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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대중문화 속으로

한국영화는 왜 아카데미상에 약할까

글 :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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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나리〉는 엄연히 ‘미국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예비단계 탈락
⊙ 영화진흥委, “한국의 어두운 역사를 정면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영화”라며 〈남산의 부장들〉을 아카데미 출품작으로 선정
⊙ 아카데미상이 ‘원하는’ 영화가 아니라 영화진흥委가 ‘보내고 싶어 하는’ 영화 출품
⊙ 아카데미, 非영어권 영화로 〈기생충〉처럼 ‘지금, 여기’를 다룬 영화 선호
⊙ 외국인들이 선호하는 ‘한국식 치킨’ 외면하고 ‘한국의 얼’이 담긴 궁중요리·김치 홍보에 매달려

이문원
《뉴시스이코노미》 편집장, 《미디어워치》 편집장, 국회 한류연구회 자문위원, KBS 시청자위원, KBS2 TV 〈연예가중계〉 자문위원, 제35회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역임 / 저서 《언론의 저주를 깨다》(공저), 《기업가정신》(공저), 《억지와 위선》(공저) 등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영화진흥위원회가 아카데미상 출품작으로 밀었으나 예비후보 선정 과정에서 탈락했다.
  지난 3월 15일(현지시각)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가 주관하는 제93회 아카데미상 후보가 발표됐다. 그 즉시 국내 언론 미디어는 일제히 승전보(勝戰譜)를 울렸다. 한국계 미국인 감독 리 아이작 정이 연출한 영화 〈미나리〉의 성과 때문이다. 〈미나리〉는 1980년대 한국인 이민자 가족의 미국 정착기(定着記)를 다룬 정 감독의 자전적(自傳的) 영화다.
 
  〈미나리〉는 아카데미상에서 가장 굵직한 작품상·감독상·각본상 등 6개 부문에 후보 지명(指名)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특히 여우조연상 후보로 한국 배우 윤여정이 지명된 점에 언론 미디어의 관심이 집중됐다. 한국 배우로서 사상 최초의 아카데미상 후보 지명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함께 출연한 한국계 미국인 배우 스티븐 연은 아시아계 미국인 중 최초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지명되는 기록을 남겼다. 여러모로 ‘최초’가 많았다.
 

  세계 영화계 차원에서 아카데미상은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행사다. 그 권위와 평가기준 등에 대해선 의문을 표하는 이가 많지만, 어찌 됐든 그 영향력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不許)하기 때문이다. 아카데미상 시상식은 TV 시청률이 크게 떨어진 2000년대 들어서도 미국에서만 매년 2500여만명이 시청한다. 세계 시청자 수가 120여 개국 2억5000여만명에 이른다. 그러니 이 시상식에서 후보로 이름이 한 번 불리는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홍보 효과가 일어난다. 수상까지 이른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여기서 더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 있다. 물론 〈미나리〉가 대단한 성과를 거뒀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를 통해 지난해 〈기생충〉 쾌거에 이어 한국인들의 이런저런 면면(面面)과 생활상 등이 세계인에게 소개될 기회를 얻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미나리〉의 성과를 ‘한국의 성과’로서 이해한다는 건 어색한 일이다.
 
  〈미나리〉는 엄연히 ‘미국영화’이기 때문이다. 대사 상당 부분이 한국어로 진행되긴 하지만 미국 영화제작사 A24와 플랜B 엔터테인먼트가 미국 자본으로 만든 영화이고, 출연배우 한예리와 윤여정 정도를 제외하고 다른 모든 배우와 스태프도 미국 국적 영화인이다. 지금까지도 클래식으로 사랑받는 영화 〈대부〉 상황을 떠올려보면 이해가 쉽다. 〈대부〉가 이탈리아계 이민자들 얘기를 이탈리아계 미국인 감독과 배우들을 통해 그려냈다고 해서 이를 ‘이탈리아의 성과’로 이해하는 이들은 없다는 것이다. 〈대부〉는 어디서든 ‘할리우드 영화 걸작(傑作)’으로만 여겨질 뿐이다.
 
