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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위기관리 ⑤ 안전사고와 대형 참사는 왜 반복되는가?

책임 추궁보다 반복 훈련이 재난 방지의 첩경

글 : 권신일  에델만코리아 부사장 겸 에델만 EGA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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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사고 시 책임자의 失言도 위기관리 훈련 부족 때문
⊙ 美 국무부, 매년 또는 불시에 테러 등에 대비한 위기관리 훈련 실시… 일 년 내내 시나리오 작성·실행·개선 팀 운영
⊙ 위기관리 원칙 중 하나는 ‘희생자가 내 가족이라면?’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 美 육군, ‘가족에게 가장 먼저 알려라’
⊙ S그룹, ‘상상 이상의 사고’에 대한 시나리오 요구… 대응 매뉴얼 구비

權信一
1970년생. 한양대 대학원 관광학 박사 /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기획위원,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연구위원,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실 행정관, 에델만코리아 전무이사 역임. 現 에델만코리아 부사장 겸 에델만 EGA 대표 / 저서 《협상5》
주한미군은 유사시 주한미군 가족들을 대피시키는 ‘커레이저스 채널’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사진=주한미군
  2022년 10월 한 달 동안 대한민국에서는 수많은 사건과 사고가 발생했다. 온 국민이 쓰는 카카오 데이터센터 화재로 일상의 불편뿐만 아니라 택시·배달 등 생업에 큰 피해를 보았다. 빵으로 친숙한 SPC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난 인명사고와 대응은 안전에 불감한 우리 기업의 노동 현장의 모습을 여실히 드러냈다. 그리고 10월 말에는 대한항공기의 세부 공항 불시착 사고와 충북 괴산에서 발생한 진도 4.1 지진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리고 같은 주말 이태원 핼러윈 축제에서는 최악의 압사(壓死) 사고가 발생했다.
 
  이젠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고 평가되는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이런 사고가 일어났을까? 흔히 선진국형·후진국형 사고라고 말하지만 사건·사고는 사람이 살아가는 한 선·후진국을 가리지 않고 반드시 발생한다. 예를 들어 세계 제일의 민주주의를 자랑하는 미국에서는 국회의사당이 폭력시위대에 점거됐고, 그 과정에서 경찰관이 사망했다. 안전을 자랑하던 일본 원전(原電)은 지진해일(쓰나미)에 의해 파괴됐고, 10년이 넘도록 손도 못 대던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에 몰래 버리려다 또 다른 위기를 만들었다. 2011년에는 가장 평온할 듯한 노르웨이의 숲속에서 극단주의자가 저지른 총기 난사 사건으로 76명이 살해당했다. 이슬람권에서 신성한 장소이자 종교 중심지인 사우디 메카에선 1990년, 2015년 약 2000여 명이 죽은 압사 사고가 발생했다.
 
  즉 사건·사고는 시기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사람의 얼굴처럼 조금씩 다른 형태로 항상 생긴다. 그에 대한 책임을 가리다 보면 대부분 인재(人災)로 드러난다. 다만 그에 대한 대응 과정에서 리더의 현장 첫 메시지, 피해자들과 함께 만드는 수습책과 국민 공감,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만드는 리더십 등의 측면에서 선·후진국이 갈리며, 비슷한 사건·사고로 인한 위기가 반복될지 여부가 결정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위기 발생 전 대응, 사후(事後)에 대한 제대로 된 관리 여부가 회사의 존폐로 이어지기도 하며, 어떻게 대응했는지에 따라 그 기업이 일류인가 삼류인가를 가르는 기준이 되곤 한다.
 
 
  책임 돌리기에 급급
 
  “이미 위기에 빠져 있거나, 위기에 처하게 될 기업 둘뿐이다.”
 
  위기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흔히 쓰는 표현이다. 모든 기업은 위기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 기업과 국가도 개인처럼 크고 작은 부침(浮沈)이 있다. 어떤 기업은 고비 때마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오히려 사세(社勢)를 키우기도 한다.
 

  정부도 마찬가지이다. 이태원 압사 사고 역시 사우디아라비아에서처럼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주최 측이 없는 상황에 대한 매뉴얼 정비와 방지 대책 마련이 책임 규명 못지않게 중요하다. 대한민국은 총기나 폭력 사고가 없어 새벽에도 여성이 혼자 조깅할 수 있다는 거의 유일한 안전 국가라는 이미지를 되찾도록 해야 한다.
 
