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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대중문화 속으로

한국은 어쩌다 ‘매운맛 종주국’이 됐나?

6·25와 근대화 등 거치면서 쌓인 스트레스를 매운맛으로 풀어

글 :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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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컬처 열풍 속에 불닭볶음면 등 매운 음식, 해외에서 인기
⊙ 배추 1포기당 평균 고추 사용량, 5.75g(1930년대) → 13.8g(1950년대) → 53.37g(1980년대) → 71.26g(2010년대)
⊙ 한국전쟁 후 신당동 떡볶이, 1980년대 청양고추, 1990년대 후반 불닭 등장… 저성장-청년실업 고착된 2010년대 이후엔 마라탕 수입
⊙ 외국의 매운맛 열풍… K-컬처, SNS 외에 스트레스 탓 커

이문원
《뉴시스이코노미》 편집장, 《미디어워치》 편집장, 국회 한류연구회 자문위원, KBS 시청자위원, KBS2 TV 〈연예가중계〉 자문위원, 제35회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역임 / 저서 《언론의 저주를 깨다》(공저), 《기업가정신》(공저), 《억지와 위선》(공저) 등
카타르 도하의 한 마트에 종류별로 진열된 불닭볶음면. 한국의 매운 맛은 이제 세계로 수출되고 있다. 사진=조선DB
  연말연시면 언론미디어에서는 다양한 분야에 걸친 새해 전망을 쏟아낸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이전까진 잘 언급되지 않던 부문이 새롭게 새해 전망 단골처럼 등장하고 있다. 한국의 농식품 업계 현황과 전망이다. 한국 음식의 글로벌화를 통해 이른바 ‘K-푸드 열풍’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다 보니 이 분야 사정 역시 K-팝이나 K-드라마 등 여러 대중문화 분야들과 함께 한류(韓流)라는 틀 안에서 K-컬처 전망으로서 다뤄지기 시작한 것이다.
 
  확실히 ‘K-푸드 열풍’은 대단한 현상이 맞다. 지난해 12월 30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12월 23일 기준 농식품 수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 증가한 90억1000만 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更新)했다. 10년 전인 2013년만 하더라도 57억2500만 달러에 머물렀던 수치다. 특히 라면과 음료 등 가공식품 분야에서 75억 달러 수출을 기록하며 4.6% 증가 추세를 보였다. 라면은 9억3830만 달러를 기록하며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4.7% 폭증(暴增)했고, 쌀 가공식품 19.3%, 음료 11.6%, 과자류 6.0% 순으로 성장세를 기록했다. 신선식품 중에선 김치가 가장 수출 비중이 높다. 1억5070만 달러를 기록해 10.3% 늘었다.
 
  국가 단위로 보면 1위 수출국은 역시 일본이다. 모든 한류의 텃밭이자, 사실상 한국 음식이 가장 먼저 주류(主流) 문화로 정착한 국가다. 14억2570만 달러를 기록했다. 다음은 중국으로 13억8100만 달러를 기록하며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9% 증가했다. 그런데 이다음이 미국이다. 12억9590만 달러를 기록했다. 8.7%가 늘어난 수치다. K-팝 등 각종 대중문화 상품들도 지난 수년간 미국과 유럽에서의 수요가 폭증하며 전반적 상승세를 이어가는 상황인데, 농식품 수출도 이와 같은 궤를 그리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결국 이 부문 또한 대중문화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K-컬처 영역인 것이다.
 
