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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단골집 ② 디자인 폭스 하기옥 대표

발길이 머무는 상상 놀이터, 수제 모자점 루이엘과 직물 공방 램

글·사진 : 서경리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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河基玉
⊙ 52세. 홍익대 미술대학 시각디자인과 졸.
⊙ 빙그레, 크로스포인트 디자인 실장. 폭스앤홉스 대표 역임. 現 디자인폭스 대표.
⊙ 다시다BI(Brand Identity)로 월드팩스타 그랑프리 수상, 디자인진흥원 10대 디자이너 선정.
⊙ 저서: <패키지디자인레시피>.
“우리 만날 이러고 놀아요.” 수제 모자 전문점 루이엘에서 갖가지 모양의 모자를 써보며 활짝 웃는 하기옥 대표.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로 모자를 고르는 그녀의 모습에서 ‘영원한 젊음’의 상징인 피터팬이 그려진다.
  상상력은 모든 창작의 원천이다. 디자이너의 생명은 상상력에 있다. 상상력을 이성에 가두지 않는 것, 디자이너의 첫 번째 덕목이다. 웅진식품의 ‘가을대추’ ‘아침햇살’ ‘초록매실’, 청정원의 ‘맛선생’ ‘햇살담은 진간장’ ‘카레여왕’ 등으로 패키지 디자인의 새 장을 연 디자인 폭스 하기옥(河基玉・52) 대표의 머릿속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열려 있는 ‘상상 공작소’ 같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짧은 머리, 작지만 다부진 몸매의 하기옥 대표 모습은 처음엔 피터팬을 떠올리게 한다. 해맑게 웃을 때는 어린아이 같은 천진난만함도 묻어난다. 피터팬이 상상만으로 ‘네버랜드’로 향하는 입구를 열었듯이 그녀는 상상력으로 세상을 무궁무진한 놀이터로 만든다. 하기옥 대표가 평소 머리를 식히기 위해 놀이터처럼 찾는 곳은 서울 종로구 계동에 있는 직물 공방 ‘램(Lamb)’이다. 태피스트리(tapestry·여러 가지 색깔의 실을 사용해 손으로 짠 회화적인 무늬를 내는 직물) 공예가 정영순(66)씨가 13년 전 문을 연 6~7평 규모의 자그마한 곳이다.
 
단골집 루이엘을 찾은 하기옥 대표가 거울 앞에서 갖가지 모양의 모자를 써보고 있다. 해맑게 웃는 그녀의 얼굴에서 천진난만함이 묻어난다.
  “여기는 추억을 끄집어내는 장소 같아요. 어렸을 때 자투리 옷감 가지고 놀 듯이 여기에서 남은 털실을 가지고 이것저것 만들며 놀아요. 소꿉장난 놀이터라고 할까? 보고 있으면 가슴이 뛰어요.”
 
  13년 전 우연히 찾은 공방 ‘램’에서 하기옥 대표는 정영순씨의 손뜨개 실력을 알아보고 자신의 모자를 짜줄 것을 부탁했다.
 
  “팥죽 색 비니와 장갑을 짜주었는데, 신기하게 머리에 착 맞는 거예요.”
 
수제 모자 전문점 루이엘을 찾은 하기옥(오른쪽) 대표와 모자 디자이너 셜리천. 셜리천은 아시아인 최초로 프랑스 파리의 모자 전문학교 C.M.T(Cours Modeliste Toiliste)를 졸업한 우리나라 1호 모자 전문 디자이너다. 1999년 모자 전문 브랜드 루이엘을 런칭하고 2002년 국내 최초 모자아카데미를 설립했다. 2010년 전주 모자 박물관을 여는 등 모자 문화를 알리기 위해 힘쓰고 있다.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하기옥 대표는 초등학교 입학 전 언니가 짜준 손뜨개 모자를 매일 쓰고 다녔다. 밖에 나갈 때는 물론이고 집에서 밥을 먹을 때도 쓰고 있어 혼나기도 했단다. 손으로 한 땀 한 땀 엮어 만든 빨간색 털모자 안에서 그녀는 안정감을 느꼈다. 그때부터 하기옥 대표의 모자사랑은 시작됐다. 손뜨개로 짠 비니(beanie·두건처럼 머리에 딱 달라붙게 만든 모자)만 색깔별로 15개나 될 정도다.
 
  “마음이 중요해요. 하나를 짜더라도 그 사람을 향한 마음을 담아 정성을 다해 짜면 아름다운 작품이 나오는 것이지요. 대량 생산되는 옷은 질적으로 떨어지는 면이 많아요. 주변에 귀한 것, 아름다움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하기옥 대표는 심심할 때마다 직물 공방 램을 찾아와 소꿉놀이하듯 털실로 코르사주나 액세서리를 만들며 쉬어간다.
  ‘직조는 마음을 짜는 것’이라며 자신의 작품에 애정을 쏟는 정영순씨의 말이다.
 
  ‘우리 이러고 놀아요’라며 깔깔 웃는 둘의 수다는 끝이 없다. 이번에 새로 작업에 들어간 러그의 털실 색부터 디자인까지 세세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아이디어를 공유했다.
 
