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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Q의 시 읽기 〈45〉 보들레르의 ‘독자에게’

위선의 독자여, 내 同類여, 내 형제여!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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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들레르의 《악의 꽃》은 현대시 운동의 근원이자 새로운 문학사조의 출발
⊙ 이상의 ‘오감도’는 언어의 일상성이 파괴된 ‘독자를 엿 먹이는’ 시
현대시 운동의 근원이 된 샤를 보들레르.
  독자에게
  보들레르(번역 金鵬九)
 
  어리석음, 과오, 죄악, 탐욕이
  우리 정신을 차지하고 육신 괴롭히며,
  또한 거지들이 몸에 이·벼룩 기르듯이,
  우리의 알뜰한 회한을 키우도다.
 
  우리 죄악들 끈질기고 참회는 무른고야.
  고해의 값을 듬뿍 치루어 받고는,
  치사스런 눈물로 모든 오점 씻어내린 줄 알고,
  좋아라 흙탕길로 되돌아오는구나.
 
  홀린 우리 정신을 악의 베갯머리에서
  오래오래 흔들어 재우는 건 거대한 〈악마〉,
  그러면 우리 의지의 으리으리한 금속도
  그 해박한 연금사에 걸려 몽땅 증발하는구나.
 
  우릴 조종하는 끄나풀을 쥔 것은 〈악마〉인지고!
  지겨운 물건에서도 우리는 입맛을 느끼고,
  날마다 한걸음씩 악취 풍기는 어둠을 가로질러
  혐오도 없이 〈지옥〉으로 내려가는구나.
 
  (중략)
 
  우리 뇌수 속엔 한 무리의 〈마귀〉떼가
  백만의 회충인 양 와글와글 엉겨 탕진하니,
  숨 들이키면 〈죽음〉이 폐(肺) 속으로
  보이지 않는 강물처럼 콸콸 흘러내린다.
 
  폭행, 독약, 비수, 방화 따위가 아직
  그 멋진 그림으로 우리 가소·가련한
  운명의 용렬한 화포(畵布)*를 수놓지 않았음은
  오호라! 우리 넋이 그만큼 담대치 못하기 때문.
 
  허나 승냥이, 표범, 암사냥개,
  원숭이, 독섬섬이, 독수리, 뱀 따위
  우리들의 악덕의 더러운 동물원에서,
  짖어대고, 포효하고, 으르릉 대고 기어가는 괴물들,
 
  그중에도 더욱 추악 간사하고 치사한 놈이 있어!
  놈은 큰 몸짓도 고함도 없지만,
  기꺼이 대지를 부숴 조각을 내고
  하품하며 세계를 집어삼킬 것이니,
 
  그놈이 바로 〈권태〉! - 뜻 않은 눈물 고인
  눈으로, 놈은 담뱃대 물고 교수대를 꿈꾸지.
  그대는 알리, 독자여, 이 까다로운 괴물을
  -위선의 독자여,- 내 동류(同類)여,- 내 형제여!
 
  (*화포: 그림을 그리는 바탕천)
 
 
  Au lecteur
  Charles BAUDELAIRE
 
  La sottise, l’erreur, le pe' che' , la le' sine,
  Occupent nos esprits et travaillent nos corps,
  Et nous alimentons nos aimables remords,
  Comme les mendiants nourrissent leur vermine.
 
  Nos pe' che' s sont te^ tus, nos repentirs sont l^aches ;
  Nous nous faisons payer grassement nos aveux,
  Et nous rentrons gaiement dans le chemin bourbeux,
  Croyant par de vils pleurs laver toutes nos taches.
 
  Sur l’oreiller du mal c’est Satan Trisme' giste
  Qui berce longuement notre esprit enchante' ,
  Et le riche me' tal de notre volonte'
  Est tout vaporise' par ce savant chimiste.
 
  C’est le Diable qui tient les fils qui nous remuent!
  Aux objets re' pugnants nous trouvons des appas;
  Chaque jour vers l’Enfer nous descendons d’un pas,
  Sans horreur, a` travers des te' ne`bres qui puent.
 
