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陰地의 戰士들

엄상익 변호사가 경험한 정보기관 〈끝〉 청와대와 국회의원도 노골적으로 요구한 ‘정보기관 비자금’

글 : 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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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리감에 도취해 있던 김현철 사조직
⊙ ‘판도라 상자’ 속 정보기관 비밀예산
⊙ “영부인 책 낸다”며 비밀예산 요구한 청와대
⊙ 김영삼 당선되자 시작된 정치보복
⊙ 내가 경험한 ‘또 다른 세상’ 정보기관

嚴相益
1954년생. 경기고, 고려대 법대 졸업 / 사법고시 24회, 사법연수원 15기 수료 / 국가안전기획부 정책연구관, 법무법인 ‘정현’ 변호사 역임. 現 엄상익법률사무소 변호사
국가정보원 청사 전경. 사진=조선DB
  정보기관 생활의 마지막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았다. 차기 정권이 들어서는 과정을 구경하고 나갈 심산이었다. 정권 말 정보기관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어느 날 상관(上官)이 나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
 
  “요즈음 조직의 정보가 김영삼 캠프로 유출된다는 소리가 있어. 은밀히 조사해봐.”
 
  조직에서 생산된 보고서가 통째로 유출되고 있었다. 발 빠르게 김영삼 캠프에 줄을 대는 간부들이 있었다. 상관이 말을 계속했다.
 

  “대통령에게 보고를 해야 하는데 기존의 안전기획부 요원들은 믿을 수가 없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자기가 지지하는 사람한테로 정보를 흘려준다고 하니까 말이야. 여기 간부들 보면 너무 정치화되어 있어. 그러니 정말 중요한 보고는 자네가 그 내용을 암기해서 청와대에 가서 직접 보고해.”
 
  나는 새벽에 직접 청와대에 가서 정치특보에게 정보 보고를 하기도 했다. 정치특보가 책사(策士)로 정국을 실질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차를 얻어 마시면서 그의 얘기를 들으면 대통령의 관심사를 짐작할 수 있었다. 노태우 대통령은 김영삼을 여당인 민주자유당(민자당) 대통령 후보로 빨리 확정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외형(外形)은 전당대회를 개최해 자유 경선의 모습으로 한다고 했으나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김영삼 비토하고 이종찬 눈여겨본 정치부장
 
  대통령은 박태준·박철언 등 김영삼의 경쟁 대상자의 약점을 잡아 주저앉히고 있었다. 좀 헷갈릴 때도 있었다. 박철언이 내각제 각서 파문을 일으켰을 때 그게 독자적인 행동이었는지 아니면 대통령과 교감하고 김영삼을 내쫓으려는 정치공작인지 알 수 없었다. 언론은 김영삼을 탓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내각제 개헌을 하려는 군부 독재 세력과의 싸움으로 변형시켜 김영삼을 보호했다.
 
  내가 만난 정치인이나 기자들은 여론의 물결을 관찰하고 어디로 탈 것인가 대통령이 계산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 무렵 한 주요 일간지 정치부장을 만난 자리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
 
  “오랫동안 김영삼이라는 인물을 가까이서 지켜봤습니다. 저는 김영삼은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될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을 어떤 나라로 만들고 싶다는 의지보다 대통령 자리 그 자체가 목표인 사람입니다. 민주화 투쟁 경력을 내세우지만 김영삼이 대통령이 되면 나라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권위주의 시절 민주화 열망이 김영삼을 통해 발산된 면이 있으니까요. 그가 한마디를 하면 우리는 열 마디 백 마디를 만들어 좋게 써줬어요. 그렇지만 실체가 없어 보이는 사람이에요. 저의 불길한 예언이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경쟁 후보로 지금 유일하게 살아남은 이종찬은 그래도 뿌리가 있는 사람입니다. 항일(抗日) 독립운동을 하고 임시정부에 근거를 가진 집안의 사람이죠. 사고도 합리적이에요. 그가 대통령 후보 경선에 참가할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공정성입니다. 저는 대통령이 이종찬도 주저앉히려고 할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부탁인데 공정한 경선이 되도록 중간에서 역할을 좀 해줬으면 좋겠어요. 물론 상황상 쉽지는 않겠지만 말이죠.”
 
