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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Q의 시 읽기 〈56〉 《시론(詩論)》에 실린 박용래·김종삼·기형도의 시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집 마늘밭에 눈은 쌓이리(박용래)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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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무몇해나 지나서도 누구나 그 水深을 모른다’(김종삼)
⊙ ‘이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네’(기형도)
서울 동작대교 주변의 저물녘 풍경. 사진=조선일보DB
  문학 전공자의 《시론(詩論)》에 실린 시들을 읽는 기쁨이 쏠쏠하다.
 
  2021년 7월 포항고 교사인 김현수 교사가 《시를 읽고 가르치다》(교육과학사 간)를 펴냈다. 김 교사는 “우리가 만나는 좋은 사람은 순수하고 선한 마음을 지니고 있듯, 좋은 시에는 좋은 품성이 있다”고 말한다.
 

  좋은 시에는 무엇보다 내용의 진실성, 인식의 새로움, 내면의 순수함 등이 담겨 있다고 한다. 김 교사는 ‘내용의 진실성’을 설명하면서 김종길(金宗吉) 시인의 ‘가을’을 예로 들었다. 이 시는 《해가 많이 짧아졌다》(솔출판사, 2004)에 실렸다. 김 시인은 올해 96세이다.
 
김현수의 시론집 《시를 읽고 가르치다》.
  ‌‌먼 산이 한결 가까이 다가선다.
 
  사물의 명암과 윤곽이
  더욱 또렷해진다.
 
  가을이다.
  아 내 삶이 맞는
  또 한 번의 가을!
 
  하나 더욱 성글어지는 내 머리칼
  더욱 엷어지는 내 그림자
 
  해가 많이 짧아졌다.
 
  -김종길의 ‘가을’ 전문

 
  저물녘이 되면 사물의 명암이나 윤곽이 또렷해진다. 석양과 그림자의 ‘컬래버’랄까. 저물녘에 비유되는 노인은 그와 반대다. 머리카락이 성글어지고 삶의 그림자는 엷어진다.
 
  그러나 마지막 행 ‘해가 많이 짧아졌다’에서 보듯 두려움이나 불안감, 걱정을 찾을 수 없다. 그저 또 한 번의 가을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삶의 겸허함이 느껴진다.
 
  김사인(金思寅) 시인의 ‘지상의 방 한 칸’을 보자. 《밤에 쓰는 편지》(청사, 1987)에 실렸다.
 
  ‌‌세월은 또 한 고비 넘고
  잠이 오지 않는다
  꿈결에도 식은땀이 등을 적신다
  몸부림치다 와 닿는
  둘째 놈 애린 손끝이 천근으로 아프다
  세상 그만 내리고만 싶은 나를 애비라 믿어
  이렇게 잠이 평화로운가
  바로 뉘고 이불을 다독여 준다
  이 나이토록 배운 것이라곤 원고지 메꿔 밥비는 재주 뿐
  쫓기듯 붙잡는 원고지 칸이
  마침내 못 건널 운명의 강처럼 넓기만 한데
  달아오른 불덩어리
  초라한 몸 가릴 방 한 칸이
  망망천지에 없단 말이냐
  웅크리고 잠든 아내의 등에 얼굴을 대 본다
  밖에는 바람 소리 사정없고
  며칠 후면 남이 누울 방바닥
  잠이 오지 않는다
 
  -김사인의 ‘지상의 방 한 칸’ 전문

 
  ‘원고지 노동자’인 시인의 이야기다. 생활고를 고백하는 사연이 절절하다. 살던 집을 어찌어찌하여 떠날 처지인데 둘째 아이는 평화롭게 잠들어 있다. 밖에는 바람 소리 요란하고 며칠 후면 남이 누울 방바닥에 누워 뜬눈으로 밤을 새운다.
 
  그래도 김사인 시인은 운이 좋았다. 대개 시인들이 돈 안 되는 시를 쓰다 펜을 접지만, 그는 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를 지냈고 도종환 문화부 장관(재임 2017년 6월~2019년 4월) 시절에 기관장(한국문학번역원장)이 되었다.
 
 
  박용래 시인의 ‘겨울밤’ ‘저녁 눈’
 
박용래 시인의 《일락서산에 개구리 울음》.
  문학의 중요한 가치 중 하나는 ‘현실 속에 숨겨져 있는 삶의 진실을 보여준다’(김현수)는 데 있다. 거짓 없는 삶의 진실은 표현하는 방식이 저마다 다르다. 김사인의 방식은 수사(修辭)로 꾸미지 않은 솔직한 고백이다.
 
  그런데 문학은 현실[사실]의 고백 이상이어야 한다. 문학은 상상의 얼개로 짠 견고한 구조물이다. 시는 체험과 함께 상상의 옷을 입혀야 더 값지다. ‘시인은 상상의 눈을 통해 사물을 인식하며 기존의 세계를 새롭게 꾸며내기’(김현수) 때문이다.
 
