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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23〉 초가삼간의 온돌과 마루

하늘의 모습을 구조화한 한국인의 건축, 서까래

정리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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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울 때는 고구려式 온돌을 쓰고 더울 때는 남방계 구조인 원두막식 樓마루 지어
⊙ 서까래는 자연의 곡선 지니면서 가장 인공적인 기하학적 선으로 짜여
⊙ 여름이면 대청마루에 서늘한 바람이 뒤에서 불어… 앞마당은 통풍이 이뤄지는 공간
⊙ 한국의 문은 ‘문틈’으로 집 내부 훤히 볼 수 있어… 서양은 ‘열쇠 구멍’으로
⊙ 정자는 하늘과 땅 이어주는 매개항… 삼태극(三太極) 사상 담은 팔각정
⊙ 나지막한 돌담은 안에서 밖이 반은 보이고, 바깥에서도 안이 반은 보여
⊙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는 것은 단순한 ‘집(house)’ 혹은 터가 아니라 ‘홈(home)’을 뜻해

李御寧(1933~2022)
서울대 국문학과·同 대학원 졸업, 문학박사 / 경기고 교사, 이화여대 교수, 《조선일보》 《한국일보》 《중앙일보》 《경향신문》 《서울신문》 논설위원, 동아시아 문화도시 조직위원회 명예위원장,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 조직위원장, 초대 문화부 장관 역임

[편집자 註]
이어령 선생이 타계한 지 2년이 되었다. 선생은 생전(生前) 시리즈 ‘한국인 이야기’의 문패에다 ‘끝나지 않은’이란 수식어를 직접 붙이셨다.
생전 선생은 당신이 남긴 굵직한 저작물과 수많은 강연에서 언급한 ‘한국인 이야기’를 비록 당신이 떠나도 계속 이어가기를 희망하셨고 관련 원고와 저서의 일부를 《월간조선》에 전하셨다. 또 선생이 남긴 바탕 위에 편집자의 생각을 보태도 된다고 허락하셨다. 아주 조심스럽게 선생이 남긴 큰 발자국을 따라 연재를 이어가고자 한다. 선생에게 누(累)가 되지 않기를 소망할 뿐이다.
전남 해남군 황산면 연호리에 있는 초가집이다. 방과 방 사이 대청마루가 있다. 사진=조선DB
  우리의 옛 가인(歌人)이 “십 년을 경영하여 초가집, 초가삼간을 지었다”고 했다. 한 칸은 안방, 다른 한 칸은 건넌방, 가운데 칸은 누(樓)마루 혹은 마루방이었다. 다락처럼 높게 만든 마루를 누마루라고 한다.
 
  우리 선조들이 달에까지 지어놓고 살고 싶어 했던 초가삼간은 최소 단위의 작은 집이다. 온돌방은 지붕 천장이 낮다. 그런데 마루방은 지붕이 높다. 천장이 낮은 공간은 북방형 집의 특징인데 그 바닥은 온돌이다. 전 세계에서 바닥이 온돌로 되어 있는 곳은 한국밖에 없다. ‘센트럴 히팅(중앙식 난방)’을 누가 제일 먼저 했는가를 찾아보면 한국인으로 나온다.
 
고구려 오녀산성에서 4세기 말~5세기 초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온돌의 흔적들(복원). 당시 온돌은 백성들과 변경의 병사들이 널리 애용했다. 사진=서울대출판문화원
  중국 《후한서(後漢書)》 《구당서(舊唐書)》에 보면 온돌은 고구려의 특징적 문화라고 소개한다. 한민족의 보편적 살림집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온돌이다. 고구려 사람들은 항상 높은 데다 집을 짓고 온돌을 사용했다고 적고 있다. 북방계 고구려 사람이 세계 최초로 센트럴 히팅, 소위 온돌방을 만든 게다.
 
