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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Q의 시 읽기 〈44〉 폴 엘뤼아르의 ‘자유’

자유여! 민주여!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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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레지스탕스 전개하며 발표한 저항시…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 닮은꼴
⊙ ‘쓴다’는 의미는 대상을 절실하게 그리워할 때 하는 행위
시인 폴 엘뤼아르.
  자유
  폴 엘뤼아르
 
  나의 초등학교 시절 노트 위에
  내 책상 위에, 나무 위에
  모래 위에 눈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내가 읽은 모든 책의 페이지 위에
  흰 종이 위에
  돌과 피, 종이와 재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부(富)의 허상 위에
  병사들의 총칼 위에
  제왕들의 왕관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밀림 위에, 사막 위에
  새둥우리 위에, 금작화 나무 위에
  내 어린 시절 메아리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밤의 경이로움 위에
  낮에 먹는 흰 빵 위에
  약혼 시절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남빛 헌 누더기 옷 위에
  태양이 지루하게 머무는 연못 위에
  달빛이 환히 비추는 호수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중략)
 
  파괴된 내 방공호 위에
  무너진 내 등대 위에
  내 권태의 벽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소망 없는 부재 위에
  벌거벗은 고독 위에
  죽음의 계단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회복된 건강 위에
  사라진 위험 위에
  회상 없는 희망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그 한마디 말의 힘으로
  나는 내 일생을 다시 시작하고,
  너를 알기 위해서
  너의 이름을 불러 주기 위해서 나는 태어났다
 
  오, 자유여.
 
 
외젠 들라크루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1830), 프랑스 루브르미술관, 260×325㎝. 폴 엘뤼아르의 시 ‘자유’를 연상케 한다.
  LIBERTE'
  Paul E'luard
 
  Sur mes cahiers d’e' colier
  Sur mon pupitre et les arbres
  Sur le sable sur la neige
  J’e' cris ton nom.
 
  Sur toutes les pages lues
  Sur toutes les pages blanches
  Pierre sang papier ou cendre
  J’e' cris ton nom
 
  Sur les images dore' es
  Sur les armes des guerriers
  Sur la couronne des rois
  J’e' cris ton nom
 
  Sur la jungle et le de' sert
  Sur les nids sur les gene^ ts
  Sur l’e' cho de mon enfance
  J’e' cris ton nom
 
  Sur les merveilles des nuits
  Sur le pain blanc des journe' es
  Sur les saisons fiance' es
  J’e' cris ton nom
 
  Sur tous mes chiffons d’azur•’
  Sur l’e' tang soleil moisi
  Sur le lac lune vivante
  J’e' cris ton nom
 
  (중략)
 
  Sur mes refuges de' truits
  Sur mes phares e' croule' s
  Sur les murs de mon ennui
  J’e' cris ton nom
 
  Sur l’absence sans de' sirs
  Sur la solitude nue
  Sur les marches de la‵ mort
  J’e' cris ton nom
 
  Sur la sante' revenue
  Sur le risque disparu
  Sur l’espoir sans souvenir
  J’e' cris ton nom
 
  Et par le pouvoir d’un mot
  Je recommence ma vie
  Je suis ne' pour te connal^tre
  Pour te nommer
 
  Liberte' .
 
 
폴 엘뤼아르의 시 ‘자유’를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
  ‘자유(LIBERTE')’는 프랑스 시인 폴 엘뤼아르(Paul E'luard·1895~1952)의 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에 대항하는 레지스탕스 운동을 전개하며 발표한 저항시이자 참여시다. 엘뤼아르는 전후(戰後)에는 ‘평화·자유·독립’을 위한 강연을 많이 하였다. 이 시에는 자유에 대한 갈망이 매우 강렬하다.
 
  1연의 시적 화자는 가장 순수한 시절(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며 자유를 생각한다. ‘노트’ ‘책상’ ‘나무’ ‘모래’ 등으로 상징되는 동심의 세계가 바로 자유의 본질이자 순수의 시절이다. 2연의 화자는 자신의 모든 것과 자유를 연관 짓는다. 쌓아온 지식과 경험, 앞으로 펼쳐질 모든 역사의 장면 위에, 무생물과 이미 사멸한 것에 이르기까지 자유라는 이름의 세례를 퍼붓고 싶다는 화자의 간절한 열망이 드러난다.
 
  이 시에서 ‘너’는 유년의 모든 바람이나 소망보다 귀중한 존재다. 추상적인 것과 과거의 모든 추억보다 소중하다. ‘나’는 현재 어떤 상황에서도 ‘너’를 귀중하게 생각한다. 여기서 ‘너’는 바로 ‘자유’다. 자유는 의인화되어 사용되고 있다.
 
  이 시는 ‘○○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라는 문장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비약과 과감한 생략도 보인다. 경쾌한 리듬과 함께 이미지가 점차 선명해지고 시적 감정이 고조된다.
 