 
  라면 수출, 1조원 넘어
 
  이 중 가장 눈길이 가는 건 역시 지난해 처음 수출 1조원을 넘어선 라면 품목이다. 라면 업체들이 해외 현지 공장에서 생산해 판매하는 물량까지 고려하면 2조원을 웃돌 것으로 추정된다. 일단 성장세가 가장 높은데다 미국이나 유럽 등 신(新)시장으로의 진출도 가장 긍정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지난해 1~10월 기준 중국, 미국, 일본, 네덜란드 순으로 수출액이 높아 특정 지역에 편중되지 않는 확장성을 보여줬다. 전 세계 200여 개국 중 3분의 2 가까운 128개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그리고 대중문화 분야 글로벌화와 가장 밀접하게 연동되고 있다. 《아주경제》 2023년 12월 30일 자 기사 〈[K-애그리 열풍] 농산물·식품·기술 전방위 각광… 새 수출 첨병 부상〉은 “2020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영화 〈기생충〉에서는 농심의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섞은 ‘짜파구리’가 등장하기도 했다”며 “BTS와 블랙핑크 등 K-팝 스타들이 SNS나 예능 프로그램 등에서 라면을 먹는 모습을 보이며 팬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고 분석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이 같은 라면의 수출 1위 업체는 의외로 삼양식품이라는 점이다. 해외에 생산 공장이 없다 보니 물량 전체가 수출로 잡히는 이유도 있지만, 그 성장세를 보면 이럴 만도 하다. 수출액 측면에서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전년 대비 30% 성장이라는 폭증을 기록했다. 삼양식품의 전체 매출 중 67.8%가 해외 매출일 정도다. 그런데 이 중 가장 효자상품이 한때 ‘한국에서 가장 매운 라면’으로 꼽혔고 지금도 ‘매운 라면’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불닭볶음면이다. 불닭볶음면을 포함한 불닭 브랜드는 해외 100여 개국으로 수출되며 80%가 넘는 매출을 해외에서 올리는 것으로 집계됐다.
 
 
  ‘매운맛 열풍’에 빠진 세계
 
  ‘매운맛 열풍’은 불닭 브랜드 등 ‘매운 라면’에만 그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신선식품 중 가장 수출 비중이 높은 품목도 해외 입장에선 ‘맵다’는 인상의 김치이고, 전년 대비 10% 넘는 성장세를 보이며 시장 확대를 실감하게 해준다. 또한 지난해 3월 미국 NBC 뉴스에서는 ‘떡볶이의 점령: 미국이 탐닉하는 다음 메뉴는 한국의 추억의 음식’이라는 꼭지를 내보냈고, 일본에서도 치즈닭갈비를 이을 1020세대 인기 한식 메뉴로 매운 주꾸미볶음을 꼽으며 연일 늘어서는 식당 앞 장사진(長蛇陣)을 보도했다. 세계가 한국의 매운맛에 열광하는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왜일까. 상황을 설명한 《조선일보》 2023년 11월 3일 자 기사 〈스무디·사탕까지 매운맛 열풍… ‘맵부심’에 빠진 세계〉를 보자.
 
  〈전 세계가 ‘매운맛앓이’ 중이다. 지난달 말 미국 최대 프리미엄 식품 체인점이자 아마존의 자회사인 홀푸드마켓은 ‘2024년 미국이 주목할 식품 트렌드 10’을 발표하며 내년 세계를 휩쓸 트렌드 중 하나로 ‘별별 매운맛 열풍(Complex Heat)’을 꼽았다. 홀푸드마켓 리서치팀은 “매운맛은 더 확산하고 진화할 것”이라면서 “매운 스무디와 매운 콤부차, 매운 칵테일과 고추 맛 사탕이 앞으로 더 많이 팔려나갈 것”이라고 했다. 글로벌 식품 기업 네슬레도 2024년 전망 리포트에서 “매운맛이 키워드가 될 것이다”라고 했다. (중략) 매운맛 열풍은 소셜미디어가 키웠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몇 년 사이 틱톡·유튜브 등에서 매운 음식 먹기에 도전하는 소위 ‘매운맛 챌린지(Spicy challenges)’가 유행처럼 번져 나가면서 매운맛 인기도 커졌다.〉
 

  결국 그동안은 매운맛이 자신들 식문화에 없기에 선입견을 갖고 꺼려왔지만, 틱톡이나 유튜브 쇼츠 등 숏폼 플랫폼에서의 인기 영향으로 호기심이 생겨 맛보고 난 뒤 매운맛 특유의 통각(痛覺)에 길들어 관심과 인기가 부풀어 올랐다는 얘기다. 여기에 미국 한정으로 덧붙여보자면, 애초 자신들 식문화에 강렬한 매운맛이 자리 잡고 있던 남미 히스패닉 인구가 미국 내 19%(6250만 명, 2021년 기준)까지 치솟아 흑인 인구(12%)를 압도하면서 매운맛에 대한 미국 내 수요도 그만큼 올라갔다고 볼 수 있다.
 
