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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대중문화 속으로

한국 MZ세대, 新보수주의적·자유주의적이라는 면에서 미국 X세대와 비슷

글 :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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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Z세대, 1980~2010년에 태어난 세대
⊙ 미국 X세대, 이혼 증가·에이즈 등으로 이전 세대와 가치관이 확 달라져
⊙ 한국 X세대는 IMF사태로 상처받은 세대로 미국의 히피 세대와 흡사
⊙ MZ세대, 욜로(YOLO·You Only Live Once), 즉 ‘인생은 한 번뿐’

이문원
《뉴시스이코노미》 편집장, 《미디어워치》 편집장, 국회 한류연구회 자문위원, KBS 시청자위원, KBS2 TV 〈연예가중계〉 자문위원, 제35회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역임 / 저서 《언론의 저주를 깨다》(공저), 《기업가정신》(공저), 《억지와 위선》(공저) 등
2019년 10월 9일 서울 청계광장에서는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모여 조국 장관 사퇴를 촉구했다. 사진=조선DB
  ‘MZ세대’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정치·경제·사회·문화, 어느 분야에서든 언급이 빠지는 경우가 거의 없을 정도다. MZ세대는 영미권(英美圈) 인류통계학자의 구분에 따른 세대 명칭이다.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 사이 태어난 밀레니얼(Millennial) 세대와 1990년대 중후반에서 2010년 사이 태어난 Z세대를 합친 개념, 그러니까 1980년대 초반부터 2010년 사이 출생한 신세대 전반을 가리킨다.
 
  한국에서는 지난 4월 7일 재보궐선거에서 이들이 일으킨 일대 파란(波瀾)이 대중적 관심의 기폭제(起爆劑)가 됐다. 가장 이목을 끈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출구조사 결과, MZ세대에 해당하는 18・19세와 20대 남성 유권자 중 무려 72.5%가 야당인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 것이다. 전체 세대에서 60대 이상 여성(73.3%) 바로 다음 가는 압도적인 오 후보 지지층으로 드러난 셈이다. 그러자 곧 ‘이대남(이십대 남성)’ 현상을 파악하려는 언론 미디어의 총력전(總力戰)이 대대적으로 펼쳐졌다.
 

  4·7재보궐선거로 불거진 언론 미디어의 ‘세대론(世代論)’ 붐은 비단 MZ세대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반대로, 서울시장 선거 기준 오세훈 후보를 가장 적게 지지한 세대인 현(現) 40대, 1970년대 출생자들은 또 어떤 세대인지에 대한 관심도 함께 일었다. 이들도 1990년대 당시 기성세대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신세대로서 ‘X세대’라는 명칭이 붙었던 세대다. 이들 중 특히 40대 남성은 이번 선거에서 20대 여성(40.9%) 다음으로 오 후보를 적게 지지(45.8%)해 이목을 끌었다. 그리고 이렇듯 불과 20년 격차를 두고 두 세대 간 극단적으로 갈린 정치적 성향을 놓고 한동안 온갖 논리와 해석이 난무(亂舞)했다.
 
 
  X세대
 
  그런데 이런 분석을 자세히 살펴보다 보면 몇 가지 의문이 일게 된다. 먼저 영미권, 그중에서도 특히 미국에서 자국 국민 대상으로 나눈 세대 개념을 그대로 수입해 와 한국에 바로 적용해도 되는지에 대한 문제가 있다. 그리고 그런 구분 자체가 우연찮게 한국에 맞아떨어진다 해도 이들을 해석하는 데 영미권을 참조(參照)하는 게 과연 올바른 일인지에 대한 문제가 또 있다.
 
