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이한우의 ‘시사와 역사로 주역을 읽다 以事讀易’ 〈11〉 大有괘와 괘를 통해 지금의 정국을 풀이하다

“곧기만 하고 일의 이치를 모르면 강퍅해진다”

글 :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 총선 이후 민주당은 大有괘(☲☰)에 해당… 한마디로 뜻을 잘 모았기에 사람들을 많이 소유하고 있다는 뜻
⊙ 윤석열 공격하는 정부·여당, 謙괘를 거부해 한순간에 夬괘(☱☰)에 이르러
⊙ “광대뼈에서 강건해 흉함이 있고 군자는 과단성 있게 결단하고[夬夬] 홀로 가서 비를 만나니 젖는 듯이 여겨 노여워함이 있으면 허물이 없다”
⊙ 漢나라 元帝 때 석현, 재상 소망지를 ‘黨을 짓는다’고 음해해 죽음으로 몰고 가

이한우
1961년생. 고려대 영문학과 졸업, 同 대학원 철학과 석사, 한국외국어대 철학과 박사 과정 수료 / 前 《조선일보》 문화부장, 단국대 인문아카데미 주임교수 역임
  지난 4·15총선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압승을 거뒀다. 지역구와 비례대표만 해도 176명에 이른다. 이는 《주역(周易)》으로 보자면 대유(大有)괘(☲☰)에 해당한다. 한마디로 뜻을 잘 모았기에 사람들을 많이 소유하고 있다는 뜻이다. 정치적 입장과는 별개로 민주당이 총선 대승으로 화천대유(火天大有)괘의 상황에 이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동안 우리는 인물 중심으로 《주역》을 풀었기에 주로 효(爻)에 집중했다. 상황에 초점을 맞출 경우에는 괘(卦) 자체에 먼저 주목해야 한다.
 
  대유괘는 바로 앞의 동인(同人)괘(☰☲)에 이어지는 괘다. 이는 아래에 있는 불이 하늘 위로 타고 올라가는 모양인데 대유괘는 위아래가 그대로 뒤집힌 것이다. 이처럼 《주역》에는 64개의 괘가 차례대로 되어 있는데 이를 ‘서괘전(序卦傳)’이라고 한다. 공자가 풀이한 것인데 대체로 상황의 변화가 이 서괘전 순서를 따라갈 때 순조로운 것으로 본다.
 
  동인괘 다음에 대유괘가 오게 되는 것에 대해서도 공자는 서괘전에서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사람과 물자가 모여들 것이다. 그래서 동인괘의 뒤를 대유괘로 받았다.”
 
  대유괘를 보면, 화천대유괘(☲☰)는 건(乾)괘(☰)가 아래에 있고 이(離)괘(☲)가 위에 있는 건하이상(乾下離上)의 모양을 하고 있어 천화동인(天火同人)괘(☰☲)와는 종괘(綜卦·위아래가 뒤집힌 모양)의 관계를 이루고 있다. 전체 모양을 보면 하나의 음 육오(六五)가 나머지 다섯 양을 거느리고 있는 형상이다. 그래서 많이 소유하고 있다는 뜻이 나왔다. 또한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도 부드러운 다움[柔德]을 갖고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모여든다. 그래서 대유(大有)는 크게 소유하고 있다고도 하고 많이 모여든다고도 한다. 이런저런 논란이 있겠지만 문재인(文在寅) 대통령이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부드러운 성품을 드러내 많은 사람의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대유괘의 뒤에는 謙괘가 와야
 
  서괘전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크게 소유한 자[有大]는 가득한 척[盈=驕慢]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대유(大有)괘의 뒤를 겸(謙)괘로 받았다.”
 
  많이 소유하게 되면 사람은 쉽게 거만해진다[盈]. 여기서 《논어(論語)》 학이(學而)편에 나오는 공자와 자공(子貢)의 대화를 깊이 음미해야 한다.
 
  〈자공이 말했다.
 
  “가난하지만 비굴하게 아첨[諂]을 하지 않는 것(사람)과 부유하지만 교만하지 않는 것(사람)은 어떠합니까?”
 
  공자가 말했다.
 