 
  코트디브와르 영화에도 밀린 한국영화
 
  또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국내 언론 미디어들은 〈미나리〉의 성과에 가려진 ‘숨은 패배(敗北)’는 언급하지 않거나 축소 보도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즉 〈미나리〉처럼 ‘한국계 미국인의 성과’가 아니라 진짜 ‘한국과 한국영화의 성과’가 되리라 기대했던 부문은 이번 아카데미상 후보 지명에서 낙방(落榜)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바로 한국영화로서 아카데미상 국제장편영화상 부문에 출품됐던 영화 〈남산의 부장들〉이 후보 지명에서 떨어진 것이다. 그것도 최종 후보 5편을 뽑는 데서 탈락이 아니라 무려 15편을 미리 뽑아놓는 예비후보에서 떨어져 일찌감치 결판(決判)이 나 있었다.
 
  물론 실망스러운 소식보다는 어떤 식으로든 이른바 ‘국뽕’을 채워주는 소식을 선택하는 게 상업 미디어의 숙명(宿命)이기는 하다. 그러나 〈남산의 부장들〉 후보 탈락, 그것도 예비후보 단계에서 탈락은 세계 대중문화계에서 아카데미상의 의미와 기능을 알고 있을 언론 미디어 입장이라면 절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다.
 
  한국영화는 지금 한창 아카데미상을 위시로 한 미국 무대에서 ‘잘나가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생충〉 쾌거야 다들 아는 얘기고, 그 직전 2019년에도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이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 예비후보까지는 입성(入城)했다. 그것만으로도 당시로서는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도로 원상태’, 즉 예비후보에조차 못 드는 상황으로 돌아와버린 것이다. 그것도 절대 영화 강국이라 볼 수 없는 과테말라·튀니지·코트디부아르 영화까지 입성에 성공한 예비후보 단계에서 말이다.
 
 
  〈남매의 여름밤〉과 〈남산의 부장들〉
 
〈남매의 여름밤〉은 비평가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으나, 아카데미상 출품작으로는 선정되지 못했다.
  이제 ‘숨은 패배’의 주인공, 영화 〈남산의 부장들〉을 돌아보자.
 
  지난해 초 워낙 정치·사회적으로 화제가 돼 많이 알고 있겠지만, 〈남산의 부장들〉은 박정희 정권 당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박정희 대통령 암살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들을 각색한 영화다. 김충식 작가의 동명(同名) 서적을 바탕으로 했다. 그 내용을 두고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등 단체에선 《조선일보》 지면을 통해 규탄(糾彈)성명을 내보낸 바 있다. 영화 내용 중 상당 부분이 실제와는 달리 왜곡(歪曲)돼 있다는 주장이었다. 어찌 됐든 〈남산의 부장들〉은 이런 반발에 노이즈 마케팅 효과를 입은 덕택인지 상당 기간 흥행에 탄력을 얻어 475만 관객을 끌어모으는 데 성공했다.
 
  이어 〈남산의 부장들〉은 아카데미상에서 비(非)영어권 영화를 대상으로 시상하는 국제장편영화상 부문 출품작 선정 경쟁에 신청한다. 국제장편영화상은 한 국가당 한 편씩 출품작을 받으며, 그 나라 대표 영화기관이 주관해 출품작을 결정하는 구조다. 한국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영화진흥위원회 측에서 선정 과정을 주관한다. 일단 출품작 선정에 참여하려는 영화를 신청받은 뒤 심사위원단을 꾸려 최종 출품작을 선정한다. 그렇게 국가당 한 편씩 선정된 영화들을 아카데미상 측 심사위원들이 심사하는 것이다.
 
