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陰地의 戰士들

엄상익 변호사가 경험한 정보기관 〈3〉 안기부에 발을 들여놓다

안기부 요원의 적나라한 고백 “反共은 살아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나온 것”

글 : 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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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부 入部 결정되자 妻의 8촌 친척까지 광범위한 신원조사 벌여
⊙ ‘박쥐 사내’의 퉁명스러운 반문 “변호사가 왜 우리 조직에 들어오려고 하나”
⊙ 흑백 필름 동영상에서 본 끔찍한 장면
⊙ “정보요원은 ‘置之度外 계급’… 北은 그런 인간들 따지지도 않고 죽여”

嚴相益
1954년생. 경기고, 고려대 법대 졸업 / 사법고시 24회, 사법연수원 15기 수료 / 국가안전기획부 정책연구관, 법무법인 ‘정현’ 변호사 역임. 現 엄상익법률사무소 변호사
서울 남산의 국가안전기획부 옛 청사 전경.
  1987년경 남산 1호 터널 앞의 도로 한쪽은 탱크가 연병장에 웅크리고 있는 수도경비사령부였고, 도로 건너편 산자락에는 국가안전기획부가 있었다. 도로를 따라 우중충한 회색의 담이 이어졌고 그 위는 차단막으로 가려져 있었다. 담의 중간에 육중한 철문들이 항상 굳게 닫혀 있었다. 대낮에도 철문 뒤쪽은 어둠이었다. 그곳을 지나칠 때면 안에서 원인 모를 으스스한 냉기(冷氣)가 안개처럼 흘러나오는 느낌이었다.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나는 강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비밀 정보기관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막연한 신비감이 사람들 사이에 퍼져 있기도 했다. 정보기관의 보이지 않는 손이 대한민국 전체를 장악하고 있었다. 영등포 법원에서 판사를 하는 대학 동기는 이런 말을 했었다.
 
 
  안기부에 대한 호기심
 
부천서 성고문 사건 피해자인 권인숙씨와 권씨 변호에 나선 조영래 변호사(오른쪽).
  “판사실에 있는데 말이야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 검은 양복을 입은 안전기획부 요원 몇 명이 복도에서 구두 소리를 내면서 뚜벅뚜벅 걸어오는 거야. 정중한 태도에 공손하게 말하는데도 왠지 모르게 괜히 위축되더라고. 공안(公安)사건 때문에 업무 협조로 나온 안전기획부 요원이었어. ‘이 나라의 실질적인 권력이 그 사람들에게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판사들도 보이지 않는 권력에 주눅이 들어 있는 것 같았다.
 
  또 다른 선배의 얘기도 생각났다. 그 선배는 사법고시에 수석으로 합격한 중견 판사였다. 외모는 얌전하지만 정의감이 강한 투사 같은 법관(法官)이었다. 그 선배의 사는 모습을 알고 있었다. 1980년대가 되자 새로 나온 컬러텔레비전을 집마다 들여놓고 있었다. 그런데도 판사인 그 선배는 흑백텔레비전을 고집하며 검소하게 살았다. 그의 아버지는 도시락을 싸 들고 고무신을 신고 다니던 청렴한 대법관으로 법조인들 사이의 전설이었다. 한 번은 그가 이런 말을 했다.
 
  “판사는 세상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할 수가 없어. 그래서 내가 서울 서소문 명지빌딩에 있는 조영래(趙英來) 변호사의 사무실에 몰래 찾아갔었어. 내가 의견을 제시하고 조영래 변호사는 그 내용을 칼럼으로 써서 《동아일보》에 기고했지. 그런데 그 며칠 후 법원장이 나를 불러서 하는 말이 ‘당신 판사 그만하고 싶어?’라고 하면서 겁을 주는 거야. 깜짝 놀랐지. 알고 보니까 민주투사로 알려진 조영래 변호사의 사무실에 도청장치가 되어 있었던 거야. 안전기획부에서 나에 대한 정보를 법원장에게 통보한 거지. 그 법원장은 정보기관의 지시에 꼼짝 못 하는 사람이었어.”
 