  이런 의문을 전제로 각 세대를 당대 국가별 사회·문화 환경과 대중문화 접근을 통해 바라보면, 의외로 기존과 좀 색다른 결론이 나오기도 한다. 최소한 지금 거론되는 것처럼 X세대는 ‘서태지와 아이들 세대’, MZ세대는 ‘K팝 한류(韓流) 세대’라는 식의 둔탁(鈍濁)한 규정보다는 좀 더 흥미로운 해석이 된다. 먼저 ‘가장 현(現) 여권을 충성도 높게 지지하는 세대’, 1970년대 출생한 X세대부터 다시 살펴보기로 하자.
 
  X세대. 미국에서는 1965년에서 1980년 사이 태어난 세대, 한국에서는 대략 1970년대 출생자 정도를 가리킨다. 큰 차이는 없다. 이들이 막 성인이 되던 1990년대 당시엔 ‘너무 나도 생소(生疏)하고 이해하기 힘들다’는 의미에서 ‘X’라 이름 붙여졌다. 광고기획사 제일기획의 트렌드 리포트에서는 한국의 X세대를 이렇게 규정한다.
 
  “주위의 눈치를 보지 않는 개성파였으며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었던 세대.”
 
  그러면서 이들의 유난한 개인주의와 자기중심주의 풍조, 도발적이고 감각적인 행태 등도 지적된다. 초고도(超高度) 성장의 열매를 따 먹고 여유롭게 큰 세대이기에 이런 측면이 두드러진다는 설명이다.
 
  다른 분석 서적에서는 1990년대 초반 미소(美蘇) 간 냉전(冷戰) 종식 상황이 X세대의 남 다른 정신 세계의 성립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분석도 등장한다. 유난히 한국에서 이런 식의 분석이 많은 편이다. 그러니 이른바 탈(脫)정치 세대라는 것이고, 그래서 X세대는 이렇다 할 이데올로기적 강박(强迫)이나 자기규제(自己規制) 없이 자유롭게 사고하며 행동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세대 해석은 과연 설득력 있는 것일까. 잠시 어느 서적에 실린 한 대목을 살펴보기로 하자.
 
  〈아니 저게 누구냐? 아무래도 우리집 애 같지 않다. 언제부터인가 낯선 사람같이 느껴진다.
 
  거리에서 직장에서 “아, 이런 사람도 있었나” 하고 놀라본 적이 있을 것이다. 도대체 이게 어느 나라 사람이며 누구 집 자식이냐, 어디서 무엇을 보고 배운 사람이기에 이럴 수가 있냐고 아연실색해본 경험 말이다.
 
  멀쩡하게 공부 잘하던 학생이 대학 졸업을 얼마 앞두고 휴학을 하겠단다. 병? 천만에, 그는 건강하고 착한 모범생이다. 휴학 사유가 걸작이다. 한라산에 새로운 등산로를 개발해보겠다는 것이다. 당신 아들이, 후배가, 제자가 이 말을 했을 때 당신의 다음 반응이 궁금하다. 어렵게 입사를 하고도 상사가 까다롭게 군다고 휴직을 해야겠다는 청년도 있다. (중략) 산더미처럼 일이 밀렸는데도 사규에 따라 정시 퇴근, 그리고 휴가를 가겠다고 나서는 신입사원에게 당신은 무엇이라고 대꾸하렵니까? 얌체, 아니면 조금 돌았다고 하겠습니까? 데려다 야단이나 칠 작정입니까?〉
 
 
  586세대나 X세대 별 차이 없어
 
  언뜻 1990년대 언론 미디어에서 숱하게 나돌던 X세대 분석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위 대목은 신경정신과 전문의 이시형 박사가 1987년에 펴낸 《신인간, 무서운 신세대의 정신풍속도》 서문 중 일부다. 그러니 위에서 지목한 ‘무슨 생각하는지 알 수 없는 신세대’는 X세대가 아니라 지금 586세대라 불리는 1960년대 출생자들을 가리키고 있다는 얘기다.
 