  이번 제93회 아카데미상 출품작 경우 총 13편의 영화가 경쟁에 참여했다. 가나다 순으로 〈강철비2: 정상회담〉 〈나를 찾아줘〉 〈남매의 여름밤〉 〈남산의 부장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반도〉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인생은 아름다워〉 〈자백〉 〈종이꽃〉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69세〉 등이었다. 심사위원단은 그중 최종적으로 가족드라마 〈남매의 여름밤〉과 〈남산의 부장들〉이 경합(競合)을 벌여 〈남산의 부장들〉이 선정됐다고 밝혔다.
 
  그런데 사실 비평적 평가는 〈남매의 여름밤〉 쪽이 더 좋았다. 〈남매의 여름밤〉은 이미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감독조합상·시민평론가상 등 4개 부문을 받았고, 해외에서도 제49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 밝은미래상을 받았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은 별 다섯 개 만점에 네 개를 주며 “눈앞에서 유년기의 어느 계절이 절실하게 흘러간다”는 한 줄 평을 남기기도 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영화 평점에서도 관람객과 평론가들에게서 모두 〈남산의 부장들〉보다 높은 점수를 얻었다.
 
 
  잘못된 선택
 
  그럼에도 왜 〈남산의 부장들〉이 선정된 걸까. 이에 영화진흥위원회 심사위 측은 “(〈남산의 부장들〉은) 전후 비약적인 경제적 발전을 이루었고, 지금은 문화적인 흐름을 선도하는 한국의 다소 어두운 역사를 정면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영화”라며 “미국에서 인지도가 높은 이병헌 배우의 연기도 뛰어나다”고 선정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미 역사 왜곡 논란이 일어난 영화에 대해 “역사를 정면으로 보여준다”는 해설을 붙여도 되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어찌 됐든 모든 것은 결과가 말한다. 세계 93개국에서 한 편씩 영화를 내 그중 15편을 선정하는 예비후보에서도 낙방한 결과 말이다. 〈남산의 부장들〉은 잘못된 선택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언론 미디어에서 이 같은 실패를 짚어 분석하려고 하면 재빨리 따라붙는 힐난이 있다. 이데올로기 편향(偏向)적 비판, 또는 ‘숨은’ 정치적 의도를 지닌 비판이라는 식 힐난이다. 어쩌면 그래서 언론 미디어의 보도가 지지부진했던 것일 수도 있다.
 
  비단 〈남산의 부장들〉 경우만은 아니다. 영화 〈택시운전사〉 때도, 〈웰컴 투 동막골〉 때도 그랬다. 특정 역사관이나 이데올로기적 경향을 띤 영화들이 도마에 오르기만 하면 늘 벌어지는 일이다. 그저 아카데미상 성격에 잘 맞지 않는 잘못된 선정이었다는 의견만 내놓아도 그런 힐난들이 쏟아진다. 나아가 이런저런 ‘정치적 음모론’까지 동원되는 경우도 많다. 실제적으로 패인(敗因) 분석 자체가 ‘언급 금지’ 돼버리는 셈이다. 이번에는 폭발적으로 쏟아진 〈미나리〉 성과 보도 덕에 ‘실패’가 자연스럽게 묻혀버리긴 했지만 말이다.
 
  당연히 실제로는 그런 차원의 문제가 전혀 아니다. 패인은 영화의 역사관이나 이데올로기 등과는 전혀 다른 지점에서 발생한다. 상황을 처음부터 찬찬히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한국영화가 아카데미상에 약한 이유
 
  한국에서 아카데미상 국제장편영화상(2020년 이전까지 ‘외국어영화상’) 부문에 영화를 출품해온 역사는 생각보다 길다. 1962년 제35회 아카데미상 외국어영화상 부문에 신상옥 감독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가 출품된 게 최초다. 그리고 지난해 〈기생충〉이 최초의 동일 부문 수상이자 후보 지명 차원에서도 최초가 됐다. 그 사이 57년 동안 한국은 29편이 모두 낙방한 것이다.
 
