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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현의 KOREA WATCH

한국의 3대 신선, 그 자취를 좇아

최치원 윤선도 김정희의 세계는 볼수록 놀랍다

글 : 문갑식  월간조선 편집장  gsmoon@chosun.com

사진 : 이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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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류계곡에 있는 최치원 선생의 암자다.
  국어사전은 신선(神仙)을 이렇게 설명한다. ‘도(道)를 닦아 현실의 인간세계를 떠나 자연과 벗하며 사는 사람’이다. 그들은 불멸(不滅)인 듯하다. ‘세속적인 상식에 구애되지 않고 고통도 질병도 없으며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선과 동의어로 선객(仙客)·선령(仙靈)·선인(仙人)·화인(化人) 등이 있다고 한다.
 
  신선이 사는 곳의 이름도 유별나다. 동천(洞天)·청산(靑山)·무릉도원(武陵桃源)·옥산(玉山) 같은 것들이다. ‘신선’의 개념이 특별히 없는 서양에서도 신선이 살 법한 곳은 꽤 있다. ‘유토피아’ ‘샹그리라’ ‘아틀란티스’ 등이다. 갑자기 우리의 신선을 찾고 싶어졌다. 김선식 다산북스 사장과 대화하다 신선을 정의해 봤다.
 
  첫째 권력에 초월할 것, 둘째 자신만의 이상향을 구축할 것, 셋째 시서화(詩書畵)에서 일가를 이룰 것 등이다. 우리 선조 가운데 이 조건을 두루 겸비한 사람이 있는가 찾아보니 딱 세 명이 떠올랐는데 김 사장도 같은 견해였다. 먼저 신라시대에 살았던 최치원(崔治遠·857~?)은 신선의 조건을 갖춘 분이다.
 
 
  홍류동계곡에 은거한 뒤 지팡이 남기고 학鶴 등에 올라 사라져
 
이 우람한 나무가 최치원이 심었다는 지팡이에서 피어난 것이다. 합천 해인사 학사대에 있다.
  그는 현실적인 신분의 한계에도 나라를 구하려 애쓰다 권력에 허망함을 느끼고 지금의 경남 합천 해인사 자락 홍류동 계곡에서 은거하다 자취를 감췄다. 그는 지팡이 한 자루를 주며 “이것이 나무가 돼 살아 있으면 나도 살아 있다는 증거”라고 했으니 그야말로 신선답다. 그의 지팡이가 바로 해인사 학사대에 뻗어 있는 나무다.
 
최치원 선생이 머물렀음을 알리는 비석이 암자 앞에 있다.
  그런가 하면 홍류동 계곡에는 그가 속세를 피해 은둔했다는 둔세지(遯世地) 표지석이 있고 건너편에는 어린아이들을 가르쳤다는 가야서당도 남아 있다. 경남 함양의 상림 역시 고운 선생이 군수로 있을 때 홍수를 막기 위해 만든 숲인데 여간 상서롭지 않다. 후세인들이 그를 기려 사운정(思雲亭)과 흉상도 만들어 놓았다.
 
최치원이 후학들을 가르쳤다는 가야서당의 전경이다.

경남 함양 상림에는 최치원을 기리는 사운정이 있다.

함양 상림에 있는 최치원 선생의 흉상이다.
 
  보길도-금쇄동-녹우당은 윤선도만의 이상향… 신선의 짝 자처
 
윤선도 선생이 보길도에 조성한 세연정의 전경이다.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1587~1671)는 조선시대의 마지막 신선이라 평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가 최치원을 흠모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호에 외로울 고(孤) 자를 낳은 것은 최치원의 고운(孤雲)을 떠올린 게 분명해 보인다. 윤선도는 삶의 대부분을 벽지에서 유배당하며 보냈다. 경상도 영덕, 함경도 삼수 같은 곳들이다.
 
  권력의 비정함을 맛본 그는 자신만의 이상향을 구축했다. 전남 해남 녹우당은 천하명당이며 바다 건너 보길도 부용동은 한송이 연꽃 같다. 금쇄동은 지금도 인적이 드문 ‘별유천지(別有天地) 비인간(非人間)’의 전형이다. 산태극 수태극의 절정인 이곳 회룡고조혈에 고산이 영면하기 전 심정을 밝힌 시 한 수를 소개한다.
 
송시열이 윤선도 선생을 기리기 위해 보길도 암벽에 새긴 글이다.
  부르지도 않았는데 어디선가 왔다가 쫓지도 않았건만 또 어디로 가버렸는가 / 조물주가 인간세상의 모든 일을 어지러이 희롱함인가 / 얻었다고 너무 기뻐할 것도 아니고 잃었다고 너무 슬퍼할 것도 아니다 / 사람의 삶과 죽음에 다른 자취들 또한 이와 무엇이 다를까 / 이제 알겠구나 내곁을 떠난 아이 나이 8년 동안 손님이었음을 / 이 일로 갑자기 깨달음이 있어 막혔던 가슴속 기운이 이제야 풀려 / 편안히 신선의 짝이 되었네….
 
  ‘견회(遣懷)’라는 이 시는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개를 통해 죽은 아들 미를 회상하면서 얻음과 잃음의 이치에 눈뜬 뒤 신선의 길을 걷기 시작한 고산의 심정을 잘 보여준다.
 
고산 윤선도 선생의 종가인 녹우당. 녹우당은 원래 서울에 있던 집을 통째로 옮긴 것이다.

윤선도 선생이 보길도 산 중턱에 만든 석천동실이다.

석천동실은 책을 읽는 암자와 잠자는 암자로 나뉘어 있다. 음식물은 도르레를 이용해 날랐다.
 
  김정희의 청산은 세한도, 그림 한 장으로 고운-고산과 맞서다
 
추사의 세한도를 바위에 새긴 것이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는 한국의 마지막 신선이다. 젊은 시절 승승장구하다 제주도에서 9년, 함경도 북청에서 2년을 귀양살이한 그는 한(恨)을 시서화로 풀어 냈다. 그의 이상향은 세한도(歲寒圖)에 담겨 있다. 종이 한장으로 최치원·윤선도 같은 아성을 구축했으니 천재들의 경합을 볼 땐 안심하지 마시라.⊙
 
추사 김정희가 유배생활을 했던 집. 추사가 살았던 집은 훗날 지인들의 제보로 유배지임이 밝혀져 복원됐다.

추사 생가는 비교적 잘 보존돼 있다.

무량수각 현판은 원래 대흥사 대웅보전에 걸렸다가 지금은 옆의 건물에 걸려 있다.

무량수각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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