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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100장면

탄생 100주년으로 돌아보는 박정희 100장면

· 출판사 : (주)조선뉴스프레스 월간조선본부
· 발행일 : 2017년 2월 6일
· 가격 : 1만원
· 판형 : 신국판 변형 138×194㎜
· 면수 : 304쪽
· 저자 : 문갑식 김성동 오동룡 배진영 이상흔 편저
· 서울 마포구 상암산로 34 디지털큐브빌딩 13층 (주)조선뉴스프레스
· 구입문의 : (02) 724-6794~8
· 편집문의 : (02) 724-6815
예스24 인터파크 알라딘 교보문고

· 어려울 때일수록 더욱 생각나는 지도자 朴正熙!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거인!
· 100장면으로 소설처럼 재미있게 읽는, 박정희 전기의 결정판!
· 박정희 대통령과 그 시대를 담은 사진 46장 포함!
· 피와 땀과 눈물로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위대한 세대의 기록!
· 젊은이들에게는 둘도 없는 역사 교과서이자 한국형 리더십의 모델!


《탄생 100주년으로 돌아보는 박정희 100장면》을 펴내며

이승만 대통령이 건국(建國)의 국부(國父)라면 박정희 대통령은 근대화의 국부였다. 그가 세상을 뜬 지 37년이 지났지만 한반도라는 화폭(畵幅)에 박정희가 그린 근대화의 스케치는 지금도 남아 있다.

우리가 박정희 대통령이 남겨 놓은 유산(遺産)에 새삼 주목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헬조선’이니 하는 자기비하식 자조(自嘲)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만연하는데도 기성세대는 뚜렷한 목표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역사상 ‘우리도 잘살 수 있다’는 희망과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한 리더십은 박정희뿐이다.

둘째, 고도성장기에서 저성장기로 접어든 이때야말로 대한민국은 다시 뛰어야 한다. 그런데 누구나 그 필요성을 절감하면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우리 역사상 국민 전체를 신바람나게 만들어 천형(天刑)과도 같았던 절대 빈곤의 울타리를 허물게 만든 유일한 지도자가 바로 박정희였다.

셋째, 북한이 핵폭탄과 핵 미사일을 양손에 쥐고 대한민국 국민들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 그런데 이런 북한의 무력을 막을 최소한의 자위(自衛)수단인 사드 배치를 놓고서도 국민들은 갈등을 빚고 있다. 이 시대야말로 ‘박정희식 자주국방’을 복습하고 한민족의 생존을 고찰할 필요가 있다.

넷째, 미국·중국·일본의 틈바구니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은 점점 위축되고 있다. 비록 가난했지만 열강들에 둘러싸였으면서도 자주(自主)·자립·자존 의식을 잃지 않았던 사람이 바로 박정희다. 우리 역사상 가장 유능한 경제교사였던 박정희에게 우리는 그 해법을 다시 한 번 배워야 한다.

다섯째, 박정희 시대를 흔히 독재, 반 민주화의 시대로 낙인찍는 것이 오래전부터 유행이 됐다. 그 틈을 비집고 종북·좌익 세력은 지금도 대한민국을 왼쪽으로 틀어 적화(赤化)하려는 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다. 이제야말로 ‘한국적 민주주의’가 무엇인가를 복습할 필요가 있다. 당연히 그것은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말을 창시한 박정희에게 물어야 한다.

《탄생 100주년으로 돌아보는 박정희 100장면》은 조갑제 전 《월간조선》 편집장이 지은 《박정희》(전 13권)을 비롯해 기존에 출간된 모든 박정희 대통령 관련서에서 정수(精髓)만을 추출해 읽기 쉽고 박정희 시대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만든 것으로, 박 대통령 시대를 집약한 결정판이라고 자부한다.

문갑식 《월간조선》 편집장




책 중에서

박정희는 해병대가 작전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다리 난간에 기대어 담배를 피워 물었다.
이석제가 말했다.
“각하, 일이 끝내 안 되면, 각하 바로 옆 말뚝은 제 것입니다.”
박정희는 씩 웃으면서 말했다.
“사람의 목숨이 하나뿐인데, 그렇게 간단하게 죽어서야 쓰나?”