 
  ‘매운맛 종주국’ 한국
 
  그중에서도 특히 ‘한국의 매운맛’이 유난히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는, K-팝 등 K-컬처 전반의 영향도 크겠지만, 한국의 ‘매운맛 종주국(宗主國)’ 입지 이유도 있겠다. 실제로 남미나 아프리카 대륙, 동남아 등 한국보다 매운 고추 품종을 사용하는 이유로 더 매운 음식들이 존재하는 지역은 많지만, 한국만큼 여러 다양한 음식을 죄다 ‘빨갛게’ 만드는 나라도 또 없다는 것이다. 찌개 등 탕 요리부터 각종 나물 반찬, 돼지나 닭 등 육(肉)고기와 해산물들, 심지어 떡이나 국수 같은 밀가루 음식들에 이르기까지 온통 고춧가루, 고추장을 ‘기본’인 양 버무려놓으니 과연 ‘매운맛 종주국’이라는 말이 안 나올 수가 없다는 것. 그리고 그 다양한 ‘빨간 음식’의 가짓수만큼이나 매운맛이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는 세계 요식업계에서의 존재감도 나날이 커져가고 있다.
 
  또한 그 영향은 다른 분야로도 번져간다. 언급했듯, 특히 해외 시장 진출에 있어 서로 영향을 크게 주고받는 대중문화계부터 이 같은 흐름을 재빨리 반영하고 있다. 《시사저널》 2023년 6월 30일 자 기사 〈에이티즈, 그리고 K-팝의 이유 있는 청양고추맛〉을 보자.
 
  〈최근 발매된 보이그룹 에이티즈(Ateez)의 신곡 ‘Bouncy’에는 흥미롭게도 ‘K-HOT CHILLI PEPPERS’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중략) 맥락을 모른다면 뜬금없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그룹이 앨범의 타이틀곡을 통해 내세우고자 하는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태도를 한국의 매운맛, 그러니까 ‘청양고추’의 맛에 빗대 표현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나면 수긍이 될 법도 하다. 물론 K-팝에서 강렬한 사운드와 태도를 맛에 비유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투애니원 출신 CL의 ‘Spicy’라는 곡이 있었고, NCT Dream의 히트곡 ‘맛’의 부제 역시 ‘Hot Sauce’였다. 불과 한 달 차이로 걸그룹 에스파(aespa)는 신곡 ‘Spicy’를 발표하기도 했다.〉
 
  K-팝계뿐만이 아니다. 유튜브 등 동영상 플랫폼 콘텐츠도 ‘매운맛 천지’인 건 마찬가지다. 흔히 광고계에는 ‘3B 법칙’이 있다고들 한다. 아기(Baby), 미녀(Beauty), 동물(Beast)이 나오는 광고는 보편적으로 많은 이가 호감을 가져 광고 효과도 그만큼 높아진다는 법칙이다. 그런데 근래 유튜브에도 ‘3B 법칙’이 있다는 우스개가 돈다. 알파벳 B에 해당하는 한글 자음 ‘ㅂ’으로 시작되는 셋, 방탄소년단, 반일(反日), 그리고 불닭볶음면이 소재로 등장하는 영상은 조회 수가 폭등(暴騰)한다는 것이다. 앞선 《조선일보》 기사에서 전 세계적 매운맛 열풍이 각종 동영상 플랫폼의 매운 음식 챌린지로부터 시작됐다고 분석한 내용과 같다. 그렇게 한국은 전 방위적 문화 흐름에서 ‘매운맛’ 코드로 점철(點綴)되는 시점을 맞이하고 있다.
 