  그런데 한반도 남쪽으로 내려와 정착해 살며 변형이 일어났다. 남부 지방의 여름은 무척 무더웠기 때문이다. 그러니 추울 때는 고구려식으로 온돌을 쓰고 더울 때는 남방계 구조인 원두막식 누마루, 마루방을 지었다. 한국의 건축은 온돌의 폐쇄성과 마루의 개방성을 동시에 지닌다. 마치 발효 음식처럼 서로 모순되는 것을 결합하고 융합시킨다. 한국 문화의 패러다임을 잘 나타내는 사례다.
 
 
  초가삼간의 수평적 분할과 서양 가옥의 수직적 분할
 
전통 한옥의 천장 위 서까래. 서까래가 그대로 드러나 전통의 미를 느낄 수 있다. 사진=조선DB
  서까래는 목조건축물의 골격이 완성된 다음, 도리와 도리 사이에 도리와 직각이 되게 걸쳐놓는 건축 부재(部材)를 말한다. 서까래 나무와 회벽(또는 황토흙)이 교차하고, 그 아래로 도리·대공·대들보 등 목재의 지붕가구가 노출되는 경우가 많다. 대개 남방형 집이 그렇다.
 
  서까래는 통나무를 모양 그대로 약간 깎은 것으로 그 자체가 자연과 문화의 접경을 이루고 있다. 서까래들은 자연의 곡선을 지니면서도 가장 인공적이라 할 수 있는 기하학적 선으로 짜여 있는 데서 독특한 아름다움을 갖는다.
 
  평행귀서까래와 말굽서까래 그리고 부챗살처럼 펼쳐져 있는 선자서까래는 모두가 자로 그은 듯한 형을 이룬다. 그러나 선 하나하나는 자연 그대로의 곡선을 가진 나뭇등걸이다. 그러므로 마루에 누워 있으면 방 안에서도 바깥에서도 맛볼 수 없는 복합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된다. 서까래는 텅 빈 허공에 뼈의 구조를 부여한다. 한국인은 하늘의 모습을 그렇게 구조화한 것이다.
 
  다 쓰러져 가는 집이지만 이 서까래로 남방하고 북방을 합친 아주 드문 집의 형태가 초가집이다. 눈이 많이 오는 스위스의 집 형태가 북방형, 태국의 집이 남방형 형태로 지어졌다. 한국만 굳이 말하자면 남북방형이다. 21세기 글로벌 시대는 모든 것이 결합하고 융합해야지만 평화롭게 살 수 있다. 나는 북방계, 너는 남방계, 너는 노마드, 너는 농경족이라고 나눠 살 수 없다.
 

  한국인은 서로 다른 사람끼리 융합하고 결합하며 사는 훈련을 수천 년 동안 해온 문화자원을 지니고 있다. 아메리카 대륙에 살든 아프리카 고원지대에 살든 세계 어디서도 살 수 있는 융합적인 자원을 타고났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요즘 우리 사회가 양극단으로 치달으면서 한국적인 것을 상실하고 있다. 결합의 마음, 융합의 마음을 잃어가고 있다.
 
  전통적인 한국의 집은 안방-마루-건넌방 구조의 초가삼간으로 수평적 분할을 했다. 바슐라르는 《공간의 시학》에서 집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그는 지하실(cave), 지붕 밑 다락방(grenier), 그리고 그 중간에 있는 주거 공간의 세 층위로 분할된 집의 수직적 상상력을 통해 프로이트 이후 인간의 심리를 분할하는 무의식, 자아, 그리고 초자아의 세계를 탐구했다.
 
  바슐라르의 시학에서도 볼 수 있듯이 서양의 집은 수직적 분할을 한다. 우리나라 초가삼간의 수평적 분할과 대조적이다.
 
 
  대청마루, 한국의 집은 절충형
 
  한국의 마루는 바깥과 안을 잇는 매개적인 공간이다. 밖에서 방 안으로 들어오거나 안에서 밖으로 나갈 때 우리는 반은 방 같고 반은 누대 같은 마루의 양의적 공간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빛도 바깥과 방 안의 중간인 어슴푸레한 반영(半影)이다.
 