  아쉽게도 현실은 이와 달랐다. 과거 발생했던 정부가 책임져야 할 사건·사고 대부분은 책임 돌리기에 급급하다 결국 다른 일로 신경이 무뎌지면 또 잊고 마는 행태가 반복됐다. 개인에서부터 기업, 정부에 이르기까지 유사한 위기관리 사례들을 철저히 연구하고 대응책을 수립해 사고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美 국무부 위기관리 훈련
 
  거의 모든 나라에 대사관과 영사관을 두고 있는 미 국무부는 매년 또는 불시에 위기관리 훈련을 진행한다. 테러 등 다양한 위기 상황을 가정하는데 일 년 내내 이 시나리오를 만들어 실행해보고 개선하는 팀과 담당자들이 있다. 단순히 일회성 상황 점검이나 확인을 하는 것이 아니다. 시나리오별 실제 대응 태세를 점검하고 평가 및 개선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평가담당관의 역할이 크다. 시나리오별로 대응하는 모습을 현장에서 세세한 평가표로 면밀하게 점검한다. 이 자료들은 대외비(對外秘)여서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로 담당 업무를 했던 분들의 조언을 토대로 구성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나라별 대사관·영사관별로 쉽게 예상되는 수십 개의 상황부터 생각하기 힘든 상황까지 염두에 둔 시나리오를 구성한다. 이 시나리오를 개발하기 위해 평가담당관은 부단한 노력을 기울인다. 이 과정에서 현지 공관의 아이디어를 얻고, 민간 위기관리 전문가들의 도움을 얻기도 한다.
 
  그다음으로 시나리오별 점검 포인트를 둔다. 점검 포인트에는 ▲사전(事前) 모니터링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는지 ▲사고 발생 시 1차 대응담당자는 누구인지 ▲1시간 및 24시간 안에 진행되어야 할 첫 메시지와 대응 업무들 ▲폭력 상황의 경우 대피 동선(動線)에 대한 점검 ▲실제 소요 시간 ▲피(被) 평가대상 기관의 담당자 숙련도 ▲최종결정권자의 역할 등이 들어 있다.
 
  끝으로 판단의 평가 결과 공유(共有)와 반복 훈련이다. 평가 결과에 대해서는 해당 대사관에 구체적으로 설명해주며 개선과제를 점검한다. 평가표는 국무부에 평가 자료로도 보고된다. 주요 사안은 다시 공유되도록 해 점검 자료로 삼게 한다.
 
  인상적인 점은 이러한 훈련을 한 번이 아니라 정기적으로 실행한다는 점이다. 물론 세계 1위 국가답게 실제로 심각한 위기 상황에 다른 어떤 나라보다 노출되어 있다 보니 평가자나 피평가자 모두 좀 더 진지하게 임한다. 진지한 반복 훈련 덕분에 위험에 더 크게 노출된 중동(中東) 등 위험 지역에서도 위기 상황에 더 효과적으로 대비하게 됨은 당연한 결과다. 사실 상황별 대응 과정과 책임자 선정 등은 우리나라도 대부분 위기관리 매뉴얼에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매년 새로운 시나리오를 개발하고, 이를 반복해서 훈련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훈련 비용 아끼지 않는 글로벌 항공기업
 
  국가뿐이 아니다. 글로벌 기업들의 위기관리를 위한 투자와 개선 노력도 인상적이다. 우리 회사가 10년 이상 홍보를 맡아온 한 글로벌 항공사가 있다. 이 회사의 위기관리는 투자 비용에서부터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흔히 보는 위기관리 훈련과는 매우 달라 놀라움을 준다.
 
  먼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수십 개국의 현지 담당자를 본사로 오게 한다. 회사 소속 직원이 아님에도 기업의 위기관리 훈련을 위해 한 사람당 수백만원이 드는 항공료와 체재비를 부담하며 한자리에 모은다. 팀을 만들어 어떤 위기 상황에도 나라별로 차이가 없도록 하는 교육과 대응 훈련을 하게 한다. 현지 교육뿐만 아니라 훈련 결과를 토대로 한국 오피스에 상황을 부여하고 거기에 맞는 대응과 진행을 했는지도 점검한다. 때로는 밤늦게 또는 새벽에 상황이 생긴 것으로 가정하고 거기에 맞는 자료와 연락체계를 가졌는지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이 회사는 우리 회사 직원들에게도 담당하고 싶은 회사로 인기가 높다.
 
