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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대중문화 속으로

게임 셧다운제 폐지로 본 정부 규제

책임보다 정부 규제 선택하는 학부모들

글 :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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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 책임 무거워… 국가가 나타나 ‘우리가 규제해서 부모들이 힘들이지 않아도 되게끔 하겠다’고 나오면 누가 반대하나?”(게임 업계 종사자)
⊙ “(TV 드라마가) 架空의 세계라는 사실을 어린이에게 알려줄 의무는 부모에게 있다”(〈600만불의 사나이〉 각본가)
⊙ 美, MPAA 영화 등급은 최종 판단을 부모 또는 그에 준하는 성인에 맡긴다는 민간 자율 시스템
⊙ 한국 학부모들, 중국의 게임 규제 강화에 박수 보내

이문원
《뉴시스이코노미》 편집장, 《미디어워치》 편집장, 국회 한류연구회 자문위원, KBS 시청자위원, KBS2 TV 〈연예가중계〉 자문위원, 제35회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역임 / 저서 《언론의 저주를 깨다》(공저), 《기업가정신》(공저), 《억지와 위선》(공저) 등
사진=조선DB
  말 많고 탈 많던 ‘게임 셧다운제’가 드디어 폐지 수순을 밟을 전망이다. 2000년대 대중문화 규제 중 대표적 악법(惡法)으로 지적되던 제도다.
 
  지난 8월 25일 문화체육관광부와 여성가족부, 교육부는 ‘청소년의 건강한 게임이용 환경 조성 방안’을 발표했다. 방안의 핵심은 청소년보호법에 근거한 게임 셧다운제를 폐지하겠다는 취지다. 대신 ‘게임산업진흥에 관련한 법률’의 ‘게임시간 선택제’로 일원화(一元化)해 운영될 전망이다. 주무 부처 역시 여성가족부에서 문화체육관광부로 바뀐다. 이 부처들이 발표한 방안이 실현되려면 먼저 청소년보호법 개정이 이뤄져야 하지만, 앞선 8월 23일 청와대 이호승 정책실장이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게임 셧다운제 폐지를 시사(示唆)한 바 있어 관련 부처들의 방안에 힘이 실릴 것으로 예측된다.
 

  그렇게 게임 셧다운제는 딱 시행 10년 만에 막을 내릴 듯 보인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게임 셧다운제를 향해 쏟아진 게임 업계와 언론의 어마어마한 비판을 생각해보면 지금의 폐지 흐름보다 오히려 이런 규제가 10년이나 버텼다는 점이 더 놀랍다.
 
 
  ‘강제적 셧다운제’
 
  게임 셧다운제는 엄밀히 ‘강제적 셧다운제’를 가리킨다. 2011년 11월 20일부터 시행됐으며, 한국에 있는 청소년이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 심야시간대에 온라인 게임을 할 수 없도록 강제하는 제도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청소년이 심야시간대에 게임하는 것을 금지한 게 아니라 게임회사들이 심야시간대에 청소년에게 게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도록 규제한 것이다. 다만 인터넷에 접속할 필요 없는 게임 또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를 통한 모바일 게임 등은 청소년들의 과몰입(過沒入) 우려가 적다는 판단하에 적용하지 않았다.
 
  그 대안(代案)으로 일원화 운영이 제시된 ‘게임시간 선택제’는 또 다른 개념이다. 만 18세 미만의 청소년 본인 혹은 그 부모의 동의하에 어디까지나 각자 ‘원하는 시간’에 셧다운제를 실시할 수 있도록 규제하는 방안이다. 2012년 1월 22일부터 시행됐다.
 
  게임 셧다운제에 대한 비판 요소는 다양했다. 게임산업 저해 문제 외에도 자유권 등 국민의 기본권 침해 문제와 청소년 인권 문제, 개인정보 침해 조장 문제 등이 빗발치게 거론됐다. 그리고 이에 맞서 등장한 방어논리는 아직 제대로 규정되지 않은 게임중독증 문제, 청소년 수면권 문제 등이 있다. 심지어 어느 토론회에서는 게임을 많이 하면 남자 청소년의 정자(精子) 수가 줄어든다는 막무가내 발언까지 나와 오히려 더욱 비난을 샀다.
 