  “그것도 좋다. 하나 가난하지만 즐거이 살 줄 아는 것(사람)과 부유하지만 예를 좋아하는 것(사람)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자공이 말했다.
 
  “《시경(詩經)》에 ‘잘라내 문지르듯, 갈듯, 쪼고 다듬듯, 그리고 또 갈듯[切磋琢磨]’이라 했으니 바로 그 스승님께서 말씀하시려는 바를 말하는 것입니다.”
 
  공자가 말했다.
 
  “사(賜·자공)야! 비로소 (너와) 더불어 시를 말할 수 있게 됐구나! 이미 지나간 것을 일깨워주자 앞으로 올 것도 아는구나!”〉
 
 
  謙의 의미
 
  여기에 그 핵심이 들어 있다. 교만하지 않은 정도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일의 이치를 따르는 것을 좋아하는 쪽[好禮]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바로 겸(謙)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나아가며 자신의 다움을 닦지[修德] 않는다면 《주역》의 이치와 형세를 아무리 머릿속으로 암기한다 한들 소용이 없다.
 
  겸(謙)이라는 글자의 모양을 보자. 말[言]과 모자라다[兼]가 합쳐진 것으로 ‘말을 적게 하다’라는 뜻도 되고 ‘스스로 모자란 사람이라고 말하다’라는 뜻도 된다. 지산겸(地山謙)괘(☷)는 간(艮)괘(☶)가 아래에 있고 곤(坤)괘(☷)가 위에 있어 높은 산이 낮은 땅속에 들어가 있는 형상이다. 즉 높은 다움[高德]을 갖고서도 스스로 아주 낮은 곳에 머문다는 뜻이다. 당연히 이렇게만 한다면 좋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겸괘의 효사들은 대부분 ‘길하다’고 한 것이다.
 
  흔히 《주역》은 아버지의 가르침이 아니라 어머니의 가르침이라고 한다. 그것은 매사에 고분고분하고 겸손하고 조심해야 한다는 뜻이다. 겸괘(謙卦)에 이어 예괘(豫卦), 수괘(隨卦), 고괘(蠱卦)가 연속해서 이어지는데 대체로 이 4개의 괘를 관통하는 정신 또한 겸손이다.
 
  그러나 총선이 끝난 이후 석 달을 돌이켜 볼 경우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나 여당 의원들은 겸손의 길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토끼몰이식 공격이 버젓이 이뤄지고 국회의 상임위원장도 모두 독식해버렸다. 이미 그들은 모든 것을 가졌기에[大有] 하지 못할 것이 없다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있다.
 
 
  “적군이 있어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괘의 모양으로 말하자면 동인괘에서 대유괘까지는 순서에 따라 왔지만 겸괘를 거부한 그들은 한순간에 쾌(夬)괘(☱☰)에 이르렀다. 쾌(夬)란 둑이 터지거나 봇물이 터진다는 말이다. 양효를 군자, 음효를 소인으로 볼 경우 밑에서부터 차곡차곡 양이 자라나 마침내 하나의 음효만 제거하면 모든 것이 양효가 되기 직전에 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음과 양은 반드시 소인과 군자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고 세력 관계를 분석하는 틀로도 볼 수 있다. 여기 하나 남은 효가 바로 지금의 윤석열 검찰총장을 상징한다. 그러나 아래의 대통령, 장관, 의원, 여당 지지자들이 하나가 돼 남은 음효 하나를 죽기살기로 제거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지금의 정국이 쾌괘에 해당하는 것임을 짚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쾌괘의 구이(九二)를 윤석열 검찰총장, 구삼(九三)을 추미애 장관으로 보아 두 사람의 향후 갈등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어느 정도 예상해볼 수 있다.
 
  먼저 쾌괘의 밑에서 두 번째 양효에 대해 주공(周公)은 효사(爻辭)에서 이렇게 말했다.
 
  “구이(九二)는 두려워하고 호령하는 것이니 늦은 밤에 적군이 있어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惕號 莫夜有戎 勿恤].”
 