 
  핵심은 반복 훈련
 
훈련은 반복이 중요하다. 사진은 2018년 3월 21일 실시된 조선일보사의 민방위 훈련. 사진=조선DB
  앞서 두 사례에서 공통으로 찾을 수 있는 단어는 ‘훈련(traning)’이다. 우리말에서는 ‘연습’ ‘훈련’ 단어가 비슷한 뜻으로 혼용되지만, 영어권에서 ‘Exercise’와 ‘Training’은 확실히 구별되어 사용된다. 전자(前者)는 특정 목표를 두고 사용한다기보다 일회성으로 많이 사용된다. 반면, 후자(後者)는 구체적인 목표를 갖고 있다. ‘민방위 연습’이 아니라 ‘민방위 훈련’이라고 하듯이 ‘훈련’이라는 말은 목표와 반복성을 갖고 있을 때 사용한다.
 
  위기관리는 일회성 연습이 아니라 다양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훈련을 통해 더 원활하게 풀어갈 수 있다. 이를 위한 기본 자료로 많은 기업과 공공기관들이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을 들여 위기관리 매뉴얼(지침서)을 만들고 직원들에게 교육한다. 하지만 그것을 제대로 활용하는 곳은 매우 드물기 때문에 정작 위기가 발생하면 허둥지둥하며 평소에는 하지 않을 실수와 실언을 반복해 위기를 더 키우곤 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의 얼굴이 모두 다른 것처럼 위기 상황도 매뉴얼과 똑같은 경우는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매뉴얼을 기본으로 삼되, 다양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최대한 비슷하게 반복 훈련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을 시나리오에 담아 대비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래야 비슷한 위기 상황을 발생했을 때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고, 때로는 위기를 기회로 삼아 도약할 수 있다. 문제는 매뉴얼을 실전처럼 연습하고 반복적으로 개선하는 곳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그래서 늘 비슷비슷한 사고가 반복되며 위기도 반복된다.
 
  2012년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A 공장 불산가스 누출 사고의 책임 문제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사장이 “나는 돈만 벌면 된다”라고 말을 해 많은 이의 귀를 의심케 했다. 복도에서 많은 기자 사이에 끼여 떠밀리듯 대꾸했다고 하지만 그 기자를 통해 수없이 많은 국내외 사람들에게 퍼진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분명하다. 무엇보다 희생자 가족을 위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툭 나올 말이 아니었다. 사장은 해임됐지만, 그 회사는 돈만 중요하게 여긴다는 이미지가 깊이 각인됐다.
 
  큰 사건·사고 뒤에 희생자들의 유가족이나 국민들에게 큰 실망을 주는 책임자급 인사들의 실언(失言)이나 행동이 이어지는 경우 또한 많다. 이번에도 담당 장관이나 기초 자치단체장들이 실언으로 구설에 올랐다. 그 이유도 그 누구도 그 상황을 겪어보거나 익숙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대한 비슷한 상황을 염두에 둔 반복 연습을 통한 자연스러운 대응 준비가 필요한 것이다. 율사(律士)의 이성(理性)으로 대안(代案)을 찾기 위한 노력뿐만 아니라 희생자 가족과 같은 감성으로 공감을 얻기 위한 노력이 그 기본이다.
 
 
  ‘얼마나 빨리 복구하느냐’가 진짜 역량
 
남궁훈(왼쪽), 홍은택 카카오 대표는 10월 19일 데이터센터 화재로 인한 장애사태에 대해 사과했지만, 이미 신뢰를 잃은 뒤였다. 사진=조선DB
  지난 10월 카카오 데이터센터 화재로 많은 국민이 손해를 입었다. 일상생활 속 불편함도 컸지만 카톡을 통해 영업과 배달을 하는 소상공인들의 피해가 더욱 컸다. 특히 ‘카카오톡 채널’ 복구가 늦어지면서 소상공인들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4500만 명이 매일 이용하고 있으며 국내 점유율이 90%에 가까운 말 그대로 ‘국민 메신저’인데도 데이터센터가 한 곳에 불과했고, 화재에 너무나 취약했다.
 
  카카오는 위기관리 원칙으로 비교하기 이전에 기본부터가 너무나 충실하지 못했다. 예상 사건·사고 시나리오를 미리 만들어보았다면 반드시 지적됐을 상황이었다. 그 중요한 온 국민 데이터를 한 곳에만 보관해둔 점도 문제지만, 대표도 인정했듯이 데이터센터 전원 차단 같은 유형의 사고에 대비한 훈련이 없었던 것도 큰 문제다. 경쟁 회사인 네이버는 백업 데이터센터를 한 곳 더 갖추고 있었던 것과 대조적이었다.
 
