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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봉대의 ‘되짚기’】 이번 대선도 땅따먹기 싸움...‘東進 VS 西進’ 불붙는다

서봉대  정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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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1월 14일 오후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국민회의 자민련 선대회의에 참석한 김대중 대통령 후보, 김종필 공동선대회의 의장, 박태준 선대회의 상임고문 등이 꽃다발을 들어 환호하고 있다.

정치판은 ‘땅 따먹기’ 싸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이 영남에, 국민의힘이 호남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우리처럼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에서도 이런 식의 싸움은 뿌리가 깊다고 한다.

 

‘땅’이란 지역적 차원의 지지기반으로, 한번 차지하면 주인이 바뀌지 않았다. 땅 일부만을 놓고 뺏고 뺏기기를 반복했을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은 호남을, 국민의힘은 영남을 최대 지지기반으로 삼아 원내 1, 2 당을 고수하고 있다. 동진정책이니 서진정책이니 그럴싸하게 포장했지만 별 게 아니었다. 민주당 계열 정당과 국민의힘 계열 정당이 각각 동쪽(영남)과 서쪽(호남)으로 지지기반을 확장하겠다는 것으로, 결국 땅 뺏기 전략이었다.

 

‘이념’·‘세대’를 잣대로 지지기반과 판세를 가늠한다는 건 ‘지역’에 비해 취약했다. 진보성향과 보수성향 유권자들이 맞서있다는 서울의 경우 지난해 총선에선 민주당이 휩쓸었다가 올해 시장 선거에선 국민의힘이 압승하기도 했다. 청년 세대의 지지정당 성향도 바뀌고 있다.

 

대선은 땅따먹기 싸움의 결정판이었다. 특정 인사가 후보감으로 거론되면 당의 지지기반에다 그의 출신지까지 감안, 대권 가능성을 짚어보기 마련이었다. ‘영남 후보론’이란 것도 그래서 생겼다. 민주당계열 정당에서라면 영남출신 후보가 유리할 수 있다. 호남이라는 당의 지지기반에다 경쟁 정당의 영남텃밭까지 잠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논리에 힘입었다.

 

영·호남만 대상으로 벌어졌던 싸움도 아니었다. 특정 정당에 대한 충성도가 이들 지역에 비해 약했을 뿐 충청·강원에서도 지역적 지지성향이 두드러졌다. 어떤 선거에선 민주당 계열 정당에, 다른 선거에선 국민의힘 계열 정당에 압도적인 지지율을 보였다. DJT(김대중+김종필+박태준 ) 연대라는 것도 호남을 토대로 충청 및 대구경북으로 지지세를 확산, 대권을 차지하겠다는 선거 전략일 뿐이었다.

 

지역적 지지기반이 취약한 정당들은 단명으로 끝나기 일쑤였다. 역대 대선 때 새 정치에 대한 국민 열망을 업고 출마했던 3 후보가 대권을 잡을 수 없었던 것도 땅 따먹기 싸움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들 정당은 민주당 계열이나 국민의힘 계열 정당과 합쳐야 존속할 수 있었고 그러지 못했을 땐 당세가 약화되고 결국 사라지는 운명에 처했다.

 

# 열린우리당, ‘꼬마’민주당, 한국미래연합, 창조한국당, 통일국민당 등등이 그랬다.

 

꼬마민주당은  1990년대 초·중반 김대중(DJ)·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정치 행보에 맞서 창당됐다.

 

YS의 통일민주당, JP(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 노태우 당시 대통령의 민주정의당이 1990년 1월 합당했을 때 이에 반발하며 통일민주당에 잔류했던 일부 의원들이 창당했던 게 민주당, 일명 꼬마민주당이었다.

 

그러나 꼬마민주당은 1991년  9월  DJ측 신민주연합당과 합당, 제 1 야당인 민주당을 창당하면서 1년 3개월 만에 당 간판을 내려야 했다.

 

민주당 역시  4년을 넘기지 못했다. 1992년 대선패배 후 정계를 은퇴했던 DJ가 복귀한 뒤 민주당내 자신의 세력을 끌어내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이에 따라 잔존세력들을 중심으로 또 다시  '꼬마민주당'으로 전락했고 1997년 대선정국 막판 신한국당과 새정치국민회의로 흩어지게 됐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의 박근혜 부총재는 이회창 총재에 맞서 국민참여경선 등 정치개혁을 요구하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같은 해 4월 탈당해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했으나 7개월 만에 문 닫고 한나라당으로 복귀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 47명의 의원으로 창당됐던 집권 열린우리당은 노 대통령 임기가 끝나기도 전에 사라졌다. 2004년 총선에서 노 대통령 탄핵역풍 덕에 152석을 차지, 거대여당으로 정국을 주도해나갔으나 뒤이은 재보선과 지방선거에서 잇따라 참패했다. 지방선거에선 16개 광역단체장 선거 중 전북 한 곳만 건졌다. 계파갈등과 같은 악재들이 겹치기는 했지만 영·호남 같은 텃밭이 없다는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기에 소멸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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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30일 대선 출마를 선언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들과 인사를 마친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이번 대선에서 여야의 유력 후보로 꼽히고 있는 이재명 경기지사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지지기반은 어떨까? 

 

이 지사는 호남 정당 소속이지만 영남 출신이라는 강점을 갖고 있다. 국민의힘 텃밭 공략에 탄력을 붙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당내 영남출신, 특히 대통령 지지세력인 친문(친 문재인)까지 업은 후보들과의 경쟁은 만만찮을 전망이다.

 

윤 전 총장에게는 국민의힘 합류를 전제로 할 경우, 충청·강원을 연고지로 하고 있다는 점이 대권 지렛대가 될 것이다. 하지만 당내 경선과정에서 영남출신 후보들과의 경쟁과정이 순탄치 않을 수 있다. 제 3 세력을 형성한 뒤 국민의힘 후보와 단일화 경선을 치르는 시나리오가 들리는 것도 이같은 상황과 무관치 않다.

 

이번 대선도 땅따먹기 경쟁으로 치닫을 것이다. 전통적인 텃밭과 후보 연고지의 지지기반을 제대로 다질 수 있을지, 그리고 경쟁 정당·후보의 강세지역에 지지세를 얼마나 확산시킬 수 있을지에 대권의 향배가 정해진다.

 

이 지사도 출마선언과 함께 고향이 있는 영남을 찾았고, 윤 전 총장도 조만간 호남으로 간다고 한다. 그렇게 해야 하는 게 선거판 현실이기 때문이다.

입력 : 2021.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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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봉대의 되짚기

jisang3@daum.net 경북 청송 출신으로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1990년 국민일보에 입사한 이후 2020년 뉴스 1 부국장을 마지막으로 30년 언론인생활을 마무리했다. 정치부장, 정치선임기자 등으로 여의도 정치권과 청와대, 총리실 등을 취재하고 후배 기사를 데스킹하는 데 20여년을 보냈다. 현재 민간연구원 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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