이 불면 의지가 더 강해진다는 윤석열이 그래서 이번에 충청으로 달려간 것이다.  

입력 : 2021.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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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곤의 흐름

l9137@naver.com 전직 언론인. 포항 출생으로 성균관대와 연세대 행정대학원에서 수학했다. 매일신문 서울 정치부장, 청와대 행정관을 거쳐 현재 블로그 '천지인애'를 운영하며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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