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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의 편지

이재명 대표 피습 사건을 보며

-‘이념적 내전’이 ‘진짜 내전’으로 번지는 비극 막아야

글 : 배진영  월간조선 편집장  ironhee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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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월 2일 부산 방문 중 칼로 공격을 받았습니다. 이 대표는 목 옆에 1.4cm 정도의 자상(刺傷)을 입고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되어 수술을 받았습니다. 이 대표는 8일 만인 1월 10일 퇴원하면서 “상대를 죽여 없애야 하는 전쟁 같은 이 정치를 이제는 종식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정치적인 테러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하지만 역사를 돌이켜보면 안타깝게도 이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곧잘 일어나곤 했습니다. 최근 한국의 사례만 보더라도, 우선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 시절이던 2006년 5월 20일 ‘커터 테러’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는 2022년 3월 7일 대선 유세를 하다가 좌파 성향 유튜버가 휘두른 망치에 맞아 부상을 당했습니다. 2015년 3월 5일에는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가 민중문화운동가 김기종이 휘두른 칼에 맞아 중상을 입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해방 이후 10여 년간은 정치적 테러의 극성기였습니다. 송진우(1945년), 장덕수(1947년), 여운형(1947년), 김구(1949년) 등의 정치지도자들이 총탄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역대 미국 대통령 중 4명, 일본 총리 중 5명이 암살돼
 
  미국의 경우를 보면, 역대 대통령 45명 가운데 4명이 암살됐습니다. 에이브러햄 링컨(1865년), 제임스 가필드(1881년), 윌리엄 매킨리(1901년), 존 F. 케네디(1963년)가 그들입니다. 이 가운데 남부 지지자가 저지른 링컨 암살,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가 저지른 매킨리 암살이 정치적 의미의 암살이었습니다.
 
  존 F. 케네디의 동생으로 유력한 대선 주자였던 로버트 케네디는 1968년 6월 4일 그가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데 대해 불만을 품은 팔레스타인 이민자 시르한 비샤라 시르한의 총격을 받고 사망했습니다. 같은 해 4월 4일에는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이 백인 우월주의자 제임스 얼 레이가 쏜 총탄에 맞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에 분노한 흑인들은 미국 전역의 168개 도시에서 폭동을 일으켰고, 46명이 사망했습니다.
 
  일본에서는 역대 총리 64명 가운데 5명이 암살당했습니다. 아베 신조 전 총리가 퇴임 후인 2022년 7월 8일 참의원 선거 유세 중 전직 자위대원 야마가미 데쓰야가 쏜 사제총(私製銃)탄에 맞아 사망한 사건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이누카이 쓰요시 총리는 1932년 5월 15일 해군 군축(軍縮)에 대해 불만을 품고 총리관저에 난입한 극우파(極右派) 해군 장교들에 의해 살해됐습니다. 이누카이는 “말로 하면 알아들을 것”이라며 그들을 설득하려 했지만, 해군 장교들은 “문답무용(問答無用), 발사!”라면서 총질을 했습니다. 이 말은 1930년대 극우파 일본 청년 장교들의 폭주를 상징하는 말이 됐습니다. 이에 앞서 1921년 11월 4일에는 하라 다카시 총리가 도쿄역에서 나카오카 곤이치라는 청년의 칼에 찔려 죽었습니다.
 
  1936년 2월 26일 극우 황도파(皇道派) 청년 장교들이 일으킨 쿠데타는 사이토 마코토, 다카하시 고레키요 등 두 전직 총리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쿠데타는 진압되었지만, 이후 문민(文民)정치 세력은 군부의 눈치를 보게 되었습니다. 기고만장해진 군부는 태평양 전쟁을 일으켜 일본을 파멸로 몰고 갔습니다.
 
  일본에서 극우 세력에 의한 암살 전통은 전후(戰後)에도 이어졌습니다. 1960년 10월 12일에는 일본사회당 당수 아사누마 이네지로가 방송사 주최 3당 대표자 합동 연설회 중 극우 청년 야마구치 오토야의 칼에 찔려 죽었습니다. 당시 17세에 불과했던 범인은 도쿄소년감별소에 수감되었다가 같은 해 11월 2일 자살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일본 극우 세력은 야마구치 오토야를 순교자처럼 추앙하고 있습니다.
 