  이를 공자는 “적군이 있어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적중된 도리를 얻었기 때문”이라고 풀었다. 주공의 효사에서 “두려워하고 호령하는 것”이란, 바로 조심하고 삼가면서 명령을 내려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게다가 자리는 바르지 않지만 가운데에 있고 또한 음유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초구와 달리 조급하게 마구 내달리려 하지 않고 주도면밀함을 갖췄으니 이제 나아가야 할 때라는 말이다. 그래서 공자는 자신 있게 “적군이 있어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적중된 도리를 얻었기 때문”이라고 풀어낸 것이다. 사실 늦은 밤에 적군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해 더 조심해야 할 시점이라는 뜻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이럴 때조차 행동하지 않는다면 겁쟁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쾌괘에서 소인 척결의 과제는 사실상 이 구이(九二)에게 맡겨져 있다. 그래서 지위가 그다지 높지 않은 구이에게 막중한 책임이 맡겨져 있는 것이다.
 
  여기서 정이천(程伊川)은 “때를 알고 형세를 알아차리는 것[知時識勢]은 역을 배우는 큰 방법[學易之大方]이다”라고 강조한다. 나아가야 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때와 형세라는 말이다.
 
 
  “광대뼈에서 강건해 흉함이 있고…”
 
  이어서 구삼(九三), 즉 쾌괘의 밑에서 세 번째 양효에 대해 공자는 ‘군자는 과단성 있게 결단하니[夬夬] 끝내는 허물이 없다’라고 풀었다. 주공(周公)의 효사(爻辭)는 상당히 길고 매우 복잡 미묘하다.
 
  “광대뼈에서 강건해 흉함이 있고 군자는 과단성 있게 결단하고[夬夬] 홀로 가서 비를 만나니 젖는 듯이 여겨 노여워함이 있으면 허물이 없다[壯于頄 有凶 君子夬夬 獨行遇雨 若濡 有慍 无咎].”
 
  이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역학자(易學者)들 사이에 이 효사는 순서가 잘못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여러 이론이 있지만 우리는 정이천의 입장을 받아들여 이렇게 내용을 약간 조정한다.
 
  “대유(大有)괘(☲☰)에 해당한다. 한마디로 뜻을 잘 모았기에 사람들을 많이 소유하고 있다는 뜻 홀로 가서 비를 만나니 군자는 과단성 있게 결단하되[夬夬] 젖는 듯이 여겨 노여워함이 있으면 허물이 없다[壯于頄 有凶 獨行遇雨 君子夬夬 若濡 有慍 无咎].”
 
  쾌(夬)란 척결하는 것[剔抉]이고 결단하는 것[決斷]이다. 이럴 때에는 무엇보다 굳셈과 튼튼함[剛健]이 중요하다. 구삼(九三)은 초구와 마찬가지로 굳센 자질로 양의 자리에 있고, 게다가 강체(剛體)인 건괘의 맨 위에 있고, 지위 또한 초구에 비한다면 높은 곳에 있다. 문제는 상륙과 호응관계[有應]라는 점이다. 이런 점들을 염두에 두고서 정이천이 이 효사를 어떻게 풀었는지 살펴보자.
 
  “규(頄)는 광대뼈[顴]다. 얼굴에 있지만 위의 끝에까지는 이르지 못한 자다. 구삼은 하체의 위에 있다. 위의 위치에 있지만 가장 높은 위치는 아니고 위로 군주가 있는데도 (군주의 명을 받지도 않은 채) 굳게 결단하고 척결하는 일[剛決]을 스스로 떠맡는다면[自任] 이런 사람이 바로 ‘광대뼈에서 강건’한 자이니 흉함이 있을 수 있는 도리[有凶之道]인 것이다.”
 
  한마디로 군주가 아니면서도 군주가 해야 할 일을 남몰래 떠맡아 강하고 사납게 밀어붙인다면 흉할 수 있다는 말이다.
 
 
  소망지와 석현
 
  먼저 사마광(司馬光)의 《자치통감(資治通鑑)》에 나오는 세 가지 이야기부터 보자.
 