  조지 오웰이 쓴 《1984년》을 보면 독재자 ‘빅 브라더’는 국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우리 사회에 도청(盜聽)의 공포가 깊숙이 배어 있었다.
 
 
  광범위한 신원조사
 
  1987년 봄 어느 날이었다. 나는 서울 종로5가에 있는 낡은 건물의 한 사무실에서 안전기획부의 인사 담당 요원을 만났다. 푸른 와이셔츠에 감색 넥타이를 맨 단정하고 세련된 옷차림의 30대 남자였다. 무테 안경의 하얀 얼굴에서는 엘리트의 기운이 풍겼다.
 
  “그동안 살아온 자서전을 써주시면 조직 내의 다른 파트로 넘기겠습니다. 그러면 그 부서에서는 자서전의 진실성을 조사하고 엄 선생님에 대한 광범위한 신원조사가 있을 겁니다.”
 
  부드러운 말투였지만 그는 나를 민감하게 관찰했다. 그로부터 보름쯤 흘렀다. 아내가 불안한 표정으로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여보 경상도 선산의 탑리에 우리 집 8촌 친척들이 살고 있는데 난리가 났어요. 정보기관 사람들이 경찰서에 나타나 우리 집안 사람들의 6·25 때 행적을 알아보고 있더래. 혹시 좌익활동이나 빨치산을 한 적이 없는지 말이야. 우리 친척 중의 한 사람이 경찰관인데 집안일이라 몰래 알려줬대. 모두들 겁을 먹고 있어. 도대체 왜 그러지?”
 
  예고 받았던 정보기관의 치밀한 신원조사 같았다. 그 얼마 후 만났던 인사 담당 요원이 전화로 내가 다음에 찾아가야 할 비밀장소의 위치를 말해주었다. 정보기관은 여러 곳에 위장(僞裝) 사무실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영화 속에서 첩보요원들이 비밀 아지트로 낡은 건물이나 창고를 쓰는 것처럼. 황사를 품은 바람이 심하게 불던 날이었다.
 
 
  “변호사 하면 되지 왜 우리 조직에 들어오려고 그래요?”
 
서울 남산 옛 안기부 청사 내부. 이곳은 1995년 처음으로 공개됐다.
  나는 퇴계로의 낯선 뒷골목을 걷고 있었다. 누렇게 변색된 흰 타일을 바른 여관이 있고 영세한 인쇄소들이 어깨를 맞대고 있었다. 오가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지난밤 술 취한 사람이 뱉은 토사물이 길바닥에 벌겋게 말라붙어 있었다. 골목의 깊은 곳에 낡은 회색 4층 건물이 있었다. 빌딩 이름도 입주해 있는 사무실 간판도 보이지 않았다. 음산한 기운만 건물 주변에 안개같이 서려 있었다.
 
  입구로 쓰는 작은 유리문이 있었다. 짙게 선팅이 되어 안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마치 홍콩 주룽거리의 범죄자들이 비밀 도박판을 벌이는 건물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나는 타인의 출입을 거부하는 듯 보이는 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형광등이 희미하게 켜져 있고 구석에 경비실 같은 유리 박스가 있었다. 그곳도 짙게 선팅을 해서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그 안에서 침묵하면서 나를 관찰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박스 중간에 선반이 붙어 있고 그 가운데 벨이 붙어 있었다. 용무가 있으면 그걸 누르라는 것 같았다.
 