  (중략)
 
  Serre', fourmillant, comme un million d’helminthes,
  Dans nos cerveaux ribote un peuple de De' mons,
  Et, quand nous respirons, la Mort dans nos poumons
  Descend, fleuve invisible, avec de sourdes plaintes.
 
  Si le viol, le poison, le poignard, l’incendie,
  N’ont pas encor brode' de leurs plaisants dessins
  Le canevas banal de nos piteux destins,
  C’est que notre a^me, he' las! n’est pas assez hardie.
 
  Mais parmi les chacals, les panthe' res, les lices,
  Les singes, les scorpions, les vautours, les serpents,
  Les monstres glapissants, hurlants, grognants, rampants,
  Dans la me' nagerie infa^me de nos vices,
 
  Il en est un plus laid, plus me'chant, plus immonde!
  Quoiqu’il ne pousse ni grands gestes ni grands cris,
  Il ferait volontiers de la terre un de'bris
  Et dans un ba^illement avalerait le monde;
 
  C’est l’Ennui! - l’oeil charge' d’un pleur involontaire,
  Il re^ve d’e'chafauds en fumant son houka.
  Tu le connais, lecteur, ce monstre de'licat,
  - Hypocrite lecteur, - mon semblable, - mon fre`re!
 
 
보들레르의 《악의 꽃》(1857) 프랑스어판(사진 왼쪽)과 한국판(사진 오른쪽).
  샤를 보들레르(1821~1867)가 살던 당대 낭만파 시인들은 ‘거창한 독백’을 통해 불안을 사치스럽게 발산했다. 낭만주의 시대의 한복판에서 살아온 보들레르는, 그러나 그들과 달리 ‘마음의 참회소’를 마련하고 인간 내면의 세계를 탐험했다.
 
  보들레르는 깊은 상상력과 예민한 감각으로 상징주의 문학을 꽃피웠다. 그의 시집 《악의 꽃》(1857)은 프랑스 상징파 시의 선구적 작품이다. 현대시 운동의 근원이자 새로운 문학사조의 출발로 손꼽힌다. 보들레르의 서정시는 다음 세대인 베를렌, 랭보, 말라르메 등 상징파 시인들에게 영향을 미쳤다.(김병국 외 4인 《한국 교육 미디어 문학》 중에서)
 
 
  보들레르의 詩, 이상의 詩
 
  《악의 꽃》에 실린 서시(序詩) ‘독자에게’는 시인의 인생 여정이 압축돼 있다고 전한다. 그 여정은 절망적이다. ‘어리석음, 과오, 죄악, 탐욕이 정신을 차지하고 육신을 괴롭힌다’고 첫 연에 썼다. 죄악은 악착스럽게 반복되고, 참회는 ‘무르다’(의지가 굳지 못하다는 의미). 어리석게도 ‘죄를 뉘우치고 눈물을 흘리면 죄(오점)가 씻어지리라’고 믿었을 정도다.
 
  심지어 보들레르는 인간의 머릿속에 ‘한 무리의 〈악마〉떼가 있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대한 시각이 어둡고 비관적이다.
 
  시적 화자는 (시를 읽는) 독자를 시인처럼 권태를 운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존재로 치부한다. 독자를 ‘내 동류(同類)’이자 ‘내 형제’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독자를 자신(시인)과 같은 위선적인 존재로 비하한다고 할까.
 
  보들레르의 ‘독자에게’를 읽노라면 이상(李箱·1910~1937)의 시가 떠오른다. 1934년 7월 24일부터 《조선중앙일보》에 시 ‘오감도(烏瞰圖)’가 연재되자 독자의 항의가 쇄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감도’는 철저히 독자를 엿 먹인다.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메시지가 구체적이지 않다. 말장난처럼 느껴진다. ‘13인’ ‘질주한다’ ‘막다른 골목’ ‘무섭다’ ‘무서운’ 등의 낯선 시어들뿐이다.
 