 
  이종찬의 솔직한 고백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종찬 전 의원(전 국정원장). 사진=조선DB
  내가 만난 그 정치부장은 언론인들 사이에서도 무게감이 있는 인물이었다. 나는 상관에게 언론사 중견 정치부장으로부터 들은 얘기를 전했다. 그러자 상관이 이런 말을 했다.
 
  “지금 김영삼 측에서 어떤 메시지가 왔는지 알아? 만약 자기를 돕지 않으면 그냥 두지 않겠다고 협박이 왔어. 알아서 기라는 거지. 김영삼은 혼자 출마해서 혼자 대통령 후보가 되고 싶은 거야. 대통령이 되기 위해 야당 대표가 노태우·김종필과 손잡고 여당이 됐는데 대통령 후보가 되지 못하면 자기는 망한 것이 되기 때문이지. 이종찬이 경선 후보로 버티면 대통령도 겉으로는 어쩔 수 없을 거야. 이종찬이 이번에 경선 후보로 참가해서 착실하게 득표를 해두면서 차기 대통령 선거를 노리면 괜찮을 거야. 우리 정보기관이 어느 편을 들지 말고 그냥 지켜봐 주면 그것만 해도 도와주는 게 맞아. 그런데 이종찬 그 사람 다른 건 다 좋은데 대가 약해서 끝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몰라. 내 생각은 그래.”
 
  상관은 정무 감각이 탁월한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무리가 없었다. 그는 배의 바닥짐처럼 정보기관이 흔들리지 않게 중심을 잡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무렵 나는 광화문 뒤쪽 골목에 있는 한정식집 구석방에서 이종찬을 만났다. 둘만 만나기로 약속한 자리였다. 상관 대신 그의 인품을 알아보는 입장이었다.
 
  “대통령이 되시려고 하는데 그동안 무엇을 해놓으셨죠? 김영삼·김대중은 목숨 걸고 민주화 투쟁을 해왔습니다. 전두환·노태우는 목숨 걸고 군사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박정희 대통령도 목숨 걸고 군사혁명을 일으켰습니다. 이승만 대통령도 일생이 목숨을 건 투쟁이었습니다.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아무것도 해놓은 게 없습니다.”
 
  그가 솔직하게 대답했다.
 
  “이종찬은 어떤 인물입니까?”
 
  내가 다시 물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김영삼을 어떻게 보십니까?”
 
  “소련을 방문해서 여러 추태(醜態)를 부렸습니다. 국민들은 김영삼을 미운 정 고운 정이 든 정치인이라고 평하기도 하지만 나라를 팔아먹어도 미운 정이라고 하면서 두둔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내가 김영삼에게 질 사람은 아닙니다. 저는 노태우 대통령의 낙점을 기다리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의 결기가 느껴졌다.
 
 
  김현철 사조직의 위세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 사진=조선DB
  나는 내친김에 김영삼 캠프의 분위기도 알아보고 싶었다. 김영삼의 아들 김현철이 여론조사 회사인 중앙리서치를 만들고 광화문에 사무실을 차려 사조직을 운영하고 있었다. 나는 김현철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다.
 
  “거기가 광화문 김 사장실입니까?”
 
  대통령 후보의 아들을 그렇게 불렀다.
 
  “그런데요?”
 
  비서인 여성은 튕기는 듯한 고음의 목소리로 답했다. 어조에 건방이 벌써 가득이었다.
 
  “김 사장이란 분의 이름을 알고 싶은데요.”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 그곳에 떠도는 분위기를 알고 싶었다.
 
  “그런 건 알 필요 없어요.”
 
  여자가 앙칼지게 대꾸했다. 말단 직원까지 위세를 부리는 것 같았다. 화가 났다.
 
  “김 사장 바꿔요.”
 
  내가 강하게 말했다. 기세등등하던 여자의 움찔하는 모습이 느껴졌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네, 김 사장입니다.”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김영삼의 아들 같았다.
 
  “김 사장이 한둘이겠습니까? 그곳 사무실을 운영하는 분의 이름을 직접 확인하고 싶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내 직책과 이름을 알려주었다.
 
  “제 이름은 김현철입니다.”
 
  그가 대답했다.
 
  “조직의 아랫사람들이 좀 겸손했으면 좋겠습니다. 벌써부터 이래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이미 승리감에 도취한 그곳의 분위기를 알 것 같았다. 사람들이 그곳으로 몰리고 있었다. 이미 쳐진 사람의 벽으로 접근이 불가능한 것 같았다.
 
