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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Room Exclusive
  1. 칼럼

[치앙마이 日記 12] 라오스 후아이사이에서 팍벵까지 슬로우 보트여행을 하다.

김승열  한송온라인리걸앤컨설팅센터(HS OLLC) 대표 변호사, IP ART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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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처음으로 슬로우 보트 여행에 도전했다. 주로 유럽의 배낭 여행객들에게는 친숙한 코스로 보였다. 비행기나 버스보다 조용하고 비교적 쾌적하고 슬로우 라이프를 즐길 수 있는 멋진 일정이었다. 비로 물이 탁하여 아쉬운 점이 있었지만 그 유명한 메콩강을 따라 유유히 미끄러지는 슬로우 보트는 결코 잊을 수 없는 멋진 기행이고 추억이었다.
지금은 태국 치앙콩 메콩강가. 현지 시간으로 새벽 5시. 주위는 아직 어둡고 조용하다. 저 멀리서 슬로우 보트가 다니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런데 배의 불빛이 보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배의 엔진 소리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날씨는 의외로 쌀쌀하다. 낮은 32도 가까이 되는 데 어두운 새벽은 카디건을 입어도 제법 쌀쌀한 정도이다.
신기하다. 이곳이 그 유명한 메콩강이라니…. 불빛에 지친 듯 보이지만 여전히 강은 유유히 흐르는 모습이다.
 
주위가 조용해서 좋다. 마치 세상 사람이 전혀 없는 것 같다. 간간히 닭 울음소리, 개 짖는 소리도 들린다. 소란스럽기는커녕 너무 조용해서 오는 무료함을 달래는 듯해 반갑다.
강이 바라보이는 곳에 풍경을 달아 놓았다. 지금은 바람이 없어서 풍경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마치 잠들어 있는 것 같다. 모든 세상이 잠들어 있다.
 
숙소 밖으로 나가니 그저 어두울 뿐이다. 잠시 앉아 있으니 의외로 춥게 느껴졌다. 옷을 몇 겹 입어도 춥다. 서서히 날이 밝아온다. 어둠 속에 숨어있던 경관도 점차 제 모습을 찾고 있다. 그리고 보니 추위도 점차 가셔지는 것 같다.
아침이라고는 계란 프라이에 빵 2조각. 열악하였다. 맛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이어서 유스호스텔 직원이 출국과 입국절차에 대하여 간단히 설명하였다.
 
안내에 따라 치앙콩 출입국 사무실까지 미니밴을 타고 갔다. 출국심사는 비교적 부드러웠다. 곁에 있는 직원이 “안녕하세요”라고 한국말을 한다. 반가웠다. 이어서 라오스로 가는 셔틀버스를 탔다. 셔틀버스는 20바트를 지불해야 한다. 국경을 지나 이제 라오스의 후아이사이(Huayxai) 시로 왔다.
 
지금부터 도착비자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한국은 비자 면제국이다. 비자를 받으려고 줄을 서거나 비자발급 비용을 낼 필요가 없다. 네덜란드나 미국에서 온 친구들이 다 비자를 받으려고 줄을 서는 데 혼자 유유히 출입국심사장으로 갔다. 그냥 통과였다. 기분이 좋았다.
대한민국이 너무 자랑스러웠다. 일행 중 제일 먼저 입국장에 들어가서 여유있게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리니 일행의 모습이 하나둘 보인다. 그러면서 나라마다 비자발급비가 다르다면서 모두 한마디 한다. 한국인이어서 비자도 필요 없고 또한 비용도 일절 안 냈다는 것을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다. 모두 다 부러워하는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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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슬로우 보트 선착장으로 가는 차를 기다렸다. 거의 한 시간을 기다리자 그제야 겨우 나타났다. 20분여 차를 타고 가니 슬로우 보트 선착장에 도착했다. 거의 만선이었다.
보트를 탈 때는 신발과 양말을 벗게 하였다. 자리가 없어서 한참 헤매다가 빈자리가 있어 앉아도 되겠느냐고 물어니 앉으라고 했다. 알고 보니 그 친구는 덴마크에서 온 젊은 친구였다. 넉 달간 동남아 국가 5개국을 돌고 2주 후에 암스테르담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젊은 패기가 느껴졌다.
앞으로의 슬로우 보트의 여정이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슬로우 보트란 다른 것이 아니라 60~70 명 정도 탈수 있는 일반적인 배를 의미했다. 생각보다는 그리 나쁜 배는 아니었다. 승객을 보니 라오스 현지인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가 유럽 배낭족들이었다. 동양인 관광객은 현지인을 제외하고 찾아보기 어려웠다.
 
메콩강은 그저 도도히 하류로 흐를 뿐 달리 파도가 없다. 호수를 떠다니는 것 같이 안정되고 평온했다. 버스 타는 것 보다는 잘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는 하지만 메콩강 주변의 경관도 보면서 유유자적함을 누릴 수 있는 순간이었다.
조금 지나자 유럽의 젊은이들이 서로 모여서 즐겁게 대화하고 술도 마시며 춤도 추는 분위기였다. 그렇지만 그리 소란스럽지는 않았다. 조금 목소리가 높을 뿐이었다.
 
중국드라마 등에서 나오는 강호(江湖)에서 배를 타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배가 크게 흔들리지 않아서 좋았다. 그리고 속도도 마음에 들었다. 문자 그대로 슬로우 보트였기 때문이다. 시간이 남아 노트북을 꺼내었다. 물론 와이파이가 안 되어 인터넷 검색은 안 되었지만 간단한 논문을 읽는 등 컴퓨터 작업을 하기에 너무 좋은 환경이었다.
그리고 간간히 부는 바람도 좋았다. 그리고 강가의 목가적인 정취도 부담없이 다가왔다. 모두가 아무런 부담이 없는 분위기이다.
 