  이렇듯 엄밀히 586세대와 X세대는 기본 의식 차원에서 사실상 이렇다 할 차이가 없다시피 했다. 위 제일기획 트렌드 리포트의 “주위의 눈치를 보지 않는 개성파였으며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었던 세대”라는 설명은, 이시형 박사 서적에 따르면 586세대 전반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비단 이시형 박사 혼자만의 견해였다고 보기도 힘들다. 지금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뉴스 라이브러리 등에서 옛 신문기사들을 검색해보면 1980년대 전반에 걸쳐 위 이시형 박사의 견해와 별반 다르지 않은 1960년대생 신세대 분석들을 수없이 만나볼 수 있다.
 
 
  신세대는 늘 개인주의적이고 자유 추구
 
1970년대 고려대 재학 시절 하숙집에서 통기타를 치는 청년 홍준표. 그도 당시에는 기성세대가 이해하지 못하는 ‘신세대 청년’이었다. 사진=홍준표
  나아가 단순히 그 둘만 서로 비슷한 것조차 아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1960~70년대부터도 신세대는 늘 개인주의적인 성향으로 점차 변화하고 있었고, 사회·문화적 자유에 대한 요구도 늘 팽배(澎湃)했다. 1970년대의 미니스커트 열풍이나 ‘장발족(長髮族)’ 유행 등으로도 쉽게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한편 개중에는 X세대가 정치적 이유로 금지된 대중문화 상품들이 일제히 해금(解禁)되는 시대를 살아 이른바 ‘정신적 자유’를 얻은 세대라는 해석도 있는데, 이 역시 상당히 애매한 얘기다. 한국에서 대대적 대중문화 해금 조치가 내려진 때는 1987년이었다. 1987년 8월 ‘아침이슬’ 등 그간 금지곡으로 지정됐던 노래 186곡이 일제히 해금된 데 이어, 영화계에서도 그간 국내 개봉이 금지됐던 〈지옥의 묵시록〉 〈택시드라이버〉 〈파리의 마지막 탱고〉 등이 해금돼 1988~89년에 뒤늦은 금지영화 개봉 열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X세대는 586세대부터 시작된 이런 일련의 흐름이 좀 더 강화된 정도의 시대에 성인이 된 세대다. 별 차이는 없다. 결론적으로 한국에서 X세대란, 그들이 놓였던 사회·문화적 환경과 의식구조 등으로 볼 때 딱히 586세대와 나눠 생각할 필요가 없는 세대라는 것이다.
 
  물론 이른바 ‘정치투쟁의 세대’라는 점에서 586세대와 X세대를 가르는 입장이 존재하지만, 586세대조차 1980년대 정치시위에 나선 대학생들은 결코 다수가 아니었다는 점, 근본적으로 대학진학률이 20% 내외에 그쳤던 1980년대 상황에서 시위의 중심이었던 대학생 자체가 전체 청년의 5분의 1에서 4분의 1 정도에 불과했다는 점 등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X세대
 
  그럼 애초 X세대가 명명(命名)된 본고장 미국에서는 왜 이들을 따로 구분하기 시작했던 걸까. 미국은 당시 어떤 환경과 조건이기에 이들이 툭 불거져 나온 것인가. 살펴보면 확실히 한국과는 차이가 컸다.
 
  X세대는 캐나다 출신 작가 더글러스 커플랜드가 1991년 미국 뉴욕에서 발간한 소설 《X세대(Generation X)》를 통해 널리 알려진 용어다. 소설 속 X세대는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 경제적으로 여유롭고 교육 수준도 높지만, 삶에 대한 야심과 의욕을 상실한 채 살아가는 당대 젊은이들을 가리켰다. 전(前) 세대가 공유하던 가치, 즉 사회적 성공이나 자기 가족을 꾸리는 일 등 미래 계획에 도통 관심이 없고, 그저 그때그때 지금을 즐기며 살고자 하는 신세대 풍속도를 그렸다.
 