  박용래(朴龍來·1925~1980년) 시인의 ‘겨울밤’과 ‘저녁 눈’을 보자. 두 시는 시집 《싸락눈》(현대시학사, 1969)에 실렸다.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집 마늘밭에 눈은 쌓이리.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집 추녀 밑 달빛은 쌓이리.
  발목을 벗고 물을 건너는 먼 마을
  고향집 마당귀 바람은 잠을 자리.
 
  -박용래의 ‘겨울밤’ 전문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발굽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
 
  -박용래의 ‘저녁 눈’ 전문

 
  두 시 모두 사실(의 재현)과 조금 거리가 있다. 고향집 마늘밭, 고향집 추녀 밑, 고향집 마당귀는 분명한 사실이지만 ‘눈이 쌓이고’ ‘달빛이 쌓이고’ ‘바람이 잠을 자는’ 것은 상상에 가깝다. 설령 기억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해도 사실보다 상상에 가깝다. 그래서 더 문학적이다.
 
  시 ‘저녁 눈’도 마찬가지다. 말집 호롱불, 조랑말 발굽, 여물 써는 소리, (살던 마을의) 변두리 빈터가 시인의 경험을 토대로 그려냈다고 해도 이 시는 상상력을 동원한 기억의 변주(變奏)에 가깝다. ‘붐비다’를 연상시키는 단어의 조합(눈발+말집 호롱불 등)이 시를 아름답게 만든다. 문학적 상상은 (경험의) 재현이 아니라 비유와 은유를 통해 빛을 더한다.
 
 
  김종삼 시인의 ‘민간인’ ‘북치는 소년’
 
손필영의 시론집 《잘못 읽어왔던 한국시 다시 읽기》.
  2021년 9월 시인 손필영(국민대 교수)이 《잘못 읽어왔던 한국시 다시 읽기》(빗방울화석 간)를 펴냈다. 많은 시인이 책에 언급됐는데 김종삼(金宗三·1921~1984년) 시인에 관한 분석에 눈길이 갔다.
 
  1921년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난 김종삼은 1953년에 ‘원정’을 발표하면서 시작(詩作)을 시작했다. 이후 그는 죄의식, 어린 시절에 대한 회상, 아이들의 죽음이나 상실의 세계를 작품으로 남겼다.
 
  그런 그가 1971년에 발표한 ‘민간인’은 김종삼 문학의 근원을 담은 시로 알려져 있다. ‘민간인’은 드라이한 사실의 재구(再構)지만 사실을 넘어 상상의 깊이를 느끼게 한다.
 
  ‌‌1947년 봄
  深夜
  黃海道 海州의 바다
  以南과 以北의 境界線 용당浦
 
  사공은 조심조심 노를 저어가고 있었다.
  울음을 터드린 한 嬰兒를 삼킨 곳.
  스무몇해나 지나서도 누구나 그 水深을 모른다.
 
  -김종삼의 ‘민간인’ 전문

 
김종삼 시인의 《김종삼정집》.
  김종삼 시의 진원지, 그 고통의 가운데에 이런 실존적 체험이 내포되어 있다. 손필영 시인의 말이다.
 
  “무엇보다 이 일로 시인 자신은 계속해서 죄책감에 시달렸을 것이고 이 일이 1950년 부산 피란지에서 그로 하여금 시를 쓰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시를 통해 스물몇 해가 지나서야 비로소 말할 수 있게 된 이 일은 그간의 그의 시에 나타난 죄의식의 구체적 이유를 보여준다.”
 
  자유를 위해 도강(渡江)을 택한 피란민은 살기 위해 아이를 죽여야 했다. 인민군이 아이 울음소리를 들으면 안 되니까. 살기 위해 죄 없는 아이를 죽여야 했다.
 
  영아 살해를 목격한, 한배에 탄 이들은 평생 죄책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런 죄의식과 부끄러움이 김종삼을 시인으로 만들었다. 마지막 행의 ‘수심’은 배에 탔던 이들이 겪은 고통스러운 마음의 깊이다. 그 깊이는 누구도 헤아릴 수 없다.
 
  김종삼의 시 ‘북치는 소년’도 인상적인 시다. 1969년 민음사에서 펴낸 김종삼의 시선집 《북치는 소년》에 실렸다.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
 
  가난한 아이에게 온
  서양 나라에서 온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카드처럼
 
  어린 양(羊)들의 등성이에 반짝이는
  진눈깨비처럼
 
  -김종삼의 ‘북치는 소년’ 전문

 
크리스마스 카드에 그려진 북 치는 소년.
  이 짧은 시가 여운을 준다. 북 치는 소년이 그려진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면서 상상에 빠진다. 징글벨이 울리고 인형이 북을 칠 것만 같다. 크리스마스는 종교를 믿든 안 믿든, 아이든 어른이든 마음을 들뜨게 한다. 밤사이 산타가 올 것만 같은 설렘처럼.
 