  물론 20세기까지야 한국영화, 아니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세계 무대에서 잘 알려지지 않다 보니 그럴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이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2000년대 들어서도 무려 17번을 떨어지다 2019년 〈버닝〉에 가서야 처음 예비후보에 들게 됐다는 것은 어딘지 문제가 있다.
 

  물론 그사이에도 한국영화는 다른 해외 국제영화제에선 승승장구(乘勝長驅)했다. 〈올드보이〉가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 〈빈 집〉은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사마리아〉는 베를린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다. 이 밖에도 3대 국제영화제 수상 성과는 많다. 적어도 한국영화 ‘수준’이 낮아 매번 아카데미상에서 낙방했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얘기다.
 
  그럼 유독 아카데미상에만 약한 한국영화의 현실은 원인이 뭘까. 하나밖에 없다. 세계 3대 국제영화제의 경우 국내에서 출품작을 선정하는 과정 없이 원하면 몇 편이라도 영화제 측에 직접 출품 신청을 할 수 있다. 몇몇 영화제에서는 프로그래머가 직접 한국으로 찾아와 될성부른 영화 몇 편을 관람하고는 알아서 자신들에게 맞는 영화를 가져가기도 한다. 결국 유독 아카데미상에서만 힘을 못 쓰는 한국영화 현실은 전적으로 영화진흥위원회 측 아카데미상 출품작의 선정 과정에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그동안 대체 어떤 영화들을 아카데미상 측에 보내왔기에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인지 의아해질 수밖에 없다.
 
 
  ‘과거사 영화들’
 
  2000년대 21년 동안 아카데미상에 출품한 20편 한국영화들을 살펴보면, 일단 6·25전쟁 소재 영화 3편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태극기 휘날리며〉 〈웰컴 투 동막골〉 〈고지전〉 등이다. 일제시대 황옥 경부 폭탄사건, 5·18과 10·26 등 20세기 실제 사건 토대 영화, 또 〈밀정〉 〈택시운전사〉 〈남산의 부장들〉 등 3편이다. 한편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간 조선시대 배경 사극도 〈춘향뎐〉 〈왕의 남자〉 〈사도〉까지 3편이 된다. 모두 이른바 과거사(過去事) 영화들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 〈어우동〉 〈내시〉 등 조선시대 배경 사극과 1945년 해방 후 상황을 다룬 반공영화 〈카인의 후예〉 등이 선정·출품됐다.
 
  그러나 단적으로 특정 국가 역사와 밀접하게 관련된 영화는 본래 그 나라 밖 관객들이 즐기고 이해하기에는 ‘허들’이 높다.
 
  예컨대 미국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을 다룬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2012년 작 〈링컨〉을 들 수 있다. 관련 역사를 정규교육 과정에서 충분히 배운 미국 관객에게는 열광적 반응을 얻어 흥행에 대성공하고 비평적으로도 찬사를 받아 아카데미상 12개 부문 후보로 지명됐지만, 미국 외 국가에서는 반응이 전혀 달랐다. 당시 미국의 정치·사회적 기류에 대한 학습이 거의 안 돼 있다 보니 영화 속 갈등구조를 정확히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강했다. 그래서 대부분 국가에서 흥행에 참패하고 비평적으로도 고르지 못한 평가를 받는 데 그쳤다.
 
  물론 그보다 한참 나중인 20세기에 미국에서 벌어진 사건을 다룬 영화들도 대부분 상황이 비슷했다. 마틴 루서 킹과 그의 셀마 몽고메리 행진을 다룬 영화 〈셀마〉 등이 그 예다. 미국에서의 흥행 및 비평적 성공과 달리 미국 바깥 나라에서는 웬만큼 영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마저 그 존재조차 모르는 경우가 부지기수(不知其數)다.
 