  이들을 ‘이런 상태’로 만든 원인으로는 대개 두 가지가 지적되곤 한다. 먼저, 미국 내 이혼 가정의 급증 상황이다. 얼핏 미국 등지의 이혼율이 한국처럼 날이 갈수록 올라가는 추세라 예상하기 쉽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미국 이혼율이 가장 높았던 시기는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이다. 그중에서도 1980년이 이혼율 22.6%로 극점(極點)을 쳤다. 이 시대의 이혼율 급증 원인에 대해 《뉴욕타임스》 2014년 12월2일자 기사 ‘이혼율 급증은 끝났지만 신화는 계속된다(The Divorce Surge is Over, but the Myth Lives On)’는 이렇게 설명한다.
 
  〈그 시대에는 새로운 페미니즘 운동이 일어나 사회적·경제적 변동이 발생했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결혼은 밖에서 일하는 남편과 집안일 하는 아내의 결합, 즉 서로 기여가 있어야 하는 관계였지만,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1970년대에 이것이 크게 바뀌었다. 여성이 노동시장에 참여했고 집안일을 기계가 대신해주는 부분이 늘어났으며 피임이 널리 확산됐던 시기다. 그 결과 결혼은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발전했는데, 남녀 간 결합은 사랑과 공유된 열정, 맞벌이와 집안일을 함께하는 것을 의미하게 됐다.
 
  페미니즘 운동이 확산되기 직전 결혼한 사람들은 어정쩡한 위치에 끼어버렸다.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문화에는 잘 맞는 사람과 결혼했지만, 1970년대 이후 변화된 사회에는 잘 맞지 않는 사람과 결혼한 것이다. 오늘날 결혼이 더 안정된 이유는 자신들이 사는 시대에 부합하는 사람을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이즈 공포 세대’
 
  결국 미국에서 X세대는 사상 최다로 폭증한 이혼 가정, 그게 아니더라도 여성이 노동시장에 대거 참여해 가정 내에서 자녀에 대한 훈육(訓育)이 미비해지고 가정교육 자체가 혼란을 겪던 시기에 성장한 세대를 가리키는 용어인 셈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집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의 상당 부분을 대중문화에 탐닉(耽溺)하며 보냈다. 미디어 환경이 이를 받쳐줬다. 1980년대 초반부터 가정용 VCR이 대거 보급됐고, 같은 시기인 1981년에 대중음악 전문 케이블채널 MTV가 개국했다. 부모의 감시가 덜해진 만큼 이들 대중문화 미디어에 대한 열중도 훨씬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급격한 변화에 따른 가정 내 혼란 속에서 정서적 안정을 찾지 못하고 만성적 우울감에 시달리며 대중문화에 탐닉하던 세대가 1990년대에 이르러 성인이 되자, 이들은 기성 가치에 극도로 냉소적이고 비관적이며 체념적인 태도를 보이게 됐다는 것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미국의 X세대는, 1980~90년대 걸쳐 미국과 유럽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준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 공포’ 세대로 해석되기도 한다.
 
  1981년 처음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서 에이즈가 보고된 이래 어마어마한 규모로 전염이 일어났다. 그러다 1980년대 중반부터는 미국의 사회·문화 전체를 뒤흔들기에 이른다. 대중적으로 가장 주목도 높은 문화계와 스포츠계 스타들이 에이즈에 감염됐다는 뉴스가 연일 보도되던 시절이다. 1985년 영화 〈자이언트〉의 주연배우 록 허드슨이 에이즈로 사망한 이래 록그룹 퀸 멤버 프레디 머큐리, LA 레이커스 농구선수 매직 존슨, 발레리노 루돌프 누레예프, 미술가 키스 해링, SF소설가 아이작 아시모프, 피아니스트 리버라치, 철학자 미셸 푸코 등이 1980년대 중반에서 1990년대 초반 사이 에이즈 감염자로 밝혀졌고, 대부분 사망했다.
 