 
  한국인이 매운맛 즐기기 시작한 건 얼마 안 돼
 
고춧가루를 듬뿍 써가면서 김장을 하는 모습. 사실 이런 식으로 김장을 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사진=조선DB
  여기서 좀 더 생각해볼 부분이 있다. 한국은 어쩌다 ‘매운맛 종주국’이 된 걸까. 한국인들은 대체 언제부터 매운맛에 이토록 경도(傾倒)돼 음식들을 죄다 빨간색으로 만들어놓는 걸까 말이다. 물론 역사로 들어가 보면 그 원재료인 고추는 임진왜란 당시 일본으로부터 전해져 18세기 중엽부터 조선 사회에 퍼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고추=매운맛’은 한국 대중 사이에서 그렇게 오래, 쉽게 퍼진 것이 아니다. 엄밀히 매운맛을 대중적으로 즐기기 시작한 건 불과 몇십 년 전부터라는 자료들이 많다.
 
  예컨대 2015년 한국식생활문화학회지에 실린 서모란, 정희선의 논문 〈조리서와 신문 잡지 기사에 나타난 1930~2010년대 배추김치 연대별 고추 사용량 변화에 대한 고찰〉을 들 수 있다. 제목 그대로 1937년부터 2014년까지 총 78종의 조리서 및 신문, 잡지 기사 등에 실린 배추김치 조리법에서 연대별 배추 1포기당 평균 고추 사용량을 살펴본 자료다.
 
  ▲ 1930년대 5.75g
  ▲ 1940년대 8.83g
  ▲ 1950년대 13.8g
  ▲ 1960년대 20.25g
  ▲ 1970년대 28.42g
  ▲ 1980년대 53.37g
  ▲ 1990년대 54.45g
  ▲ 2000년대 60.03g
  ▲ 2010년대 71.26g
 
  보다시피 2010년대의 고추 사용량은 1930년대의 12배 이상이다. 지금과 비교해 보면 1930~40년대 김치는 매운맛을 악센트 정도로만 살짝 얹었을 뿐 배추를 숙성시켜 절인다는 본질에만 충실했다는 얘기다. 그러다 1950년대 즈음부터 그 본질이 서서히 ‘매운 음식’으로 바뀌어간다.
 
  당연히 김치 맛만 달라진 것도 아니다. 1970년대부터 측정한 농림축산식품부의 한국인 1인당 고추 연간 소비량에서도 상황은 같은 맥락으로 흘러간다. 1970년에는 1.2kg이던 것이 1975년에 2.7kg으로 배 이상 뛰고, 2011년에 이르러선 5.8kg까지 간다. 불과 40년 만에 한국 사람 한 명당 먹는 고추 양이 5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반면 김치 자체는 소비량이 계속 줄어드는 추세다. 1970년대에 1인당 하루 소비량이 300~400g이었다가 2000년대 들어 103.7g까지 내려간다. 그런데도 고추 소비량이 폭증하고 있다는 건 그사이 고추를 대량으로 사용하는 매운 음식들이 새로 개발돼 시장에 정착했고 김치 역시 이에 발맞춰 계속 더 매워졌기 때문에 김치 소비 자체가 줄어들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이에 대한 지배적인 해석은 1970년대 고추 품종 개량으로 고추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국내 고추 품종은 이전까지 지방재래종에서 1970년대 후반 일대잡종 품종이 개발되면서 수량성이 대폭 개량된 바 있다. 중요한 건, 김치에 쓰이는 고추 사용량 폭증은 1970년대 후반 이전, 1950~70년대 중반에도 이미 이뤄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수량성 개량은 이런 흐름에 날개를 달아준 정도라고 볼 수 있다. 더 주목할 만한 부분은, 베트남 고추 등 국산 고추보다 매운 수입산 고추의 시장점유율이 2000년 13%에서 2011년에는 51%로 껑충 뛴다는 점이다. 고추도 더 많이 사용하지만, 애초에 사용하는 고추 자체 또한 더 매워졌다는 뜻이다.
 