  〈한(漢)나라 중서령(中書令) 홍공(弘恭)과 복야(僕射) 석현(石顯)[註·두 사람 다 환관이며 중서령과 복야는 둘 다 한나라 때는 환관의 벼슬]은 선제(宣帝) 때부터 오랫동안 추기(樞機)[註·추(樞)란 집의 문지도리이고 기(機)는 석궁[弩]의 송곳고리로 둘 다 어떤 물건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따라서 이는 정사(政事)의 기밀업무를 비유한 것임]를 맡아왔고 두 사람 다 문법(文法·문서로 된 각종 법률조문)을 훤하게 익혔다.
 
  원제(元帝)는 즉위 초에 병치레를 자주 했다. 석현이 오랫동안 일을 관장했고 중인(中人·대궐 내 환관)이어서 밖으로 추종하는 무리[黨]를 만들지 않고 오직 일에만 전념해 신임을 받을 수 있었는데 (원제의 잦은 병치레로 인해) 마침내 정사를 맡기게 되니 크고 작은 일을 가리지 않고 석현이 도맡아서 상주하고 결정하여 귀한 총애를 받게 되니 조정이 그에게로 기울었고 모든 관리들이 다 석현을 삼가며 섬겼다.
 
  석현은 그 사람됨이 재주가 많고 머리가 좋아 일을 익혀서 임금의 작은 뜻까지도 능히 깊이 알아차렸고 속으로는 도적과도 같은 생각을 깊이하면서 궤변으로 다른 사람들을 중상모략하고 자신을 고깝게 본[睚 眦]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원한을 품어 번번이 법으로 보복을 가했다.
 
  이때(원제 초) 외척이자 시중인 사고(史高), 태자태부 소망지(蕭望之), 소부(少傅) 주감(周堪) 세 사람은 모두 선제(宣帝)로부터 뒷일을 당부하는 유조(遺詔)를 받아 (황제의) 정사를 보필했다. 소망지와 주감은 사부로서 옛날부터 은혜를 입었고 황제가 자주 연회에 불러 만나보고 치란(治亂)에 관하여 말을 하고 황제의 해야 할 일[王事]에 관해서도 글을 올렸다.
 
  소망지가 건의하여 종실에서 경전에 밝고 행실이 뛰어난 산기(散騎·황제가 대궐 밖을 나설 때 말을 타고 뒤를 따르며 황제의 자문에 응하는 관직)인 간대부(諫大夫) 유경생(劉更生)을 급사중[給事中·한나라 제도로 양성(兩省)에 속하지는 않고 상소문 정리 등의 업무를 하면서 황제를 가까이에서 보필]으로 추천했다. 그래서 유경생과 더불어 시중 금창(金敞)이 좌우에서 습유[拾遺·임금의 언행과 잘못 등을 수습하고 바로잡는 업무. 후에 이 말은 간관(諫官)의 명칭이 됨]하는 일을 맡았다. 네 사람은 한마음이 돼 서로 의논하여 상에게 옛날의 마땅한 제도를 갖고서 권유하고 이끌어 자신들이 바라던 바들을 대부분 바로잡았고 상도 깊이 영향을 받아 그것들을 받아들였다.
 
 
  환관과 재상의 갈등
 
  그런데 사고는 자리만 채울 뿐이었고(자리만 차지한 채 건의하는 바가 없었다는 뜻) 이로 인해 소망지와는 틈이 생겼고, 석현과 서로 겉과 속이 돼 항상 홀로 일을 추진하면서 소망지 등의 의견을 따르지 않았다.
 
  소망지는 홍공과 석현이 권력을 농단하는 것을 싫어하여 상께 건의했다.
 
  “마땅히 중서(中書)의 환관을 파직해야 합니다.”
 
  이로 인해 소망지는 홍공, 석현과 크게 거슬리게 됐고 홍공과 석현은 상에게 이런 글을 올렸다.
 
  ‘소망지는 유경생과 붕당을 지어 서로 칭찬하여 천거하고 권세를 오로지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합니다. 신하로서 충성은 하지 않으면서 윗사람을 무고하는 것이 도리에 맞지 않으니 청컨대 알자(謁者·황제의 예빈관)로 하여금 불러서 정위(廷尉·궁정 사법관)에게 넘기도록 해야 합니다.’
 
