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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Q의 시 읽기 〈47〉 세르반테스의 ‘불가능한 꿈’

“불가능한 꿈속에서 사랑에 빠지고…”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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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돈키호테》의 시를 뮤지컬 〈라 만차의 사람〉에서 ‘불가능한 꿈’으로 노래
⊙ ‘잡을 수 없는 저 별을 잡으려고 손을 뻗는 것, 이것이 나의 여정’
《돈키호테》를 쓴 세르반테스.
  그것은 진정한 기사의 임무이자 의무.
  아니! 의무가 아니라, 특권이노라.
 
  불가능한 꿈을 꾸는 것.
  무적의 적수를 이기며,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고
  고귀한 이상을 위해 죽는 것.
  잘못을 고칠 줄 알며,
  순수함과 선의로 사랑하는 것.
  불가능한 꿈속에서 사랑에 빠지고,
  믿음을 갖고, 별에 닿는 것.
 
  -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 중에서
 
 

  Es la misio´n del verdadero caballero. Su deber.
  No! Su deber no. Su privilegio.
 
  Son˜ar lo imposible son˜ar.
  Vencer al invicto rival,
  Sufrir el dolor insufrible,
  Morir por un noble ideal.
  Saber enmendar el error,
  Amar con pureza y bondad.
  Querer, en un suen˜o imposible,
  Con fe, una estrella alcanzar.
 
  - 《Don Quijote de La Mancha》 written by Miguel de Cervantes
 
 
스페인 광장에 세워진 돈키호테와 산초 판자.
  미겔 데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1547~1616)가 쓴 《돈키호테(Don Quixote)》(1605)에 나오는 시다. 핍박받는 자들의 편에 서서 자신의 이름을 ‘알폰소 키하노’ 대신 ‘돈키호테’라고 고치고 ‘산초 판자’와 함께 길을 나선다. 그의 여행이 어처구니없고 황당할지라도 ‘불가능한 꿈속에서 사랑에 빠지고, 오직 믿음을 갖고 별을 향해’ 길을 떠난다.
 
  ‘불가능한 꿈속에서 사랑에 빠진다’는 이 시에는 돈키호테의 황당무계하지만 아름다운 이상주의가 담겨 있다. 영어의 ‘키호티즘(Quixotism)’이라는 단어가 있다. 자신의 꿈과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저돌적으로 나아가는 성품이나 경향을 일컫는 말인데 돈키호테에서 파생되었다. 풍차를 거인으로 생각하고, 양떼를 교전 중인 군대로 생각하며, 포도주가 든 가죽 주머니를 상대로 격투를 벌인 돈키호테를 떠올려보라.
 
  훗날 소설 《돈키호테》를 각색한 뮤지컬 〈라 만차의 사람(Man of La Mancha)〉에서 극중 돈키호테가 부르는 ‘불가능한 꿈(Impossible Dream)’은 앞서 시에서 느껴지는 장중함을 넘어 달콤하며 낭만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고(故) 장영희 서강대 교수의 번역이다.
 
  이루지 못한 꿈을 꾸고
  쳐부수지 못할 적과 싸우며
  견디지 못할 슬픔을 견디고
  용감한 사람도 가기 두려워하는 곳에 가고
  순수하고 정결한 것을 사랑하고
  잡을 수 없는 저 별을 잡으려고 손을 뻗는 것,
  이것이 나의 여정이다.
 
  아무리 희망이 없어 보여도,
  아무리 길이 멀어도,
  정의를 위해서 싸우고
  천상의 목표를 위해서는 지옥에 가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이 영광의 여정에 충실해야 나 죽을 때 평화로우리
 
  그리고 이것 때문에 세상은 더 좋아지리
  아무리 조롱받고 상처 입어도
  한 사람이라도 끝까지 노력한다면
  잡을 수 없는 저 별을 위해
 
  - 장영희가 번역한 ‘불가능한 꿈’ 중에서

 
 

  ‘지옥에서 쫓겨나도 당신을 만나 사랑할 것이다’
 
국내 공연된 《돈키호테》를 각색한 뮤지컬 〈라 만차의 사람〉. 배우 조승우가 돈키호테로 열연했다.
  매력적인 표현들로 가능하다. 희망이 없어 보이고 길은 멀어도, 조롱받고 상처 입어도 오직 잡을 수 없는 저 별을 향해 떠나는 여정! ‘불가능한 꿈’을 읽자니 문득 《논어》의 ‘술이(述而)’편에 나오는 ‘발분망식(發憤忘食)’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열심히 노력(발분·분발)하면 먹는 것도 잊고, 근심도 잊으며 하는 일이 즐거워질까. 돈키호테처럼 저 별을 향해 근심, 걱정을 잊고 삶의 여정에 충실할 수 있을까.
 
  ‘불가능한 꿈’ 구절 중에 ‘천상의 목표를 위해서는 지옥에 가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라는 말이 있다. ‘지옥에 가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라는 표현에 오래 눈길이 머문다. 정호승 시인의 시집 《당신을 찾아서》(2020)의 23쪽에 있는 시 ‘지옥은 천국이다’가 떠오른다.
 