 
  음식이 매워지기 시작한 건 ‘스트레스’ 때문
 
매운맛의 무교동 낙지는 개발연대이던 1960년대에 등장했다. 사진=조선DB
  그럼 대략 1950년대 즈음부터 한국 음식이 점점 매워지기 시작한 이유는 왜일까. 많은 연구가 제시하는 원인은 한국인의 ‘스트레스’ 차원이다. 그것도 가히 생존 차원의 스트레스가 매운맛에 대한 집착을 불렀다는 것이다.
 
  국립민속박물관 안정윤 학예연구원의 2009년 논문 〈고추, 그 매운맛에 대한 역사민속학적 시론-한국 사회는 왜 고추의 매운맛에 열광하는가〉도 이런 결론을 제시하는 연구다. 안 연구원의 당시 발표를 담은 《동아일보》 2009년 10월 28일 자 기사 〈“6·25전쟁-경제난 스트레스가 한국을 매운맛에 길들였다”〉를 보자.
 
  〈안 연구원은 고추의 매운맛이 더욱 확산된 시기를 1950년대로 보았다. 그는 “6·25전쟁, 빈곤과 기아의 스트레스가 매운맛을 찾게 했다”고 추론한다. 1953년 고추장을 사용한 신당동 떡볶이가 나온 것도 이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안 연구원은 “고추의 매운맛은 중독 증세와 엔도르핀 효과에 힘입어 상업성을 띠었다”며 “이에 따라 1960년대 무교동 낙지볶음, 경기 연천의 망향비빔국수, 대구의 매운 갈비찜 등이 등장했다”고 설명했다. 안 연구원은 “최근 고추의 매운맛을 즐기는 계층은 20, 30대 젊은층”이라며 “취업난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실제 업계의 반응도 이 같은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MBC 뉴스〉 2016년 6월 20일 자 보도 〈[앵커의 눈] 한국인은 매운맛? 입맛 살리려다 몸에 ‘독’ 될 수도〉에서 MBC와 인터뷰한 김종옥 BHC 본부장은 “경기가 안 좋을 때 매운맛을 많이 찾는다는 속설이 있지만 실제로 매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게 사실”이라고 밝힌 바 있다. 원리도 단순하다. 매운 음식을 먹으면 이에 따른 통각을 줄여주는 엔도르핀이 자동적으로 나오고, 이 엔도르핀은 통증을 억제하는 효과가 마약으로 분류되는 모르핀보다 약 100배나 강하다는 것이다. 즉 매운 음식을 통해 통각을 고의로 유발하면 엔도르핀이 분비되면서 일시적으로 좋은 기분을 만끽하게 해준다는 것. 수많은 스트레스 거리로부터 일시적으로나마 도피(逃避)하려 한국인들은 사실상 대부분의 음식을 빨갛게 만들어버렸다는 얘기다.
 
 
  고도성장기의 흔적들
 
  이것도 엄밀히 말하자면, 애초 6·25전쟁이라는 민족상잔(民族相殘)의 비극으로부터 시작된 일이긴 하지만, 이후 1960~80년대 고도성장, 압축성장이 낳은 아픔이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갑자기 농경 사회에서 산업 사회로 진화, 고향의 따스하고 비(非)타산적인 공동 사회에서 이촌향도(離村向都) 열풍을 따라 혈혈단신(孑孑單身) 대도시로 입성하면서 낯선 이익 사회에 빠르게 적응하려다 보니 다들 극심한 고립감과 불안감에 시달리게 됐다는 것이다. 그만큼 삶의 스트레스도 가중되고 이를 매운 음식들을 통해 잠시나마 잊고자 고추 소비량도 늘고 김치도 급격히 더 매워지기 시작했다는 전개다.
 