  그럼에도 게임 셧다운제는 계속 유지됐다. 2014년 한국정보화진흥원 연구, 2016년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 연구, 2017년 한양대 연구 등을 통해 게임 셧다운제의 입법 효과에 부정적 평가가 계속 이어졌음에도 요지부동(搖之不動)이었다.
 
  그러다 지난 6월 김부겸 국무총리의 ‘규제챌린지’ 발언 이후 상황이 급물살을 탔고, 10대 이하 이용자들이 많은 마이크로소프트의 게임 ‘마인크래프트’가 셧다운제 탓에 오직 한국에서만 성인 게임이 될 위기에 처하자 셧다운제 폐지 여론도 전에 없이 커졌다. 그렇게 10년을 버텨오다 고작 2개월여 만에 판세가 완전히 뒤집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갑론을박(甲論乙駁)의 ‘10년 전쟁’ 와중에도 제대로 언급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 바로 ‘부모’의 역할론이다. 미성년 자녀의 양육 방식에 절대적 권한과 책임이 있는 부모의 존재는 이런 일련의 논박(論駁) 과정에서 이상스러울 정도로 배제돼 있었다. 그저 지나치게 개인 자유권을 침해하는 권위주의 정책이라는 정도의 비판만이 반복됐을 뿐이다. 그런 부모의 권한과 자리를 국가 등 공적개념(公的槪念)이 차지하는 현실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도 보기 드물었다.
 
  필자는 게임 셧다운제가 처음 시행되던 당시 한 게임 업계 관계자를 만나 ‘미성년 자녀들 부모의 의견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건가’라는 의문을 제기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에게서 전혀 뜻밖의 답을 듣게 됐다. 업계 종사자로서 셧다운제로 명확한 타격을 입을 것은 알고 있지만, 부모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자신도 셧다운제에 찬성할 것 같다는 얘기였다.
 
  “먹고사느라 바빠 솔직히 아이들 생활 하나하나까지 다 신경 쓰기가 어렵거든요. 물리적으로 안 되는 건 아닌데 심정적으로 지쳐요. 더 큰 이유는, 그러다 아이가 뭔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그게 다 나와 아내, 부모 책임으로 돌아온다는 겁니다. 얼마나 무거운 짐이에요. 그런데 여기서 국가가 나타나 ‘이렇게 저렇게 우리가 규제해서 너희 부모들이 힘들이지 않아도 되게끔 하겠다’, 이렇게 나오면 누가 반대하겠어요. 그러다 혹 뭐가 또 잘못되더라도 그건 이제 국가의 책임이지 내 책임이 아니거든요. 난 아무 잘못이 없게 되죠. 이러니까 부모들도 이게 사실 우리 권한이라는 걸 빤히 알면서도 그에 따른 책임이 너무 무겁고 부담스러워 조용히들 있는 겁니다.”
 
  이렇게 솔직한 대답을 들었을 때, 필자는 이 허랑(虛浪)한 게임 셧다운법이 생각보다 오래 지속될 수도 있으리라 처음 생각하게 됐다. 물론 그렇다고 10년이나 끌 수 있으리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교육부의 다마고치 규제
 
1990년대 후반 다마고치 게임이 유행하자 교육부가 나서서 규제를 가했다.
  사실 게임과 미성년 청소년 보호의 명분이 한데 엮인 규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굳이 사전(事前)심의까지 이에 포함시키지 않아도 1997년 저 유명한 ‘다마고치 금지령(禁止令)’이 있었다.
 
