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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의 편지

인간을 ‘인간도 아닌 것들’이라고 낙인찍을 때 벌어지는 일들

글 : 배진영  월간조선 편집장  ironhee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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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8일 토요일 오후 저는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후배 기자의 결혼식이 열리고 있는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로 가고 있었습니다. 남대문을 지나면서부터 차량의 흐름이 정체(停滯)되기 시작했습니다. 차창 밖을 보니 한쪽 차도를 막고 집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촛불○○’인가 하는 단체의 ‘윤석열 탄핵 촉구 집회’였습니다. 참석자들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단상에서 연설을 마친 젊은이가 구호를 외쳤습니다.
 
  “인간도 아닌 것들, 윤석열 일당 끌어내자!”
 
  이어 단상에 오른 여자 사회자가 연설자에 대한 박수를 유도한 후 악을 쓰듯 외쳤습니다.
 
  “다시 한 번 구호를 외치겠습니다! 인간도 아닌 것들, 윤석열 일당 끌어내자!”
 
  순간 소름이 쫙 끼쳤습니다. 아직 임기가 3년이나 남은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리가 나와서는 아니었습니다. 내로라하는 야당 국회의원들이 공공연히 ‘탄핵’을 주장하고 있는 판국이니, 이거야 새삼스러운 소리는 아니었습니다. 제가 소름이 끼쳤던 것은 ‘인간도 아닌 것들’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윤석열 정권에 대해 비판을 할 수도 있고, 비난을 할 수도 있습니다. 욕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도 아닌 것들’이라니….
 
 
  ‘인간 이하의 존재들’
 
  ‘인간도 아닌 것들’이라는 표현을 제가 민감하게 받아들인 것은 얼마 전 윌리엄 L.샤이러의 《제3제국사》을 읽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히틀러의 탄생부터 나치 독일의 패망까지를 다룬 책인데,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다룬 대목에서 ‘인간 이하의 존재’라는 표현이 여러 번 나옵니다. 다음은 1943년 4~5월 바르샤바 게토에서의 유대인 봉기를 진압한 친위대 장성 위르겐 슈트로프의 보고서 내용입니다.
 
  “그날 몇 블록을 더 불살랐다. 쓰레기 같은 인간 이하의 존재들을 끌어내는 유일한 최종 방법이다.”
 
  “유대인, 폭도, 인간 이하의 존재 180명을 말살했다. 바르샤바의 옛 유대인 구역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처치한 유대인 총수는 체포한 유대인과 절멸을 입증할 수 있는 유대인을 포함해 5만6005명이다.”
 
  “체포한 총원 5만6005명 가운데 약 7000명은 대규모 작전 도중 이전 게토에서 말살했다. 유대인 6929명은 트레블링카로 이송해 말살했다. 그러므로 말살한 유대인 총수는 1만3929명이다. 그 외에 폭파하거나 화염으로 죽이는 방법으로 유대인 5000명에서 6000명을 말살했다.”
 
  슈트로프에게 유대인을 비롯해 나치에 반항하는 자들은 ‘인간 이하의 존재’에 불과했습니다. ‘인간 이하의 존재’이기에 슈트로프는 불사르고, 폭파하고, 수용소로 보내 그들을 ‘말살’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인간’을 죽인 게 아니라, ‘인간 이하의 존재’를 ‘말살’했을 뿐이었습니다.
 

  독일의 의사 아우구스트 히르트가 인종학(人種學) ‘연구 자료’를 구하기 위해 친위대에 보낸 편지에서도 ‘인간 이하의 존재’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혐오스럽지만 특징적인 인간 이하의 존재의 원형을 대표하는 유대-볼셰비키 정치위원들의 두개골을 입수함으로써 우리는 이제 과학적 자료를 얻을 수 있습니다.”
 
  히르트가 원한 것은 이미 사망한 ‘유대-볼셰비키 정치위원들’의 두개골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살아 있는 ‘유대-볼셰비키 정치위원들’의 머리를 측정한 후, 그들을 죽여 두개골 표본으로 만들기를 원했습니다.
 
  “머리가 손상되지 않는 방식으로 유대인들의 죽음을 유발한 뒤 외과의가 머리를 몸에서 절단해… 밀봉된 양철통에… 집어넣을 것입니다.”
 
  인종학에 몰두하고 있던 친위대 사령관 힘러는 히르트의 편지에 크게 기뻐했고, ‘유대-볼셰비키 정치위원들’의 두개골을 넉넉히 제공해주었습니다. 그들은 어차피 ‘인간 이하의 존재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나치가 유대인 600만 명을 가스실로 보내 학살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였습니다.
 