  노태우 대통령은 김영삼 이외에는 누구도 경선 후보로 나서지 못하게 하는 것 같았다. 정견 발표나 토론회도 막혔다. 이종찬이 불공정에 대한 항의 조로 경선을 포기하고 민자당을 탈당했다. 의원들의 탈당 선언이 이어지고 박철언·김복동 등 대통령의 친인척마저 민자당을 탈당, 정주영의 국민당으로 가고 있었다. 김영삼이 단독으로 대통령 후보가 됐다. 노태우 대통령이 왜 이렇게 무리를 하는지 의문이었다. 퇴임 후의 안전을 위해서라고밖에는 해석하기 힘들었다.
 
 
  대통령의 당선 축하금
 
  대통령의 직접적인 불법행위도 보였다. 대통령들은 당선이 되면 재벌들로부터 거액의 당선 축하금을 받았다. 나의 시각으로는 국민의 신성(神聖)한 투표로 만들어진 정권이 돈으로 오염되는 순간이었다. 대통령은 핵심 측근을 시켜 그 돈을 세탁했다. 세탁이란 돈의 흐름에 대한 추적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 돈을 카지노에 있는 오래된 구겨진 수표들과 바꾸는 작업도 기초적인 세탁 방법의 하나였다. 세탁이 늦어지거나 힘든 경우 안전기획부의 비밀예산계정에 섞어서 희석시키기도 했다.
 
  예산을 담당하는 안전기획부 기조실장 자리는 어떤 권력이든 대통령의 심복 중 심복이 앉는 자리였다. 대통령이 재벌 회장들을 개별적으로 불러 독대하기도 했다. 대통령은 직접 돈을 받는 것 같았다. 재벌 회장들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써달라는 말을 하면서 돈을 바치지만 그 말은 진정이 아니었다. 그들은 돈을 함부로 쓰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것이다. 후임 권력이 마음만 먹으면 전직 대통령을 언제든지 감옥에 넣을 수 있었다. 대통령이 퇴임 후에도 왜 그런 천문학적인 많은 돈을 가져야 하는지 나는 의문이었다. 대통령은 5년 단임의 국민의 머슴이다. 퇴임 후에는 보통 사람이어야 했다. 그러나 가까이서 본 대통령은 왕(王)이었다. 임기가 끝나도 왕이어야 하는 것 같았다. 말은 보통 사람이라고 하지만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후임자와의 정치 거래가 필요한 것 같았다. 정권 말 권력의 밑에서도 부정부패는 벌어지고 있었다. 사정비서관들이 탈세자나 호화 생활자들의 명단을 거액을 받고 바꾸어주기도, 삭제하기도 한다는 첩보가 들어왔다. ‘사정비서관놈들이야말로 사정을 받아야 할 놈들’이라고 대통령 경호실에서 욕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조직에서 마지막에 내가 본 것은 ‘판도라 상자’ 속 비밀예산이었다. 어느 날 상관이 나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
 
  “이제부터는 비밀 특수자금을 자네에게 맡길 거야. 자네는 그 돈을 항상 현찰로 가지고 있어야 해. 절대로 돈이 들어오고 나가는 장부는 만들지 말고 모든 걸 그저 기억 속에만 담아둬. 정 불편하면 동그라미나 세모 등으로 혼자만 알 수 있게 암호로 표시해두는 건 상관없어. 그리고 나중에는 그 기억마저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게.”
 
  정보기관의 예산 자체가 비밀이었다. 정보요원들이 사용하는 비밀자금은 엄한 자체감사를 받았다. 그러나 내가 맡기로 한 비밀자금은 감사조차 없는 돈이었다. 나에게 재정관(財政官) 직책으로 겸직 명령이 났다. 일종의 비밀자금을 취급하는 회계공무원 자격이었다.
 
 
  ‘재정준칙’도 없던 정보기관 비밀자금
 
  나는 그 자금을 수령하기 위해 조직 내의 건물 한쪽에 있는 비밀금고로 갔다. 영화 속에서 본 한 장면처럼 넓은 방 전체에 현찰이 가득했다. 벽마다 바닥에서 천장까지 철제 파일이 설치되어 있고 칸마다 현찰 다발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조폐공사에서 바로 온 듯, 뜯지 않은 비닐 포장에 빳빳한 신권(新券)이 들어차 있었다. 돈다발을 묶은 띠지는 은행에서 사용하는 것이 아닌 특수한 색깔이었다. 그 돈들을 각 부서에서 온 재정관들이 대형 가방에 담아가지고 갔다. 그 돈이 정보기관의 실질적 힘이었다. 그 비밀자금은 법적 근거도 없고, 어디에 어떻게 얼마를 써야 한다는 재정준칙도 없었다. 비밀자금에 대한 인식도 제각각이었다.
 