  다마고치는 1996년 일본 반다이가 내놓은 디지털 반려동물 키우기 게임이다. 손에 딱 쥐어지는 달걀 모양 게임기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애초 일본 버블경제 붕괴 이후 불황이 지속되면서 일본 어린이들이 집에서 반려동물 키우기가 어려워지자 일종의 대용품(代用品)으로 등장했다. 그러다 1997년이 되자 전 세계적인 선풍을 일으켰고,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여기에 오리지널을 본뜬 ‘짝퉁’ 다마고치까지 국내에 확산되자 각급 학교 교실에서는 삑삑거리는 발신음이 들리면 다마고치에 밥 주려고 게임기를 꺼내 드는 학생들이 늘어나 신종(新種) 수업 방해 요소로 지목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국가가 이를 막기 위해 나섰다. 1997년 5월 30일 대한민국 교육부는 희한하게도 ‘생명 경시(輕視) 풍조 확산’을 명분으로 전국 15개 교육청에 공문을 보내 초·중·고교생의 다마고치 학교 반입을 금지하도록 했다. 엄연히 가정 차원에서 제지해야 할 일을 왜 국가기관이 나서 규제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도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정병섭군 사건’
 
만화를 보고 목숨을 끊은 정병섭군 사건은 ‘불량만화 일제 소탕’으로 이어졌다.
  비단 게임에 국한되지 않고 대중문화라는 넓은 범주에서 청소년 보호 명분과 만나 이해하기 힘든 규제가 이뤄진 경우는 당연히 그보다 훨씬 오래됐다. 가장 대표적으로 1972년 ‘정병섭군 자살사건’과 그로 비롯된 일련의 상황을 들 수 있다. 당시 서울 신설초등학교 6학년에 재학 중이던 정병섭군이 목을 매 숨진 사건인데, 정군 친누나의 발언으로 그 원인을 짚어보았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정군은 평소 만화를 무척 좋아했고, 사건 당일에도 만화대본소에서 만화를 보고 와서 누나에게 “만화에서는 사람이 죽었다가도 살아나더라. 나도 한번 죽었다 살아날 수 있는지 시험해보고 싶다”고 한 뒤 나무 선반에 목을 맸다는 것이다.
 
  지금과는 사뭇 달랐던 유소년층의 상식과 인식 수준을 감안하더라도 언뜻 이해가 잘 안 되는 대목이다. 어찌됐든 이 역시도 근본적으로는 가정교육 범주에서 1차적 책임을 찾을 수밖에 없는 문제다. 가정이 그런 역할을 하기 힘들 때 학교 등 의무교육 기관이 역할을 한다. 그리고 가정환경에 따른 유소년 정신건강 문제도 충분히 거론해볼 수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정병섭군 가정은 당시 아버지의 실직(失職)과 그에 따른 생활고(生活苦) 등이 밝혀진 바 있었다.
 
  그런데 이 사건에 따른 정책적 방향은 엉뚱한 곳으로 갔다. ‘만화 탄압’이 시작된 것이다. 사건 직후 경찰은 서울시내 만화방 517곳을 수색해 ‘불량만화’로 분류한 2만440여 권을 수거해 불태웠고, 음식물을 판매하거나 TV를 틀어준 만화방 주인들은 공연법 위반 내지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로 즉심(卽審)에 넘겼다. 그렇게 만화방 104개소를 즉심에 회부하고, 194개소에 경고 처분을 내렸다. 또한 만화 창작과 관련된 69명이 고발 조치됐고, 국내 58개 만화출판사 중 절반 이상의 등록이 취소됐다.
 
  이런 ‘만화 탄압’은 대략 1980년까지 간다. 소위 ‘불량만화’로 분류된 것 절대다수가 그저 판타지 만화에 불과할 뿐 이렇다 할 폭력이나 성적(性的) 묘사가 등장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손오공이 소설로 나오면 어린이 권장도서가 되지만, 만화로 나오면 불량만화 판정을 받고 감옥 간다”는 얘기가 만화계에서 나돌던 때다.
 