  물론 미국 관객들은 다소간 친밀감 있는 유럽 각국의 역사나 문화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도와 이해도가 높은 편이다. 그래서 영국 왕실이나 귀족층을 다룬 영화들은 의외로 미국에서 반응이 좋다. 그러나 아시아 역사는 전혀 다른 얘기다. 더군다나 한국은 그중에서도 역사적 배경이 낯선 나라다. 이미 1960~70년대부터 서구에 꾸준히 소개돼 서구인들에게 친숙한 중국 무협영화나 일본 사무라이 영화 등과는 처지가 크게 다르다. 한국의 경우 특수한 정치사(政治史)를 다룬 영화는 물론이고 조선왕조나 일제시대, 심지어 6·25전쟁 영화조차 서구인들이 수월하게 감상하기가 어렵다.
 
 
  아카데미, ‘지금, 여기’를 다룬 영화 선호
 
2020년 2월 9일 봉준호 감독은 ‘지금, 여기’를 다룬 영화를 선호하는 아카데미상의 요구에 맞는 〈기생충〉으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사진=뉴시스
  그럼 과연 아카데미상이 선호하는 해외 비(非)영어권 영화란 어떤 것일까. 쉽게 ‘지금, 여기’를 다룬 영화들이라 볼 수 있다. 현대 시점에서 해당 국가의 사회·문화적 현상과 딜레마를 다룬 영화 말이다. 그런 환경과 조건을 놓고 모두가 이해하기 쉬운 보편적 중산층 윤리관 기반으로 사사로운 개개인 간 갈등과 번민에 천착(穿鑿)해 인본주의(人本主義)적 입장에서 상황을 풀어내는 영화를 선호한다. 당장 이번 제93회 아카데미상 국제장편영화상 최종 후보로 꼽힌 5편 영화의 면면으로도 상황을 쉽게 알 수 있다.
 
  덴마크의 〈어나더 라운드〉는 일련의 학교 교사들이 삶의 무료함에 지쳐 매일 일정량 술을 마시기로 작정하며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 코미디다. 홍콩의 〈소년시절의 너〉는 고등학생들의 입시 경쟁과 집단 따돌림 등 학원 문제를 다룬 영화고, 루마니아의 〈콜렉티브〉는 2015년 발생한 화재사건을 중심으로 루마니아 의료제도 부패상을 고발한 다큐멘터리다. 대부분 이런 식이다. ‘지금, 여기’가 골자(骨子)다. 어느 나라, 어느 문화권에서든 쉽게 이해하고 공감하는 현대사회 풍경을 선호한다.
 
  지난해 〈기생충〉이 아카데미상 4개 부문 수상의 쾌거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이나, 2018년 〈버닝〉이 아카데미상 예비후보에라도 오를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지금, 여기’를 다룬 영화였기 때문이다. 두 편 모두 현대 한국을 배경으로 빈부격차(貧富格差)에 따른 계층 갈등이라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 어디에서나 발생하는 딜레마에 접근한 영화들이다. 10·26사건이 일어난 한국의 1970년대 특수한 정치·사회적 배경을 이해해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남산의 부장들〉 등과는 전혀 다르다.
 
 
  ‘팔려야만 하는 상품’에 몰두
 
  그럼 아카데미상 출품작을 선정하는 영화진흥위원회와 그 심사위원들은 이런 아카데미상 속성에 대해 전혀 몰랐을까. 그런 예상은 참 힘들다. 몇몇 데이터만 잠깐 들여다보면 빤히 알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 왜 〈남산의 부장들〉 같은 ‘실패’가 계속 벌어지고 있는 걸까. 상당 부분 아카데미상이 ‘원하는’ 영화를 뽑아 출품하고자 한 게 아니라 한국의 영화진흥위원회 측에서 ‘보내고 싶어 하는’ 영화를 보내는 엇박자 상황이 꾸준히 반복돼왔다고 볼 수밖에 없다.
 
