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陰地의 戰士들

엄상익 변호사가 경험한 정보기관 〈2〉 이병호 전 국정원장과의 첫 만남

‘엘리트 정보요원’ 이병호, 안기부 入部를 제의하다!

글 : 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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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운동 했으면서 정보기관行 택한 한 선배의 ‘아이러니’
⊙ 이병호 “(정보기관은) 국가를 경영하는 곳”
⊙ 牧者가 양 떼 몰 듯 정보기관도 강제적으로 정부 끌고 가는 기구
⊙ 안기부, 대학 시절 시위 주도했던 학생회장 출신들 스카우트하기도

嚴相益
1954년생. 경기고, 고려대 법대 졸업 / 사법고시 24회, 사법연수원 15기 수료 / 국가안전기획부 정책연구관, 법무법인 ‘정현’ 변호사 역임 / 現 엄상익법률사무소 변호사
이병호 전 국정원장은 필자를 안기부로 이끌어줬다. 사진=뉴시스
  대학 시절 한 학년 위인 선배를 떠올렸다. 그는 운동권이었다. 머리에 띠를 두른 채 강의실에 들어와 투쟁 현장으로 학생들을 내몰던 인물이었다. 그런 반(反)정부 활동을 하면 취직도 안 되고 감옥 갈 위험도 많은 시절이었다. 모든 것을 내던지는 그의 용기가 부러웠다.
 
  그랬던 그가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자유민주주의를 부르짖던 그가 독재정권의 친위대 격인 정보기관에 들어간 자체가 아이러니였다. 군대같이 강제로 징집을 당한 것도 아니고 자기 스스로 간 것이다.
 
  그는 도대체 왜 정보기관으로 들어갔을까. 그를 만나면 뭔가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연락해 서소문 근처의 한 식당에서 만났다.
 
  “박 선배, 어떻게 정보기관으로 들어갔습니까?”
 
  내가 물었다.
 
  “내가 스스로 지원해서 들어갔습니다. 머리띠를 두르고 거리에서 피를 흘리고 시위를 해도 무력감만 느꼈어요. 정의(正義)인데도 사람들은 동조하지 않고 구경만 하고 있었죠. 자유로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희생을 해도 바라보는 눈길들은 차디차다고 느꼈어요. 많은 동지가 힘에 대한 갈증을 느꼈죠. 힘이 있어야 작은 열매라도 이루어내는 겁니다.”
 
  “정보기관에서 어떤 일을 하십니까?”
 
  “그건 보안이라 말해줄 수 없어요.”
 
  “그렇다면 추상적으로라도 말해줄 수 없어요?”
 
  “엄 변호사가 상상할 수 없는 영향력 있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할 거예요.”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라는 그 말 자체가 나의 뇌리에 깊숙이 각인되고 있었다. 그가 잠시 생각하는 표정이더니 이렇게 말했다.
 
  “사무실에서 만드는 보고서의 끝에 ‘조치의견’이라고 해서 나의 생각을 씁니다. 그 정보 보고서가 관계부처로 통보되면 바로바로 정책이나 제도가 바뀌는 걸 눈으로 봅니다. 정보기관 보고서의 마지막에 있는 작성자의 의견은 그대로 국가를 바꿀 수 있는 명령이 되는 거죠. 그런 영향력은 국회의원도 언론도 없어요.”
 
 
  ‘옆집 아저씨’와의 첫 만남
 
  그 무렵 우리 아파트 옆집에는 50대 중반의 부부가 살고 있었다. 동네에서 평(評)이 좋은 집이었다. 그 집 부부는 우리 부부와 같은 교회를 다니고 있었고, 그 집 남자는 구역의 책임자로 우리 집에 와서 함께 예배를 보기도 했다. 아내는 옆집 부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여보, 옆집 사모님을 보면 미모에 항상 미소를 짓고 살아. 믿음이 얼마나 깊은지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서 새벽기도를 거르는 날이 없다고 그래. 그래서 가족이 잘되나 본데 나는 발꿈치도 못 따라가겠어. 경비 아저씨 말로는 그 집 아저씨가 청와대에 있다고 그래.”
 