이상의 시 ‘오감도(烏瞰圖)’. ‘오감도’는 철저히 독자를 엿 먹인 시다.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메시지가 구체적이지 않다.
  13인의아해(兒孩)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4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5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6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7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8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9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0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1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13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소.
  (다른사정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이상의 ‘오감도’ 전문

 
이상 시인
  이 시를 읽는 독자들은 당혹스럽다. 언어의 일상성(日常性)이 파괴됐기 때문이다. 시인이 경험한 ‘일그러진 현실’ 탓이다. 식민지 지식인의 정신분열적 표현, 혹은 불안과 광기, 공포가 시에서 낯설게 느껴진다.
 
  시 ‘오감도’는 1934년 7월 24일부터 8월 8일까지 15회 연재됐는데, 원래는 30회 연재를 계획했다고 한다. 그러나 독자의 항의로 결국 중단됐다. 이때 《조선중앙일보》 학예부장인 이태준(李泰俊·1883~1921)은 사표를 안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연재를 고집했다고 전한다.
 
  대표적인 항의 내용으로, “오감도는 조감도(鳥瞰圖)의 잘못이 아니냐” “그게 어쩌자는 시냐” “시 중에 나오는 ‘13인의 아해’는 최후의 만찬에 등장하는 예수 제자냐” “아니면 일제 때의 13도(道)를 의미하느냐” 등이 있었다고 한다.
 
  시인에 대한 평도 극과 극이었다. ‘피해망상, 과대망상에 사로잡힌 정신병자’라는 혹평과 ‘최초의 모더니스트이자 현대문학의 기수’라는 극찬까지 다양했다.
 
  시인 이상은 “모두가 문명화, 근대화라는 덧없는 망상 속에서 허둥댈 때, 아무도 보지 못했던 문명의 메커니즘을 보고, 시대의 이면을 볼 줄 아는 눈을 가진, 비상(非常)한, 비상(飛上)을 꿈꾼 지식인”(오선민 문학평론가)이었다.
 
 
  구시대의 독자놈들에게 → 차렷, 열중쉬엇, 차렷
 
박남철 시인
  박남철(朴南喆·1953~2014)이란 시인이 있다. 1953년 경북 포항 출신으로 경희대 국문과와 동 대학원을 나왔다. 1979년 《문학과 지성》 겨울호에 ‘연날리기’ 등으로 시단에 등장했다.
 
  그의 시는 야유와 풍자, 욕설의 언어로 가득 차 있다. 비틀린 세계에 대한 강력한 항의의 언어인 과감한 형태 파괴적인 시로 독자와 평단을 놀라게 했다. 시 ‘독자놈들 길들이기’는 보들레르가 ‘독자에게’에서 경고하듯이, 혹은 이상의 ‘오감도’에서 독자를 당혹시키듯 독자를 힐난한다.
 
  ‘내 시에 대하여 의아해하는 구시대의 독자놈들에게’ 혹독하게 ‘차렷, 열중쉬엇, 차렷’ 하고 구령을 불러댄다. 그리고 ‘느네들 정말 그 따위들로밖에 정신 못 차리겠어, 엉?’ 하며 일갈한다. 그러나 소심하게 속(괄호의 뜻이 그렇다)으로만 호통치고 있다. ‘독자놈들 길들이기’는 시집 《지상의 인간》(1984)에 실렸다.
 
  ‌내 시에 대하여 의아해하는 구시대의 독자 놈들에게 → 차렷, 열중쉬엇, 차렷,
 
  이 좆만한 놈들이……
  ‌차렷, 열중쉬엇, 차렷, 열중쉬엇, 정신차렷, 차렷, ○○, 차렷, 헤쳐모엿!
 
  이 좆만한 놈들이……
  헤쳐모엿,
 
  ‌(야 이 좆만한 놈들아, 느네들 정말 그따위들로밖에 정신 못 차리겠어, 엉?)
 