  지옥은 천국이다
  지옥에도 꽃밭이 있고
  깊은 산에 비도 내리고
  새들이 날고
  지옥에도 사랑이 있다
 
  나 이 세상 사는 동안
  아무도 나를 데려가지 않아도
  반드시 지옥을 찾아갈 것이다
 
  지옥에서 쫓겨나도
  다시 찾아갈 것이다
  당신을 만나
  사랑할 것이다
 
  -정호승 시인의 ‘지옥은 천국이다’ 전문

 
  시인에게 지옥은 우리의 일상과 다르지 않다. 꽃밭이 있고 깊은 산이 있으며 그곳에 비가 내린다. 새들이 날고 또 사랑이 있다. 그런데 사랑하는 이가 지옥에 있다. 사랑하는 이를 찾으러 지옥에 가야 한다. 지옥에서 쫓겨나도 다시 찾아간다. 찾아가고야 만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사랑하는 사람이 무시무시한 지옥에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사랑을 잊어야 할까. 다른 사랑을 찾아야 할까. 아니면 그 사랑을 찾아 불길 지옥에라도 뛰어들어야 할까.
 
 
  정호승 시인의 ‘별’, 김남권 시인의 ‘별’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돈키호테는 믿음을 갖고 별에 닿기 위해 먼 길을 떠났다.
  정호승 시인은 별의 시인이다. 별에 대한 이야기가 유독 많다. 시집 《별들은 따뜻하다》(1990)를 꺼내 다시 읽어보았다. 돈키호테에게 삶의 여정은 별을 쫓는 것과 다름 아니다. 미치광이 취급을 당하고 뭇매를 맞아도 ‘믿음을 갖고 별에 닿는 것’이 돈키호테가 꿈꾸는 삶이다.
 
  정호승 시인에게 별은 ‘위로’의 상징이다. ‘내 가난의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따뜻하다’. 그래서 삶을, 죽음마저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하늘에는 ‘나’를 지켜보는 ‘눈’이 있기 때문이다.
 
  하늘에는 눈이 있다
  두려워할 것은 없다
  캄캄한 겨울
  눈 내린 보리밭길을 걸어가다가
  새벽이 지나지 않고 밤이 올 때
  내 가난의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따뜻하다
 
  나에게
  진리의 때는 이미 늦었으나
  내가 용서라고 부르던 것들은
  모든 거짓이었으나
  북풍이 지나간 새벽거리를 걸으며
  새벽이 지나지 않고 또 밤이 올 때
  내 죽음의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따뜻하다
 
  -정호승 시인의 ‘별들은 따뜻하다’ 전문

 
  김남권 시인은 감성의 시인이다. 잔잔하지만 밝고 아름답다. 그중에서 ‘별의 노래1’은 특별나다. 별에 수도꼭지가 있다. 저녁이면 말끔히 세수를 하고 ‘나’를 기다린다. 말똥말똥한 별빛을 저녁 하늘에서 만날 수 있다는 얘기다.
 
  모든 별에는 수도꼭지가 있어
  이른 저녁이 되면
  말끔히 세수하고 나와 나를 기다리네
  ‌내가 부르지 않아도 서낭당 느티나무 정자를
  베고 누워
  나를 올려다보네
  노을과 몸을 바꾸는 아홉시가 되면
  아침의 노여움도 어둠 속에 둥지를 틀고
  바람의 표정을 바꾸네
  모든 별들이 우주의 눈을 밝히는
  자정이 되면
  수선화처럼 푸른 어깨를 내밀어
  숨 막히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네
  늦은 세수를 하고 다시 보아도
  너는 호수에서 막 깨어난 듯 눈이 부셔
  가슴에 손을 얹고 눈 감을밖에
 
  -김남권 시인의 ‘별의 노래1’ 전문

 
  ‘노을과 몸을 바꾸는 아홉시’ ‘별들이 우주의 눈을 밝히는 자정’을 지나 별들이 ‘숨 막히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마지막 3행이 압권이다. ‘늦은 세수를 하고 다시 보아도/ 너는 호수에서 막 깨어난 듯 눈이 부셔/ 가슴에 손을 얹고 눈 감을밖에’ 없다. 늘 우리의 머리 위에서 반짝이는 별은 역설적으로 우리의 삶도 반짝이게 만든다. 그런 삶에 ‘가슴에 손을 얹고 눈 감을밖에’.
 
 
  차동엽 신부의 ‘참 좋은 당신’, 간디의 따뜻한 마음씨
 
  고(故) 차동엽 신부의 유고시집 두 권이 나왔다. 첫 번째 시집 《참 소중한 당신》(2020)에 실린 ‘참 소중한 당신’은 작고 소박하며 평범하지만 신(神)의 사랑을 받는 특별한 ‘당신’을 노래한다. ‘한 잎’ ‘아주 작은 생명’ ‘오물거리는 몸짓’ 같은 자그마한 존재가 ‘나’이자 ‘당신’이다. 그러나 이처럼 작은 ‘나’(이자 ‘당신’)는 신비로움이 가득한 저 먼 별을 바라보며 내일의 비상을 노래하고, 부러진 나래에서 희망을 속삭인다. 시 속 ‘별 하나’는 돈키호테의 여정에서 마주한 ‘별’과 다르지 않으리라.
 