  마룻바닥은 장판 아니면 흙바닥인 양극단이 아니라 나무판으로 깔려 있다. 그리고 기둥 역시 밖으로 드러나 있는데 나무 형태의 일부를 그대로 살리면서도 전체적으로는 반듯하도록 깎아놓은 양면성을 갖고 있다.
 
  대청마루가 있는 한국의 집은 여름이면 서늘한 바람이 뒤에서 불어온다. 앞마당은 통풍(ventillation)이 이뤄지는 공간이다. 밤에는 낮은 천장 아래의 방에서 자니까 따뜻하다. 가운데 마루방은 큰 방, 작은 방을 정신적으로 갈라놓는 차단 공간이다. 여기서 대청마루는 요즈음 개량식 주택의 마루방처럼 가족들이 모였다가 떠나는 거주 공간이 아니다. 그곳은 제사를 지내고 식량을 저장해두는 신성(神聖) 공간이다. 물리적인 벽보다 더한 정신적 차단 역할을 하는 공간이다. 마루는 사방이 트여 있어 북방 양식의 온돌방과 정반대로 개방적인 남방 양식을 하고 있다.
 
 
  한국의 門
 
  한국의 건축물은 여름에도 살고 겨울에도 살 수 있는 절충형 구조다. 북쪽으로 올라가면 집들이 바람을 막으려고 문살이 좁다. 남쪽으로 갈수록 문살이 넓다. 이게 요즘 말하는 환풍기와 같다. 에어컨처럼 “누구야, 너무 춥다. 온도 좀 올려라” “얘, 덥지 않니? 실내온도 좀 낮춰~”라며 조절할 수 있다. 과거엔 문살이 그 역할을 대신했다.
 
  문이 닫히면 바람이 못 들어온다. 문과 문짝이 딱 붙으면 별로 좋을 게 없다. 그래서 한국 문은 제대로 안 닫혀 있다. 그러니까 ‘문틈’으로 집 내부를 훤히 볼 수 있다.
 
  다른 나라는 문과 문짝 사이에 간격이 없다. 그러니까 서양 사람들은 ‘키홀’, 즉 열쇠 구멍으로 들여다보는데 한국의 문은 허술해서 문틈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 그렇다고 문틈 때문에 칼바람이 스며 겨울에 방이 꽁꽁 얼까? 아니다. 문풍지를 여름에는 터놓고 겨울에는 발라서 문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막았다. ‘바람이 불면 문풍지 우는 소리’라는 시 구절도 있지 않은가.
 
  문풍지는 한국 특유의 것이다. 그래서 한국인이 아니면 문풍지 소리를 들으며 깊고 깊은 겨울밤을 보내는 그 정취가 무엇인지를 모른다. 한마디로 문풍지는 치수의 부정확성에서 생겨난 산물이다. 말하자면 문풍지 문화는 무엇이든 재고 따지고 계산하는 자(尺)의 문화와 양극을 이루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한국인을 미화하려고 집 이야기를 꺼낸 게 아니다. 대륙의 달리던 북방계 사람들이 이상적인 농업의 적지(適地)인 한반도로 내려와 정착하면서 노마딕 한 유목민의 삶과 농경민의 정착 문화를 함께 다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서다. 한국인의 심성과 뿌리 속에 융합적인 문화자원이 있어서 한국의 건물은 폐쇄적이면서도 개방적이요, 더위에 견딜 수 있게 시원하면서도 겨울의 온기를 유지할 수 있는 구조다.
 
 
  ‘팔각정’은 터 사상을 보여주는 건물
 
몇 해 전 눈 온 뒤의 서울 남산 타워 팔각정이다. 눈이 온 모습이 마치 수묵화를 보는 듯하다. 사진=조선DB
  산수가 좋은 곳에서 쉬거나 풍류를 즐기며 주변 경치를 감상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 정자(亭子)다. 벽 없이 기둥과 지붕만 있게 지어 바닥을 마루로 깐 것도 있고, 바닥의 한 부분에 온돌방을 둔 것도 있다.
 