  이때는 상이 즉위한 초기라 불러서 정위에게 넘기는 것[召致]이 바로 감옥에 가두라는 것인지 살피지 못하여 홍공과 석현의 글이 올라왔을 때 “그렇게 하라[可]”고 했던 것이다. 얼마 후에 상이 주감과 유경생을 부르자 누가 답하기를 “감옥에 있습니다” 하자 상은 크게 놀라 말했다.
 
  “정위가 물어보고 끝나는 것이 아니었던가?”
 
  이로 인해 홍공과 석현을 다 꾸짖자 두 사람은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했다. 상이 말했다.
 
  “지금 당장 내보내어 일을 보게 하라!”
 
  이에 홍공과 석현은 사고로 하여금 상에게 말하도록 했다.
 
  “상께서는 새로 자리에 오르셔서 아직 덕을 널리 베푸심[德化]이 천하에 퍼지지 않으셨으니 먼저 사부에게 시험해 보이셔야 합니다. 이미 구경(九卿)과 대부(유경생은 종정이므로 구경 중의 한 명이고 주감은 광록대부다)를 옥에 내려보냈으니 마땅히 이어서 면직하도록 결단하셔야 합니다.”
 
  이에 소망지의 죄를 사하고 주감과 유경생은 둘 다 면직시켜 서인(庶人)으로 삼았다.〉
 
 
  ‘黨을 지었다’는 죄목
 
송나라 학자 진덕수.
  이에 대해 송나라 학자 진덕수(眞德秀)는 《대학연의(大學衍義)》에서 이렇게 평했다.
 
  “신이 가만히 살펴보겠습니다. 전 황제 때의 명신(名臣) 구양수(歐陽脩·1007~1072)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예부터 소인은 충직하고 선량한 사람을 참소하고 음해한다고 했습니다. 소인들의 계략[說]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어질고 좋은 사람들을 광범위하게 함정에 몰아넣으려 하면서 그들을 붕당이라고 지목하는 데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대신(大臣)을 뒤흔들려[動搖] 할 때는 반드시 없는 일을 덮어 씌워서[誣] (무력화시킨 다음) 권력을 장악하게 되는데 이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무릇 한 사람의 좋은 사람[善人]만 제거하고 나머지 많은 좋은 사람들은 오히려 그냥 둘 경우 소인들이 도모하는 이익은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좋은 사람들을 죄다 없애려 하는데 좋은 사람들은 허물이 적다 보니 일일이 그 잘못[瑕]을 찾아내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오직 당을 지었다[爲黨]고 (무고를) 해야만 한꺼번에 모두 축출할 수가 있습니다.
 
  예부터 대신은 임금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신임까지 받기 때문에 다른 일을 뒤흔드는 것에 비하면 훨씬 어렵습니다. 그래서 임금이 싫어하는바, 즉 권력을 제 마음대로 한다[專權]는 명분을 내세우면 반드시 바야흐로 그를 거꾸러트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신(臣)이 홍공과 석현이 소망지를 비판한 상소를 잘 살펴보니 첫째는 붕당을 말하고 둘째는 권력을 제 마음대로 했다[擅權]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상을 잘 견주어 보면 소망지 등은 한마음으로 옛 마땅한 제도에 따라 나라를 개혁하고 군주를 바로잡으려 했을 뿐 어찌 붕당을 짓고 권력을 제 마음대로 하는 일에 뜻을 두었겠습니까?
 
  오히려 홍공과 석현 그리고 사고가 서로 결탁하여 붕당을 이루고 정사의 주요 핵심 업무들을 제 마음대로 쥐었으니 이것이 곧 이른바 붕당을 짓고 권력을 제 마음대로 했다[朋黨擅權]는 것의 실상이라 하겠고, 또 이를 일러 간사한 소인들이 검은 것과 흰 것을 뒤섞어 어지럽게 한다[貿亂]고 하는 것입니다. 대체로 이처럼 사고가 석현을 칭찬하듯이 안으로는 깊이 도적과 결탁하여 궤변으로써 (선량한) 사람을 중상하는 것을 일러 그런 부류라고 합니다.
 