  사실 이와 유사한 상황은 한국 문화계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당장 ‘K팝’ 열풍의 중심인 ‘아이돌’ 상품만 해도 그렇다. 2000년대 들어 한국 아이돌이 아시아 각국에서 좋은 반응을 얻기 시작할 때도 유독 국내 주류(主流) 언론 미디어만큼은 이에 이중적 반응을 보였다. 한류(韓流)의 성과를 줄기차게 보도하면서도, 동시에 ‘이런 국적불명 상품’이 인기를 얻는다는 점에 비판적 견지(見地)를 늘 내비쳤다. 그러면서 ‘팔리는 상품’이 아니라 자신들이 보기에 ‘팔려야만 하는 상품’을 홍보하는 데 주력했다. 때로는 그 ‘팔려야만 하는 상품’이 국악(國樂)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홍대 인디밴드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10여 년에 걸쳐 이중적 자세로 K팝을 대해오다 결국 K팝이 미국 시장에까지 상륙해 좋은 반응을 얻어내자 그제야 태도가 바뀐 경우다.
 
 
  김치와 치킨
 
  대중문화계를 떠나서도 비슷한 일은 숱하게 벌어진다. 예컨대 한식(韓食) 한류만 해도 그렇다. 2010년 농수산물유통공사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류근찬 당시 자유선진당 의원은 공사의 한식당 개설자금 지원 예산으로 치킨사업을 지원했다는 점을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류 의원은 “양념치킨, 라이스치킨, 불고기치킨 덮밥 등 이런 게 어떻게 우리 전통음식이냐”면서 “우리가 언제부터 닭을 기름에 튀겨 먹었느냐”고 공사 측을 질타했다.
 
  이 같은 류 전 의원 의견은 사실 그만의 특이한 발상이 아니었다. 당시 한국인들, 한국 언론 미디어의 전반적 태도가 그랬다. 되도록 한국만의 특색을 담은 전통음식이 세계로 알려지기를 원했고, 그중에서도 궁중음식 등 보기 좋고 손이 많이 가는 한정식 위주 음식이 한국을 대표하길 바랐다.
 
  그 당시에도 국내 거주 외국인들의 의견을 물어본 언론 미디어 이런저런 조사에서 가장 선호하는 한국음식으로는 한국식 치킨이 최상위로 꼽혔다. 어찌 됐든 외국인들은 이를 한국만의 특색 있는 음식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다만, ‘우리가’ 이를 탐탁지 않게 여겼을 뿐이다. 더 자랑할 만한 것, 보여주고 싶은 것들이 많은데 왜 국적불명의 음식이 한식 대표처럼 여겨지느냐는 것이었다. 이후로도 한식 홍보는 김치나 된장찌개 등 우리의 ‘얼’이 담겼다는 음식들을 소개하기에 바빴다. 김치나 된장찌개 같은 발효음식은 특유의 냄새 때문에 외국인들이 싫어하는 음식으로 자주 꼽혀왔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이다.
 
  그리고 2020년,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2020 해외 한식 소비자 조사’는 외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한식으로 ‘한국식 치킨’이 꼽혔다는 결과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알리고 싶어 했던’ 수많은 전통음식, 궁중요리를 가볍게 제치고서 말이다. 시장은 ‘좋은 것’이 팔리는 게 아니라 사려는 이가 ‘필요로 하는 것’이 팔리는 장소일 따름이다.
 
