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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의 편지

‘대한민국 保守 0년’ 보수, 다시 시작해야 한다

글 : 배진영  월간조선 편집장  ironhee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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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10일 실시된 제22대 국회의원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참패(慘敗)했습니다. 그야말로 ‘보수(保守) 궤멸’ 수준입니다. 집권 여당이 총선에서 이렇게 참패한 것은 헌정사상(憲政史上) 처음입니다.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이 패했을 때는 당시 민주당의 여당 프리미엄, 코로나19 대책을 빙자한 돈 풀기 등을 탓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여당이면서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참패를 당했습니다,
 
  2022년 대선에서 23만 표 차이로 간발의 승리를 거두었던 윤석열 대통령이 선거연합을 스스로 무너뜨리지 않았더라면, 작년 강서구청장 선거 패배 이후 조금만 ‘수그리’ 했다면, 의대 증원이라는 분열적 정책을 내놓지 않았다면, 4월 1일 대국민 담화 때에 조금만 겸허하게 국민들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였다면….
 
  아쉬운 순간들이 많지만, 이제는 다 지나간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선거 기간 중 “이번 총선에서 지면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라고 했는데, 이제 대통령 탄핵과 개헌(改憲)을 가장(假裝)한 체제 변혁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역사의 죄인이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보수의 실력이 드러난 것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하면 이번 총선 결과는 2024년 현재 대한민국 보수의 실력이 그대로 드러난 것입니다. 어찌어찌해서 대통령직은 탈환했지만, 대통령을 올바르게 보좌할 인재들을 발굴하지 못한 것도, 선동방송을 바로잡지 못한 것도, 범법(犯法)을 저지른 정치인들을 제대로 징치(懲治)하지 못한 것도, 국민들에게 스스로의 대의(大義)를 설득하지 못한 것도 다 대한민국 보수 세력의 실력이 그것밖에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보수 정치 세력은 1992년 이후 자체적으로 길러낸 대선 후보를 내놓지 못했습니다. 김영삼, 이회창,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 모두 밖에서 들여온 ‘양자(養子)’였습니다.
 
  보수는 1997년에 처음으로 정권을 빼앗기고도, 5년 후에 정권 탈환에 실패하고서도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몰랐습니다. 여전히 자기들이 대한민국 주류(主流)라는 착각 속에서 선동 세력을 욕하고 철없는 젊은것들을 탓했습니다.
 

  보수 세력은 후계 세대를 길러내는 일 또한 게을리했습니다. 총선·대선 때에는 외부에서 인기 있는 인사들을 양자로 들여 그 순간을 넘기는 데 급급해했습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도 그런 양자인 셈입니다.
 
  정권을 잡으면, 좌파는 ‘자리’를 ‘미래의 전사(戰士)’들을 키우는 요람으로 활용했습니다. 우파는 ‘자리’를 ‘어제의 용사’들의 노후(老後) 일자리로 사용했습니다. 이명박 정권도, 박근혜 정권도, 윤석열 정권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사회주의자들이 밀려난 자리는 기회주의자들이 차지했습니다. 김대중·노무현 시절 맹활약했던 ‘아스팔트 우파’는 전쟁이 끝난 후 의병들처럼 “이제 당신들은 필요 없으니 집에 가라”는 식의 대접을 받곤 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 사회는 지속적으로 좌경화(左傾化)되었습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은 이제 변수(變數)가 아니라 상수(常數)가 되었습니다. 사회 각 분야에서 개발연대의 주역들이 물러난 자리를 586 전대협 세대가 차지하더니, 이제는 그 자리를 그들보다 더 독랄한 97 한총련 세대가 물려받게 되었습니다.
 
 
  ‘양동안의 예언’과 ‘군자산의 약속’
 
  양동안 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1988년 ‘이 땅의 우익은 죽었는가?’라는 글을 발표했습니다. 이 글에서 양 교수는 사회 각 분야에서 좌익 세력이 대두하고 있는 현실을 진단하면서 “우익의 각성과 분발이 없을 경우 좌익 세력이 계속 확대되어 머지않은 장래에 이 나라에서 좌익 세력과 제휴한 정권이 들어서고, 다음에는 좌익 세력이 주도하는 연합정권이 등장하고, 그다음에는 공산정권이 등장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카산드라의 예언’처럼 양 교수의 경고는 지금 우리 눈앞에 현실로 닥쳐왔습니다.
 