활짝 웃는 하기옥 대표와 정영순씨. 친정집 찾듯 램 공방을 드나드는 하기옥 대표는 정씨를 ‘마미’라고 부른다. 둘은 가족만큼 가까우면서도 서로의 작업에 조언을 해주고 영감이 되어주는 파트너이기도 하다.
  그녀가 수제 공방 램을 나와 찾아간 곳은 서촌의 수제 모자 디자인 전문점 루이엘(Luielle)이다. 루이엘은 ‘그와 그녀’라는 뜻의 불어로, 국내 1호 모자 전문 디자이너인 셜리천(본명 천순임)이 디자인 실장을 맡고 그의 남편 조현종씨가 대표를 맡고 있다.
 
  자칭 ‘모자 마니아’ 하기옥 대표가 가지고 있는 100여 개의 모자 중 손뜨개로 한 비니 종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천 실장이 디자인한 모자다.
 
직물 공방 램의 정영순씨가 손으로 만든 목걸이. 바다에서 주운 유리병 조각에 손뜨개로 옷을 입혀 만든 독특한 작품이다.
  천 실장은 하 대표를 자신의 ‘뮤즈(Muse)’라고 칭했다.
 
  “하기옥 대표는 제 고객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사람이에요. 우아한 페미니스트가 아닌 중성적인 영역, 저는 그녀를 ‘별도의 섬’이라고 불러요. 창조의 원동력이 되지요. 자주 보지는 않지만 새로운 시즌 디자인을 할 때마다 꼭 하 대표를 염두에 두고 작업해요.”
 
하기옥 대표의 디자인 폭스 사무실과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계동의 직물 공방 램(Lamb). 30년 전 간호장교로 있을 때 태피스트리 전문가에게 기술을 전수받은 정영순씨는 13년 전 이태리에서 패션 디자인을 공부하고 돌아온 아들 허유씨의 권유로 옷감을 짜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짠 옷감을 가지고 아들은 옷을 만드는 것. 모자는 협동작업으로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귀한 옷을 만들고 있다.
  모자는 그녀들에게 일종의 놀이와 같다. 디자이너는 모자를 만들며 놀고, 고객은 모자를 쓰면서 논다. 하 대표는 천 실장을 만나 모자의 색감과 소재, 장식, 디자인 이야기를 하며 끊임없이 ‘좋다 좋아’를 연발한다. 둘에게 이곳은 꿈을 꾸는 공간이기도 하다.
 
  하기옥 대표는 단순(simple)하면서도 색다른(special) 디자인을 선호한다. 디자이너에게는 가장 까다로운 조건이다.
 
  “권해 주고 싶은 모자가 많아요. 중성적인 이미지 속에 살짝 가려진 여성미를 부각시킬 수 있도록 모자를 추천해 주죠. 사람에 대한 이미지를 상상하고 그것을 디자인에 풀어내는 것이 디자이너의 몫이에요.”
 
나비는 자유분방하면서도 밝고 경쾌한 하기옥 대표와 닮아 있다. 깃털 달린 모자 하나로 그녀는 로맨틱하면서도 위트 있는 멋쟁이로 변신한다.
  깊이 있는 색을 좋아하는 하 대표는 자기 스타일을 잘 알기 때문에 천천히 돌아다니며 ‘콕콕’ 어울리는 디자인을 찾아낸다. 자주 쓰는 모자는 비니나 베레모, 페도라 종류. 요즘에는 취미로 시작한 주말농원의 밭일 때문에 기능적으로 햇빛을 가릴 수 있는 밀짚모자를 찾기도 한다. 그런 그녀를 위해 천 실장은 불가사리 장식을 단 로맨틱한 밀짚모자를 디자인했다.
 
  셜리 천은 깊이 눌러 쓰는 모자부터 살짝 머리에 얹는 모자까지 모자를 어떻게 연출하느냐에 따라 여성스러움과 세련된 멋을 같이 가질 수 있다고 귀띔한다.
 
  “모자를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것은 내가 되고 싶은 나의 모습이에요. 자신에 대한 이상형인 셈이죠. 남자들이 인디아나 존스의 모자를 쓰면 탐험가가 된 듯 행동하는 것처럼 자기 안의 롤모델을 대변하는 것이 모자인 것이죠.”
 
  ‘모자는 머리에 있지만 사실 보여주고 싶은 것은 마음이다.’ 그녀가 매장 귀퉁이에 붙여놓은 글귀가 새삼 의미심장하게 와닿는다.
 
  하기옥 대표에게 있어 단골집은 ‘마음의 발길이 머무는 곳’이다.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이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이라면 단골은 가장 가까운 길이라고 덧붙였다.
 
  “뭐든 정성이 필요한 거야. 정성이 서로 만든 통로를 따라 어느 접점에서 만나게 될 때 서로 말하지 않아도 눈빛만으로 상대를 읽게 되지. ‘내 마음에 너의 마음이 와닿으면 내 손을 잡아 봐 실망시키지 않을게’ 이런 식으로 편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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