  차렷, 열중쉬엇, 차렷, 열중쉬엇, 차렷……
 
  -박남철의 ‘독자놈들 길들이기’ 전문

 

  ‘박남철 비평시집1’이란 타이틀을 내건 시집 《용의 모습으로》(1990)에서 시인은 아예 독자의 입장에서 다른 시인의 시를 감상한다. 이런 시를, 시라는 장르로 묶을 수 있을지 헷갈린다.
 
  예컨대 시 ‘만화책’은 최석하 시인의 시 ‘만화책’을 그대로 인용한다. 그러곤 이어서 자신의 감상평을 천연덕스럽게 적어놓았다. 이게 시인지 아닌지, 박남철은 기꺼이 시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비현실적인 문학주의의 무지몽매를 일깨우는 힘이야말로 해체의 또 다른 에너지라고 믿는다”거나 “문학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1
  십 원에 세 권씩 봬 주는 우리집에서
  십 원에 네 권씩 하는 데로
  아무리 멀어도 아이들은 가 버린다.
  가게 전셋돈이라도 뽑아 달라고 빚장이들 몰려와
  울 내외 멱살을 한바탕 잡아채다 뜨고
  마른 하늘의 제비 한 마리 옆집 텔레비 안테나 위로
  좀 조용 조용히 하란 듯이 내려앉았네
  창살 너머 바라다뵈는 저 꽁지 긴 새 배경엔
  흰 구름장이 곧장 철새 떼 같이 떠가고
  개학날 곧 되면 놀이터가 돼 온 이 빈터 가겟벌이도
  천생 하루 일이천 원이 고작일 게다
  날마다 신간 만화책들이 스물 한 권씩 쏟아져 나오니
  그것들만 사들이재도 하루 이천백 원씩 있어야겠으나
  우린 워낙에 딴집에서 열흘썩이나 묵은 것들을
  단돈 오백에다 꼬박꼬박 들여 놓고 있다
  제비는 아지쥬지 파르르 파릴 불어 대고
  진똥을 하나 금시로 짤기더만
  창살을 향해 달려들 듯 용히 날아가는구나
  우주 여행 편을 보고 있는 한 아이가
  마뜩은 책 한 권 훔치려는 겐지 두 눈이 자꾸만
  허공에서 허공에서 반짝거리고 있고.
  ‌‌
  (최석하, ‘만화책’, 《바람이 바람을 불러 바람 불게 하고》, 문학과 지성사, 1981)
 
  2
  ‌짓궂을 정도로, 서정시의 본령을 비웃는 듯한 태도로 이제 곧 거덜이 나게 된 변두리 삼류 만화 가게 주인의 넋두리를 천연덕스럽게 늘어 놓고 있는 최석하의 ‘만화책’을 읽다 보면 우선 웃음부터 절로 나온다. 보라.
 
  ‌‘마른하늘의 제비 한 마리 옆집 텔레비 안테나 위로/ 좀 조용 조용히 하란 듯이 내려앉았네’
 
  또 보라.
 
  ‌‘제비는 아지쥬지 파르르 파릴 불어 대고/ 진똥을 하나 금시로 짤기더만/ 창살을 향해 달려들 듯 용히 날아가는구나’
 
  그리고 또 보라.
 
  ‌‘우주 여행 편을 보고 있는 한 아이가/ 마뜩은 책 한 권 훔치려는 겐지 두 눈이 자꾸만/ 허공에서 허공에서 반짝거리고 있고.’
 
  ‌물론 약간 장황할 정도로 필자가 위의 시구들을 인용한 까닭은 이 구절들이 특히 재미있을 정도로 우습다거나 사물에 대한 놀라울 정도의 투명한 관찰에 의한 변칙적인 서정성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필‌자가 인용된 시구들에서 놀라울 정도의 웃음과 변칙적일 정도의 서정성 다음으로 느끼는 것은 형광등 켜지듯이 충격되는 비애감 섞인 ‘홍부와 놀부’ 모티프에 대한 배반 또는 왜곡인 것이다.
 