  그러자 1960년대 히피 세대부터 이어 내려온 성적(性的) 자유 및 개방 풍조가 일순간에 사그라졌다. 나아가 1980년대 전반 특유의 향락적 분위기 자체가 급격히 수그러들었다. 이런 분위기는 당연히 대중문화 상품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1987년 개봉된 영화 ‘007 시리즈’ 15탄 〈007 리빙 데이라이트〉는 전형적인 플레이보이 제임스 본드 캐릭터에 변화를 줘야만 했다. 본드는 더 이상 많은 본드걸을 거느리지 못하게 됐고, 오히려 상당히 진지하고 충실한 연인으로 거듭나야 했다. ‘에이즈 시대’에는 본드가 많은 여성을 섭렵(涉獵)하고 다니는 모습이 오히려 위험해 보여 불편하게 느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한국과 미국 X세대의 다른 점
 
미국 X세대의 정서를 담은 영화 〈포레스트 검프〉.
  1994년에 개봉된 영화 〈포레스트 검프〉는 한술 더 떴다. 영화 속 포레스트 검프의 소꿉친구 제니는 1960~70년대에 히피로 살며 성적(性的)으로 문란한 생활을 하다가 1980년대가 되자 ‘명확한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치병’에 걸려 죽어간다. 누가 봐도 에이즈를 암시하는 대목이었다.
 
  세상이 온통 이런 분위기니 1990년대에 성인이 된 세대가 어떤 행태를 보이게 됐을지 어렵지 않게 짐작해볼 수 있다. 연애를 중심으로 한 인간관계 자체가 둔화되면서, 점차 자폐적(自廢的)이고 비관적이며 신경증적인 태도로 변모해갔다.
 
  이렇듯 크게 위 두 가지 요인으로 인해 미국의 X세대는 ‘이전 세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됐다. 이들에 대해 《슈퍼히어로, 미국을 말하다》의 저자 마크 웨이드는 “X세대는 현재 자신들이 사는 세상이 이전보다 훨씬 위험하고, 훨씬 불공정하며, 훨씬 엉망진창으로 뒤엉켜 있다고 여긴다”며 “그들 눈에 비치는 세상은 무한 팽창하는 자본주의가 항상 승리하고, 정치가는 항상 거짓말을 하며, 스포츠 우상은 약물을 복용하고 아내를 두들겨 패며, 하얀 나무 울타리는 그 뒤에 뭔가 어두운 것을 음흉하게 감추는 그런 세상”이라고 지적한다. 이것이 미국을 중심으로 서구(西歐) 사회에서 받아들이는 X세대의 모습이다.
 
  이 정도만 살펴봐도 미국의 X세대와 한국의 X세대는 그저 출생연도만 같게 설정됐을 뿐 서로 아무런 공통점이 없다는 점을 알게 된다.
 
  일단 한국의 X세대는 이혼 가정 폭증하에서 자라난 세대가 아니다. 한국의 이혼율은 1970년 이래 꾸준히 올라가는 추세이긴 했지만 급격하게 치솟기 시작한 것은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부터다. 2003년에 이혼율이 정점을 찍고, 이후부터는 결혼 자체에 극도로 신중해지는 태도를 보이면서 혼인율과 함께 이혼율도 계속 떨어졌다.
 
  ‘에이즈 공포’ 역시 한국 실정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얘기다. 1980~90년대 당시에는 더욱 그랬다. 정반대로, 1990년대는 한국 청년세대에게 성(性)개방의 시대라고 볼 수 있다.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모두 그랬다.
 
  나아가 한국에서 특히 자주 거론되는 냉전(冷戰) 종식 상황은 미국 등지와 전혀 다른 양상이었다고 봐야 한다. 미소 간 냉전은 종식됐지만 한국은 여전히 분단국가였다. 특히 1994년 3월 판문점에서 열린 제8차 남북 특사교환 실무 접촉에서 저 유명한 ‘서울 불바다’ 발언까지 나왔다. 같은 해 7월 김일성 사망 이후로는 긴장상태가 더욱 고조돼 1990년대 내내 한국 국민은 모두 극도의 군사적 위기감 속에서 살아야 했다.
 