 
  〈600만불의 사나이〉 각본가의 일갈
 
  경제 발전으로 대중문화가 싹터 유소년층에까지 전달되기 시작하던 1970년대에는 이와 비슷한 사건들이 다른 장르 미디어 관련으로도 종종 터져 나왔다. 대부분 정병섭군 경우처럼 대중문화 콘텐츠 속 행각을 모방(模倣)하다 벌어진 사건들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1977년 한 5세 남아(男兒)가 미국 TV 시리즈 〈600만불의 사나이〉를 보고 드라마 속 오스틴 대령을 따라 하다 서울 천호대교 교각 아래로 떨어져 숨진 사건이다. 이 외에도 1~2년 사이 비슷한 사건들이 속출했다. 1970년대 중반부터 국내 가정의 TV 보급률이 급격히 오른 탓이다. 같은 해 12월에는 또 다른 미국 TV 시리즈 〈날으는 원더우먼〉을 본 4세 여아(女兒)가 서울의 이층집 옥상에서 뛰어내려 크게 다쳤다. 1978년 3월에는 3세 여아가, 1979년 3월에는 12세 소년이 똑같이 〈날으는 원더우먼〉을 따라 하다 숨졌다.
 

  이에 1978년 한 국내 언론에서는 〈600만불의 사나이〉 일부를 집필한 미국 배우 겸 각본가 W. T. 재카를 만나 인터뷰하며 한국 상황을 전하기도 했는데, 이에 대한 재카의 답변은 간명했다. “이런 일을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 가공(架空)의 세계라는 사실을 어린이에게 알려줄 의무는 부모에게 있다. 그 책임을 매스미디어에 전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사실 서두의 게임 셧다운제 폐지 흐름, 즉 강제적 셧다운제에서 게임시간 선택제로 일원화되는 흐름도 미성년 자녀 양육에 1차적 권한과 책임이 있는 그 부모에 권한과 책임을 온전히 돌려준 것이라 보긴 힘들다. 게임시간 제한은 공적(公的) 개념에서 여전히 강제하는 것이고, 오직 그 시간대만 자율로 고르라는 식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같은 흐름, 1970년대 초반부터 지속돼온 온갖 종류 ‘청소년보호를 위한 대중문화 규제’ 정책들이 반세기 걸쳐 이어지는 이유는 단순하다. 앞서 소개한 어느 게임 업계 관계자의 변처럼, 그 ‘책임’을 지는 게 너무 버겁고 부담스러워 내 자식을 자신의 교육관(敎育觀)대로 키울 ‘권한’을 기꺼이 포기해버리고 국가라는 더 큰 힘에 의탁하고 싶다는 대중심리가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이 같은 문제를 놓고 “책임을 매스미디어에 전가해서는 안 된다”며 가정과 부모의 역할을 강조한 〈600만불의 사나이〉 각본가의 고향, 미국의 대중문화계 사정은 어떨까. 자녀 양육, 청소년 보호 등과 맞물린 미국의 대중문화 규제 정책은 또 어떤 식일까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과는 그 ‘뿌리’부터가 다르다. 예컨대 영화 관람에 있어 연령대별 등급제도만 봐도 상황을 잘 알 수 있다.
 
 
  美, 민간기구인 MPAA가 가이드 라인 제시
 
  일단 미국에서 영화 관람 연령대별 등급을 결정하는 기구는 MPAA(Motion Picture Association of America)다. 미국 영화제작자와 배급업자 등 영화산업 종사자들로 구성된 민간기구다. 여기서부터 일단 한국과 다르다. 한국에서는 국가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특수법인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등급을 정해 이를 각 상영관으로 내려보내는 식이다.
 
  미국의 MPAA는 탄생 배경이 여러모로 특이하다. 1920년대에 미국의 영화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저급(低級) 상품들, 대표적으로 성적(性的) 묘사에 치중(置重)한 외설(猥褻) 영화들도 함께 늘어나자 미국 정부 차원에서 직접 나서 대대적 영화 검열에 들어가게 됐다. 여기까지는 한국과 진배없는 모양새다.
 