“광부 여러분, 간호원 여러분, 모국의 가족이나 고향 땅 생각에 괴로움이 많을 줄로 생각되지만 개개인이 무엇 때문에 이 먼 이국(異國)에 찾아왔던가를 명심하여 조국의 명예를 걸고 열심히 일합시다. 비록 우리 생전에는 이룩하지 못하더라도 후손을 위해 남들과 같은 번영의 터전만이라도 닦아 놓읍시다.…”
-
박정희 대통령, 1964년 12월 10일 함보른 탄광 연설

“과거 일제시대에 우리가 일제와 싸우던 것과 마찬가지인 정신자세, 즉 왜적이 와서 우리를 점령하고 우리를 식민지화하고 우리가 남의 노예가 되었을 때 우리가 일제에 대항하던 이러한 정신자세를 (지금에 와서는)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하는 것입니다. 인텔리 가운데는 정부가 하는 일은 무조건 반대하여야만 그 사람이 아주 인텔리이고 지식인이고 애국자연합니다. 정부가 하는 일은 그네가 아무리 생각해도 옳다고 해도 여럿이 있는 데서 이야기했다가는 ‘저 사람은 사쿠라요, 정부의 앞잡이다’ 하는, 이런 우리 한국의 인텔리들의 사고방식이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지기 전에는 한국의 근대화라는 것은 어렵습니다.”
-
박정희 대통령, 1965년 5월 1일 진해 제4비료공장 기공식

1967년 9월 13일 박정희 대통령은 전자공업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김완희(金玩熙)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교수로부터 한국전자공업 발전 방안에 대한 브리핑을 받았다. 전자공업이라야 금성사가 막 홍콩제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카피해 만들려고 시도하던 시절이었다. 브리핑이 끝난 후 박정희는 김완희와 점심을 같이했다. 식사를 마친 박정희는 김완희를 서재로 데리고 갔다. 박정희는 서랍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탁자 위에 놓으면서 말했다.
“김 박사, 미국 모토롤라사(社)가 한국에서 이걸 만들겠다고 하면서 공장부지 매입을 허가해 달랍니다.”
박정희가 탁상 위에 올린 것은 작은 트랜지스터였다.
“요 쪼맨한 것이 한 개 20~30달러나 하고, 손가방 하나면 몇만 달러가 된다고 합디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도 면직물밖에 수출하지 못하니…. 차로 한 곳간을 채워도 손가방 하나만큼도 못하니…. 내 이래서 김 박사를 보자고 한 겁니다. 김 박사, 우리나라도 전자공업을 육성하고 싶은데 도와주시오.”

한 송이 흰 목련이 바람에 지듯이
상가(喪家)에는 무거운 침묵 속에
씨롱 씨롱 씨롱 매미 소리만이
가신 님을 그리워하는 듯
팔월의 태양 아래
붉게 물든 백일홍이
마음의 상처를 달래주는 듯
한 송이 흰 목련이 봄바람이 지듯이
아내만 혼자 가고 나만 남았으니
단장(斷腸)의 슬픔을 어디다 호소하리.
-

육영수 여사 서거 후인 1974년 8월 20일 박정희 대통령이 지은 시



“그리고 시계가 평범한 세이코였고 넥타이핀의 멕기가 벗겨져 있었으며 혁대도 헤져 있었습니다. … 이런 여러 가지 사실로 미루어 각하라고는 상상도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
10· 26사태 후 박정희 대통령의 시신을 살펴보았던 군의관 정규형 대위

“박정희는 파란만장의 시대를 헤쳐 가면서 영욕(榮辱)과 청탁(淸濁)을 함께 들이마셨던 사람이다. 더러운 강물 같은 한 시대를 삼켜 바다와 같은 다른 시대를 빚어낸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정신을 맑게 유지했던 초인(超人)이었다. … 부끄럼타는 영웅이고 눈물이 많은 초인, 그리고 한 소박한 시민이었다. 그는 한국인의 애환을 느낄 줄 알고 그들의 숨결을 읽을 줄 안 토종(土種) 한국인이었다. 민족의 한(恨)을 자신의 에너지로 승화시켜 근대화로써 그 한을 푼 혁명가였다.”