 
  〈아가씨〉와 〈밀정〉
 
영화 〈아가씨〉는 외국에서 여러 상을 수상하는 등 호평을 받았지만, 영화진흥위원회는 〈밀정〉을 아카데미상 출품작으로 선정했다.
  결국 영화진흥위원회의 아카데미상 출품작 선정 문제도 바로 이런 딜레마 탓이리라 짐작해볼 수 있다. 한국 대중은 오랫동안 세계 무대에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없었던 설움이 깔려 있기라도 한 탓인지, 이런 부분에서마저 어떻게든 ‘한국의 역사’ ‘한국인의 정신’ ‘한국의 발전사’ ‘한국의 민주화 과정’ 등 ‘한국’ 그 자체를 세계에 알려 인정받고자 하는 인정욕구가 워낙 강하다. ‘영화’로서 매력 있는 게 아니라 어찌 됐든 ‘한국’을 잘 설명해주는 콘텐츠라야 낙점이 되는 분위기다.
 
  〈남산의 부장들〉 이전에 이런 문제가 가장 크게 대두된 게 2016년 〈밀정〉의 선정 건이었다. 1920년대 일제시대 배경으로 조선인 출신 일본경찰이 무장독립운동단체 의열단 뒤를 캐라는 특명을 받고 벌어지는 갈등과 대립을 그린 영화다. 그런데 당시 미국 평단에서는 이미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가 큰 호평을 받으며 선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같은 일제시대 배경이지만 항일(抗日)과 관련된 대목은 전혀 없고, 영국 작가 세라 워터스 소설을 원작으로 한 에로틱 스릴러였다. 소위 ‘탐탁지 않은 구석’이 있었다는 얘기다.
 
  결국 〈아가씨〉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영화비평가협회상 등 수많은 비평가상을 휩쓸고 영국아카데미상에서도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받아, 아카데미상에 보내기에 최적의 선택지임을 스스로 증명해냈다. 게다가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선택한 〈밀정〉은 아카데미상 예비후보에도 오르지 못했다. 하도 말이 안 되는 상황이다 보니 이를 놓고 영화 〈아가씨〉의 감독인 박찬욱이 이른바 ‘박근혜 정권 블랙리스트’에 들어 있어 뽑지 않았다는 음모론까지 각종 언론 미디어를 통해 나돌기도 했다.
 
 
  內需用 발상의 한계
 
  재차 언급하지만, 아카데미상 출품작 선정 문제는 한국 근대사를 바라보는 관점이나 이데올로기 차원 문제로 비화(飛火)되면 오히려 그 본질이 흐려질 우려가 있다. 근대사 관련으로 〈택시운전사〉나 〈남산의 부장들〉과는 관점이 다른 〈국제시장〉 같은 영화가 출품된다고 해도 똑같이 문제가 된다는 얘기다. 이 점에 집중해 상황을 개선해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3년 전 〈택시운전사〉가 아카데미상 후보 지명에서 낙방한 때에 그 선택을 비판하는 칼럼을 쓴 필자의 경험담이 있다. 당연히 필자가 제시하는 미래 방향에 동의하는 반응이 많으리라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그중 어느 한 댓글이 지금까지 기억난다.
 
  “미국 눈치 보면서 하느니 우리 자랑스러운 민주화 역사 보내는 게 맞는 처사다. 앞으로도 계속 그래야 한다. 왜 다른 나라 눈치 보면서 하고픈 말도 못 하나? 뭐가 무서워서?”
 
  초점에서 참 많이도 벗어난 얘기다. 어쩌면 아카데미상 선정 과정도 근본적으로는 아카데미상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국내 대중에게서 비판받지 않기 위해 행해지는 ‘내수용(內需用) 발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 해봤다. 어이없는 실패가 계속 이어지더라도… 그래서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 것일 수도 있겠다. 가야 할 길이 상당히 멀다.
 
  이번 제93회 아카데미상 관련으로 언론 미디어의 논조(論調) 정도는 분명 바뀔 필요가 있다. 언론 미디어부터 나서 이번 대(對)아카데미상 전략은 ‘〈미나리〉의 성공’이 아니라 ‘〈남산의 부장들〉의 패배’였고, 그러니 자축(自祝) 분위기가 아니라 경각심(警覺心)을 갖고 변화를 모색해야 할 때라는 점에 의중을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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