  첫 행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이 바로 알 수 없는 설렘을 그린다. 시인 손필영은 이 시를 이렇게 해석한다.
 
  “가난한 아이에게 온, 하얀 양이 그려지고 그 위에 진눈깨비가 반짝이는 아름다운 카드는 당장 물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지만 아이를 기쁘고 환하게 할 것이다. ‘내용 없는 아름다움’은 이유 없이 기쁜 것이다. 순수한 기쁨이며 순수한 기쁨의 나눔일 것이다. 무엇으로 환원할 수 없는 기쁨과 아름다움을 김종삼은 ‘내용 없는 아름다움’이라 명명한 것 같다.”
 
 
  윤동주의 ‘자화상’과 기형도의 ‘그집 앞’
 
정끝별의 시론집 《시론》.
  2021년 7월 시인 정끝별(이화여대 교수)이 《시론》(문학동네 간)을 펴냈다. 정끝별에 따르면 ‘시는 고백으로부터 출발’한다. ‘시인 특유의 내적 체험이 보편적 정서와 연계됨으로써 독자들은 주관적이고 사적인 시인의 내면을 공감하고 공유하게 된다’는 것이다.
 
  ‘정직한 고백은 아프다.’ 고백은 변명이 아니라 솔직한 인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뻔한 고백은 고백이 아니다. 윤동주의 ‘자화상’처럼 고백할 수 없는 고백일 때, 고백이 역설로 다가올 때 더 감동을 준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윤동주의 ‘자화상’ 전문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일러스트=조선일보DB
 
윤동주 시인의 《별을 노래하는 마음》.
  윤동주(尹東柱·1917~1945년)의 ‘자화상’에 등장하는 사나이는 바로 시인 자신이다. 외딴 우물에 비친 ‘나’의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란다. 그런 ‘내’ 모습이 미워 고개를 돌린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가여워진다. 돌아가 우물에 비친 ‘내’ 얼굴을 본다. 다시 미워진다. 그럴수록 더욱 연민의 정이 든다. ‘내’가 처한 이 현실이 고통스럽지만,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무거운 등짐이 싫다고 등짐을 벗을 수 없다. ‘내’ 삶을 누구도 대신 할 수 없다. 그러니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질 수밖에.
 
  기형도(奇亨度·1960~1989년)의 시에는 ‘극화된 1인칭 화자를 내세우는’ 시가 많다. 다만, 윤동주나 김사인처럼 직접 고백의 방법과 어느 정도 닮았지만, 시인 외부에서 이루어지는 서사나 묘사를 중심으로 극화시키길 즐긴다. 마치 ‘3인칭 관찰자적 시선을 취하는 1인칭 고백의 형식’과 같다고 할까.
 
기형도 시인의 《입 속의 검은 잎》.
  ‌‌그날 마구 비틀거리는 겨울이었네
  그때 우리는 섞여 있었네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었지만
  너무도 가까운 거리가 나를 안심시켰네
  나 그 술집 잊으려네
  기억이 오면 도망치려네
  사내들은 있는 힘 다해 취했네
  나의 눈빛 지푸라기처럼 쏟아졌네
  어떤 고함 소리도 내 마음 치지 못했네
  이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네
  모든 추억은 쉴 곳을 잃었네
  나 그 술집에서 흐느꼈네
  그날 마구 취한 겨울이었네
  그때 우리는 섞여 있었네
  사내들은 남은 힘 붙들고 비틀거렸네
  나 못 생긴 입술 가졌네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었지만
  벗어둔 외투 곁에서 나 흐느꼈네
  어떤 조롱도 무거운 마음 일으키지 못했네
  나 그 술집 잊으려네
  이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네
  그토록 좁은 곳에서 나 내 사랑 잃었네
 
  -기형도의 ‘그집 앞’ 전문

 
  시 ‘그집 앞’이 기형도의 체험적 사실을 드러내는 고백이라고 볼 수 있지만 문학은 체험을 빌린 허구의 장르라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정끝별의 주장이다.
 
  “이 시가 가진 감동의 본질은 고백의 전기적 요소에 있지 않다. 은유적 서사와 1인칭 화자의 극적인 어조가 거느린 막막한 실존적 비애, 그와 같은 고백의 비극적 정조에 감동의 본질이 있다.”
 
  마지막 행 ‘이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네’ ‘그토록 좁은 곳에서 나 내 사랑 잃었네’와 같이, 체험에 근거한 독백이 시의 출발점이라 해도 문학의 본질은 더 넓은 상상력에 기반한다. 그 상상력이 독자의 정서를 자극해, ‘기형도의 시’가 아닌 ‘우리 모두의 시’로 승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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