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문국현 전 사장. 사진=조선일보DB
바야흐로 대선의 시절이다. 8개월 후 문재인 정권을 대체하겠다는 대통령 후보군이 여야를 막론하고 난립하고 있다. 여당인 민주당은 이미 대선주자 1차 컷오프를 실시해 6명의 후보로 경선이 이어지고 있다. 본 경선을 앞두고 있는 국민의힘은 대선출마 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게다가 장외주자들의 입당 가능성도 여전해 후보군이 10명 선은 가볍게 넘길 것 같다. 가히 대선후보 춘추전국시대다.
한국의 대선을 결정하는 변수는 여럿 있다. 그 중에 정당과 지역이 가장 큰 변수다. 지역정당 성격이 강한 거대 양당은 대선 때 지역주의를 철저히 이용한다. 민주당은 호남, 국민의힘은 영남을 ‘상수(常數)’로 놓고 지역 간 합종연횡의 선거 전략을 구사하는 게 보통이다. 그렇게 대통령이 탄생을 하면 보통 ‘영남정권’ ‘호남정권’으로 불린다. 박정희 대통령 이후 정권의 탄생은 그렇게 거듭됐고 정치는 돌이킬 수 없는 분열상을 겪고 있다.
그래서 그 대안으로 제3지대 중도정치가 종종 주목을 받았다. 문국현·안철수 등의 중도성향 정치인과 관료 출신 고건·반기문 등 제3지대 인사들의 정치 실험이 있었다. 하지만 양대 정당과 달리 조직력과 지역기반이 취약한 제3지대 정치인들은 설자리가 없었다. 실제로 한국 정치의 제3지대는 거대 양당의 공략대상일 뿐 실체가 없다. 충청을 기반으로 한 과거 자민련, 20대 총선에서 어부지리로 호남을 차지한 국민의당 등 제3당은 있었지만 제3지대 정당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서 제3지대 중도 정치 실험이 재현될 것 같다. 야권의 대선주자 1위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그 방향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윤 전 총장의 국민의힘 입당 가능성이 완전히 물 건너 간 것은 아니다. 본인 스스로 자신의 거취는 민심 청취 후라고 못 박고 있기 때문에 변수는 남아있다. 하지만 ‘압도적 정권교체’를 강조하면서 “내 페이스대로 간다”는 입장을 강조하는 것을 보면 여차하면 제3지대에 머물 생각인 것 같다. 경쟁자로, 또는 야권의 ‘플랜B‘로 거론되는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선제적인 국민의힘 입당도 그의 제3지대 안주를 거든 것 같다.
7월 15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서울 종로구 경희궁길 반기문재단에서 반 전 UN 사무총장을 예방했다. 윤 전 총장은 환경과 외교안보에 대한 의견 뿐 아니라 정치활동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고 한다. 사진=조선일보DB
만약 이렇게 된다면 윤 전 총장은 국내 정치의 ‘제3의 후보’ 계보를 잇게 된다. 유한킴벌리 사장 출신으로 17대 대선에 출마한 문국현, 의사출신 벤처CEO로 2012년 혜성과 같이 정계에 입문한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 뒤를 잇는 것이다. 관료출신 제3의 후보로 고건 전 총리와 반기문 전 UN사무총장이 있지만 이들은 반면교사의 대상이다. 윤 전 총장이 제3지대로 옮겨가면 어김없이 실패사례로 거론될 것이 뻔한 선배(?) 제3후보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윤 전 총장이 제3지대에 머무는 이유는 뭘까. 아무래도 제3지대가 갖는 정치적 명분 등 흡인력 때문인 것 같다. 갈등과 대립의 양당 정치가 이제 한계에 달했고 기존 정치세력으로는 정치개혁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중론이 된 지 오래다. ‘촛불정권’이라는 문재인 정권도 집권과 동시에 민생은 뒷전이고 권력유지를 위해 위선과 내로남불로 일관하고 있다. 윤 전 총장이 대선출마선언문에 현 정권을 ‘이권 카르텔’ ‘국민 약탈정권’이라며 비판한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공정’과 ‘상식’ ‘법치‘도 기존 정치 문법대로는 안 된다는 판단이다.
또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의 정치실험 성공도 제3지대로 눈을 돌리게 한 것 같다. 마크롱은 사회당 올랑드 대통령 밑에서 재정경제부장관을 지냈다. 하지만 올랑드를 배신하고 ‘앙 마르슈(전진)’라는 조직을 만들어 제3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대통령 올랑드에게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단순 ‘시민단체’에 불과하다고 했던 ‘앙 마르슈’는 2017년 총선에서 제1당이 됐다. ‘앙 마르슈’의 주축은 아이러니하게도 마크롱이 배신 했던 사회당이 기반이 됐다. 보수를 발판으로 중도와 진보로 외연 확장을 노리는 윤 전 총장에게 여간 구미가 당기는 모델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윤 전 총장의 이런 구상은 성사 여부와는 별개다. 윤 전 총장이 아무리 제3지대론에 눈독을 들이고 의욕을 갖는다 해도 현실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 마크롱은 2016년 장관직을 던지는 것과 동시에 이미 대선 출마를 위한 모든 준비를 끝냈었다. 장관직을 사퇴하는 것과 동시에 그 해 11월 고향인 아미앵에서 ‘앙 마르슈’를 공식 출범시켰다. 전국에서 모인 ‘앙 마르슈’ 자원봉사자들은 마크롱의 대선 승리를 위해 곧바로 시민 속으로 뛰어들었다. 당시 39세 프랑스 ‘청년 대통령’은 그런 인적 물적 기반 위에서 탄생했다. 윤 전 총장이 제3지대에서 성공을 거두고 싶다면 ‘마크롱 모델’을 좀 더 곰곰이 살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