  정자는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매개항이다. 지붕의 그 팔각은 끝없이 원을 향해 진행하거나 혹은 반대로 네모진 각으로 돌아가려 하거나 양방향의 긴장 속에 있다. 한국전통사상의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사상 가운데 정자는 인(人)을 나타낸 것으로 하늘과 땅의 양극을 연결하고 조화를 이룬다.
 
  삼태극(三太極) 사상의 중심을 이루는 팔각정은 한국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다. 평면이 정팔각형으로 된 정자 건물로 지붕면은 8면으로 되어 있다.
 
  한국의 전통건축물은 대단히 폐쇄적인 것 같지만 개방적인데 다른 나라에서는 여간해서는 볼 수 없는 구조다. 지금도 시골마을에 팔각정이 없는 곳은 드물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다. 팔각정은 그야말로 바람이 불고, 앞에는 금모래가 있는,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같은 건물이다. 팔각정에는 놀기도 하고 장기도 두고 술도 먹고 시도 읊고 경치를 바라보는 한국인의 심성이 담겨 있다. 집은 집이로되 소유하지 않는 집! 집은 집이로되 문짝이 없는 집이 팔각정이다.
 
  사방이 터져가지고 동서남북 아무 데고 전망대처럼 보이는 집이 팔각정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내가 팔각정에 앉아서 경치를 즐기지만 저쪽 편 사람도 팔각정을 바라보면 그 경치가 기가 막히다고 느낀다.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인터렉션, 즉 상호성을 중시한다.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사람과 도구 간의 상호작용을 조정하여 서로 소통할 수 있도록 한다. 팔각정이 그렇다.
 
  전망대에서 경치를 내려다보면 기가 막히다. 남산 타워에서 내려다보면 정말 아름답지만, 아래에서 남산타워를 올려다보면 별로 아름답지 않다. 파리 에펠탑도 그렇다. 그러나 팔각정은 다르다. 저쪽에서 팔각정을 봐도, 이쪽에서 봐도 그 모습이 아름답다. 내려다봐도, 올려다봐도 다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우리 민족은 팔각정을 가장 전망이 좋은 곳에다 터를 잡았다. 팔각정은 바깥 풍경을 “바라보기 위한 공간”이면서도 동시에 “바깥에서 바라보이도록 한 공간”이기도 하다.
 
 
  돌담, 개방과 폐쇄의 융합
 
제주도의 전통가옥과 돌담장이다. 저마다 다른 모양의 돌을 쌓았으나 바람이 아무리 불어도 넘어지지 않는다. 사진=조선DB
  외국에서 놀라는 점은 서양 사람들이 노마딕 해서 그런지 담이 없다. 빌딩은 물론 공공건물이고 주택이고 담이 없다. 만약 내가 서울시장이라면 담 없애기 운동을 펴겠다. 과거 대구에서 담 없애기 운동을 한 적이 있긴 하다.
 
  광화문 하나만 남겨놓고 경복궁 앞까지 주욱 터놓으면 기가 막힌 광장이 생긴다. 그러니까 고궁의 어느 담 한쪽만 남겨놓고 툭 터놓으면 미래의 현대와 고궁이 함께 사는 게다. 한때 동서 베를린을 가르는 비감(悲感)의 문인 저 브란덴부르크 문도 문 하나만 남겨놓았다.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도 문 하나만 남겨놓았다. 그런데 우리는 남긴다 하면 그냥 다 남기고, 없앤다고 그러면 전부 부숴버린다.
 
  한국의 돌담은 나지막해서 안에서 밖이 반은 보이고, 바깥에서도 안이 반은 보인다. 도적이 들어오지 말라고 돌담을 쌓은 게 아니다. 개구멍으로 사람도 드나들 수 있다. 사립문이라는 게 발로 툭 차면 열린다. 마음으로 ‘나’와 ‘너’를 가르면서도 완전히 가르지 않은 것이 돌담이다. 돌들을 전부 이어 붙인 게다. 그러니까 그 돌담은 네모난 벽돌처럼 짓는 것이 아니라 제각기 다른 것을 어울려서 지었기에 하나의 개성을 살리면서 주위와 어울린다.
 