 
  F세대
 
  그럼 결국 X세대라 불리던 한국의 1970년대생들은 어떤 이들이었을까. 어떤 정서와 사고를 지닌 이들이기에 40대에 이르러서도 문재인 정권과 여당을 열렬하게 지지하는, 심지어 ‘정치투쟁의 세대’라는 586세대보다 더 강한 충성도를 보이는 세대가 된 걸까.
 
  대부분 측면에서 586세대의 연장선상에 가깝지만, 586세대와는 달리 이제 막 사회로 진출할 무렵 IMF 외환위기를 맞아 전혀 다른 세계관과 가치관을 강요받게 된 세대라는 점이 유일한 차이다. 일단 졸업 직후 취업 자체가 어려웠고, 이후 행보도 녹록지 않았다. 이에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트렌드코리아 2014》에서 “(X세대는) 주변 세대에 끼여 사회적으로 잊혔으며(Forgotten), 안정을 갖출 시기지만 여전히 흔들리고(Fragile), 놀이와 재미(Fun)를 추구하는 영원한 피터 팬(Forever Peter Pan)이란 측면에서 F세대”라고 새롭게 규정하기도 했다.
 
  ‘좋았던 그 시절’ 1990년대의 추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영원한 피터 팬’들은 그렇게 유튜브를 통해 SBS ‘온라인 탑골공원’, KBS ‘가요톱텐’ 등 1990년대 인기 가요들을 돌려보며 대중음악계 뉴트로 열풍의 주역이 되고 있다. 지난해 1990년대 가수 양준일 열풍 등도 이런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풍요롭고 자유롭던 20대 시절의 추억과 2020년대에 40대가 돼 맞이하는 엄혹한 현실 간 갭에 여전히 상처받는 세대다.
 
 
  MZ세대는 미국 X세대와 흡사
 
  한편, 여기서 또 다른 사실도 눈치 챌 수 있다. 1990년대 미국에서 주창한 X세대의 면면(面面)은 오히려 시대를 뛰어넘어 2020년대 한국의 MZ세대와 닮은 구석이 많다는 점이다. 부모 세대의 높은 이혼율, 갑갑한 고용 시장, 첨단기술에 노출돼 세계관의 변화를 독촉받은 세대라는 점 등에서 한국의 MZ세대는 미국의 X세대 환경을 그대로 빼닮았다. 그리고 이들은 실제로 미국 X세대와 비슷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미국 X세대가 그때그때를 즐기며 살자는 모토를 내세웠듯, MZ세대는 욜로(YOLO・You Only Live Once) 즉 ‘인생은 한 번뿐’이라는 기치 아래 미래에 대한 야심이나 대비를 접고 현재 삶에서 최대한 즐거움을 누리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미국의 X세대는 1990년대 후반에 이르러 일종의 신(新)보수주의 경향을 보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정부가 내놓는 이런저런 약속을 신뢰하지 않고 오히려 자유로운 기회를 주문하려는 경향 등에서 리버테리언(libertarian) 성향을 보이며, 문화적으로 전 세대에 비해 다소 고전적 가치를 추구하기도 했다. 미국 X세대 특유의 냉소적이고 빈정거리는 태도 역시 한국의 MZ세대가 인터넷 공간에서 벌이는 각종 행각과 유난히 닮은 점이 있다. 그렇게 돌고 돌아 결국 ‘진짜 X세대’가 한국에 도래한 셈이다.
 
  반면 한국의 X세대는, 굳이 따져보자면, 미국의 1960~70년대 히피 세대와 닮았다고 볼 수 있다. 히피 세대도 한국의 X세대처럼 ‘풍요로운 시절’의 아이들이었다. 1950년부터 1973년까지 이른바 ‘자본주의 황금기’에 자라나 경제적 풍요 속에서 성(性) 개방과 각종 향락을 누리며 자유와 낭만을 부르짖던 세대다. 1969년의 우드스탁 페스티벌 등 대중문화 폭발을 이끌고 누린 세대이기도 하다. 그러다 1973년부터 1975년까지 경기 불황으로 산통(?)이 깨지고, 카터 정권의 경기후퇴를 연이어 감내하면서 꿈과 낭만의 시절을 송두리째 잃어버렸다.
 