  그 돈이 오랫동안 관례적으로 청와대에 갔다. 청와대 비서관 중에는 청와대 예산을 정보기관에 맡겨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었다. 반면 그 돈을 찜찜하게 생각하고 되돌려보낸 경우도 있었다.
 

  외국의 정보기관에도 그런 비밀자금이 있었다.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는 비밀공작에 그런 자금을 사용했다. 그 돈으로 인질로 잡힌 공작원의 몸값을 지불했다. 적국(敵國)의 반(反)정부 세력을 지원하는 자금이기도 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적국의 원수를 암살하기 위해 킬러를 고용하는데 이때 이런 비밀자금을 사용하기도 한다. 우리 정보기관도 비밀자금을 비슷한 용도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건 끝까지 지켜야 할 업무상의 비밀이다. 그러나 통제가 없는 걸 악용해서 국민의 세금을 횡령하거나 남용(濫用)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 돈이 언론인들에게 떡값이라는 이름으로 갔다. 언론을 길들이는 정권의 무기였다. 종교인과 정치인들에게도 그 돈이 갔다. 대통령이 영향력 있는 종교인들을 초청해서 돈 봉투를 돌렸다. 종교인 중에는 당연하다는 듯이 빼앗듯이 돈을 받아 가는 사람도 있었다.
 
  정부조직 내부에서도 그 돈들이 쓰였다. 예산을 더 따기 위해 경제기획원 장관이나 실무자에게 그런 돈이 갔다.
 
 
  노골적으로 돈 요구하던 국회의원
 
  한번은 내가 직접 입법안을 추진할 때였다. 서울 시내 고급 호텔 일식당에서 상임위원회 간사인 국회의원들과 조찬 약속을 잡았다. 약속한 날 혼자 그 자리에 나갔다. 내가 법안(法案) 설명을 하려고 할 때였다.
 
  “이거 뭐 이래요?”
 
  의원 중 한 명이 못마땅한 얼굴로 시비를 걸었다. 옆에 있던 다른 의원이 나를 보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거 보쇼, 아까운 아침 시간인데 그따위 법 강의가 중요한 게 아니지. 여기 상에 있는 죽 말고 진짜 먹을 국물을 달라는 거지.”
 
  노골적으로 돈을 달라는 소리였다. 정치인들 사이에 안기부 돈을 먹지 않으면 바보라는 말이 돌고 있기도 했다. 비밀자금은 그렇게 정계(政界)에 뿌려져 온 것 같았다.
 
  그 무렵 어느 날이었다. 청와대와 연결된 직통 전화의 벨이 울렸다. 영부인실이었다.
 
  “이번에 영부인께서 책을 내십니다. 그런데 그 표지를 비단으로 하려고 하는데 그 돈을 보내셨으면 합니다.”
 
  영부인 비서관의 말이었다. 뭔가 이상했다. 나는 영부인실과는 아무런 업무적인 연관이 없었다. 잠시 생각한 후 이렇게 대답했다.
 
  “그 돈은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공금(公金)입니다. 영부인이 개인적으로 책을 만드는 데 왜 그 돈을 달라고 하시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저로서는 응할 수 없습니다.”
 
  “어?”
 
  영부인 비서관은 기가 막힌다는 듯 외마디 소리를 내며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어디 한번 두고 보자’는 분노까지 느껴졌다. 나는 변호사였다. 거리낄 게 없었다. 그러나 권력에 목줄이 매인 입장이라면 거절하기 힘들 것 같았다. 수십 년 동안 그런 돈이 전혀 통제를 받지 않은 채 사용되어 왔다. 예산 담당 실무자들 사이에서 그 돈으로 ‘청와대 비서실 냉장고까지 채운다’는 말까지 나왔다. 그 비밀자금은 언젠가는 터질 폭탄이었다.
 