  나는 벨을 눌렀다. 잠시 후 “들어오시죠”라는 쇳소리가 섞인 남자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들려왔다. 이어서 ‘철컥’ 하고 메마른 금속성의 소리가 나면서 안쪽으로 나 있는 이중의 작은 문이 열렸다. 길고 음산한 복도가 나타났다. 문이 굳게 닫힌 작은 방들이 연속되어 있는데 그중 한 방의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그 안으로 들어오라는 메시지 같았다. 그 안으로 들어갔다. 텅 빈 방이었다. 시멘트 바닥 가운데 철 책상이 하나 덩그렇게 놓여 있고 앞뒤로 접이식 철제의자가 놓여 있었다. 조사실 같은 분위기였다. 나는 그 철제의자에 앉았다.
 
  이삼 분쯤 시간이 흘렀다. 50대 초반쯤의 남자가 서류철을 손에 들고 내 앞에 나타났다. 날카로운 작은 눈에 귀가 뾰족하고 볼이 움푹 들어가 있는 것이 박쥐를 연상시켰다. 그는 자기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밝히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그를 ‘박쥐 사내’라고 생각했다. ‘박쥐 사내’는 들고 있던 서류철을 책상 위에 펼쳐놓았다. 그 안에 내가 쓴 자서전이 보였다. 빨간 줄, 파란 줄이 촘촘하게 그어져 있었다. 열심히 여러 번 읽고 세밀하게 분석한 것 같았다. 경찰이나 일반 행정기관과는 전혀 다른 정보조직의 진지함이 느껴졌다. ‘박쥐 사내’가 말을 꺼냈다.
 
  “변호사 하면 되지 왜 우리 조직에 들어오려고 그래요?”
 
 
  ‘박쥐 사내’와 나눈 퉁명스러운 대화
 
  그의 작은 눈은 나를 꿰뚫듯 탐색하고 있었다. 고갈된 우물같이 그는 감정이 거의 없어 보였다. 그는 변호사인 내가 들어가려는 이유를 정말 모르겠다는 얼굴 같았다. 당시만 해도 변호사는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업이었다. 전국에 몇백 명 되지 않았고, 지성과 함께 안정된 수입이 보장된다고들 인식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막연했다. 입에 발린 말이나 거짓이 통하지 않을 사내 같았다. 어설픈 소리를 했다가는 그의 조소(嘲笑)나 받을 것 같았다. 정직한 바보가 되어 정면 돌파하기로 마음먹었다.
 
  “비밀 정보기관이 어떤 곳인지 알고 싶어서요.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한번 구경하고 싶다고 할까.”
 
  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좀 더 정직하게 말하면 권력기관의 담 안을 구경하려는 문학적 호기심이었다. 그가 나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태도를 취할까 궁금했다.
 
  “구경할 거 별로 없어요.”
 
  짧지만 뭔가 핵심이 말투에 담겨 있었다. 그게 뭔지는 알 수 없었다. 그가 다시 내게 물었다.
 
  “변호사 하면 한 달에 얼마나 벌어요?”
 
  내가 돈 때문에 그곳에 가려고 하는 것인지 체크하는 것 같았다.
 
  “먹고살 만은 합니다.”
 
  내가 대답했다.
 
  “그러면 왜 들어오려고 해요? 그냥 살지.”
 
  “구경하고 싶어서 그런다니까요. 솔직하게 말한 건데 그럴듯한 명분을 만들어서 마음에 없는 거짓말을 할 걸 그랬나? 그런 거 원해요?”
 
  내가 되물었다.
 
  “아니, 그런 가짜는 필요 없어요. 통하지도 않고요.”
 
  퉁명스러운 대화였지만 순간 내면에서 뭔가 그와 통하는 느낌이 들었다. 말은 안 하지만 그는 내게 ‘호기심을 가질 만한 게 없는 기관입니다. 이쯤에서 돌아가시죠’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여기 안전기획부 월급은 얼마나 돼요?”
 
  이번에는 내가 물었다.
 
  “그것도 비밀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변호사보다 적어요.”
 
  “여기 들어오려면 앞으로 절차가 어떻게 돼요?”
 
  내가 그에게 다시 물었다.
 