  지금도 시골에 가보면 담은 있어도 막상 대문이나 문을 잠그는 자물쇠 같은 것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집들이 많다. 돌담은 있어도 문은 없는 게 제주도의 특징이라고 하지만 한국의 담은 모두가 본질적으로 이와 비슷한 데가 있다.
 
  한국인의 돌담은 단지 안과 바깥을 나누는 상징적 의미 공간을 보여주는 역할만 한다. 아무리 가난하다고 해도 한국인들은 한집안 식구가 성을 쌓고 지내는 것 같은 정신적인 자기 영토를 갖고 살아온 셈이다. 그러므로 일본인같이 한 지붕 밑의 울타리 없는 나가야(長屋·몇 개의 소규모 주택이 나란히 연결되어 있는 서민의 주택 형식)에서 살기에는 부적합한 사람들이다.
 
 
  배산임수의 정신으로!
 
  오늘날의 도시는 모순이다. 한자로 모순(矛盾)은 창과 방패다. 길은 창이다. 뚫고 나가려 한다. 빌딩은 벽이자 방패다. 길과 빌딩, 창과 방패가 부딪힌 게 오늘날의 도시이고 모순이다.
 
  사람들이 건축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김소월의 시 한 편에 미래의 도시 계획이 다 들어 있다는 것을. 시 안에는 무수한 공간이 있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속 앞과 뒤, 개방과 폐쇄, 무기물(모래)과 유기물(이파리), 수평성과 수직성(강과 산), 그리고 시각과 청각….
 
  뒤에는 청산을 지고 앞에는 강물을 끌어안고 있는 초가삼간이야말로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원형이다. 한국인들이 몇천 년 동안,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가장 이상적으로 삼았던 공간이 어디인가? 뒤에는 산이 있고 앞에는 강이 있는, 그 한가운데에서, 강도 산도 아닌 강변에서 살자고 한 게다. 그런데 일부는 산속으로 들어갔다. 퇴계 이황은 ‘청량산가’에서 ‘청량산 육육봉을 아는 이는 나와 흰 기러기(白鷗)뿐이며 어부(魚舟子)가 알까 하노라’라고 노래했다. 그러나 은둔 생활하면 안 된다. 그것은 도피다. 그렇다고 자연을 잃고 도시로만 나갈 수가 없다.
 
  강변이야말로 바로 배산임수다. 뒤는 닫히고 앞은 열린 공간! 이 정신을 잃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하나의 새로운 공간을 만들 수 있다.
 
 
  집은 가정이 아니다
 
동화 《성냥팔이 소녀》. 동화 속 아버지는 폭군의 모습으로 가정이나 가사일을 외면하는 서구 아버지 상(像)을 담고 있다.
  하우스와 홈은 엄연히 다르다. 그런데 우리 민족은 모두 집으로 통칭한다. 하우스도 집이고 홈도 집이다. “집 식구(食口)가 얼마냐?” 하고 묻는다. 집하고 식구, 하우스와 홈을 구별하지 않았다. 영어는 반드시 ‘어 하우스 이즈 낫 어 홈(A house is not a home)’이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는 것은 단순한 집이 아니라, 터가 아니라 홈을 뜻한다. 어머니와 생명을 의미하는 것이다.
 
  안데르센의 동화 《성냥팔이 소녀》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게다. 주인공 ‘성냥팔이 소녀’는 길거리에서 왜 얼어 죽었을까? 몸 녹일 곳이 없어, 집이 없어서 얼어 죽었을까? 또는 가난해서,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성냥이 떨어져서 죽었을까?
 
  사실 성냥팔이 소녀에게는 성냥 파는 애니까 집이 없는 게 아니었다. 거지가 아니니까 집이 있었다. 성냥이 많이 팔렸으면 빨리 집으로 귀가했을 게다. 그런데 성냥이 잘 안 팔렸을 뿐인데 왜 길거리에서 얼어 죽었을까? 아버지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걸 놓친다.
 