  다음 정권에서 그게 현실이 되기도 했다. 김영삼 대통령이 재벌로부터 받은 거액의 당선 축하금 중 세탁되지 못한 돈들이 생긴 것 같았다. 금융실명제 시행으로 미처 세탁을 하지 못한 돈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돈을 안전기획부의 비밀자금 계좌에 섞어 보관하다가 문제가 되기도 했다. 문재인 정권에서는 그 비밀자금이 적폐(積弊)로 몰렸다. 박근혜 대통령과 국정원장들이 구속이 됐다.
 
 
  김영삼 당선되자 밀려드는 청탁들
 
서동권 전 국가안전기획부장. 사진=조선DB
  다시 얘기를 노태우 정권 말기로 돌린다. 대통령 선거가 시작됐다. 선거유세가 벌어지자 의외로 정주영이 선전(善戰)했다. 김영삼·김대중 양김씨에 싫증을 느끼고 있던 많은 국민이 정주영 쪽으로 쏠리고 있었다. 김영삼은 당황했다. 김대중의 지지층은 견고한 데 반해서 정주영이 보수 성향의 표를 잠식할 경우 패배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정권은 정보·수사기관을 동원해 김영삼을 밀었다. 안전기획부는 현대그룹의 비리 정보를 검찰에 제공했다. 검찰이 국민당의 바탕을 이루는 현대그룹을 수사했다. 그 바람에 김영삼이 대통령에 당선됐다.
 
  새로운 정권의 논공행상에 사람들이 촉각을 곤두세웠다. 노태우 정권에서 안기부장을 지낸 서동권 정치특보가 국무총리가 된다는 소리가 떠돌았다. 그는 김영삼 대통령 만들기 일등공신이었다. 그가 총리가 된다면 선배인 상관은 차기 안전기획부장이 틀림없었다. 대통령과 정치특보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권력의 향방에 민감했다. 인사 청탁들이 내게 왔다. 정보기관의 국장이 내게 차기 안전기획부장의 법률특보로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다. 뭔가를 감지하지 않으면 그런 말을 할 리가 없었다. 현역 고급 장성(將星)이 휴가를 내어 몰래 상관을 찾아오기도 했다. 군 복무 시절 알았던 장군 출신이 나를 찾아와 병무청장을 하고 싶다는 뜻을 표시했다. 정보기관의 지방 책임자 중에는 내게 돈을 주려는 사람도 있었다. 권력의 문고리가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서동권 정치특보가 시내의 모 호텔에서 김영삼 정권의 첫 내각 명단을 작성하고 있었다. 실세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시각 대통령의 아들 사무실에서 또 다른 내각 명단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대통령이 어느 쪽 안(案)을 채택할 것인지에 따라서 실세가 판명이 날 것 같았다. 이윽고 지휘부의 보좌관이 내게 보고했다.
 
  “새로운 안전기획부장은 한국외대 교수인 김덕씨로 결정됐습니다.”
 
  김영삼의 선거캠프에 있던 사람이었다. 서동권 정치특보가 올린 내용이 아니었다.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 측이 올린 안으로 내각이 결정된 것 같았다. 나는 신임 안전기획부장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가 나왔다.
 
  “여기는 안전기획부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요원들이 모시러 갈 겁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제가 직접 찾아갈게요. 택시를 타고 청사 앞 면회실로 가서 전화를 하면 되죠?”
 
  평생 교수 생활을 한 사람답게 권위주의의 때가 묻지 않은 것 같았다.
 
  “아닙니다. 모시러 갈 겁니다.”
 
  내가 말했다. 요원들이 신임 안전기획부장을 모시고 왔다. 신임 부장을 수행했던 요원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차 안에서 신임 안기부장이 저한테 말씀을 하시는데 자기 사주팔자를 보면 관운(官運)이 분명히 있는데 환갑이 넘도록 아무 벼슬도 못 했다는 거예요. 그러다가 이제 안전기획부장이 되는 걸 보니까 관운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라고 하면서 좋아하더라고요.”
 
  유교적 봉건사회에서 살아왔던 우리 조상들의 유전자가 그대로 있는 것 같았다. 대통령 선거캠프에 있었던 사람이 논공행상으로 정보기관장직을 맡으면 그건 곧 정보기관의 정치화를 의미했다.
 