  1979년부터 1995년까지 네 번에 걸쳐 나가사키 시장을 역임한 모토시마 히로시는 히로히토 일본 천황이 와병 중이던 1988년 12월 시의회에서 “천황에게 전쟁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발언했다가 이듬해 1월 18일 극우 세력의 총격을 받고 중상을 입었습니다.
 
 
  암살된 중동 평화의 주역들
 
  유럽에서는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아나키스트, 민중주의자, 민족주의자 등에 의한 암살 사건이 빈발했습니다. 마리 프랑수아 사디 카르노 프랑스 대통령(1894년),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2세(1881년), 이탈리아 국왕 움베르토 1세(1900년) 등이 이러한 테러의 희생자들이었습니다. 알렉산드르 2세의 죽음은 전제정치의 강화로, 움베르토 1세의 죽음은 후일 파시스트 정권의 출현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상의 사건들은 단발성 사건으로 끝났지만, 1914년 6월 28일 보스니아 사라예보에서 일어난 오스트리아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부부의 암살 사건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비화(飛火)됐습니다. 범인은 가브릴로 프린치프라는 19세의 세르비아 민족주의자였습니다.
 
  지금도 분쟁이 계속되고 있는 중동에서는 평화를 위한 노력이 죽음을 불러오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1978년 캠프 데이비드 협상으로 중동 평화의 물꼬를 텄던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은 1981년 10월 6일 열병식 도중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총격을 받고 사망했습니다. 1993년 오슬로 협정을 맺어 팔레스타인과의 평화를 추구했던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는 1995년 11월 4일 유대인 극단주의자의 총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군인 출신 정치인이면서도 담대하게 평화를 위한 노력에 나섰다가 자국(自國) 내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다트의 후계자인 호스니 무바라크는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이후 30년간 철권통치를 펼쳤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베냐민 네타냐후를 중심으로 하는 극우 세력이 계속 정권을 잡아 갈등을 더욱 키워왔습니다.
 
 
  내전으로 번진 암살 사건
 
  이 밖에도 각국에서 벌어진 정치적 테러나 암살 사건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제가 우리의 현실과 비교할 때 제일 섬뜩하게 생각하는 것은 내전(內戰)이 발생하기 직전, 스페인에서 벌어진 두 건의 암살 사건입니다.
 
  1936년 7월 12일 파시스트 정당인 팔랑헤당 소속 ‘총잡이’들이 좌파 돌격대 대원이자 반파시즘공화주의군사동맹 회원으로 알려진 호세 카스티요 세리아 중위를 살해했습니다. 좌파 세력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이튿날 극우 정치인 칼보 소텔로를 죽였습니다.
 

  7월 17일 프란시스코 프랑코 등 군부 내 극우 세력은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쿠데타는 2년 8개월간에 걸친 피비린내 나는 내전으로 번졌습니다. 쿠데타 세력은 자신들이 선거로 선출된 정부에 대항해서가 아니라 칼보 소텔로의 암살이 보여준 ‘정부의 부재(不在)’에 대해 반란을 일으켰다고 강변했습니다. 물론 쿠데타 세력은 소텔로 암살 사건 이전부터 쿠데타를 준비해왔기에 이런 주장은 자기 합리화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1930년대 초 이후 계속되어온 좌우 갈등이 임계치(臨界値)를 넘어버린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20여 년간 우리나라 정치에서는 대화와 타협이 점점 실종되는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저는 이런 현상이 586운동권 세대가 정치의 중심축으로 등장한 것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급기야 지난 정권 시절에는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의 숙청극이 벌어졌고, 여당 대표의 입에서 ‘보수 세력 궤멸(潰滅)’이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그야말로 ‘상대를 죽여 없애야 하는 전쟁 같은 정치’였습니다. 이번 이재명 대표의 피습 사건은 지난 20여 년간 그러한 갈등, 특히 증오의 언동들이 축적되어온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역사적으로 정치적 테러나 암살이 좋은 결과를 낳은 적은 없습니다. ‘이념적 내전’이 피비린내 나는 진짜 내전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정치인들과 국민 모두 ‘갈등의 정치’ ‘증오의 언동’을 자성(自省)하고 자제(自制)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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