  -박남철의 ‘만화책’ 전문

 
 
  ‘고상한’ 시 파괴하기
 
장정일 시인의 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1987).
  형식 파괴의 시는 서정시라는 틀을 해체한다. 시란, 혹은 문학이란, 고상하고 촘촘한 의미망을 담아 그럴 듯하며 아름다움을 지향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린다. 시도 인간의 다양한 모습처럼 경박할 수 있고 냉소적일 수 있으며 추(醜)한 모습까지 담을 수 있다고 선언한다.
 
  장정일(蔣正一) 시인의 ‘하숙’은 서구의 물질문명을 비판 의식 없이 받아들이는 당대 젊은이들의 경박한 세태를 비꼰다. ‘리바이스, 켄트, 셀렘, 플레이보이, 파이오니아, 레오나드 코헨, 존 레논, 에릭 클랩튼, 코카콜라, 조니 워커’ 등을 길게 나열한다.
 
  녀석의 하숙방 벽에는 리바이스 청바지 정장이 걸려 있고
  책상 위에는 쓰다만 사립대 영문과 리포트가 있고 영한사전이 있고
  재떨이엔 필터만 남은 켄트 꽁초가 있고 씹다 버린 셀렘이 있고
  서랍 안에는 묶은 플레이보이가 숨겨져 있고
  방 모서리에는 파이오니아 앰프가 모셔져 있고
  레코드 꽂이에는 레오나드 코헨, 존 레논, 에릭 클랩튼이 꽂혀 있고
  방바닥엔 음악 감상실에서 얻은 최신 빌보드 챠트가 팽개쳐 있고
  쓰레기통엔 코카콜라와 조니 워커 빈 병이 쑤셔 박혀 있고
  그 하숙방에, 녀석은 혼곤히 취해 대자로 누워 있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꼼짝도 않고
 
  -장정일의 ‘하숙’ 전문

 
  화자는 ‘녀석’의 하숙방에 널려 있는 서구 문물과 혼곤히 취해 자는 모습을 시시콜콜 묘사한다. 1~9행에서는 ‘~있고’로 끝내다가 10행에서만 ‘~않고’로 변화를 준다. 1~8행에서는 방 안에 널려 있는 서구 문물에 초점을 두고 있고, 9행과 10행에서는 ‘녀석’의 취한 모습에 초점을 둔다. 이 시는 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1987)에 실렸다.
 

  오규원(吳圭原·1941~2007) 시인의 ‘프란츠 카프카’도 흥미로운 시다. 정신적 가치가 상품화되는 것을 메뉴판 형식으로 표현했는데 자조적·반어적인 어조가 느껴진다.
 
  메뉴판에는 저명한 예술가, 철학가의 이름이 나열돼 있고 각각 금액이 적혀 있다. 인문학이 지닌 정신적 영역의 가치가 외면당하는 현실을 풍자한다. 어쩌면, 정신적 가치가 무너진 현실에서 물질적 가치로 치자면 별 볼일 없는 시를 공부하는 것은 미친 짓일지 모른다.
 
  마지막 행 ‘제일 값싼/ 프란츠 카프카’는 반어적 표현이다. 카프카는 인간의 부조리성, 인간 존재의 불안을 날카롭게 통찰한 작가다. 그런 카프카를 ‘가장 값싸다’고 표현한다. 물질만능주의 사회에서 인간 부조리를 다룬 카프카가 ‘가장 값싼’ 취급을 당하는 현실이 기가 막힌다. 이 시는 시집 《가끔은 주목받는 생이고 싶다》(1987)에 실렸다.
 
  ㅡ MENU ㅡ
  샤를르 보들레르 800원
  칼 샌드버그 800원
  프란츠 카프카 800원
  이브 본느프와 1,000원
  에리카 종 1,000원
  가스통 바슐라르 1,200원
  이하브 핫산 1,200원
  제레미 리프킨 1,200원
  위르겐 하버마스 1,200원
  시를 공부하겠다는
  미친 제자와 앉아
  커피를 마신다
  제일 값싼
  프란츠 카프카
 
  -오규원의 ‘프란츠 카프카’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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