  그런데 여기서 반발이 일어났다. 왜 공적 개념의 기관이 일괄적으로 등급 꼬리표를 달아 대중에게 볼지 말지를 강제하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가 일으킬 수 있는 사회적 문제는 영화산업 내에서 알아서 해결할 테니 공적 개념은 개입하지 말라는 취지로 MPAA가 설립됐다.
 
  그렇게 산업 내에서 자체 검열을 시행하다가, 1960년대에 이르자 그마저 문제가 많다는 점을 스스로 시인했다. ‘우리’가 뭐라고 남들에게 등급을 정해주고 강제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결국 1968년부터는 MPAA 측에서 등급심사위원회를 구성해 검열 대신 등급을 매겨 관객들에게 관람 가이드 라인만 제시해주는 방식으로 변모했다.
 
  2021년 현재 미국의 영화 등급은 X(등급 외), NC-17(17세 이하 관람 불가), R(17세 이하 제한관람가), PG-13(13세 이하 부모 및 보호자 권고), PG(부모 및 보호자 권고), G(전체관람가) 등 크게 6등급으로 나뉜다. 여기서 X등급은 ‘등급 외 영화’를 가리킨다. 그 어떤 사회·문화적 기준으로도 미성년자의 관람에 한계를 둘 수밖에 없는 포르노 영화 정도가 해당된다. X등급을 받은 영화는 광고도 할 수 없고 일반 멀티플렉스 상영관에서 상영조차 불가하다. 반면 NC-17등급은 그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성적 묘사의 수위 등은 X등급에 해당할 정도 수준이지만, 그게 꼭 말초적 자극만을 위해 제공되는 것은 아니고 일정 수준 이상 예술적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는 판단이 가미된다. 그래서 똑같이 17세 이하는 볼 수 없지만 X등급 영화와는 달리 광고가 가능하고 멀티플렉스 상영관에 걸 수 있다.
 
 
  최종적 판단은 부모의 몫
 
  한국에서 위 두 등급(X와 NC-17)을 받는 영화는 절대다수 상영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러니 한국에서 미성년자 관람 불가 등급을 받고 상영되는 미국영화는 대부분 R등급 영화다. 이는 부모 또는 그에 준하는 성인(부모가 없는 미성년자도 있을 수 있으므로) 동반 시 관람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부모 또는 그에 준하는 성인이 허락한다면 볼 수 있다는 뜻이다. 그 아래 PG-13등급은 이런 동반 의무가 있는 것조차 아니다. 일종의 생활 가이드 라인에 가깝다. 해당 콘텐츠는 청소년에게 유해할 수 있는 이런저런 요소를 담고 있으니 부모 또는 그에 준하는 성인이 그 점을 ‘알고는 있으라’는 정도다. 그렇게 콘텐츠 성격을 알아두고 자녀에게 영화 보러 가는 행위를 허락할지 말지, 보러 갈 용돈을 줄지 말지 선택하라는 표시 정도다. PG등급도 거의 같은 의미고, G등급까지 가서야 누가 와서 봐도 무방한 콘텐츠를 가리킨다. G는 대부분 애니메이션 영화에 해당된다.
 
  결국 MPAA가 제시하는 영화 등급은 애초 등급기구 자체부터 민간기구이며, 어디까지나 그 등급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각 극장주에 의해 적용되는 식이다. 최종적인 판단도 미성년 자녀 양육에 실질적 권한과 책임이 있는 부모 또는 그에 준하는 성인에 맡긴다는 민간 자율 시스템이라고 봐야 한다. 이렇듯 미국이 개인주의·자유주의에 입각해 민간 자율을 최대한 중시하는 반면, 한국은 여전히 공적 개념의 일괄 규제 노선이 명확하다.
 
