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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봉대의 ‘되짚기’】 야권통합 방식? 答은 정해져 있다

서봉대  정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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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월 22일 청와대에서 노태우 대통령이 김영삼 민주당 총재와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총재가 지켜보는 가운데 3당 합당을 발표하고 있다.

# 1990년 초 야권은 무력감에 휩싸였다. 노태우 대통령의 민주정의당과 김영삼(YS) 통일민주당, 김종필(JP) 신민주공화당의 합당으로 국회 의석의 73%인 219석을 차지한 공룡정당, 민주자유당이 탄생했던 것.

   

제1 야당인 김대중 (DJ) 평화민주당과 3당 합당에 반대했던 통일민주당의원 8 명으로 창당됐던 꼬마민주당은 제각각 재야세력을 흡수, 몸집 키우기에 나섰으나 공룡정당에 맞서기엔 역부족이었다.

 

해법은 야권 통합에 있었다.

 

신민주연합당(평화민주당 후신) 총재 DJ와 꼬마민주당 총재 이기택(KT)은 당내 반발 등으로 진통을 거듭한 끝에 1991년 9월 합당을 성사시켰다.

 

DJ로서는 정치판을 ‘호남 대 비호남’ 구도로 몰아가려는 집권당에 맞서는 게 시급했다. 실제로 합당 협상중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자신의 당이 승리한 곳은 호남뿐이었다. 이런 판세라면 1992년 대권 도전도 허사가 될 게 뻔했다.

 

지지세력 확산을 위해 비호남 의원들로 구성된 꼬마민주당과의 통합이 절실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70석의 신민주연합당과 8석에 불과한 꼬마민주당의 통합임에도 그 방식은 흡수가 아닌 창당을 통한 신설합당이었다. DJ와 KT가 공동대표를 맡고 당명도 꼬마민주당의 공식 명칭인 ‘민주당’으로 결정됐다. 꼬마민주당 지지층에 합당명분을 줬던 셈이다.

 

합당 효과는 컸다. 이듬해 총선에서 민주당은 호남권은 물론, 수도권과 충청권에서도 당선자를 냈으며 서울에선 민자당을 제치고 제1 당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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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의 김대중, 이기택 공동대표가 1992년 5월 18일 오전 마포당사에서 열린 광주 민중항쟁 12주년 기념식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 1997년에는 대선을 불과 1개월 앞두고 신한국당과 민주당이 합당했다.

 

조순 총재가 이끈 민주당은 의원 15명중 일부가 합당에 반발해 탈당하는 진통속에도 과반수 의석의 거대 여당 신한국당과 합치면서 ‘신설 합당 ’합의를 이끌어냈다. 


합의후 한나라당을 창당하는 데는 10여일밖에 걸리지 않았으며 대선후보였던 신한국당 이회창 총재는 명예총재, 민주당 조순 총재는 총재가 됐다.

 

이회창 후보로서는 아들 병역비리 의혹에다 탈당한 이인제 후보의 독자출마 등 잇단 악재들로 지지율이 3위로 밀려난 위기상황을 타개하는 게 시급한 처지였다.

 

이 후보는 민주당을 통해 야권 지지기반을 공략함으로써 세 확산이 가능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조순 총재와 함께 김대중 후보의 DJP연대를 겨냥, 3김정치 청산을 부각시키기도 했다.


이같은 전략이 주효, 이 후보 지지율은 상승세를 거듭해 이인제 후보를 제치고 DJ 와 접전을 벌였다.

 

# 2012 년 대선을 앞두고 성사된 합당은 이전과 다른 방식이었다. 새누리당과 잇따라 통합한 미래희망연대(친박연대 후신)와 선진통일당은 창당이 아닌 ‘흡수’합당의 대상이 됐다.

 

친박 인사들을 주축으로 한 미래희망연대의 경우, 당소속 지역구 의원들이 앞서 새누리당에 입당했고 비례대표의원 8명이 뒤따라가는 모양새였던 만큼 흡수방식으로 가닥잡았을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내 유력후보였던 만큼 경선 지원을 위해서도 서둘러 통합해야 할 입장이었다.

 

충청권 기반 선진통일당은 대선을 한달 앞두고 새누리당에 흡수됐다.

 

선진통일당의 이회창 전 총재와 측근들이 새누리당에 입당, 4명의 의원밖에 없던 상황에서 이인제 대표는 당의 활로 모색을 위해 대선 막판까지 외부 인사를 후보로 영입하는데 주력했으나 무산되자 대안부재 상황에서 흡수방식으로 합당을 추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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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 29일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서울 여의도역 앞에서 열린 증권가 순회 인사 및 합동유세에서 시민들에게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통합문제는 어떻게 될까? 


국민의힘은 최근의 재,보선 압승을 계기로 상승세를 타고 있지만 박근혜정부 말기부터 전국단위 선거에서 4연패했을 정도로 지지기반이 상당부분 잠식돼 있다. 당 해체론까지 들렸을 정도다.

 

대선이 11개월도 채 남지않았지만 당내 인사들중엔 두각을 나타내는 후보감이 없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집권당에 맞설 유력 후보로 거론되지만 당 외부에 있는 인사다.

 

국민의힘으로선 지지세 확산이 시급하다. 재.보선에서 이겼다지만 문재인정부 실정에 따른 반사이익을 챙긴 것이다. 지난 총선과 지방선거를 통해 탄탄한 조직력을 갖춘 집권당에 맞서 정권교체를 도모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국민의당과의 통합문제는 이같은 상황과 맞물려 있다. 국민의당에는 안철수 대표와 의원 3명뿐이지만, 국민의힘이 취약한 중도층에서 지지세를 확산시킬 수 있다. 


어떤 방식으로 통합해야 할 지에 대한 답은 앞선 사례에 이미 나와 있다. 양당 움직임에 맞서는 야권의 제3 지대  창당 얘기도 들리는 만큼 통합에 주어진 시간은 더욱 짧아지고 있다.

입력 : 2021.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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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봉대의 되짚기

jisang3@daum.net 경북 청송 출신으로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1990년 국민일보에 입사한 이후 2020년 뉴스 1 부국장을 마지막으로 30년 언론인생활을 마무리했다. 정치부장, 정치선임기자 등으로 여의도 정치권과 청와대, 총리실 등을 취재하고 후배 기사를 데스킹하는 데 20여년을 보냈다. 현재 민간연구원 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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