  “앞으로 여러 테스트 과정을 거치게 될 겁니다. 구경하겠다는 호기심만으로 그 과정을 통과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에요. 며칠 후 우리 조직에서 IQ(아이큐)검사, 인성검사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검사를 할 겁니다. 그 후로는 공수(空輸)훈련이나 서해안 무인도에서 침투훈련 등 힘든 과정을 겪을 겁니다. 그 과정을 통과하면 정보조직을 구경하실 수도 있지만, 새까만 상공에서 낙하산을 메고 떨어지라고 하면 도중에 스스로 포기하실걸요. 우리 조직은 인재가 필요하니까 환영합니다만, 여기 들어와도 실망할 겁니다. 애초에 안 들어오는 게 좋을 거예요. 잘 결정하세요.”
 
  말 속에 그의 진심이 묻어 있는 게 느껴졌다. 나는 슬며시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공산당 지하당 입당식’ 같았던 선서
 
  그가 내가 다음 가야 할 곳을 알려주었다. 나는 서울 외곽의 군부대 같아 보이는 어떤 지역으로 갔다. 철조망이 쳐진 회색의 높은 담으로 둘러싸인 지역이었다. 중간쯤에 대형 철문이 있고 그 앞에 바리케이드가 놓여 있었다. 가죽점퍼에 감색 헬멧과 검은 선글라스를 쓴 경비요원이 M16을 들고 서 있었다. 철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갔다. 무거운 정적이 흐르는 넓은 공간 여기저기 장방형(長方形)의 건물들이 웅크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중 한 건물로 들어갔다. 병원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소독약 냄새가 공기 중에 배어 있고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보였다. 그곳에서 IQ검사, 인성검사를 비롯해 여러 검사를 받았다. 흰 가운을 입은 검사를 담당한 남자가 이런 말을 했다.
 
  “정보기관에 들어오셔도 되는지 정신적 요소를 검사하는 겁니다. 정보요원이라고 하면 세상에서는 영화나 소설에서 보듯 음모적이고 냉혈한(冷血漢)을 연상합니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비정상적인 인간들은 정보요원으로서는 부적격입니다. 상식적이고 정직하고 바른 인간만이 다른 사람들 마음을 볼 수 있고 그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어요. 사람들의 마음을 먼저 얻어야 귀중한 정보를 구할 수 있는 겁니다. 우리는 과학적인 검사를 통해 정보요원이 될 사람을 찾아내는 겁니다. 그런 검사를 받으시는 거죠. 정상이면 통과됩니다.”
 
  그곳에서 이틀 정도 검사를 받고 나는 다시 어떤 건물의 지하로 안내되어 갔다. 사방은 하얀 방음벽이고 정면에는 모니터가 달려 있었다. 스피커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자, 한쪽 손을 들고 선서를 하십시오. 동시에 이 맹세는 촬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마치 영화에서 본 공산당의 지하당 입당식 같았다. 마이크에서 소리가 계속 흘러나왔다.
 
  “정보요원이란 음지(陰地)에서 일하는 직업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신분이 노출되면 안 됩니다. 자신의 신분을 나타내는 그 자체가 규칙 위반이고 그에 따른 처벌을 받게 됨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정보기관은 교활하면서 비정한 곳”
 
  가슴이 서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은 강제하지 않았다. 그만두려면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도록 선택권은 나에게 있었다. 그들은 무거운 분위기를 연출하여 그 중압감에 스스로 물러나게 만들려고 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항상 그런 분위기 속에 있는 그들은 그런 감정조차 가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
 