  그런데 원제는 심란하게도 그 청을 일찍부터 제대로 살피지를 못해 불러서 정위에게 넘겨 그것을 허락했으면서도 (곧바로) 이미 그들이 무죄인 줄 알고서 내보낸 것입니다. 그런데도 면직을 청하자 서인으로 만들었으니 이는 임금다움[君德]이 밝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소인은 자신들의 계략을 실현할[售] 수 있었으니 아! 한탄스러울 뿐입니다.”
 
 
  소망지의 최후
 
  다시 소망지의 비극적 최후를 전하는 《자치통감》이다.
 
  〈한나라 원제(元帝) 초원(初元) 2년(기원전 47년) 4월 조서를 내려 소망지에게 관내후(關內侯) 급사중의 자리를 하사하고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조회에 참석도록 했고 주감과 유경생을 다시 불러 간대부(諫大夫·800석 관직)로 삼으려 하자 홍공과 석현이 (반대) 건의를 하는 바람에 두 사람 다 중랑(中郞·600석 관직)으로 삼았다.
 
  상은 소망지를 그릇으로 중하게 여기기를 그치지 않았고 그에 의지하는 바가 커서 재상으로 삼으려 하자 홍공, 석현, 허씨와 사씨(허씨와 사씨는 다 외척) 자제들은 모두 다 소망지 등을 흘겨 보았다[側目]. 유경생이 마침내 자신의 외척으로 하여금 변고(지진)가 일어난 데 대해 상에게 글을 올리도록 했다.
 
  ‘지진[地動]이 일어난 것은 거의 홍공 등 때문이며 (신은) 마땅히 홍공과 석현을 물리치오니 그들이 선한 일을 숨기려 한 죄를 물으시고 소망지 등을 올리시어 현능한 이들의 길을 크게 열어주셔야 합니다.’
 
  글이 올라가자 홍공과 석현은 유경생이 한 짓이라고 의심하고서 건의하기를 그것이 간사한 짓인지 여부를 살펴보라고 청했고 실제 조사 결과 과연 자복을 했다. 그래서 유경생은 체포돼 감옥에 갇혔다가 파면돼 서인이 됐다.
 
  때마침 소망지의 아들 소급(蕭伋)도 소망지가 과거에 관련됐던 사건을 쟁송하는 글을 올리자 상은 그 글을 유사(有司)에 내려보냈고 얼마 후 답하는 글이 올라왔다.
 
  ‘소망지가 아들을 시켜[敎] 글을 올리게 했으니 대신으로서의 체모를 잃고 불경을 저질렀기에 청컨대 체포토록 해주십시오.’
 
  홍공과 석현 등은 소망지가 평소에 높은 절개를 가졌고 굴욕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서 건의했다.
 
  “소망지는 과거의 사건에 다행히 연좌되지 않아 작위와 식읍[爵邑]이 회복됐음에도 허물을 후회하지 않고 죄도 자복하지 않은 채 아들을 시켜 글을 올리고 잘못을 상께 돌리면서 스스로 상의 사부라는 데 기대어 끝까지 반드시 연좌되지 않을 것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이에 소망지를 감옥에 가두어 그 원망하는 마음[怏怏心]을 (미리) 틀어막지 않으면 빼어난 조정에서 은혜를 베풀 수가 없을 것입니다.”
 
  상이 말했다.
 
  “소(蕭) 태부(太傅)는 평소 굳센 사람인데 어떻게 옥리(獄吏)에게 내려보낼 수 있겠는가?”
 
  석현 등이 말했다.
 
  “사람의 목숨은 극히 중한 것이며 소망지가 연좌된 것은 그의 말이 야박했다[薄]는 죄이니 반드시 근심하실 바는 아닙니다.”
 
  상은 드디어 그 주문에 대해 “그렇게 하라”고 했다. 석현은 조서(詔書)를 봉하여 알자에게 보냈고 칙령으로 소망지를 불렀다. 그리고 급히 집금오(執金吾·대궐문을 지키며 비상사태에 대비하는 무관직)의 거기(車騎)를 발동하여 그의 집을 둘러쌌다. 사자가 와서 소망지를 불렀고 소망지는 독이 든 술을 마시고 자살했다. 천자는 이 소식을 듣고 놀라서 손으로 땅을 치며 말했다.
 