  이 시는 자유를 갈망하는 많은 시인에게 영감을 주었다. 대표적인 경우가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이다.
 
김지하 시인의 시집 《타는 목마름으로》.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도 너를 잊은 지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아직 동트지 않은 도시골목의 어딘가
  발자욱 소리 호르락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 소리
  신음 소리 통곡 소리 탄식 소리 그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 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 전문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 이해인의 ‘살아 있는 날은’
 
김지하 시인.
  엘뤼아르의 시 ‘자유’와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는 닮아 있다. 이 시는 동명의 시집(1982)에 실렸다.
 
  화자는 ‘푸르른 자유의 추억’과 ‘피 묻은 벗의 얼굴’을 동시에 떠올리며 ‘치떨리는’ 분노로 간절하게 민주주의를 열망하고 있다. 어두운 도시 뒷골목 같은 암담한 현실 속에서 민주주의가 되살아날 아침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는 것은 지금은 민주주의를 잃어버려 서툴다는 것을 상징한다. 그러나 신념과 용기로 희망을 꿈꾸는 행위를 ‘쓴다’로 표현한다. ‘쓴다’야말로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역설적 의지다.
 
  이 시에서 ‘너’는 민주주의를 의인화한 것이다.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여서, 오직 타는 가슴속 목마름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대상이다. ‘너’는 현재는 부재하지만 결코 포기하거나 단념할 수 없는 갈망의 대상이다.
 
  김지하와 엘뤼아르 시에 등장하는 ‘쓴다’의 의미는 대상을 절실하게 기다리거나 그리워할 때 하는 행위다. 또한 그 대상에 대한 자신의 의지를 다질 때도 그런 행위를 하게 된다. 이해인 수녀의 시 ‘살아 있는 날은’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이해인 수녀.
  이해인 수녀의 시 ‘살아 있는 날은’에도 ‘쓴다’는 행위가 등장한다. 이 시는 《내 혼에 불을 놓아》(1979)에 실렸다. 수도자인 그에게 ‘쓰는’ 행위는 곧 신에 기도하는 삶과 같다. 올바른 글을 쓰기 위해 몇 번이고 지우며 쓰듯, 올바른 삶을 살기 위해 끊임없이 정진하고자 염원한다.
 
  화자는 꼿꼿한 연필처럼 바르고 정직하게 살기를 소망한다. 어둠보다는 빛나는 희망의 말을 쓰기를 소망한다. 죽는 날까지 정결한 태도로 오직 절대자를 위한 글만을 쓰다가, 언젠가는 향내가 사라지는 것처럼 조용히 소멸하겠다는 다짐을 드러낸다.
 
이해인 수녀의 시집 《내 혼에 불을 놓아》.
  마른 향내 나는
  갈색 연필을 깎아
  글을 쓰겠습니다.
 
  사각사각 소리나는
  연하고 부드러운 연필 글씨를
  몇 번이고 지우며
  다시 쓰는 나의 하루
 
  예리한 칼끝으로 몸을 깎이어도
  단정하고 꼿꼿한 한 자루의 연필처럼
  정직하게 살고 싶습니다.
  나는 당신의 살아 있는 연필
  어둠 속에도 빛나는 말로
  당신이 원하시는 글을 쓰겠습니다.
 
  정결한 몸짓으로 일어나는 향내처럼
  당신을 위하여
  소멸하겠습니다.
 
  -이해인의 ‘살아 있는 날은’ 전문

 
 
  ‘쓰다’의 시, ‘읽다’의 시
 
  겨울 산을 오르다 갑자기 똥이 마려워
  배낭 속 휴지를 찾으니 없다
  휴지가 될 만한 종이라곤
  들고 온 신작 시집 한 권이 전부
  다른 계절 같으면 잎새가 지천의 휴지이런만
  그런 궁여지책도 이 계절의 산은
  허락지 않는다
  할 수 없이 들려 온 시집의 낱장을
  무례하게도 찢는다
  무릎까지 바지를 내리고 산 중턱에 걸터 앉아
  그분의 시를 정성껏 읽는다
  읽은 시를 천천히 손아귀로 구긴다
  구기고, 구기고, 구긴다
  이 낱장의 종이가 한 시인을 버리고,
  한 권 시집을 버리고, 자신이 시였음을 버리고
  머물던 자신의 페이지마저 버려
  온전히 한 장 휴지일 때까지
  무참히 구기고, 구기고, 구긴다
  펼쳐 보니 나를 훑고 지나가도 아프지 않을 만큼
  결이 부들부들해져 있다
  한장 종이가 내 밑을 천천히 지나간다
  아, 부드럽게 읽힌다
  다시 반으로 접어 읽고,
  또다시 반으로 접어 읽는다
 
  -고영민의 ‘똥구멍으로 시를 읽다’ 전문

 
고영민 시인의 시집 《악어》.
  쓰는 행위를 의인화한 시도 있지만 읽는 행위를 시화(詩化)한 경우도 있다. 고영민의 ‘똥구멍으로 시를 읽다’는 산행 중에 갑자기 배가 아파 용변을 보는 내용이다. 시집 《악어》(2012)에 실렸다.
 