  구글과 메타, 마이크로소프트(MS) 등은 재난·재해에 대비해 데이터센터를 여럿 두고 있으며 주기적으로 대응 훈련을 하고 있다. 이들 글로벌 기업들은 데이터 분산은 기본이고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신속한 원상회복을 의미하는 ‘회복 탄력성(resilience)’에도 주목한다. 즉 화재나 정전, 테러, 전쟁 등으로 인한 데이터센터 사고 발생은 언제,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불가피한 상황이고 디지털 기업의 ‘진짜 역량’은 그 이후 얼마나 빨리 복구하느냐에서 판가름 난다는 뜻이다.
 
  카카오가 화재 발생 이후 완전 복구에 일주일이나 걸렸다는 점은 그래서 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지금도 가장 많은 국민이 사용하고 있지만 회복 탄력성까지 고려한 대비 훈련을 반복하지 않는다면 조만간 그 사랑을 잃게 될 것이다.
 
 
  ‘안이한 인식의 끝판왕’
 
파리바게뜨, 삼립빵으로 익숙한 SPC는 잇따른 안전사고와 안이한 대응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 사진=조선DB
  삼립제과·파리바게뜨 등으로 온 국민에게 친숙한 기업 SPC의 사고는 ‘안이한 인식의 끝판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10월 근로자 A(23)씨가 평택 제빵공장에서 기계 안으로 상반신이 빨려 들어가 숨졌다. 이 같은 사고는 수년째 이어져 오고 있으며 그때마다 덮고 넘어가고 있어 또 발생할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소름이 끼친다.
 
  실제로 한 직원은 방송 인터뷰를 통해 자신도 똑같은 사고로 죽을 것 같아 회사를 관뒀다고 증언했다. 그런데도 회사의 대응은 안일했다. 사고 바로 다음 날에는 영국 런던 매장이 새롭게 문을 열었다는 보도자료를 냈고, 회장의 사과문도 사고 발생 이틀이 지나서야 나왔다고 한다. 사망 사건 이튿날에도 사고가 난 배합기 근처만 천으로 가리고 다른 직원들은 계속 작업을 이어갔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SPC는 장례식장에 답례품 명목으로 자사의 크림빵 두 상자를 보내 유족들로부터 큰 반발을 샀다.
 
  이 같은 행태는 국민의 분노를 자극했다. 누리꾼들은 “소름 돋는다” “피 묻은 빵 먹을 수 없다”라며 불매 운동을 펼쳤다. 이후 SPC그룹은 ‘작업 계속’ 의혹은 사실무근이라며 반박했지만, 이미 수년째 유사한 사고가 이어져 왔다는 사실과 이에 관한 전·현직 직원들의 증언이 보도된 이후라 신뢰를 얻을 수 없었다.
 
  ‘희생자 가족을 우선 중시하라’는 원칙도 지켜지지 않았다. 유족은 SPC 회장의 사과를 직접 듣지 못했고, 언론을 통해 사과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SPC도 카카오처럼 해당 분야 선도 업체이지만 안전사고 방지를 위한 소위 ‘상상 이상의 시나리오’까지 포함한 반복 훈련을 하지 않으면 호빵처럼 친숙한 이미지가 피에 물든 제빵회사로 변하게 될 것이다.
 
 
  ‘상상 이상의 사고’에 대비하라
 
정부세종청사 공무원들의 민방위 훈련 모습. 긴장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사진=조선DB
  이태원 압사 사고 이후 경찰의 졸속 대응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다. 세월호 사건 당시 해경의 잘못을 소리 높여 질타했던 것이 연상된다.
 
  두 사고 모두 10대, 20대 꽃다운 청년들이 주 희생자라는 공통점과 함께 해경, 경찰 등의 잘못된 대응이 집중적인 비난의 대상이다. ‘상상도 하지 못한 상황’이라는 변명도 공통이다. 물론 상황과 엄청난 인명 피해 자체가 평상시 생각으로는 있기 어려운 일인 점은 맞다.
 
  그러나 사건·사고는 늘 그런 빈틈에서 생겨왔다. 그래서 선진국과 기업에서는 위기관리 매뉴얼을 구성할 때 늘 발생하는 ‘만성적’ ‘즉각적’ ‘폭발적’인 위기 분류 시나리오뿐만 아니라 ‘잠재적’ 위기 시나리오를 미리 만들고 대응 훈련을 한다.
 