 
  ‘돼지’로 묘사된 소련 부농들의 최후
 
  윤석열 탄핵을 주장하는 이들이 ‘인간도 아닌 것들’이라고 악을 쓰는 순간, 제가 소름이 끼쳤던 것도 그 말이 유대인들을 지칭했던 ‘인간 이하의 존재들’이라는 말과 너무나 흡사해서였습니다.
 
  지금 저들이 ‘인간도 아닌 것들’이라고 표현하는 대상은 몇몇 ‘윤석열 일당’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인간도 아닌 것들’인 ‘윤석열 일당’을 끌어낸 후에는 어떻게 될까요? ‘인간도 아닌 것들’ 밑에서 혜택을 보았던 사람들, ‘인간도 아닌 것들’에게 투표했던 사람들, ‘인간도 아닌 것들’을 끌어낸 세상에 대해 비판하고 불평을 말하는 사람들은 무사할 수 있을까요? 종국에는 ‘인간도 아닌 것들’에게 저항하지 않았던 이들도 무사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들도 ‘인간도 아닌 것들’로 간주되어 가진 것을 빼앗기고, 수용소로 보내지고, 학대받다가 학살당하는 세상이 오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미국의 역사학자 티모시 스나이더는 《폭정》이라는 책에서 반대자들을 ‘인간도 아닌 것들’로 몰아붙이는 세상이 종국에는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이렇게 경고했습니다.
 
  “이오시프 스탈린 치하의 소련에서 부농(富農)은 선전 포스터에서 돼지로 그려졌다. 인격을 부정하는 이러한 이미지는 농촌이라는 배경을 고려할 때 분명히 도살(屠殺)을 암시한다. 때는 1930년대 초로, 당시에 소련은 시골을 장악하고 그 자본을 뽑아내 단기 집중 산업화에 투입하려고 했다. 남보다 땅이나 가축을 더 많이 가진 농민이 가장 먼저 재산을 잃었다. 돼지로 묘사된 이웃의 땅을 빼앗는 데 양심의 가책 따위는 없었다. 그러나 그 상징 논리를 따랐던 사람들은 자기 차례에서 희생자가 되었다. 빈농이 부농을 적대하도록 만들고 나서, 소련 정권은 다음 조치로 모든 사람의 토지를 강탈하여 새로운 집단농장을 만들었다. 농업집단화가 완료되자 많은 소련 농민이 기아에 허덕였다. 1930년에서 1933년 사이 우크라이나 소비에트와 카자흐스탄 소비에트, 러시아 소비에트에서 수백만 명이 끔찍하고 굴욕적인 죽음을 맞이했다. 그 기아가 끝나기 전, 소련 시민들은 인육(人肉)을 얻기 위해 인체에서 살을 발라냈다.”
 
  당초 ‘돼지’로 묘사되었던 부농들뿐 아니라, 부농들을 ‘돼지’로 몰고 그들을 약탈했던 이들까지도 결국 인육을 먹는 ‘인간 이하의 존재’로 추락했다는 얘기가 섬뜩합니다.
 
 
  참극을 막으려면…
 
  저는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참극(慘劇)이 벌어질까 봐 걱정입니다.
 
  괜한 기우(杞憂)라고요? 어느 유명 좌파 작가는 몇 년 전 공공연히 “반민특위는 민족정기를 위해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자 반드시 부활시켜야 한다. 그래서 150만 정도 되는 친일파를 단죄해야 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1980년대 주사파(主思派) 가운데는 사석에서 “통일이 되어도 특별독재대상구역(강제노동수용소)은 필요하다”고 말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소리를 하는 자들은 한 줌밖에 안 되는 정신 나간 자들일 뿐이라고요? 히틀러와 나치 패거리들도 처음에는 한 줌밖에 안 되는 정신 나간 자들이었습니다.
 

  지금은 나치 시대, 스탈린 시대와는 다르다고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시진핑(習近平) 치하 중국의 신장위구르에 만들어진 강제수용소, 북한의 특별독재대상구역은 나치 시대, 스탈린 시대의 참극이 이 시대에도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웅변하고 있습니다.
 
  착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러지 않을 거라고요? 불과 74년 전 이 땅에서도 ‘인민의 적(敵)’ ‘반동’으로 몰린 사람들을 죽창으로 찌르고 바다에 밀어 넣어 죽이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런 세상이 오는 것을 반드시 막아야 합니다. 그러자면 무엇보다도 먼저 ‘인격을 부정하는 이미지’, 즉 ‘인간도 아닌 것들’과 같은 말들이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경계하고 경고해야 합니다. 그런 말들을 입에 올리거나 조장하는 자들은 히틀러나 스탈린과 동류(同類)입니다. 누군가를 ‘인간도 아닌 것들’ ‘인간 이하의 존재’ ‘돼지’라고 낙인찍는 세상과 그들을 학살하고 도살하는 세상 사이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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