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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연평해전 20주년

해군, 제2연평해전을 승전으로 공식화

글 : 이경훈  월간조선 기자  liberty@chosun.com

사진제공 : 조선DB·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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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기념관에 전시된 참수리 357호정 실물 모형. 유치원생들이 견학하고 있다. 빨간 점은 적의 공격을 받은 부분이다.
  20년 전인 2002년 6월 29일. 이날은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4강에 진출한 대한민국이 터키를 상대로 월드컵 3·4위를 결정짓는 날이었다. 전 국민이 축제 분위기로 열광하고 있을 때 이날 오전 서해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는 우리 해군이 북한 해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이날 전투로 해군 참수리 357호정에 승선했던 군 장병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다쳤다. 25분 동안 벌어진 이 전투는 북한과 상호 전투했다는 의미로 ‘서해교전’이라고 불렀다. 적과 싸워 이겼는지, 졌는지를 선뜻 알 수 없는 표현이었다.
 
‘제2연평해전 승전 20주년 기념식’에 참가한 이종섭 국방부 장관과 이종호 해군참모총장 등 주요 내빈과 유가족 및 참전장병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03년 평택 해군 제2함대 사령부에서 열린 서해교전 전적비 제막식에 참석한 이희완 중령(당시 중위). 이 중령은 전투 당시 357호정 부정장이었다.
 
2005년 6월 29일 3주년 기념식에서 고 서후원 중사의 아버지 서영석씨가 전적비 뒤편에 청동으로 새긴 아들의 얼굴에 입을 맞추고 있다.
 
2012년 6월 22일 제2연평해전 10주년 추모 행사를 하루 앞두고 유가족들이 국립대전현충원을 참배했다.
  서해교전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인 2008년 이겼다는 의미를 담은 ‘제2연평해전’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제2연평해전 20주년을 맞은 지난 6월 29일, 해군은 제2연평해전을 ‘승전(勝戰)’이라고 공식화했다. 이날 해군은 평택 제2함대사령부에서 ‘제2연평해전 20주년 승전 기념식’을 열었다.⊙
 
2012년 6월 28일 고 윤영하 소령의 추모식이 모교인 인천 송도고에서 열렸다. 아버지 윤두호(오른쪽)씨는 예비역 대위로 해사 18기다. 아들이 전사한 날 윤씨는 간첩선을 나포했다(1970년 6월 29일). 그는 아들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국립대전현충원에 나뉘어 안장됐던 6용사들이 2015년 9월 21일 13년 만에 한데 모이게 됐다.
 
2013년 6월 14일 영화 〈연평해전〉의 제작비 지원을 위해 해군 가족들이 바자회를 열었다. 주한미군 가족들도 참여했다. 해군은 후원금 10억4483만원을 전달했다.
 
2002년 8월 21일 해군 해난구조대가 가라앉은 참수리 357호정을 인양하고 있다.
 
서해 수호 삼총사. 2001년 당시 하사였던 곽진성(가운데)씨가 참수리 357호정 위에서 박경수 상사(왼쪽), 황도현 중사와 함께 찍은 사진. 황 중사는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했다. 박 상사는 2010년 천안함 폭침 때 실종돼 시신을 찾지 못했다.
 
제2연평해전전적비 앞에서 필승을 다짐하는 해군 장병들. 해군은 이 전적비를 전승비로 바꿀 예정이다.
 
제2연평해전의 주역들이 2015년 6월 16일 해군2함대 사령부에서 제2연평해전 당시 북한 함정의 기습 공격으로 침몰한 고속정 참수리 357호정에 올랐다. 왼쪽부터 제주함장 박노호 중령, 영주함장 황종서 중령, 조천형함장 박태룡 소령, 237편대장 김성필 소령, 참수리 367정장 안상탁 대위, 참수리 369정장 최아성 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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