  나는 다시 대형 스크린이 설치된 다른 방으로 갔다. 괴괴한 적막이 고여 있는 방이었다. 하얀 스크린이 켜지면서 의자에 묶여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이 나타났다. 흑백필름의 동영상이었다. 극도의 전기고문이 그에게 가해지고 있었다. 그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지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하게 그 화면에 대한 설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정보요원이 적(敵)에게 사로잡히면 맞이해야 하는 운명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 같았다. 당신은 이렇게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것 같았다. 또 다른 흑백 화면이 나타났다. 굴속같이 어둠침침한 비행기 안에서 정체 모를 사람들이 뛰어내리는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다. 거기에는 간단한 스토리가 있었다. 비행기 안에는 조직을 배신하고 이중첩자 노릇을 한 정보요원이 있었다. 그는 조직이 자신의 배신을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조직은 그에게 다시 적지에 침투하라고 지령을 내렸다. 그가 비행기를 타고 적지에 들어가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는 순간이었다. 낙하산 줄이 누군가에 의해 이미 잘려져 있는 장면이 순간 스치고 지나갔다. 배신자의 조용한 처단을 화면은 소리 없이 내게 알리고 있었다. 화면이 소멸하고 스크린이 천장으로 말려 올라갔다. 그때 문을 열고 한 남자가 들어와 스크린이 있던 자리에 섰다. 그가 내 앞에서 조용히 설명했다.
 
  “오래전의 일입니다. 북한 정세를 파악하기 위해 군의 하사관 출신들을 많이 북으로 보냈습니다. 그들의 공로에 대해 정부가 보상(補償)을 해야 했죠. 그들에게 희망이 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많은 하사관이 장교가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정보부는 그들을 임시장교로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을 비행기에 태우고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 그들에게 낙하산을 타고 하강(下降)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들이 메고 있는 낙하산은 이미 줄이 끊어져 있었습니다. 정보부는 그렇게 그들의 입을 영원히 막고, 대신 전쟁 영웅으로 만들어 국립묘지에 묻히게 했습니다. 우리 정보기관이란 그만큼 교활하기도 비정한 곳이기도 합니다.”
 
 
  요원이 들려준 우리 사회의 밑바닥 소리
 
  나는 그 말을 듣고 모골이 송연해졌다. 잠시 후 4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내가 있는 방으로 들어와 녹음기 하나를 앞에 있는 탁자 위에 놓았다. 역시 그는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 그곳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그림자 인간’인가 보다 생각했다. 그가 녹음기의 재생버튼을 누르면서 말을 시작했다.
 
  “이 녹음은 부촌(富村)으로 알려진 압구정동 아파트 단지에서 일하는 파출부들이 성남에 있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하는 말들을 녹음해서 편집한 겁니다. 또 테이프 안에는 택시기사들이나 바닥 사람들의 불평이 광범위하게 들어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밑바닥이 어떤지 먼저 들어보시죠.”
 
  녹음기가 칙칙거리는 잡음을 내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차 안에서 사람들이 내는 소리가 들끓고 부딪치고 있었다. 강한 톤의 사투리들이 많았다. 외마디 같은 소리도 있고 악을 쓰면서 뭔가를 저주하는 것 같은 음성도 들렸다. 그가 도중에 녹음기를 끄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파출부들은 대부분 자기를 쓰는 부잣집 여자들을 증오합니다. 그들은 뼈가 빠지게 일해도 밥 먹고 살기 힘든데 강남의 사모님들은 전신(全身) 마사지다 쇼핑이다 하면서 호화 사치의 극을 이룹니다. 게다가 없는 사람 앞에서 교만하고 건방을 떱니다. 거기서 적개심과 증오가 생기는 겁니다.
 
  이 나라의 그런 졸부들이 어떻게 생겼을까요? 우리 정보조직에서 파악한 바에 의하면 뇌물이나 부동산 투기로 부자가 된 경우가 많습니다. 정치인이나 고위관료들을 우리 정보부에서 오랫동안 은밀히 관찰하고 있습니다. 장관을 그만둔 지 10년이 지났는데도 집에 차를 두 대나 굴리고 기사를 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을 매일 호텔에서 만나곤 합니다. 그렇게 사는 데는 많은 돈이 듭니다. 그 돈들이 어디서 난 것일까요? 아무리 숨겨도 그 돈 씀씀이로 관료나 정치인들의 부정과 비리가 드러납니다. 그들의 부인들이 가난한 사람들 위에 군림하면서 여왕(女王)같이 사는 겁니다.”
 