  ‘군자산의 약속’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2001년 9월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이 개최한 ‘2001 민족민주전선 일꾼전진대회’에 참석했던 전교조, 민중연대, 통일연대 등 NL(주사파) 계열 활동가 700여 명이 채택한 선언입니다. 이들은 “3년 안에 광범위한 민족민주전선과 민족민주정당을 건설하여 10년 안에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과 연방통일조국 건설이라는 역사적 대업을 이루자”고 결의했습니다. 지난 20년간 좌파 세력의 모든 정치 활동은 ‘군자산의 약속’을 실천하는 과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념의 시대는 갔다”고 떠드는 헛똑똑이들은 이런 무시무시한 책동이 진행 중인 줄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나라 망하는 것이냐?”
 
  이제 개헌저지선마저 위협받으면서 많은 애국시민은 “나라가 망하는 것이냐?”고 걱정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그렇게 쉽게 망하기야 하겠습니까만, 대한민국 보수 정치 세력은 사실상 망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보수 정치 세력은 이제 국민들, 특히 젊은 세대로부터 ‘무능(無能)한 세력’으로 낙인찍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나라에서나 ‘보수는 다소 부패하더라도 유능하다’는 것이 일반적 인식이고, 그것이 보수 존립의 기반입니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에 이어 윤석열 정권마저 탄핵으로 무너진다면, 앞으로 누가 ‘정권을 줘도 건사하지 못하는’ 보수 정치 세력에게 정권을 맡기겠습니까?
 
  정권의 향방을 떠나, 대한민국의 장래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합니다. 이제 좌파적 정치 세력하에서 우리 국민들이 자유독립의 정신을 잊어버릴까 봐 두렵습니다. ‘벌어먹고 사는 것’보다 ‘빌어먹고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유전자(遺傳子)가 후손들의 몸에 영원토록 뿌리내리게 되는 것이 무섭습니다. 격랑이 몰아치는 국제정세 속에서 미일(美日) 등 자유우방과 척지고 중국에 ‘셰셰’ 하고 북한이 ‘특등 머저리’ 운운해도 감수하면서 살아야 할 것도 끔찍한 일입니다.
 
 
  우익의 ‘피란민 의식’
 
  도대체 대한민국의 빛나는 성취를 일구었던 보수 세력이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양동안 교수가 36년 전 ‘이 땅의 우익은 죽었는가?’에서 했던 이야기의 일부를 여기 소개하고자 합니다.
 
  〈첫째로, 우익 인사들은 사상전(思想戰)을 남이 해주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좌익과의 대결에서 약하다. 이 나라 우익 인사들의 대부분은 사상전은 사상전 전담 인사들, 또는 직업적인 ‘꾼’들이나 하는 것이지 자기들은 그런 ‘흙 묻히는’ 일을 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경향이 강하다. 그리고 대부분의 우익 인사들은 남이 싸워준 사상전에서 우익 승리의 혜택만을 향유하려 한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사회의 각 분야에서 지위가 높은 우익 인사들일수록 그러하다. 그들은 좌익과의 사상전은 자기들이 직접 할 일이 아닌 것으로 생각할 뿐만 아니라, 좌익들로부터도 ‘칭송’을 받고 싶어서 점잖고 우아한 미소로서 좌익을 대하고자 한다. 우익 인사들의 경향이 이러하니 좌익의 도전 앞에 우익이 힘을 발휘할 수 없다.
 
  둘째로, 이 나라의 우익 인사들의 상당수는 동포와 체제에 대한 애착심이 희박하며, 그러기 때문에 우익은 좌익의 도전 앞에 무력(無力)하다.
 
  우리나라의 우익 인사들, 특히 소위 ‘지도층’으로 불리는 우익 인사들은 ‘피란민 의식’을 갖고 있다. 난리가 나면 그 난리에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안전한 곳으로 피란 가려는 의식, 즉 ‘피란민 의식’은 이 나라의 역사 때문에 형성된 것이기도 하지만, 보다 더 근본적으로는 동포와 체제에 대한 애착심의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다.〉

 
  양동안 교수는 ‘우익의 궐기’를 호소하면서 그 주체는 정부나 군부, 혹은 권위주의 정권에 협조했던 ‘구(舊)우익’이 아니라 ▲일반 국민 대중에 대해 강한 사상적·윤리적 설득력을 갖추고 ▲우리 사회의 모순과 비리를 교정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개혁의지가 확고하며 ▲자유민주주의를 실천하려는 의지가 강한, ‘신(新)우익’ 내지 ‘개혁적 우익’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1961년 로널드 레이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자유가 멸종되는 데는 한 세대도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피를 흘리며 우리 자녀들에게 자유를 물려주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아는 한, 우리 자녀들이 자유를 물려받을 유일한 방법은 오직 한 가지뿐입니다. 바로 우리가 자유를 위해 싸우느냐, 자유를 지키고 보호하고 수호하느냐, 그리고 자녀들에게 그들이 살아가며 우리가 했던 것과 똑같이 자유를 위해 싸우고 자유를 보호하고 수호해야 한다고 제대로 가르쳐서 그 가르침과 함께 자유를 물려주느냐에 달렸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여러분과 저는 자녀들과 또 그들의 자녀들에게 예전에 사람들이 자유로웠던 미국은 어땠는지 얘기해주면서 인생의 황혼기를 보내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보수 우익은 양동안 교수의 경고를 외면하면서 자신들의 과오를 고치기를 게을리했습니다. 레이건이 말한 것처럼 자녀들에게 ‘자유를 보호하고 수호해야 한다’고 제대로 가르치지도 않았습니다. 4·10 총선 참패는 그 당연한 후과(後果)였습니다.
 