  이런 한국과 미국 간 차이에서 엿볼 수 있는 사회철학은 사실 간명하다. 결국 사회는 하나의 동일한 가치관이 일률적으로 강제되는 전체주의적 환경이 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각자 가치관이 서로의 자유를 가능한 한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조율되는 형태여야 한다는 의지를 내포(內包)한다. 선진사회의 전반적 개인주의 의식 진화 흐름과 일치한다.
 
  한국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예컨대 수년 전부터 이런저런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수없이 포스팅되며 논의를 유발하고 있는 ‘주요 사회적 금기(禁忌)에 대한 OECD 34개국의 방침(2015)’ 정보를 들 수 있다. 해당 포스팅은 낙태, 매춘, 사촌 간 결혼, 동성결혼(同性結婚), 포르노 영상물, 대마초 등 6가지 주요 사회적 금기 요소를 설정해놓고, 34개국에 걸친 OECD 국가의 허용 여부를 진단하는 내용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위 6개 항목 전체를 금지하는 나라는 34개국 중 한국이 유일하다. 그다음이 6가지 중 낙태와 동성결혼, 대마초를 금지하고 있는 칠레다. 6가지 중 2개 항목만 금지하는 국가에는 헝가리, 이스라엘, 슬로베니아, 슬로바키아 등이 거론된다. 이웃 나라 일본 같은 경우 동성결혼과 대마초는 전면 금지하는 반면 매춘과 포르노 영상물은 부분 허용하고 있다. 미국은 각 주(州)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전면금지하는 항목은 없다고 봐야 한다. 부분허용 방침이 많다.
 
 
  자유와 책임
 
  이를 놓고 각 인터넷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대부분 ‘유교(儒敎)의 나라라 그렇다’, 나쁘게 보면 ‘꼰대의 나라다’라는 식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사실 전반적으로 보수적 사회 분위기 차원과는 논점이 전혀 다른 얘기다. 개인의 사회·문화적 자유 영역에 공적 개념이 어느 정도로 침범해 컨트롤하느냐는 점을 알리는 지표라고 보는 게 옳다.
 
  사람마다 생각은 각자 다르다. 위 6가지 주요 사회적 금기 항목을 놓고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이는 포르노 영상물 정도는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고, 또 다른 이들은 그조차 궁극적으로는 나쁜 영향을 끼치기에 안 된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판단한다고 해서 남들도 똑같이 생각하고 판단해야 한다는 식의 사고(思考)다. 그저 내가 보기 싫으면 거부하면 되는 것이지 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남들까지 억압해야만 비로소 불안감이 사라지고 속 시원하게 여기느냐는 것이다. 그야말로 전체주의적 성향이라 볼 수밖에 없는 심리다.
 
  또 있다. ‘자유’를 곧 그 자체로 ‘방종(放縱)’이라 여기는 경향은 대부분 자유에 따른 ‘책임’을 인지(認知)시키는 데 문제가 발생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일어난다. 결국 모든 문제는 ‘자유에 따른 책임’ 부분을 인지시키는 데 늘 문제를 겪고 있는 한국 사회의 근본적 딜레마에 기인하는 것일 수 있다는 것. 이 점부터 제대로 해결하지 않고 엉뚱하게도 공적 개념의 규제에 사활(死活)을 거는 분위기로 흘러간다는 건 여러모로 위험성이 훨씬 크다.
 
  게임 셧다운제 문제도 이 지점에서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했듯, 자유에 따른 책임을 견딜 수 없을 만큼 버겁게 여기고 그 탓에 자책(自責)하거나 비난받는 일을 두려워해 스스로 그 자유를 내놓고 공적 개념의 통제를 달갑게 받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공적 개념의 통제를 받는 것보다 자녀 양육의 규율을 엄격히 실행하고 자녀 삶에 가깝게 접근해 관심을 갖고 대화로 설득하는 쪽이 오히려 더 큰 억압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쯤부터는 상황을 어떤 식으로 해석해야 할지 참 애매해진다.
 