  그 밖에도 둘은 묘하게 닮은 구석이 많다. 예컨대 한국의 출산율은 1970년대 출생자가 성인이 된 이후부터 꺾였다는 분석인 것처럼, 미국도 히피 세대가 성년이 된 1960~70년대에 출산율이 급격히 하락했다. 1957년에는 출산율 3.8이던 것이 1976년이 되자 1.7까지 절반 이하로 떨어지고는 이후 다시 상승하기 시작했다. 대중문화계에서는 당시의 출산기피 풍조가 〈악마의 씨〉 (1968년), 〈그것은 살아있다〉(1974년), 〈오멘〉(1976년) 등의 영화 콘텐츠에 반영됐다고 보고 있다. 모두 악마 또는 악마적인 아기가 태어나 그 부모는 물론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다는 테마를 지닌 공포영화로, 흥행에도 대성공했다.
 
 
  ‘온라인 문화’
 
4·7 재보궐선거 이후 청년층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이 새삼 커졌다. 사진은 2021년 5월 25일 열린 송영길 민주당 대표의 ‘서울·부산 청년과의 간담회’. 사진=조선DB
  어찌 됐건 지금 MZ세대는 세간의 가장 큰 화제 중 하나다. 4·7재보궐선거가 도화선이 되기는 했지만, 그 전부터 이들 특유의 소비 트렌드 등에 대해 산업계의 관심이 지대했다. 하여간 ‘뭔가’가 다르다는 것이다. 이런 호기심에 맞춰 MZ세대에 대한 각종 분석 서적들도 잇따라 출간되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1994년생 작가 임명묵의 《K를 생각한다: 90년대생은 대한민국을 어떻게 바라보는가》가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책에서 임명묵 작가는 1990년대생들, 즉 MZ세대로 분류되는 이들에 대해 상당히 입체적인 면면을 제시한다. 이른바 ‘꼰대 문화’에 대한 혐오가 극심하다는 점에서 언뜻 매우 개인주의적인 세대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온라인상에서는 타인에 대해 지극히 간섭적인 행각들을 일삼는 ‘젊은 꼰대’이기도 하다. 또 언뜻 ‘욜로’나 ‘소확행’에 열중하는 듯하면서도 코인 열풍에 휩쓸리는 등 ‘한탕주의’에 매몰(埋沒)되기도 한다. 전반적으로 인터넷 등장으로 비롯된 ‘온라인 문화’가 MZ세대의 의식 구도를 가로지르는 중심 코드로서 지목된다.
 
  그런 점에서 미국 X세대와 한국 MZ세대를 온전히 같은 선상에 놓고 생각해보기는 힘든 측면도 있다. 그러나 그 역시 대중문화 환경이 세대 특성을 가르는 데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는 입장이라는 점에서 강한 인상을 남긴다.
 
  사실이 그렇다. 세대론(世代論)에 의하면 각 세대가 놓인 문화 환경에의 고려와 반영은 기본에 가깝다. 투표 성향 등 이데올로기 바탕이 궁금할수록 더 그렇게 ‘문화로 돌아가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애초 이데올로기 바탕이라는 것도 세대 차원의 문화적 세례(洗禮)가 경제·사회적 환경과 화학작용을 일으켜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화학작용의 이런저런 면면을 섬세히 파악해 세대의 숨은 본질에 접근하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20여 년 전 신세대 1970년대 출생자들을, 고의적이건 아니건 처음부터 잘못 파악하는 통에 그들 스스로조차 자신의 정체성(正體性) 확인이 혼란스러워졌던 과오(過誤)를 돌이켜보면 더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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