  한 잎 의미로 피어나기 위해 미소 짓는 당신,
  아주 작은 생명의 움에서 소중함의 함성이
  오물거리는 몸짓에서 소중함의 얼굴이
  남몰래 훔치는 눈물에서 소중함의 목마름이
  그대로 우리 품에 스며듭니다.
  당신의 존재는 소중합니다.
 
  한 자루 사랑이 되기 위해 생애를 태우는 당신,
  거짓의 꽃밭 속에 진실의 씨앗을 심을 때,
  얼어붙은 마음들에 따스함의 밑불을 지필 때,
  바람처럼 스치는 인연에 가슴을 여밀 때,
  벗을 위해 목숨 바친 님 모습이 스칩니다.
  당신의 믿음은 소중합니다.
 
  별 하나 바라보며 내일의 비상을 노래하는 당신,
  부러진 나래에게 희망을 속삭이매,
  깜박이는 심지에 격려의 기름을 부으매,
  이른 새벽에 이슬 모아 홀로이 기도하매,
  미명을 뚫고 찬란한 태양이 떠오릅니다.
  당신의 꿈은 소중합니다.
 
  -차동엽 신부의 ‘참 소중한 당신’ 전문

 
  언젠가 차 신부는 ‘참 소중한 당신’을 이야기하며 인도의 국부(國父) 마하트마 간디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막 출발하려는 기차에 간디가 올라탔다. 그 순간 그의 신발 한 짝이 벗겨졌다. 기차가 이미 움직이고 있어서 그 신발을 주울 수 없었다. 그러자 간디는 얼른 나머지 한 짝을 벗어 그 옆에 떨어뜨렸다. 그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어떤 가난한 사람이 바닥에 떨어진 신발 한 짝을 주웠다고 상상해보십시오. 그에게는 그것이 아무런 쓸모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는 나머지 한 짝마저 갖게 되지 않았습니까?”
 
  차 신부는 “우리에게도 이런 마음씨가 필요하다”고 했다. ‘참 소중한 당신’은 간디같이 ‘따스함의 밑불을 지피는’ 마음씨를 가진 이가 아닐까.
 
 
  ‘인공위성’과 ‘별’의 차이
 
왼쪽부터 정호승 시인의 시집 《당신을 찾아서》, 《별들은 따뜻하다》, 이창기 시인의 《꿈에도 별은 찬밥처럼》, 김남권 시인의 《발신인이 없는 눈물을 받았다》, 차동엽 신부의 유고시집 《참 소중한 당신》.
  누구나 돈키호테 같은 순수한 열정으로 별을 바라보지는 않는다. 1984년 문학 계간지 《문예중앙》의 등단작인 이창기의 ‘꿈에도 별은 찬밥처럼’에 나오는 친구 ‘둘째고모’의 눈에 비친 별은 돈키호테가 바라보는 별과 다르다.
 
  친구의 둘째고모는 정부미를 일반미라 속여 판다. 사기꾼의 눈에 비친 별은 별이 아니라 별처럼 생긴 인공위성일 뿐이다. 별과 인공위성이 비슷할지 몰라도 둘은 절대 같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순수하지 않은 꿈은, 결코 ‘불가능한 꿈’을 이룰 수 없다.
 
  ‌정부미 상품(上品)을 일반미라 속여 파는
  둘째고모를 가진 친구가 봉천동 비탈길
  이마 위에 떠 있는 늘 부지런한 별을 보고
  자꾸 인공위성이라고 부득부득
  우겼다 별이 별이 아니라는 물증(物證)을
  확보하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기도 했지만
  인공위성이 아니라는 이 해외 토픽에도
  밤 아홉시 뉴스에도 나지 않았다 그 겨울의
  별은 찬밥처럼 부정적으로 빛났다 (하략)
 
  -이창기 시인의 ‘꿈에도 별은 찬밥처럼’ 일부

 
  별을 바라보며 꾸는 꿈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마력이 있다. 사람은 자기가 꾸는 꿈만큼 성장한다.
 
  일본인들이 많이 기르는 관상어 중에 ‘고이’라는 잉어가 있다. 놀랍게도 이 잉어는 작은 어항에 두면 5~8cm밖에 자라지 않지만 큰 수족관에 넣으면 15~25cm까지 자란다고 한다. 그리고 강물에 방류하면 90~120cm까지 큰다. 고이는 자신이 사는 환경에 따라 성장한다는 것이다. 차동엽 신부는 생전 이런 말을 했다.
 
  “우리의 생각이 잉어 고이가 처한 환경과 같다면, 우리가 더 큰 생각을 품고 더 큰 꿈을 꾸면 더 크게 자랄 수 있습니다.”
 
  이렇듯 생각의 크기는 제한을 받지 않는다. ‘불가능한 꿈’도 반드시 이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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