  생각해보면 1960~80년대 고도성장기 동안 형성된 한국인의 사회·문화적 습성 또는 특성들은 단순히 매운맛 선호에만 그치지 않는다. 예컨대, ‘이모’ ‘삼촌’ 등 호칭이 친인척을 넘어 다양한 이들, 심지어 식당 점원 등 낯선 이들에까지 확장돼 쓰인다는 점도 짚어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고향을 떠나 기댈 사람 하나 없는 대도시에서 불안과 고립에 직면하다 보니 이익관계에 불과한 직장 동료, 심지어 아예 기능적 관계인 식당 직원들에게까지도 친인척에 부여하던 호칭들을 써가며 공동 사회 특유의 안온함과 안정감을 잠시나마 맛보려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서로서로 일종의 유사(類似) 공동 사회 분위기를 연출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많다. 현재 해외에서 ‘한국인의 특성’으로 바라보는 대부분의 현대 한국인 멘털리티(mentality)들도 따지고 보면 1960~80년대에 고도성장, 압축성장의 단맛과 쓴맛을 함께 맛보며 형성됐다고 볼 수 있다. 정확히는 번영(繁榮)이라는 단맛을 맛보기 위해 정신적 공황(恐慌)과 부적응의 쓴맛을 감내하면서 형성된 것들이다. 앞선 매운맛 선호나 친인척 호칭의 확대된 용례부터 시작해 한국인 자체를 상징하는 ‘빨리빨리’ 문화, 심지어 폭음(暴飮) 문화 등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렇다. 현대 한국인은 ‘이때’ 완성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 영향과 스테레오 타입은 지금도 계속되는 중이다.
 
 
  극단적 매운맛 열풍은 IMF 사태의 산물
 
한때 ‘매운 라면’의 대명사였던 신라면은 이제 더 이상 매운 라면이 아니다.
  다시 ‘매운맛’으로 돌아가 보자. 고도성장기 이후의 매운맛에 대해서다. 앞선 자료들에서 알 수 있듯, 한국 음식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매워지고 있다. 세상살이 자체가 고도성장기보다 더 힘들어져서라고 보긴 어렵다. 일단 삶의 스트레스를 일시적으로나마 매운맛으로 해소한다는 문화적 방법론은 계속 이어져 내려오는 상황에서, 한 번 어느 정도 매운맛이 보편적으로 통용되고 나면 이후 또 다른 근심거리가 닥쳤을 땐 그보다 더 매운맛을 요구하게 되기에 점점 더 매워진다. 일종의 마약(痲藥) 중독과도 같은 경로다.
 
  예컨대, 지금처럼 외래종 고추를 사용하는 극단적으로 매운 음식 열풍은 엄밀히 1997년 IMF 외환(外換)위기의 산물이라고 봐야 한다. 1990년대 말엽 등장해 엄청난 인기를 모은 신종(新種) 음식이 바로 불닭볶음면이 모티브를 가져온 불닭이다. 매운 소스로 버무린 불닭이 열풍을 일으키며 서울 등 대도시 번화가를 휩쓸자 곧바로 매운 짬뽕, 엽기떡볶이 등이 뒤따랐고, 역시 매운 소스로 버무린 닭발 열풍도 일어났다. 그러다 2010년대 저성장(低成長)과 함께 청년 취업 불황이 찾아오자 ‘헬조선’이라는 유행어와 함께 찾아온 것이 한국 음식도 아닌 중국발(發) 마라탕 열풍이다. 점점 매워지다 못해 이제는 해외 음식까지 찾는다.
 
  시판되는 라면으로 보면 상황이 더 잘 와닿는다. 1986년 신라면이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다른 라면들보다 맵다고 매울 신(辛)자를 붙였었다. 매운맛을 측정하는 데 사용하는 스코빌지수로 당시 신라면은 지수 1300이었으니 안성탕면(570)이나 삼양라면(950)보다는 더 매운 게 맞다. 그런데 이제 신라면은 ‘안 매운 라면’의 대명사다. 라면업계 매운맛 열풍을 가져온 불닭볶음면은 스코빌지수 3210이고, 여기서도 만족 못 해 지수 6504짜리 핵불닭볶음면을 추가로 출시했다. 지금은 이 정도도 우습다. 이후 출시된 불마왕라면은 스코빌지수 1만4444, 염라대왕라면은 2만1000이다. 흐름이 이러니 신라면조차 계속 맵기를 더해 지금 출시되는 것은 스코빌지수 3400에 맞춰져 있다. 그러다 추가로 ‘더 매운’ 신라면 더 레드를 내놓았다. 스코빌지수 7500이다. 중·노년층에서 “요즘 한국 음식은 한국 것이 아닌 것 같다”는 푸념이 여기저기서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매운맛’ 정체성은 1980년대 중반 이후 형성
 
  사실 1980년대만 해도 한국 음식은 딱히 맵다는 인상은 아니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한국의 매운맛’ 자체를 상징하는 청양고추조차 사실 1983년 유일웅 박사팀이 제주산 고추와 태국산 고추를 잡종 교배해 탄생시킨 품종이다. 이후 상용화(常用化)까지는 또 한참이 걸렸다.
 