  “이전에 진실로 그는 감옥에 나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의심했었는데 과연 내가 현명한 스승을 죽인 꼴이 됐구나!”
 
  이때 태관(太官·황제의 식사를 주관하는 관직)이 바야흐로 점심을 올리자 황상은 식사를 물리친 채 눈물을 펑펑 흘리며 울었다. 이에 석현 등을 불러 꾸짖으며 물으니[責問] 그들은 조사가 자세하지 못했다며 모두 모자를 벗고 사죄하다가 한참 지난 후에야 멈추었다.〉
 
 
  간사한 신하, 어리석은 임금
 
  이에 대한 진덕수의 평이다.
 
  “신이 가만히 살펴보겠습니다. 간사한 신하의 종류는 많지만 권모술수는 대략 그 수를 알 수 있고 특히 분명한 것은 그들이 마음먹는 바가 바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선은 행할 수 없지만 악은 행할 수 있고 충성은 할 수 없지만 속일 수 있는 것을 잣대로 삼아 홍공과 석현을 살펴보자면 그들은 소망지의 높은 절개와 굽힐 줄 모르는 성품을 알고서 능히 굴욕을 참아내지 못하리라고 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소망지가 감옥에 가게 되면 이것이 그를 격분시켜 자살을 하기를 기대했던 것이고 소망지는 실제로 자살을 했습니다.
 
  또 그들은 원제가 쉽게 속임수에 넘어간다는 것을 알고서 처음에는 소망지를 불러서 정위에게 넘기는 것만 공사(供辭)에 넣었지만 실제로는 감옥에 넣었고 또 뒤에는 감옥에서 약간의 굴욕만 줄 것이라고 공사에 넣었지만 실제로는 그의 자살을 겁박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석현이 한 짓을 보면 (원제가) 지혜가 중간 정도만 되는 군주였어도 진실로 감히 그런 짓을 꾸미려고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원제의 아둔함과 유약함은 필시 그것을 다스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때문에 일이 그렇게 흘러간 것이고 원제는 과연 다스리지를 못했습니다. (석현의) 미래를 헤아리는 재능과 일을 꾸며대는 기교가 맞아떨어지지 않은 것이 없었으니 만일 이것을 충(忠)과 선(善)을 위해 썼다면 그 유익함은 이루 다 끝이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소인이 재주를 품고서 악을 저지르면 그 악이 닿지 못할 곳이 없다’고 했던 사마광(司馬光)의 말은 (참으로) 믿을 만합니다.
 
  무릇 황제의 스승을 죽게 만든 것은 죄가 큰 것이고, 관을 벗어 머리 숙여 사죄하는 것은 예가 작은 것입니다. 이처럼 작은 예로 큰 죄를 막으려 하고 원제 역시 더 이상 문책하지 못하고 헛되이 식사만 물린 채 눈물만 흘릴 뿐이었습니다. 석현은 이때 비록 겉으로는 두려움에 떨며 죄를 비는 모양을 해보였지만 마음속으로는 사실 웃으면서 경멸하고 있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임금 된 자가 건건이명[乾健離明·《주역》 대유(大有)괘(위는 ☲, 아래는 ☰)는 아래의 건(乾)괘는 강건하고 위의 이(離)괘는 밝다는 뜻)의 다움[德]을 갖추지 못한 채 아녀자의 어짊[婦仁·앞의 것이 남성적이고 강건한 어짊이라면 이것은 그에 대비되는 어짊이라는 뜻]에 구애된다면 간신의 농간이 행해지지 않는 바가 거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보듯이 진덕수도 대유괘가 겸괘로 나아가지 못할 경우 일어나게 될 폐단을 지적하고 있다. 다만 윤석열 검찰총장이 소망지처럼 어설프게 자신의 곧음만 생각하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않기를 많은 사람은 바라고 있다. 공자도 《논어》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곧기[直]만 하고 일의 이치를 모르면 강퍅해진다[絞].”⊙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202105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프리미엄결제
2020년4월부록
정기구독 이벤트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 월간조선 2018년 4월호 부록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