  미 국무부와 글로벌 A 항공사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대표 기업인 S그룹도 매년 임직원뿐만 아니라 외부의 전문 컨설팅사로부터 쉽게 발생할 수 있는 위기 상황에서부터 쉽게 발생하기 어려운 위기 상황에 이르기까지의 시나리오를 제안하도록 한다. 수십 개의 상황을 놓고 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훈련을 정기적으로 반복한다. 최대한 비슷한 상황을 놓고 대비토록 하는 것이다. 매뉴얼 시나리오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 사전 점검을 하고, 실제 상황 발생에 대비해 ▲한 시간 이내 워룸(war room) 구성 및 외부에 나갈 메시지 사전 준비 ▲온-오프라인 감시체계와 보고체계 구축 ▲12~24시간 뒤 상황 변화에 대한 대응 ▲희생자 대응 ▲정부와 언론에 대한 설명방식 ▲참고할 만한 유사한 사례집까지 갖추어 놓고 있다.
 
  아쉽게도 대부분 직장과 공공기관에서조차 이런 반복 훈련을 통해 철저한 대비를 하는 곳은 드물다. 대통령실에서부터 일선 경찰청에 이르기까지 안내에 따라 지하실로 대피하는 훈련은 하지만 ‘상상 이상의 사고’ 시나리오를 구성하는 곳은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것이 이태원 압사 사고나 설마 했던 끼임 사고가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는 진짜 이유이다. 세월호나 이태원 사고 모두 경찰의 졸속 대응이 문제가 아니다. 보통 때 미처 염두에 두지 못하는 상황 관리 매뉴얼과 훈련 부재(不在)가 원인인 것이다.
 
  책임을 묻는 사람만 있고, 그에 따른 결과물이 나오지 않고, 대응 훈련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큰 재난은 또 반복될 것이다. 실제로 김영삼 정부 때는 하늘, 바다, 호수, 땅, 지하 어디든 안전한 곳이 없다고 할 정도로 대형 인명 사고가 몇 달이 멀다 하고 발생했다. 2011년, 2014년 상주시와 성남시 문화 공연에서 운동장 압사, 환풍구 붕괴 등으로 1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최고책임자가 모범 보여야
 
  사람이 생활하는 한 반드시 겪는 크고 작은 사건·사고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대응은 사전에 방지하는 것이다. 보통의 위기관리 매뉴얼 1장에서 예방을 위한 모니터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다.
 
  예방을 위한 기업 또는 국가의 사전 점검 및 피해복구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욱 필요한 것은 사건·사고 피해 당사자가 될 수 있는 임직원, 일반 국민의 적극적인 참여이다. 전시(戰時) 훈련에 대비한 민방위 훈련 때 온 국민이 차량도 잠시 멈추고 대피하듯이 실제 상황처럼 참여해야 한다. 훈련 전에는 그 훈련을 왜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소통 채널은 어디인지 그리고 타인을 돕는 방안 등을 공지해 훈련 내용이 몸에 배도록 해야 한다.
 

  훈련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보면 ‘실제 상황도 아닌데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이를 극복하는 좋은 방안 중 하나는 최고책임자가 열심히 참여하는 것이다. 최고책임자가 열심히 하면 대부분은 그 수준까지는 따라 하게 마련이다. 물론 개인들이 이번 이태원 압사 사고나 기업들의 위기 상황이 자기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상황에서 자신을 구하고, 남도 도울 수 있는 역량을 배양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미디어의 역할 중요
 
  일상 속 방송 등 미디어의 역할도 중요하다. 미국의 뉴스 채널 등을 보면 평시에도 수시로 재난 상황 시 대응 요령을 안내하면서 좀 더 세부적인 정보를 제공해줄 수 있는 홈페이지를 안내한다. 이것이 우리의 경우와는 크게 다른 부분 중 하나이다. 재난 대비 방송사라는 KBS는 간혹 관련 방송을 편성하지만, 일상적인 뉴스 시작 전에는 늘 경치 좋은 곳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MBC 등 다른 공영 방송들은 그조차도 없다. 방송-포털-라디오 등은 공공주파수를 쓰고 있으며 국민 일상의 플랫폼으로서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그런 만큼 미디어는 재난 매뉴얼 지원 활동의 중심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태원 압사 사고 뉴스가 널리 보도되면서 세계인들은 ‘성공 대한민국 신화’ ‘안전 한국 신화’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미 어떤 기업은 한국에 대해 실망을 나타내며 그간 준비해온 투자계획을 철회하기도 했다. 세계는 지금 우리 정부와 기업, 국민의 다음 대응을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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