  한번은 아내가 문 앞에서 이불 먼지를 털다가 빨래를 가지고 나온 그 집 부인과 마주쳤다.
 
  “그 집 아저씨는 청와대에 계신다고 하던데 맞아요?”
 
  아내가 그 집 부인에게 물었다.
 
  “그건 아니고요. 우리 집 그이는 사실 안전기획부에 있어요.”
 
  그 집 부인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우리 남편이 그 기관에 관심이 있는 것 같은데….”
 
  아내가 말했다.
 
  “그러면 한번 우리 아이 아버지와 엄 변호사가 얘기할 자리를 만들게요.”
 
  그날 저녁밥 먹는 자리에서 아내가 불쑥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미쳤나 봐. 옆집 아저씨가 안전기획부라는 곳에 있다고 그래서 내가 우리 남편이 그런 기관에 관심이 있다고 말해버렸어. 당신이 나한테 그런 말을 직접 한 적이 없는데 내가 왜 불쑥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어.”
 
  아내는 자신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나의 생각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게 어떤 기관이래?”
 
  “나도 모르죠.”
 
  “옆집 아저씨 한번 뵙자고 말을 전해 봐.”
 
 
  “검찰·경찰은 안기부하고 상대가 되지 않아요”
 
  주말 오후였다. 옆집 남자가 우리 집으로 건너왔다. 흔히 보는 평범한 이웃의 인상이었다. 그와 아파트 거실 바닥에 철퍼덕 앉아 책상다리를 하고 마주 앉았다.
 
  “뭐 궁금한 게 있다면서요?”
 
  그가 밑도 끝도 없이 이렇게 말을 시작했다.
 
  “안전기획부에 근무하신다면서요?”
 
  “사실 그래요. 보안이라 남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안전기획부가 뭐하는 뎁니까?”
 
  “글쎄, 내가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하나?”
 
  그는 순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저는 남산 지하실에 사람들을 끌고 가서 고문하는 비밀 정보기관 정도로만 알고 있습니다. 또 군대 있을 때 경험으로는 중정(中情) 요원이 군부대까지 출입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하더라고요.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기관이라고나 할까요?”
 
  “그건 말이죠, 한 관점에서만 본 빙산(氷山)의 일각에 불과하고 사실을 말한다면 국가 경영을 한다고 할까요. 설명하기가 쉽지 않아요.”
 
  “검찰·경찰과 비교해서 어떤가요? 같은 공안기관 아닌가요?”
 
  “검찰·경찰은 국가안전기획부하고는 상대가 되지 않아요. 우리가 국가 전체에 대해 기획하고 관계부처를 조정하는 입장이라면, 검찰이나 경찰은 그 하부(下部) 집행기관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겁니다. 현실이 그렇습니다.”
 
  “왜 그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정보기관이 필요한 겁니까?”
 
 
  ‘옆집 아저씨’가 말하는 정보기관의 존재 이유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 로고.
  “그건 좁게 보지 말고 좀 더 넓게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 주변은 소련이나 중공, 그리고 북한 등 모두 힘이 강대한 공산권 국가입니다. 그런 속에서 우리는 수십 년 동안 섬 같은 존재로 살아남고 있습니다. 중동의 아랍 국가 사이에 있는 작은 이스라엘과 비슷한 존재죠. 이스라엘은 국가가 존재하기 위해 정보기관 모사드가 항상 눈에 보이지 않는 음지에서 치열한 전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적국(敵國)의 지도자를 암살하기도 하고 온 세계에 스파이를 보내 첩보전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살아남기 위해 그들은 형식적인 법의 테두리를 넘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공산권에 둘러싸인 섬 같은 나라가 된 우리도 국가를 지키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의 모사드 같은 기관이 필요한 겁니다. 원래 민주주의란 말이 많고 국가 경영에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겁니다. 북한과 경쟁을 하면서 대한민국을 일정 수준으로 급히 올려야겠다고 생각한 박정희 대통령은 그 목적을 이룰 수 있도록 신경망을 구축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목자(牧者)가 지팡이와 막대기로 양 떼를 몰 듯 국민들과 정부 조직을 강제로 몰고 갈 수 있는 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신 거죠. 그런 배경에서 중앙정보부가 탄생한 겁니다.”
 
