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승만 박사는 1946년 12월 ~1947년 4월 미국에서 건국외교 활동을 벌였다.
때마침 트루먼 독트린이 발표되면서 이승만 박사의 건국 투쟁에 힘이 실렸다.
1947년 미 7사단 보병으로 서울에서 근무하던 프레드 다익스 씨가 촬영한 이승만 지지집회 현장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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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7년 8월 15일 광주 중앙국민학교에서 열린 해방 2주년 기념식. 태극기와 함께 내걸린 성조기가 누가 한민족을 일제로부터 해방시켰는지를 상기시켜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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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에서 반세기만에 귀국한 서재필(가운데)과 김규식(왼쪽), 여운형(오른쪽). 얼마 후인 그해 7월 19일 여운형은 암살당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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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7년 12월 발생한 장덕수 암살 사건과 관련해 1948년 3월 미군정 재판에 증인으로 소환된 김구. 우익간의 갈등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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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에서 남으로 오는 행렬은 1947년에도 계속됐다. 그해 10월 38선을 넘어 월남하는 일가족을 미군 병사가 맞고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