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 8월 25일 국민권익위원회 조사에서 부동산 관련 불법 의혹이 제기된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이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윤 의원은 "국회의원직을 서초갑 지역구민과 국민들께 돌려드리겠다"며 의원직 사퇴하고 "이 시간부로 대선후보 경선을 향한 여정을 멈추겠다"고 밝혔다. 사진=조선일보DB
정치인은 과연 어디까지 도덕적이어야 하는가? 도덕주의는 정치인에게 필수조건인가. 그렇다면 동서고금에 왜 정치인의 부정부패가 판을 쳤는가. ‘왕도정치’나 ‘철인정치’라는 말도 궁극적으로는 도달하지 못할 인간의 희망고문에 지나지 않는 걸까. 25일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의 사퇴의 변을 듣고 나니 드는 생각이었다.
그는 자신의 부친과 관련한 부동산 투기 논란에 책임을 지고 의원직을 내놓으며 ‘정치인의 도덕성’ 문제를 제기했다. 26년 전에 분가한 친정아버지가 부동산 투기를 했느냐 아니냐는 차치하더라도 신선한 문제제기란 생각이 들었다. 대선을 앞두고 권력다툼에 혈안이 돼 있는 대한민국 국회에서 느닷없이 ‘정치인의 도덕성’이라니. 하지만 한편으로는 진영 간 편가르기로 갈수록 갈등이 격화되는 한국 정치를 ‘도덕’이라는 소프트웨어로 재단해 보는 것도 필요한 시점이란 생각도 들었다.
그의 기자회견 발언 중에는 “국민들이 정치인의 도덕성 평가를 포기하고 있다”는 말이 유독 귀에 들어왔다. 30년이 되도록 기자와 평론가로 정치판을 들여다봤지만 그의 진단에 새삼 고개가 끄덕여졌다. 정치인의 정의 즉 도덕의 문제는 정치인 자신 뿐 아니라 유권자인 국민들도 책임이 있다는 말 아닌가. 해마다 선거를 하고 나서 우리는 “손가락을 잘라 한강에 버려야 한다”는 소리를 얼마나 많이 하고 들었나. 윤 의원이 새삼스레 그 문제를 짚고 나온 것이다.
그는 “왜 의원직을 사퇴하느냐?”는 기자 질문에 “정치인은 도덕성의 기준이 높아야 한다. 그것이 대선에 출마한 이유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는 초선이지만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국민의힘 대선 경선 예비후보로 활동했다. 그러면서 그는 “국민들은 그동안 보통의 국민들보다 못한 도덕성을 가진 정치인들을 포기하고 용인해왔다”며 “왜냐하면 정치인들은 다 그러려니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 여당의 대선 후보는 보통의 대한민국 국민이 상상할 수 없는 낮은 도덕성 수준”이라면서 “쌍욕과 음주운전, ‘사이코 먹방’까지 그런 것을 용인하는 것이 국민들이 다 포기해서 그런 것 아닌가 생각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당도 다르지 않다”며 “4년 전 대선 때 우리당을 벌써 없어져야 할 정당이라고 조롱하신 분이 지금 대선후보로 뛰고 있다”고 말했다.
8월 25일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이 의원직 및 대선후보 사퇴를 밝히자, 이준석 대표가 윤 의원의 사퇴 의사 철회를 요청하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윤 의원의 이날 사퇴 기자회견은 충격적이었다. 정치인 그것도 지역구 현역 국회의원 가운데 부동산 불법 의혹에 책임을 지고 의원직을 내놓은 예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윤 의원은 애당초 자신의 문제도 아니다. 해명대로라면 부친이 2016년에 농사를 짓겠다고 구입한 농지가 농지법을 위반했다는 내용이다. 보통의 정치인이라면 코웃음을 치거나, 뭉개고 넘어가고도 남을 일이다. 그런데 그는 “내가 책임지는 방식은 의원직을 사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여당인 민주당은 영 불편한 모양이다. 민주당의 대권주자인 김두관 후보는 윤 의원이 국회의원이 되기 전에 근무했던 KDI(한국개발연구원)에 대한 부동산 투기 전수 조사를 촉구했다. 윤 의원 부친이 샀다는 세종시 땅 개발관련 연구나 실사를 윤 의원이 근무했던 KDI가 주도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앞서 민주당 권익위 조사에서 모친 농지법 위반으로 출당 조치된 여당 의원은 ‘사퇴 쇼’라며 “본인이 떳떳하면 수사를 받으라”고 공격했다.
여당이야 권익위의 발표나 윤 의원의 해명을 뛰어넘는 다양하고 구체적인 정보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LH 부동산 투기 의혹 사건으로 온 나라를 투기판으로 만들었던 정부 여당 사람들이 이러는 것은 경우가 아니다. 친정아버지 의혹에도 “내 윤리의식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된다”며 의원직을 던진 동료 의원에게 할 소리는 아니다. 만약 윤 의원이 의원직 사퇴 순간에도 그동안 줄기차게 비판했던 유력 여당 대선후보를 건드려서 그런다면 좀스런 일이다.
사회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정치도 기본이 중요하다. 국민들의 믿음을 얻고 사회통합을 이뤄내는 것은 정치의 기본이다. 여기에는 우리 정치인들이 잠시 잊고 있던 ‘도덕’과 ‘윤리’의 문제도 있다. 586 운동권이 주축이 된 현 정권은 근거 없는 ‘도덕적 우월감’으로 무능과 오만의 정치만 거듭해왔다. 권력 투쟁과 ‘선거의 기술’에만 능한 정치를 하는 우리 정치판에 윤 의원이 오랜만에 매서운 경책(警策)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