 
  정치보복의 시작
 
1990년 3월 29일, 소련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김영삼 당시 민자당 최고위원이 사람들을 향해 손들어 인사하고 있다. 김영삼 오른쪽은 소련 방문단 일원이었던 박철언 정무1장관. 사진=조선DB
  상관이 선택받지 못한 이유를 알아보았다. 박태준이나 박철언 등 정치적 경쟁자들을 죽일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대통령은 손에 피를 묻혀줄 사람을 필요로 했다. 그런 인물이 상관 대신 조직의 실권자로 임명됐다. 정보를 김영삼 캠프에 가져다주었던 인물이었다. 김영삼 캠프로 가서 협조했던 요원들이 조직 내에서 승진되었다.
 
  정치보복이 시작되는 것 같았다. 김영삼 대통령은 사정비서실의 모(某) 변호사를 집무실로 따로 불러 박철언의 비리를 찾으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이 수석비서관도 모르게 변호사 출신의 비서관을 직접 부른 것은 이례적이었다.
 
  대통령의 특명을 받은 이 비서관은 곧바로 안기부에서 박철언에 대한 정보를 알아갔다. 그 직후 슬롯머신의 대부(代父)라는 인물의 차명계좌 200여 개가 추적되고 있다는 기사가 떴다. 언론이 박철언이란 이름을 띄우기 시작했다.
 
  상황을 알아챈 박철언은 기자간담회를 열어 “제가 지금 겪는 고통은 지난 대선에서 김영삼 후보를 극렬히 반대했기 때문에 겪는 게 아니겠습니까? 정치적 보복, 매장, 제거하기 위한 집중적인 표적이 되고 있고 주변의 사람들이 유탄을 맞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박철언이 구속됐다.
 
  박태준은 일본으로 몸을 피했다. 그의 주변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김대중이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으로 갔다. 김영삼과 대선에서 맞섰던 정주영과 그가 이끄는 현대그룹도 추풍낙엽 신세가 됐다.
 
 
  박철언 따르던 정보기관 요원의 비굴함
 
1995년 11월 24일, 강삼재 당시 민자당 사무총장이 김영삼 대통령과 면담 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특별기자회견을 갖고 5·18특별법을 제정키로 한 민자당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조선DB
  안전기획부 조직 안에서도 폭풍이 일었다. 박철언이 만든 조직에서 일하던 요원들에게 교육명령이 났다. 해고 전 단계였다. 박철언이 ‘차기 대통령’이라면서 열광하며 구호를 외치던 요원들이 갑자기 비굴한 모습으로 변했다. 그냥 그 조직에 차출되어 갔을 뿐이지 거기서 일하고 싶지 않았다고 변명하기도 했다.
 
  나는 사직서를 제출했다. 마지막 절차는 감찰실에서의 비밀선서였다.
 
  “선서를 안 하셔도 됩니다. 굳이 필요가 없을 것 같아요. 알 건 다 아시잖아요?”
 
  담당 직원의 의미 있는 듯한 말이었다.
 
  “비밀은 다 잊어버리겠습니다. 그렇지만 혹시 저를 건드리시면 기억이 되살아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오래 흐르면 그때는 약속의 굴레에서 벗어나겠습니다. 그러나 그게 이 조직을 위해 나쁜 건 아닐 겁니다.”
 
  언젠가는 이런 내용을 쓸 것을 마음먹고 했던 말이다. 그들은 내 의도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감찰실의 귀퉁이 철 책상 앞에 있는 남자가 어쩐지 낯이 익었다. 그랬다. 처음 이 조직에 들어올 때 신비한 기운이 돌던 서울 퇴계로 뒷골목 스산한 빌딩에서 만났던 남자였다.
 
  그는 나의 살아온 인생 기록을 꼼꼼하게 읽으며 신원(身元)을 조사했었다. 처음에 보고 마지막에도 보는 셈이었다. 그가 내게 말을 건넸다.
 
  “그때 이 조직을 구경하고 싶다고 하시기에 별 볼 일 없다고 말렸었는데요.”
 
  “아니 많은 걸 보고 경험했습니다. 덕분에 또 다른 세상을 잘 봤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그곳에서의 생활이 끝이 났다. 나는 개인법률사무소를 열었다. 정국이 급변하는 것 같았다. 김영삼 대통령이 5·18 특별법 제정을 지시했다. 국회의 대정부 질문에 나선 야당인 민주당 박계동 의원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밀자금을 폭로했다. 노태우 대통령이 구속됐다. 재벌 회장들이 줄줄이 법정에 섰다. 그리고 어느 날 한 젊은 남자가 나의 사무실로 들어섰다. 대통령의 아들이었다. 구속된 아버지를 위해 조언을 들으러 온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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