조갑제



목차

서문
《탄생 100주년으로 돌아보는 박정희 100장면》을 펴내며


제1부 상모리 소년, 군인이 되다
001. 사투(死鬪)와 출생
002. 상모동 시절
003. 대구 사범 꼴찌 학생
004. 교사 박정희
005. 만주로 가다
006. 만주군관학교
007. 일본 육사 졸업과 소위 임관
008. 광복군과 평진대대

제2부 군인의 길
009. 초라한 귀국, 육사 입교
010. 형 박상희의 죽음과 남로당 가입
011. 여순반란, 백선엽과 김창룡
012. 이현란, 용산시절
013. 전투정보과 문관 박정희, 6·25 전야
014. 6·25 이후 군(軍)으로 복직
015. 육영수와 박정희
016. 군인 박정희와 생선회 사건
017. 국군장병에게 고함
018. 육본의 심야 참모회의
019. 박정희와 이용문
020. 박근혜의 탄생
021. 박정희식 일처리
022. 미국 유학
023. 25년 동반자 박환영·이타관
024. 1956년 5·15선거 - “선거에 관한 한 나는 사단장이 아니다”
025. 공사(公私) 구분 철저
026. 노량진 집과 충현동 집

제3부 혁명
027. 부산 군수기지사령관
028. 부산지구 계엄사무소장
029. 도의와 기백
030. 송요찬 총장께
031. 정군운동과 5·16의 태동
032. 시인 구상이 본 박정희
033. 한강다리
034. 혁명방송
035. 양말을 빠는 최고 권력자
036. 박정희와 이병철
037. 혁명 후 첫 기자회견
038. 주한 미국대사의 보고서
039. 박정희와 케네디
040. 민정 이양이냐, 군정 연장이냐
041. 박정희 대장의 전역사
042. 고운 손은 우리의 적이다

제4부 근대화
043. 1963년 대통령 선거
044. 노인의 예언
045. 내가 왜 공산주의자요?
046. 금의환향
047. 박정희와 장준하
048. 신문은 국민을 너무 자극한다
049. 함보른 광산의 눈물
050. 박정희의 지식인관
051. 한일회담 타결에 즈음한 특별담화문
052. 박정희와 KIST
053. 박정희와 이승만 - 거인(巨人)에게 보내는 초인(超人)의 조사(弔辭)
054. 박정희가 보는 대학
055. 월남 파병
056. 박정희와 마르코스의 라이벌 의식
057. 김은국이 본 박정희
058. 대한민국의 3대 공적(公敵)
059. 1·21사태
060. 육영수 여사의 눈물
061. 푸에블로호 납치 사건
062. 싸우면서 일한다 - 예비군 창설
063. 경부고속도로 건설 - 박정희와 정주영
064. 불발된 여야 영수회담
065. 울진·삼척 무장공비 사건
066. 3선 개헌
067. 박정희와 소양강댐
068. 박정희와 포항제철
069. 한국 전자공업의 가정교사 김완희 박사
070. 닉슨 독트린과 미(美) 7사단 철수
071. 새마을운동
072. 7대 대통령 선거 - “표를 달라는 연설은 이게 마지막”
073. 4인 체제의 종말
074. 이후락의 방북과 7·4공동선언