  분명한 건, 자녀 양육에 책임이 있는 부모 포함 성인들에게 어떤 방향이 미성년 자녀들에게 더 유리한지 판단할 자유가 주어져야 각기 다른 환경에서 각자 다른 특성과 능력을 갖춘 개개인 삶이 탄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장래 프로게이머가 되려는 자녀에겐 그 시간에 게임을 하도록 허용하는 편이 그들 장래에 도움이 되는 상황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런 직업적 차원이 아니더라도, 어찌 됐든 자녀에게 그런 여가(餘暇) 자유를 주고, 또 그를 스스로 조절하도록 해 자율적 삶의 태도를 교육하려는 부모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지난 10년간 시행된 게임 셧다운제는 그런 자유를 국민 개개인에게서 빼앗아 미성년 자녀들이 ‘국가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을 똑같이 살도록 유도한 셈이었다.
 
 
  중국의 게임 규제
 
중국의 한 매체는 최근 게임을 ‘정신아편’으로 규정하는 보도를 내보냈다.
  공교롭게도 한국에서 게임 셧다운제가 이제 막을 내리려는 똑같은 시점에, 중국에서는 오히려 게임 셧다운제를 훨씬 강화하려는 흐름이 나오고 있다. 중국 게임 부문을 총괄하는 국가신문출판서는 지난 8월 30일 홈페이지 공지를 통해 “미성년자는 앞으로 금요일, 주말, 휴일에 한해 오후 8~9시 1시간만 온라인 게임을 할 수 있다”고 알렸다. 다른 평일 시간에는 아예 게임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또 “온라인 게임 회사들은 허용 외 시간에는 미성년자들이 게임을 하도록 해서는 안 되며, 미성년자들은 실명(實名) 확인 절차를 거쳐야만 게임을 이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안 그래도 중국의 게임 규제는 이미 엄청난 수준이었다. 2019년부터 오후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8시까지 미성년자의 온라인 게임 접속을 금지하는, 한국보다 훨씬 엄격한 게임 셧다운제를 운영하고 있던 터다. 게임 가능 시간도 휴일에 하루 3시간, 평일에는 하루 1.5시간으로 제한하고 있었다. 그러다 이제는 아예 평일에는 게임을 금지하기까지 이른 것이다.
 
  중국은 그렇다 치자. 어차피 게임뿐 아니라 대중음악 등 수많은 대중문화 분야에서 검열과 통제를 강화하는 대표적 통제국가 중 하나다. 문제는, 그런 중국 방침에 대한 한국 측 반응이다. 《조선일보》 2021년 8월31일자(字) 기사 “‘중국이 부럽긴 처음’ 中 초강력 게임 규제에 학부모 카페 ‘들썩’”에는 위 중국 상황에 대한 한국 학부모 인터넷 카페 이용자들의 반응이 함께 실렸다.
 
  “세상에, 지금까지 살면서 중국을 부러워하긴 처음이네요.”(학부모 A씨)
 
  “진짜 중국이 잘하네요. 우리는 있던 규제도 푸는데…”(학부모 B씨)
 
  “코로나 때문에 애들이 전부 게임 중독이 됐어요. 한국이야말로 청소년 게임 제한이 시급해요. 청소년 게임 규제를 공약으로 내놓는 대선 후보가 있다면 (저는) 무조건 뽑을 겁니다.”(학부모 C씨)
 
  ‘거리의 철학자’ 에릭 호퍼는 “실제로 ‘자유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나치에 참여한다’는 말을 남긴 독일 젊은이들이 있었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이는 곧 자유에 따른 책임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그 자유를 스스로 내놓고 전체주의적 성향으로 옮아갔다는 얘기도 된다. 그렇게 공적 개념은 점점 더 비대해져 가고, 그러다 뭔가 잘못되면 그저 공적 개념에 책임을 물으며 비판하는 흐름만 계속 반복되다가, 어느 시점이 되면 그런 비판조차 불가능해지는 때가 결국 오고야 만다. 진정 향후가 우려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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