 
  “北은 ‘基層 민중’의 심리 꿰뚫고 있다”
 
서울 용산구 남영동 대공분실 터 모습. 2022년 이곳에 민주인권기념관이 건립될 예정이다.
  그의 얘기는 계속 이어졌다.
 
  “우리 정보조직에서는 그들을 ‘하마족’이라고 부릅니다. 도둑질한 돈으로 골프장과 사우나의 물통에서 사는 족속을 말하는 거죠. 그런 하마족이 사람들의 마음을 멍들게 하고 불공평한 세상을 만들고 있습니다. 녹음기 속에서 앙칼진 욕도 들리고 한 서린 소리도 들으셨죠? 세상이 언제 뒤집히냐는 말들입니다. 파출부들은 세상이 뒤집히면 자기가 일을 나가던 아파트가 자기 집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또 한밤중에 택시기사들이 하는 소리를 들어보십시오. 정보요원이 승객이 되어 불만을 조금만 유도해도 이 세상이 언제 확 뒤집히느냐는 반응들이 터져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이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뇌관만 건드리면 언제든지 폭발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입니다.”
 
  의외로 사회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꿰뚫고 있었다. 나는 그의 다음 말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북한은 이런 기층(基層) 민중의 심리를 꿰뚫고 있습니다. 남한 사회의 80%가 자기들 편이라고 계산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이들 기층 민중이 들고일어나면 남조선 혁명은 순간에 달성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북의 김일성은 남한에서 국가보안법이라는 방파제를 없애고, 소수정당으로라도 북한노동당을 국회에서 인정만 해주면 선거로도 남조선 혁명을 이룰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습니다.
 
  지금같이 빈부격차가 크고, 도덕성이 약한 사회에서 그게 불가능한 소리만은 아니죠. 패망한 월남(越南)이 그랬습니다. 부정부패로 부자가 된 부유층은 서민과 너무 멀리 동떨어져 있었습니다. 승려들이 무능한 정권을 향해 분신으로 저항을 하고 국민들의 마음이 정부에서 멀어져 있었습니다. 일부 부유층은 너무 미국화되어 있기도 했죠. 무책임한 미국이 발을 빼자마자 월남은 바로 점령당했습니다. 대한민국도 그런 패망한 월남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사회에서 위험을 미리 감지하고 체제를 지키는 건 누가 하는 걸까요? 법이 하는 걸까요?”
 
 
  “법은 돈 있는 하마족들의 편”
 
  그 남자가 씩 웃으면서 나를 보더니 말을 이었다.
 
  “법은 돈 있는 하마족들의 편입니다. 돈을 먹이면 법은 부자 편으로 휘어버리게 마련입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라는 말이 국민들 사이에 공감을 얻고 있죠. 법대로 한다면서 부자들은 법망에서 다 빠져나갑니다.
 
  체제를 지키기 위해서는 먼저 사회가 건강해져야 합니다. 사회의 곪아가는 부분들을 예민하게 체크하고 백혈구 같은 역할을 할 조직이 필요합니다. 어떤 조직이 그 기능을 수행할까요? 언론일까요? 자본주의에서 언론은 그 소유주가 대개 재벌이나 사업가입니다. 한계가 있습니다. 공정한 법치가 실현되어야 하지만 현실이 그런가요? 아직 그렇지 못한 실정입니다. 사회의 각 분야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수뇌부에 전달하는 신경 같은 정보기관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그가 거기까지 말하고는 얼굴에 의미 있는 웃음을 지으며 덧붙였다.
 