 
  레이건, “절대로 냉소적이 되지 마라”
 
  〈독일영년(獨逸零年·Germany Year Zero)〉(로베르토 로셀리니 감독, 1948년)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1945년 패전(敗戰)으로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독일의 상황을 그린 영화입니다.
 
  2024년은 ‘대한민국 보수 0년’입니다. 대한민국 보수에게는 길고 험난한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문득 1976년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패했을 때 로널드 레이건이 지지자들에게 했던 연설이 떠오릅니다.
 
  “우리는 아직 패배하지 않았다. 그것은 긴 전쟁에서 하나의 전투에 불과하다.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우리의 정치 신념을 전파할 것이다. 낸시와 나는 흔들의자에 앉아 그것으로 우리 일은 끝났다고 얘기하지 않을 것이다.”
 
  “여러분도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하게 만든 바로 그 믿음과 신념들을 갖고 그곳에 있기를 바란다. 무대 위의 배우들은 바뀔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정치 신념은 바뀌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결국 승리할 것이다.”
 

  “여러분의 이상(理想)을 포기하지 마라. 절대로 타협하지 마라. 편법에 지지 마라. 그리고 제발 부탁하건대, 냉소적(冷笑的)인 태도를 갖지 마라.”
 
  “절대로 냉소적이 되지 마라. 여러분 자신을 보고 여러분이 하고자 하는 일을 보라. 그리고 여러분과 뜻이 같은 수많은 미국인이 있음을 인식하라. 그들은 우리의 이상을 지지한다. 그들은 우리와 같은 길을 갈 것이다.”
 
  이 연설을 한 지 4년 후 레이건은 대선에서 승리했고, 미국을 확 바꾸었습니다. 물론 대한민국 보수가 가야 할 길은 훨씬 험난할 것입니다. 레이건은 당내 경선에서 패했을 뿐이지만, 대한민국 보수는 독랄하고 저열한 전체주의의 추종자들과 싸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대한민국 보수에게는 ‘바닥을 쳤다’는 말도 사치입니다. 대한민국 보수는 바닥도 없는 무저갱(無底坑)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믿음’과 ‘신념’을 위해 헌신하는 투사들, 아니 그 이전에 ‘믿음’과 ‘신념’부터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대한민국 보수는 이 일을 해내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윤석열의 나라’도 ‘이재명의 나라’도 아닌 ‘우리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배가 발밑에서 가라앉고 있을 때…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에는 포경선 선원 출신의 목사가 출항을 앞둔 선원들에게 하는 설교가 나오는데 마치 지금 좌절하고 있을 대한민국 보수에게 하는 말 같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모든 고통의 우현(右舷) 쪽에는 확실한 기쁨이 있습니다. 그리고 고통의 바닥이 깊은 것보다도 그 기쁨의 꼭대기가 더 높습니다. 용골(龍骨)이 낮은 것보다 망루가 더 높지 않습니까?
 
  이 지상의 교만한 신(神)들과 선장들을 거역하고 그 자신의 확고한 자아(自我)를 내세우는 자에게는 기쁨이 있습니다.
 
  이 비열하고 배신적인 세상의 배가 발밑에서 가라앉고 있을 때 튼튼한 두 팔로 아직 몸을 지탱할 수 있는 자에게는 기쁨이 있습니다.
 
  상원의원이나 재판관들의 법복 밑에 숨어 있는 죄일지라도 그것을 모조리 끌어내어 가차 없이 공격하고 죽이고 불태우고 파괴하는 자에게는 기쁨이 있습니다.
 
  주 하느님 외에는 어떤 계율도 지배자도 인정하지 않고 오직 천국에 충성스러운 자들에게만 기쁨이, 윗돛대만큼이나 높은 기쁨이 있습니다.
 
  미쳐 날뛰는 민중의 바다에서 소용돌이치는 거친 파도에 아무리 부대낄지라도 용골의 영원한 견고함을 믿고 흔들리지 않는 자에게는 기쁨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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