  성냥을 못 팔고 들어오면 아버지가 때렸다. 하우스는 있는데 자기를 돌봐주고 따뜻하게 해줄 어머니가 없었던 것이다. 할머니마저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있긴 한데 소녀가 성냥을 못 팔고 집에 가면 때려서 못 들어갔다. 그러면 아버지는 가족이 아닐까? 여기에 문제점이 있다. 첫째는 같은 가족인데 아버지가 딸을 돌보지 않고 앵벌이처럼 내몰았다. 둘째는 이 아버지라는 존재가 왜 그렇게 됐을까다.
 
  성냥팔이 소녀는 딱성냥을 팔았다. 벽에다 대고 그으면 불이 붙는 성냥이다. 안데르센이 이 동화를 쓸 무렵 발명되었다고 한다.
 
  이 동화는 그러니까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에서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에서 아버지하고 어머니가 다르듯이 말이다. 아버지는 전쟁하고 싸우고 경쟁하니까 가정이라는 ‘홈’은 어머니가 여성들이 이끌어왔다. 애 낳고 기르고 젖 먹이고….
 
  모든 짐승 중에 아빠, 아버지 노릇을 하는 짐승이 거의 없다. 새들은 더러 아버지 노릇을 하기도 한다. 펭귄은 이런 면에서 좀 특이하다. 펭귄 아버지는 부성(父性)이 대단하다. 자기가 먹은 것을 토해서까지 새끼를 먹인다. 펭귄은 워낙 사는 환경이 가혹하니까 부부가 아니면 못 키운다. 부모 중 하나가 먹이 가지러 가면 또 하나는 지켜야 되고 하니까 꼭 부부가 기른다.
 
  발에 알을 품은 펭귄 수컷들은 서로 몸을 맞대어 밀집된 커다란 똬리를 튼다. 먼저 몸으로 방풍벽을 친 펭귄들은 서로의 체온을 모아 바깥보다 10도나 높은 따뜻한 내부의 공간을 만든다. 하지만 바깥 외벽을 친 펭귄들은 영하 50도 추위에 노출되어 있다. 어떤 펭귄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얼어 죽게 될 것이다. 그런데 아니다. 밖에 있던 펭귄이 안으로, 안에 있던 펭귄이 밖으로 조금씩 무리 전체가 소용돌이처럼 돌면서 교대를 한다. 인간들이 희구해온 공동선(共同善)이 바로 이런 것이다.
 
  그런데 어디까지나 펭귄에 있어서 그렇다. 보통 짐승들에게 아버지는 그냥 번식 수단으로만 있고 애 낳으면 그다음에는 나몰라다.
 
  서양에서 아버지가 부모 역할을 못 한 것은 가정과 공동체 사회가 완전히 분할이 되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하우스 이즈 낫 어 홈! 집이 홈이 아니라는 게다.
 
 
  가정은 아내가, 아버지는 정치만 했던 그리스 문화
 
  희랍의 아버지, 그리스의 아버지, 로마의 아버지는 우리가 생각하는 아버지가 아니다. 그리스 문화든 로마 문화든 나쁘게 말하면 아버지가 없는 문화였다. 소크라테스가 아들을 키웠다는 이야기 들어봤나? 우리는 내 아들 지키다가 죽지만은 소크라테스는 남의 청년을 데리고 다녔다.
 
  경제학이라는 말이 이코노미(economy)다. 이코노미는 그리스말로 집, ‘오이코스(oikos)’에서 나온 말이다. 이 오이코스에 법을 뜻하는 ‘노모스(nomos)’를 합치면 가사(家事)의 뜻이 된다. 표면 그대로는 아니지만 아테네의 시민들은 이 가사의 영역을 하찮은 것으로 여기고 노예와 아녀자가 하는 일(노동)로 생각했다. 먹는 것을 위해서 노동을 하는 ‘의식주’의 일상성에 매달려 사는 사람은 바로 이 오이코노미아(가사경영)를 맡은 노예와 같은 것이다.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이나 희랍 사람들은 오이코스에 얽매인 사람들이 아니라 폴리스라고 하는 도시의 법규를 더 중시했다.
 