제5부 초인의 황혼
075. 10월 유신
076. 중화학공업화 정책 선언
077. 윤필용 사건
078. 김대중 납치 사건
079. 마탄(魔彈)의 사수(射手) - 문세광의 저격 미수 사건
080. 문세광의 입을 연 검사 김기춘
081. 시인 박정희
082. 북한 땅굴
083. 월남 패망
084. 대통령긴급조치 9호
085. “절간 같은 데 오래 살 생각 없다” 박정희 - 김영삼 회담
086. 포항 ‘석유 발굴’ 사건
087. 미친개에겐 몽둥이가 약이다
088. 행정수도 계획
089. 수출 100억 달러
090. 가로림만 프로젝트
091. “미국이 핵 가져가면 우리가 개발할 것”
092. 박정희와 카터
093. 전두환의 등장 - 그와 박정희 대통령
094. 부마사태
095. 리콴유가 말한 박정희
096. 효자손, 카빈소총, 벽돌
097. 10·26 밤의 궁정동
098. 심수봉과 신재순
099. 오만했던 차지철의 최후
100. 해진 혁대

교사·군인·혁명가·경영자의 네 얼굴을 연기한 ‘눈물 많은 超人’
조갑제


박정희 국가지도력 뿌리 만주대륙 웅혼(雄渾) 사관학교 엄혼(嚴魂)
고산고정일



필자

문갑식 《월간조선》 편집장
1962년생. 연세대 행정학과·행정대학원(행정학 석사)·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언론학 석사)을 마친 뒤 일본 게이오대 방문교수, 미국 하와이대 미래학 과정 수료,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교수를 지냈다. 1988년 《조선일보》에 입사해 2016년 3월 《월간조선》 편집장으로 옮길 때까지 논설위원·기획취재부장·스포츠부장을 지냈다. 이라크전·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취재했으며, 동일본 대지진 당시 한국 기자로는 처음 후쿠시마로 들어가 취재했다.

김성동 《월간조선》 부장
1962년생.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0년 《월간조선》에 입사해 현재 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2002년 김대중 정부의 대북 비밀 송금 의혹을 최초로 제기했다.

오동룡 《월간조선》 차장
1964년 태어나, 연세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국방대에서 안보정책 석사, 군사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 군사 분야(방위정책·방위산업)에 관한 국내 최초의 박사 학위이자 국방대가 배출한 민간인 박사 1호다.
2005년 일본 외무성 특수법인인 일한국제교류기금(재팬파운데이션) 초청으로 시즈오카현립대학에서 객원연구원 겸 연수특파원으로 근무했다. 저서로는 《일본인도 모르는 일본 자위대》 《일본 방위정책 70년과 게이단렌 파워》가 있다.
법의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2015년 제3회 도상(度想)법의문화상을 받았다. 현재 조선뉴스프레스 월간조선부 차장으로, 국방·안보 분야를 취재하고 있다.

배진영 《월간조선》 차장
1966년생. 한양대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2000년부터 《월간조선》에서 일하고 있다.
주로 한국현대사나 우리 사회의 이념갈등에 대한 기사를 많이 써 왔다. 특히 2004년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좌편향성을 비판하는 기사를 최초로 쓴 것을 기자 생활의 큰 보람으로 생각하고 있다. 2012년 조국과 자유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45권의 책을 소개하는 《책으로 세상읽기》를 펴냈다. 공저한 책으로는 《억지와 위선》 《이승만깨기:이승만에게 씌워진 7가지 누명》 《시간을 달리는 남자》 등이 있다.

이상흔 《월간조선》 차장대우
1971년 태어나 영남대 무역학과를 졸업했다. 2001년 《월간조선》에 합류했다. 월간지 성격에 맞는 생명력이 긴 기사를 쓰고 싶어한다.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사건이나 역사적 사건을 다큐멘터리 식으로 재구성한 기사를 많이 썼다. ‘여대생 하양의 공기총 피살사건’ ‘전교조에 시달리다 목을 매 숨진 서승목 교장 자살사건’ ‘흥남철수작전’ 등은 회자가 많이 된 기사다. 이라크 전쟁 직후 현장 취재를 통해 후 세인 독재의 실상을 전했고, 동남아 대지진 때는 쓰나미가 휩쓸어 초토화된 스리랑카 해안 500km의 상황을 취재했다.

20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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