다만 아쉬움이 있다면 메콩강이 그리 깨끗하지 않다는 점이다. 아니 공장폐수가 유입되는 것도 아닐 텐데 물이 맑지 못한 것이 끝내 안타까웠다. 강물이 맑았으면 천연의 자연정취를 더 느꼈을 텐데 아무래도 환경 관리가 미흡한 모양이다. 그렇지만 흐린 강물도 부담 없이 다가왔다.
 
메콩 강을 사이에 두고 강변 양쪽으로 펼쳐진 라오스와 태국의 전경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그리 바쁜 세상사를 잊게 만드는 묘한 마력을 발휘하는 것 같았다. 햇빛도 좋고 간간이 부는 바람도 좋고 강가의 풍광도 그저 평온했다. 생애에 이와 같이 느긋한 슬로우 보트 여행은 처음이다. 앞으로도 쉽게 하지는 못할 것 같았다. 또 다른 세상을 보는 느낌 그 자체였다.
 
여행사 직원의 이야기로는 팍벵(Pak Beng)에 도착하면 이름을 적은 표지판을 들고 있는 직원이 나온다고 일러주었다. 그러나 저녁식사나 호텔투숙 등에 대하여는 아무런 관심도 없고 그저 태무심하였다.
그런데 배가 도착했지만 표지판을 든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다. 선착장에 있던 한 사람이 그린 투어(Green Tour)인지를 물어왔다. “그렇다”고 답하니 그제야 “자기네 손님이 맞는 것 같은데 먼저 영수증을 보여 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라오스 선착장에 듣던 얘기와 달랐다. “팍벵에서 직원이 이름표를 가지고 나올 것이니 영수증은 필요없다고 했다”고 하니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화가 났다. 그래서 “이창마이 호텔에서 사전에 예약을 하였고 패키지B를 예약해서 식사까지 모두 부담하기로 된 것인데 어떻게 된 것인지”를 따졌다. 그 직원은 어딘가로 전화를 걸더니 “일단 하얀색 건물로 가라”고 한다.
자기들은 그렇게 연락을 받지 못했지만 일단 호텔에 가서 체크인을 하라는 것이었다. 덧붙여 “저녁은 식사제공이 안 되고 내일 아침과 점심도시락은 제공한다”는 것이다. 기가 막혔다. 그런데 치앙마이에 연락하기도 늦은 시간이고 해서 할 수 없이 그가 시키는 대로 했다.
 
호텔에 가니 직원 중에 영어를 하는 이가 없었다. 통역을 도와준다고 데리고 온 사람을 보니 이제 겨우 고등학생에 불과한 어린 학생이었다. 이 학생 역시 영어를 거의 못하였다. 할 수 없이 구글 번역기를 통하여 겨우 의사소통을 하였다. 당장 심카드를 사야 해서 물어보니 “일주일 사용에 3만 깁”이라고 했다. 한화로 4000원 정도. 꺼림직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필자는 다시 “루앙프라방에서 비엔티안으로 가는 VIP버스 예약을 어떻게 하느냐”고 물으니 모두 “모른다”고 했다. 내일 슬로우 보트를 타면 오후 5시에 루앙프라방에 도착하는 데 마지막 버스기 저녁 8시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터미널 전화번호라도 알면 필자가 전화로 예약을 하겠다고 했는데도 "모른다"는 것이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근처 가게에서 물어보니 "여기서는 예약이 안 된다"고 했다. "내일 슬로우 보트를 타고 터미널에 가면 버스가 많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이야기만 할 뿐이었다. 달리 방법이 없어 보였다. 정 안되면 루앙프라방에서 1박을 하는 수밖에….
 
호텔방에 들어와 보니 전망은 그나마 좋아 보였다. 2층이어서 강이 내려다보이는데 문제는 객실의 형광등이 어두웠다. 실내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전화나 냉장고, TV도 없었다. 달리 필요 없기는 하지만…, 방은 그래도 어제보다는 나은 편이었다. 그나마 수건은 있었기 때문이다.
 
라오스는 한국의 1960~70년대의 모습이었다. 통역을 한다고 나온 친구는 이제 겨우 고등학생이란다. 그런데 아주 깔끔하고 말하는 것도 예의가 발랐다. 어쨌든 어린 학생이 도와주어 고맙다는 말을 하고 1만 깁을 주니 고맙다고 밝게 인사를 하니 귀여웠다.
조만간 라오스도 경제발전을 제대로 이룩하여 어린 친구가 좀 더 밝게 웃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력 : 2020.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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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열의 지식재산과 문화예술

⊙ 법무법인 양헌 대표변호사, KAIST 겸직 교수 ⊙ 55세, 서울대 법학과 졸업. 美 보스턴대 국제금융법 석사, 미국 노스웨스턴 법과대학 LL.M. ⊙ 사법시험 합격(24회), 환경부·보건복지부 고문변호사, 금융위 자금세탁방지정책위원, 미국 뉴욕주 Paul, Weiss 변호사, 대통령 직속 국가지식재산위 산하 지식재산활용전문위원장 역임. 現 한송온라인리걸센터(HS OLLC) 대표 변호사, 대한중재인협회 수석 부협회장(PRESIDENT EL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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