  어머니, 아이들, 노예가 집안일을 도맡을 때 남자들은 집에 있지를 않고 아침밥 먹으면 광장에 나가 정치를 이야기하고 정의를 이야기하고 명예를 이야기했다. 모든 먹고사는 문제는 어머니, 어린 아이, 노예들이 한 게다. 그러니까 플라톤이나 소크라테스는 노동과 경제를 말하지 않았다. 가사는 노예들이 하는 거니까. 그런데 소크라테스가 노동이 중요하다는 말을 했고 젊은이들에게 일하는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은 죄목 중의 하나에 걸린 게다.
 
  남자는 집 안에서 애 키우고 집안 살림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폴리스의 명예와 폴리스를 지키고 군대가 되고 외침을 막아주고 폴리스의 명예에 가장 아름다운, 가장 씩씩한 공동체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여성들이여! 주방과 안방과 아들과 노예들과 함께 집일을 봐라. 나는 나랏일을 볼란다’고 했던 게다.
 

  희랍인들은 폴리스를 건설하고 지키는 공론의 장과 공공 영역에서 일하는 시민들의 일을 노동과 구분했다. 여성과 노예의 노동과 구분해 공적인 일을 하는 것을 ‘행위의 활동(비바 액티바·Viva Activa)’이라 규정했다. 남자들은 폴리스에 가서 온종일 궤변철학자가 되어야 했다.
 
  우리가 ‘생태학’이라 번역하는 이콜로지(ecology)도 오이코스다. 집을 중시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집의 역할과 남자들의 역할이 달랐다는 게다. 전사가 되어야 했고 철학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빵이 잘 구워졌냐고 말해선 안 됐다. 남자들이 밥 먹다가 반찬투정하고 뭐 하면 안 되듯이 말이다.
 
 
  아버지가 없는 사회, Fatherless Society
 
  ‘어 하우스 이즈 낫 홈’이라고 한다면 홈에는 무엇이 있어야 할까? 집에 무엇이 있어야 할까? 집에는 아버지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아버지 없는 사회가 되었다. 이를 ‘파더레스 소사이어티(Fatherless Society)’라고 부른다. 아버지가 없는 게 아니라 아버지 역할이 아주 미미하다. 자녀 진학 문제를 두고 과거엔 학교에서 학부형을 불렀다. 아버지도 포함된다. 그런데 지금은 자모회가 역할을 대신한다. 지금까지 인류를 떠받쳐왔던 부-모-자의 삼각구조가 무너지고 가족 자체의 붕괴를 의미한다.
 
  우스갯소리 하나를 하자면, 어느 ‘기러기 아빠’가 죽어라고 돈을 벌어 아들의 유학비를 댔다. 그 아이는 한 번도 아버지에게 감사를 표한 적이 없었다. 늘 어머니하고만 이야기했지 아버지는 상대 자체를 안 한 게다. 한 번은 그런 아버지가 불쌍해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가 받더니 “엄마 바꿔줄게” 한다.
 
  “아니에요, 오늘은 아버지와 이야기하려고 그래요.”
 
  “왜 돈 떨어졌냐?”
 
  “아뇨. 아버지하고 대화가 하고 싶어서 그래요.”
 
  “…. 너, 술 먹었냐?”
 
  아들이 전화하면 아버지는 교환수다. 어머니한테 전화기를 바로 건네준다. 가부장 제도는 21세기에 적폐(積弊)가 되었다. ‘홈이 없는 아버지’! 가정의 붕괴는 아버지가 있어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아버지 없는 사회’로 만들었다. 한국의 남성이 죽은 날은 월급봉투가 온라인으로 아내에게 직접 송금되었던 바로 그날이라는 농담이 있듯이 교육도 경제권도 모두 아내가 장악하면서 잠자는 ‘가시고기’가 되었다. 지금이라도 주택은 집이 아니라 홈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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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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