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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호

[호암캠프] 호암 이병철의 사회 공헌 활동

“조상의 아름다운 전통을 잇는 데 큰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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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쉰다섯 생일 때 삼성문화재단 설립해 인재 양성 꿈 실현
⊙ 개인 소유의 5만m²(1만5000평) 땅에 호암미술관 세워

高承禧 단국대 명예교수
⊙ 애월商高, 제주大 상학과 졸업. 고려대대학원 수료, 日 오사카大 경제학 박사.
⊙ 제주大, 오사카大 객원교수, 단국大 경영대학원장, 한국경영사학회 제5대 회장,
    한국기업윤리학회장 역임. 現 단국대 명예교수.
⊙ 저서 <우리나라 기업회계제도의 개선방향> <한국의 시장상업사> <재무회계론> 등 다수.

정리 : 조은정月刊朝鮮 인턴기자〈pubmonth@chosun.com〉
  호암 이병철 선생은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을 모색하다 메세나(Mecenat) 운동을 펼치게 됐다. 메세나 운동은 기업이 수행하는 사업 참여활동 중에서 문화예술 분야를 지원하거나 직접 참여하는 것을 말한다. 호암은 문화재를 수집해 민족문화를 보호하는 일부터 사회봉사 활동까지 관심이 다양했다. 특히 일본에 밀반출됐던 ‘청자진사연화문표형주자’(靑磁辰砂蓮華文瓢形注子·국보 133호)는 100만 달러가 넘는 고가품(高價品)이었으나 이병철 선생이 3500만원에 구입해 환국(還國)시켰다. ‘아미타삼존도’(阿彌陀三尊圖·국보 218호)와 ‘지장도’(地藏圖·보물 784호)를 찾아오는 데도 애썼다.
 
  인재제일주의의 신념을 가졌던 그는 인재육성을 위해 삼성장학회를 설립했다. 1967년까지 총 630명의 대학생들에게 2351만원에 달하는 장학금을 지급해 사회의 공공복리증진에 크게 기여했다.
 
  호암 이병철 선생의 사회 공헌활동은 여러 루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쉰다섯 번째 생일을 맞았던 1965년, 그는 삼성문화재단을 만들었다.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고, 과학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였다.
 
  호암은 “가족이 생활하고 남는 재산은 문화재단에 출연해 사회공익에 기여하도록 하자. 우리 일가(一家)가 앞장서서 사회 번영에 이바지하자”고 했었다. 이병철 선생은 재단 기금으로 본인 소유의 주식과 임야 36만여m²(11만평), 주택 등 10억원 상당을 내놨다. 1971년에는 사재(私財)를 처분해 기금을 60억원으로 늘렸다.
 
 
  본인 소유의 작품 1167점 호암미술관에 넘겨
 
  이병철 선생은 조상들의 아름다운 전통과 사상(思想)을 잃어가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1967년부터 시작된 ‘도의문화심포지엄’은 ‘한국, 오늘과 내일의 사이’라는 특별기획으로 총 쉰두 번에 걸쳐 이뤄졌다. 이 사업의 일환으로 문학 작가를 발굴, 지원하기 위해 ‘도의문화 저작상’을 만들었고, 우리의 전통인 효(孝)를 되찾자는 의미에서 ‘효행상’을 제정했다. 도의문화 영화도 제작했다.
 
  이병철 선생은 인재제일주의를 강조하며 대구대학의 운영경험을 토대로 성균관대학교를 인수(1965년)했다. 그는 교사신축 및 시설비로 14억원, 연구비 3억원, 장학금 6억원 등을 지원했다. 장학금만 지원한 것이 아니라, 학술 연구기관이나 학자들의 연구 활동도 도왔다.
 
  삼성문화재단이 전개한 사업 중 ‘삼성문화문고’를 빼놓을 수 없다. 이곳에서는 <독일국민에게 고함>이라는 번역서(1971년)를 비롯해, <명이대방록(明夷待訪錄)> 등 양서(良書)를 출간했다. 삼성문화문고는 이후 총 81만 부의 책을 내 우리나라 양서보급에 기여했다.
 
  호암미술관은 이병철 선생이 소유하고 있던 용인군의 5만m²(1만5000평) 토지를 내놓으면서 설립됐다. 총 16억원의 공사비를 투입해 개관(開館)한 미술관에는 호암이 30여 년 동안 소장해 온 문화재 1167점이 있다. 호암미술관은 1978년 개관한 이후 1994년까지 총 40회에 걸쳐 특별기획전을 열어 주요 문화재의 가치를 소개하고 미술 문화사의 흐름을 체계적으로 분석했다.
 
  호암의 이런 문화사랑 정신은 그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지속됐다. 1992년에는 영국 런던의 빅토리아·앨버트 박물관에 삼성갤러리가 설치돼 한국문화의 독창성과 우수성을 해외에 알렸다.
 
 
  중앙일보 만들어 직접 寄稿
 
  이병철 선생은 이후에 매스컴 산업에 진출했는데 매체를 통해 종종 본인의 소신을 밝혔다.
 
  그는 1975년 3월자 중앙일보에 ‘황폐한 국토를 찾자’는 제목으로 국토개발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여기서 그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공업부문이 급성장을 이뤘지만 농업부문은 상대적으로 퇴보됐다”며 “앞으로 예견되는 식량위기를 비롯해 자원경쟁에 대비하는 길은 국토를 가장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것뿐”이라고 강조했다.
 
  이병철 선생은 용인자연농원(현 에버랜드)을 국토개발의 시범사업장으로 지정하고 황폐한 야산을 집약적으로 개발, 국토 넓히기 운동에 앞장섰다. 1976년 4월 17일 개장한 용인자연농원은 공해를 벗어난 연중무휴(年中無休)의 휴양지를 제공해 국민의 정서적 안정과 자연에 대한 교육연구기관으로 사회 교육적 측면에서 큰 성과를 거뒀다.
 
  안양컨트리클럽을 건설(1968년)해서 스포츠문화로서의 골프장사업을 전개했고, ‘호텔신라’를 창업(1978년)해 호텔문화사업에 착수했다. 호텔신라는 자선사업 및 불우이웃돕기에도 참여해서 기업이윤의 사회환원을 몸소 실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제일기획을 설립해 광고문화의 기틀을 다졌고, 고려병원(현 강북 삼성병원, 1968년)을 개원하는 등 문화·복지사업도 펼쳤다.
 
  삼성의 기업문화는 기업이윤의 단순한 자선적 사회환원이 아니라 인류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 더불어 잘사는 글로벌 사회를 주도하면서 박애주의적 기업문화 가치 창조에 헌신했다. ⊙
 
  사진 : 구희언
 

  [호암어록]
 
  ▲경영계획의 결정은 의욕적으로 해야 한다. 90%만 목표로 세워놓고 초과달성하는 것보다 120%의 목표를 세우고 110% 이상 달성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법이다
  -1973년 2월, 정례사장단회의에서
 
  ▲실패하리라는 생각이 가장 위험하다. 어느 사업이나 실패의 위험은 다 있는 법이지만, 가장 위험한 것은 처음부터 실패할 여지가 있다는 생각을 안고 일에 착수하는 것이다
  -1980년 7월, 전경련강연에서
 
  ▲결심한 이후에는 과감히 실행하라. 결심하기 전에는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지만 계획이 확정되면 만난(萬難)을 무릅쓰고 과감하게 실행하는 것이 사업가의 기본적인 태도이다
  -1980년 7월, 전경련강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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