  “여기서 잠깐 얘기의 방향을 돌려보겠습니다. 정보요원으로 일해온 저나 지금 처음 만나 뵌 엄 선생은 좌익이 이 사회를 점령하면 어떤 입장일까요? 우리는 부자도 아니고 나쁜 일도 한 적이 없으니까 괜찮다고 할 수 있을까요?
 
  우선 저부터 말씀드리죠. 북한 노동당에서는 남한 사람들을 51계급으로 분류해서 혁명이 완성됐을 경우 숙청(肅淸)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그 기준으로 볼 때 저 같은 정보요원은 ‘치지도외(置之度外·내버려 두고 문제 삼지 않음) 계급’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하면 그런 인간들은 따질 것도 없이 때려죽인다는 겁니다.
 
  저나 엄 선생이나 이 사회가 무너질 경우 가장 처참하게 죽을 운명이죠. 엄 선생은 변호사이고 아직 이 조직의 사람이 아니니까 괜찮을까요? 우리 조직은 몇 시간만 있어도 또 협조자만 돼도 그 이름이 비밀리에 기록이 됩니다. 그 기록이 적에게 넘어갔다고 생각해보세요. 하루만 있었다고 용서하고 살려둘 것 같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공산주의자, 기회주의적 회색분자를 더 싫어해”
 
  “엄 선생은 이미 죽음에 이르는 배를 우리와 함께 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조직 안에서 단순히 보일러공이었다고 변명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다고 용서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다음 계급으로 넘어가봅니다. 군 장교나 경찰관, 검사나 판사도 마찬가지로 죽어야 할 운명입니다. 6·25 무렵 법관 중에 웃음이 나오는 숙청기록도 있습니다. 인민재판에 회부된 판사가 자기는 민사(民事) 재판만 했고 그것도 공정하게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말에 ‘판사면 판사지 민사 판사는 이마에 그런 딱지를 붙이고 다니냐’는 야유가 터져 나왔었죠. 그 판사의 처형기록이 있어요.
 
  지금 이 사회에는 좌익사상에 물든 어설픈 지식인들이 많습니다. 그들의 운명도 어차피 마찬가지일 겁니다. 공산주의자들은 기회주의적 회색분자를 더 싫어해요.
 
  이 땅에 좌익세력이 많습니다. 북한은 남한의 좌익세력을 몇 수 아래로 봅니다. 과격시위를 주동하라고 명령을 내려보내고 찍힌 시위 장면을 북한의 매체들을 통해 보도하죠. 북한 주민들을 세뇌하기 위해 남한의 좌익을 이용하는 겁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별로 인정하지 않고 깔보는 거죠.
 
  결국 제가 말하려는 건 공허한 사상개념보다 나와 가족이 살아야 한다는 절대 명제(命題)가 앞선다는 겁니다.”
 
  그의 말에는 설득력이 있었다. 단순히 겁주는 소리만은 아닌 것 같았다. 그가 결론지었다.
 
  “숙청은 북의 공산당이나 좌익들에게는 단순한 이념의 실현 단계일지 모르지만 숙청을 당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생명의 문제입니다. 우리의 반공(反共)은 이념이 아니라 살아야 한다는 절박한 배경에서 나온 겁니다. 반공을 해야 하는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이제부터는 이 정보조직에서 키우는 정예요원들의 훈련과정에 합류하게 될 겁니다. 그 과정을 인내를 가지고 잘 견뎌내면 좋겠습니다.”
 
