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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현의 KOREA WATCH

한국의 4대 정원은 무위자연(無爲自然)의 극치

글·사진 : 이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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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현
이화여대 졸업. 중앙대 사진학과 재학중. 영국 런던 시티릿 테크니컬 과정 수료.
《여행자의 인문학》 저자
세연정에 앉으면 밖의 풍경이 한 폭의 동양화로 변한다.
  가든(Garden)이라는 말은 영국이 만들었다. ‘잉글리시 가든’에 정원(庭園)의 종주국 같은 의미가 내포된 것은 그런 연유 때문이다. ‘Garden’이라는 단어에서 ‘Gan’과 ‘Edn’은 각각 히브리어로 ‘둘러싼다’ ‘기쁨’이라는 어의(語意)를 가지고 있다. 동양에서는 ‘정원’보다 ‘원림(園林)’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해 왔다. 공교롭게 ‘원림’이라는 말도 가든과 뜻이 비슷하다. ‘원’에 들어가는 입 ‘구(口)’자는 ‘담을 쌓다’ ‘둘러싼다’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한국-중국-일본의 정원은 각각 어떻게 다를까. 조경학자 정정수는 이렇게 말했다. “중국의 조경에는 그야말로 자연을 통째로 옮겨온다는 발상이 깔려 있다”며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중국의 유명하다는 호수가 하나같이 바다처럼 넓잖아요. 정원도 태산(泰山)을 옮겨놓은 식이고요. 우악스럽지요.” 정정수는 최근 들어 동양 정원의 대표국으로 떠오른 일본에 대해선 “인위적”이라고 단정했다. “그들은 조경 대신 조원(造園)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이어령 선생이 말했듯 ‘축소지향’이랄까….”
 
  한국은 어떨까. 정씨는 ‘순수’라고 했다. 손을 안 댄 것처럼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것,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세계다. 거대한 중국정원, 정교한 일본정원은 처음엔 인상적이지만 볼수록 질린다. 반면 한국정원은 시간이 갈수록 다시 보고 싶은, 음식으로 치면 ‘진국’ 같기도 하고 정갈한 야채처럼 정신을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한국의 대표적인 원림 네 곳을 소개한다. 눈으로 봐도 즐겁지만 역사와 숨은 사연을 알면 더 흥미롭다.
 
 
  소쇄원, 조광조의 사화 이후 제자 양산보 3대가 건축
 
  먼저 전남 담양의 소쇄원(명승 40호). 조광조의 제자 양산보(梁山甫·1503~1557)가 스승이 사화(士禍)로 목숨을 잃자 벼슬에의 꿈을 버리고 1530년부터 3대에 걸쳐 조성한 원림으로 한국 최고의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소쇄’는 양산보의 호(소쇄공)로 ‘기운이 맑고 깨끗하다’는 뜻이다. 소쇄원에는 지금 두 채의 정자가 남아 있다. 광풍각과 제월당인데 ‘광풍제월’은 북송의 시인 황정견(黃庭堅)이 주돈이의 성품을 압축해 표현한 말이다. ‘비갠 뒤의 바람과 달처럼 마음이 명쾌하고 집착이 없으며 시원하고 깨끗하다!’ 가히 최상급 칭송이다.
 
한국 정원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소쇄원의 전경.
앞에 보이는 광풍각은 한국의 누각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균형이 잡혔다.

‘소쇄처사양공지려’, 즉 소쇄공 양산보가 사는 집이라는 뜻이다.
이 문패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소쇄원은 산을 흐르는 개울이 자연스럽게 들어오도록 밑을 막지 않았다.

소쇄원 사람들이 먹는 식수인 정천. 정천에 나무가 투영돼 있다.

앞은 광풍각, 뒤는 제월당이다. 광풍각은 책을 읽고 토론하는 장소이며 제월당이 잠을 자는 곳이다.

대봉대다. 봉황이 오길 기다린다는 뜻이다. 대봉대 옆에는 봉황만이 앉는다는 오동나무가 심어져 있다.
 