  한편 ‘매운맛’이 중요한 정체성(正體性) 요소로서 한국인들 스스로에 각인(刻印)되기 시작한 것도 1980년대 중후반부터라는 견해가 많다. 대략 신라면이 처음 등장하던 때 즈음,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앞두고 국민들 의욕을 북돋기 위해 “작은 고추가 맵다” “한국인의 매운맛을 세계에 보여주자” 등의 구호가 각종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면서 비로소 ‘매운맛을 즐기는 한국인’ 정체성이 자부심 요소로서 대중적으로 퍼져나갔다는 것이다.
 

  한국 유튜브 시장의 중요 요소로 자리 잡았다는 ‘매운맛 챌린지’도 엄밀히 이 같은 정체성이 자부심 요소로서 대물림되고 있는 현장이다.
 
  그런데 이런 자부심도 자극성을 추구하는 소셜미디어 속성에 따라 상당 부분 변태(變態) 왜곡(歪曲)됐다. 상당수가 매운맛에 익숙지 않은 외국인들에게 불닭볶음면 등 매운 한국 음식을 먹이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다분히 가학적(加虐的)인 자부심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앞선 유튜브 성공의 ‘3B 법칙’ 중 긍정적인 것은 방탄소년단밖에 없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해외에서 매운맛에 열광하는 이유는?
 
  흥미로운 건, 이처럼 한국인의 정체성 요소로 자리 잡았으면서도 동시에 이제는 한국 것이 아닌 것 같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로 매워진 한국 음식에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열광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점이다. 단순히 K-컬처에 대한 흥미, 틱톡 등 숏폼 플랫폼 인기를 이유로 매운맛을 좋아하게 됐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어쩌면 그들도 한국인과 같은 경로, 즉 극심한 스트레스를 일시적으로나마 잊는 방도로써 매운맛의 효용을 K-컬처든 숏폼 플랫폼이든 신종 계기를 만나 알아버린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이 가능하다. 2010년대 소셜미디어 열풍 이후 세계 곳곳에서 비교심리와 열등감으로 이전보다 훨씬 심한 우울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이들이 급증했다는 외신 보도들을 보면 이런 추측이 아예 엉뚱한 얘기는 아닐 듯싶다.
 
  당연한 얘기지만, 과도한 매운맛 집착은 건강에 좋지 않다. 소화기관이나 심장 등의 육체적 문제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그렇다. 매운맛은 일시적으로만 엔도르핀의 영향으로 기분을 좋게 해줄 뿐 궁극적으로는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를 촉진해 오히려 스트레스 지수를 높인다. 피로도도 배로 올라간다. 잠시 잊게 해주고 그 대가는 배로 돌아오는 식이다.
 
  그래도 매운맛 유행은 K-팝과 K-드라마, K-무비, 그리고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쉽게 끝날 기세가 아니다. 오히려 한층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결과적으로 한층 더 심각해질 대중의 스트레스와 정신적 공황이 과연 어떤 미래를 가져오게 될지 사뭇 불안해진다. 2024년 새해의 한국 농식품 호황(好況) 전망과 함께 대중의 정신적 불황(不況)도 함께 점쳐지는 아이러니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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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명이    (2024-01-25) 찬성 : 1   반대 : 0
죄앙이, 찢명이, 돼멜다 보면 열불나서 매운게 땡길 수 밖에 없다. 돼멜다 인도 솔로 여행 특검 실시하라. 찢 1.5cm 열상헬기 특검하라

202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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