 
  명문대 출신 요원들
 
  내가 고정관념을 가지고 막연히 부정적이던 정보조직과는 다른 것 같았다. 정보부라고 하면 막연하게 사람들을 연행해 지하실에서 고문을 하는 기관이라는 인식이었다. 그러나 담장 안에 들어와 보기 시작한 그들의 모습은 의외로 조직적이고 어떤 방향성과 이념적 지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며칠 후 나는 정예요원들이 훈련받는 곳에 합류했다. 그곳은 서울 외곽의 일반인 출입이 봉쇄된 넓은 왕릉(王陵) 지역이었다. 작은 언덕 같은 왕릉이 있고 그 아래 사당(祠堂)이 있었다. 그 주변은 손질이 잘 된 잔디밭이 펼쳐져 있고 크고 작은 연못이 보였다. 양지 쪽의 연못에서는 비단잉어들이 흐느적거리며 유영(游泳)하고 있었다. 그 뒤쪽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에 요원들이 기숙사로 쓰는 시멘트로 된 견고해 보이는 2층 건물이 있었다. 나는 그 건물의 2층 앞쪽 방을 배정받았다. 두 사람이 같이 쓰는 방이었다. 양쪽 벽으로 1인용 침대가 붙어 있고 창문 쪽으로는 나무 책상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같은 방에 묵는 요원은 주(駐)프랑스 대사의 아들이라고 했다. 좋은 집안의 자식들이 그곳 요원으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
 
  어떤 사람들이 정예요원으로 선발되어 왔나 살펴봤다. 서울대, 연대, 고대 등 속칭 명문대 출신들이 많았다. 정보기관의 인사 담당부서에서는 대학 입학 초기 때부터 우수한 인재들을 찍어 4년 동안 장학금을 주어가면서 요원을 기른다고 했다.
 
  명문 여대(女大) 출신도 여러 명 보였다. 남자요원들과 차별 없이 똑같은 훈련을 받는다고 했다. 전부 탤런트 같은 미인(美人)들이었다. 정규 사관학교를 나온 대위(大尉)들도 많았다.
 
  내가 그곳에서 눈여겨본 이는 그들을 지휘하는 교육대장이었다. 교육대장은 정보요원 중에서 가장 우수하고 리더십이 있는 사람을 뽑아서 시킨다고 했다. 교육대장은 요원들과 똑같이 밥을 먹고 막사에서 잠을 자고 같이 뛰었다. 입으로 말하지 않고 그의 행동 자체가 교육인 것 같았다. 교육대장은 작달막한 키에 반듯한 이마의 30대 후반쯤의 남자였다. 각진 턱과 무술로 익힌 듯한 근육질의 팔다리에서 그의 강인성이 느껴졌다.
 
 
  軍警 훈련과 차원이 다른 안기부 훈련
 
  나에게 주어진 교육은 권총 사격부터 시작됐다. 왕릉 앞 연못 뒤편 장방형의 시멘트 건물이 사격장이었다. 교관이 내 앞에 서 검은색 가죽으로 된 007가방을 열었다. 안에는 번들거리는 검은 빛의 38구경 리볼버가 들어 있었다.
 
  “군에서 장교 생활을 하셨죠?”
 
  “그렇습니다.”
 
  “그러면 45구경 볼트는 쏴보셨겠네요?”
 
  “쏴봤습니다.”
 
  휴전선에 있는 사단에 근무하면서 철책선 순찰을 돌 때 나는 탄창을 꽉 채운 45구경을 차고 다녔다.
 
  “38구경 리볼버는 다루어보셨습니까?”
 
  “못 해봤습니다.”
 
  “별거 아니에요. 한번 연습해보세요.”
 
  그는 안전장치를 풀고 들고 있던 리볼버의 탄창을 옆으로 젖혔다. 그러고나서 앞에 놓인 실탄 곽에서 총알을 꺼내 탄창의 구멍 속에 집어넣었다. 총알들은 자기 구멍으로 매끄럽게 들어가 자리 잡았다. 그가 내게 리볼버 권총을 넘겨주면서 말했다.
 
  “우선 여기 실탄 곽에 있는 100발을 재미 삼아 쏴보세요. 자꾸 쏴봐야 사격에 흥미를 가집니다. 오늘은 고정사격을 하고 익숙해지면 그다음에는 움직이는 표적을 쏩니다. 마지막에는 사람이 이동하면서 움직이는 표적을 맞히는 걸 알려드릴 겁니다.”
 
  군이나 경찰의 훈련시스템과 차원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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