  윤선도원림, 마지막 신선이길 바랐던 고산 윤선도의 작품
 
  두 번째가 전남 완도군 보길도의 윤선도원림이다. 명승 34호인 이 원림은 ‘부용동원림’으로도 불리는데 윤선도(尹善道·1587~1671)가 산 정상에서 원림을 봤을 때 연꽃과 닮았다고 해 붙인 이름이다. 이 원림의 백미는 세연정(洗然亭)과 그 위쪽 낙서재(樂書齋), 그리고 격자봉 중턱에 있는 동천석실(洞天石室)이다.
 
세연정은 고산 윤선도가 보길도로 들어와 만든 정원의 중심 건물이다.

세연정에 있는 바위들은 다 뜻이 있다. 일곱 개의 기석(奇石) 옆으로 소풍 나온 어린이들이 보인다.

동대다. 고산을 비롯한 손님들은 이 동대에서 기생들이 춤을 추는 모습을 감상하며 여흥을 즐겼다.

세연정의 또 다른 명물인 용송(龍松)이다. 소나무 껍질이 마치 용의 비늘처럼 물에 반짝거린다.

돌로 만든 보다. 이 보는 평소에는 물의 수심을 유지하며 비가 올 때면 폭포처럼 변한다.

세연정은 땅끝마을에서 배를 타고 40분을 가야 하지만 사철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백운동정원, 2001년에야 그 존재 밝혀져…
 
  다양한 상징이 들어 있어 한두 번 봐선 절대 이해 못 할 소쇄원과 한국의 마지막 신선이길 바랐던 고산(孤山)의 자취를 밟았다면 다음은 전남 영암 월출산 자락에 숨어 있는 백운동원림 차례다. 백운동원림은 처사 이담로(李聃老·1627~1701)가 조성했는데 2001년 《백운세 수첩》이라는 문헌이 공개되면서 그 존재가 밝혀졌다. 지금 복원 작업이 한창인 백운동원림을 본 다산 정약용은 그 아름다움에 반해 제자 초의선사를 시켜 12경(景)을 그리게 했으며 내심 자신의 다산초당과 견줘보게 했으니 양자를 비교해 볼 법하다.
 
백운동정원 한복판에 있는 석가산. 인공섬처럼 만든 석가산은 한국 정원에 반드시 들어가는 요소다.

백운동정원 옆을 흐르는 개울은 비가 오는 날이면 폭포처럼 변한다.

백운동정원은 경주 포석정처럼 집 밖의 개울물을 안으로 끌어들인 뒤 밖으로 나가도록 설계됐다.

백운동정원의 취미선방이다. 주인이 기거하는 곳이다. 백운동정원은 원형이 많이 훼손돼 현재 복원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백운동정원으로 가는 길, 동백꽃이 어두컴컴한 숲길에 떨어져 있다.

〈백운첩〉은 이곳을 방문한 다산 정약용이 초의선사를 시켜 그리게 한 것이다. 이 〈백운첩〉이 최근 공개되면서 백운동정원의 존재가 알려졌다.
 
  영양 서석지, 조선시대 영남 선비의 정원문화 진수
 
  마지막으로 경북 영양의 서석지는 정영방(鄭榮邦·1577~1650)이 광해군이 집권하던 1613년부터 축조한 것이다. 사각형 연못과 주변의 송·죽·매·국의 사우단(四友壇), 그리고 그것들을 내려다볼 수 있는 경정(敬亭)이 운치를 더하는데 더 눈길을 끄는 것은 연못 속의 서석(瑞石) 스무 개다. 각각 선유석, 통진교, 어상석, 옥성대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데 옛 선인들이 얼마나 자연과 벗하며 ‘별유천지 비인간’을 꿈꿔왔는지 서석지에서 느껴볼 일이다.⊙
 
경북 영양의 서석지는 경상도에서는 찾기 힘든 정원이다.

옛 선조들은 문고리 하나에도 자연의 멋을 가미했다.

서석지의 전경이다. 역시 집 밖의 물을 끌어들이고 배출하는 구조다.

서석지는 집과 연못뿐 아니라 주변 산수까지도 어우러지도록 설계됐다.

서석지의 사우단. 대나무와 연꽃 등이 어우러졌다.

경정 안에서 내다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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