  배낭 속에 휴지가 없어 할 수 없이 시집의 낱장을 찢어 닦는다는 내용인데 의미가 가볍지 않다.
 
  딱딱한 시집 낱장을 부들부들해질 때까지 구겨야 간신히 쓸 수 있다. 화자는 구길 수밖에 없음에 미안한 나머지 시를 정성껏 읽는다. 그리고 낱장의 종이가 온전히 한 장의 휴지로 변할 때까지 구기고 구긴다. ‘정성껏 읽는다’는 행위와 ‘구기고 구긴다’는 행위는 정반대의 역설이지만 의미가 통한다. 가장 고귀한 시의 언어와, 가장 지저분할 수 있는 대변의 행위와, 그리고 한 편의 시는 바로 ‘읽다’라는 동사로 연결돼 있다.
 
  똥과 관련한 시 한 편을 더 보자. 곽재구의 ‘누런 똥’은 강인한 생명력을 상징한다. 배설물의 이미지가 아니다. 풋고추, 열무 쌈을 먹고 누는 똥이다. 나중 애호박을 누런 호박으로 자라게 하는 거룩한 똥임이 틀림없다.
 
  ‘힘주어 똥을 누다 보면 해 지는 섬진강이 보인다. 아름다운 절경이 보인다’는 의미다. 마지막 두 행이 인상적이다. ‘사는 일 바라거니 이만 같거라/ 땀나고 꽃피고 새 거름 되거라’고 염원한다.
 
  풋고추 열무 쌈 불땀나게 먹고
  누런 똥 싼다
  돌각담 틈새 비집고 들어온 바람
  애호박 꽃망울 흔드는데
  이쁘구나 힘주어 누런 똥 싸다 보면
  해 지는 섬진강 보인다
  사는 일 바라거니 이만 같거라
  땀나고 꽃피고 새 거름 되거라.
 
  -곽재구의 ‘누런 똥-평사리에’ 전문

 
 
  똥 이야기 두 편
 
이희국 시인의 시집 《파랑새는 떠났다》.
  시(詩)전문 잡지 《시문학》 6월호에 실린 이희국 시인의 ‘거꾸로 가는 시계’에도 똥이 등장한다. 그 똥은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눈 똥이다.
 
  네 살 아들의 똥을 어머니가 치웠듯이, 어느새 중년의 아들로 자란 시인은 정신의 유년으로 돌아간 어머니의 똥을 치운다. 역설 속에서 새삼 헌신적인 어머니의 사랑을 발견하며 지린내 나는 어머니의 바지를 시인은 소리죽여 빤다. 소리죽여 울면서.
 
  네 살 때 나는 가끔 오줌, 똥을 쌌다고 했다
  별일 아닌 듯 그것을 치웠을 어머니
 
  당신의 기억에 안개가 덮이고
  나 몇 살이니?
  백 살이니? 여든아홉이니?
  아들에게 묻는다
 
  어머니,
  그때의 내 나이가 되셨다
  잠시 전 기억도 슬쩍 지워버리는
  저 지독한 지우개
 
  깜빡 정신들 때,
  마지막 품위를 지키려 빨던 바지를 놓아두고
  무엇을 찾으려 했는지 방으로 갔다
 
  거름 주던 배추밭처럼 화장실이 난장이다
 
  가족이 잠든 밤
  그 옛날 어머니처럼 지린내를 삼키며
  문을 꼭 닫고 소리죽여 바지를 빤다
  어머니가 나의 네 살을 빨던 것처럼
 
  -이희국의 ‘거꾸로 가는 시계’ 전문

 
이문길 시인의 시집 《하늘과 허수아비》.
  이문길 시인의 ‘똥’은 겨우 2행으로 이뤄졌다. 단순한 시지만 느낌은 불편하다. 시집 《하늘과 허수아비》(2015)에 실렸다.
 
  세상이 똥통과 같다. 똥통의 도가니다. 똥통 속에는 아무리 아름다운 얼굴도 똥처럼 보인다. 세상살이가 아무리 고되도 똥일 뿐이다. 슬픔도 기쁨도 그저 똥과 같다. 똥이니 희로애락에 목맬 필요가 없다. 긍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다고 체념할 필요가 없다. 나만 똥 같지 않으니까. 모든 이가, 모든 세상살이가 똥 같으니….
 
  똥통 속에
  똥같이 살아 간다
 
  -이문길의 ‘똥’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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