  정보기관에 관한 ‘옆집 아저씨’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우리나라 특성상 미국이나 영국 같은 나라의 정보기관과는 다르게 만들었어요. 강력한 힘을 그곳으로 모은 거죠. 미국만 해도 CIA는 정보와 공작만 하고 수사는 FBI가 하죠. 그런데 우리나라는 정보기관에 수사권도 합치게 했죠. 그뿐만 아니라 대통령 직속기구로 해서 정부 각 부처나 조직에 대한 조정통제권도 부여했어요. 정보기관의 통보가 대통령의 명령이나 마찬가지의 힘이 된 거죠.”
 
 
  ‘조직의 엘리트화’
 
  그의 말을 내가 받았다.
 
  “정보기관에 제가 호기심을 갖고 있습니다. 프레드릭 포 사이트가 쓴 첩보소설들을 거의 다 읽었습니다. 국내 작가로는 김성종씨의 《제5열》이라는 작품도 재미있게 읽었고요. 한번 직접 경험해보고 싶습니다.”
 
  프랑스의 소설가 앙드레 말로는 글을 쓰기 위해 실제로 전쟁에 참여해보기도 하고 게릴라가 되기도 했다. 헤밍웨이도 스페인 내전(內戰)에 참여해 그때 경험을 소설로 썼다. 서머싯 몸도 비밀 정보기관에 들어가 체험을 했다.
 
  “저도 장교로 있을 때 첩보소설을 좋아해 많이 읽었어요. 그러다가 육군 중령 때 중앙정보부 해외공작국 정보요원으로 들어갔죠. 언젠가 시간이 되면 외국 정보기관에 대한 책들을 번역해서 발표하고 싶어요.”
 
  “정보기관에 근무하면서 뭘 얻었습니까?”
 
  내가 핵심을 물었다.
 
  “국가 경영의 실체와 권력의 본질이라고 할까요.”
 
  “거기에 저 같은 변호사도 잠시 일할 자리가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미국의 CIA도 변호사 출신이 만들었습니다. 지금의 안전기획부는 새로운 사람들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조직이든지 한 계통의 사람만 쓰다 보면 파벌(派閥)이 형성되고 자리를 독점하게 되죠. 우리 정보기관은 창설 당시 군(軍) 특무대나 헌병대 출신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어떤 조직이든지 그 수준은 거기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질에 달려 있죠. 군 계통이나 경찰 계통 사람들을 쓰다가 대학 졸업자들을 공개 채용해서 정예요원으로 만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그들이 거의 조직을 장악할 정도로 커졌습니다.”
 
  옆집 아저씨는 정보기관이 요원 구성에 있어 변화를 주고 있다는 말도 했다.
 
  “지휘부에서는 그들을 견제할 수 있도록 또 다른 다양한 엘리트 그룹을 만들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대학 시절 시위를 주도했던 학생회장 출신들을 여러 명 스카우트했습니다. 지금의 간부들 중에는 그런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처음으로 고시(考試)에 합격한 엘리트들을 몇 명 뽑았습니다. 서울대를 나오고 사법·행정 고시 양과(兩科)에 붙은 사람들을 뽑았죠. 그런 사람들이 조직의 질을 높인다고 보는 거죠. 지금까지는 옛날 군대의 특무대·헌병대에 있던 사람들이 남아 있습니다. 앞으로 그들이 자연적으로 정리되면서 조직이 엘리트화되어야죠.”
 
 
  ‘옆집 아저씨’는 훗날 南北 모두의 표적이 된 이병호
 
2017년 11월 10일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하는 이병호 전 국정원장. 필자는 이 원장의 변호인을 맡았다. 사진=조선DB
  “그곳의 정예요원들은 어떻게 만들어집니까?”
 
  “안전기획부에서 정예요원으로 만들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고통을 주는 훈련을 시킵니다. 저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월남전에 소대장으로 참전했던 사람입니다만, 군부대의 유격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혹독한 과정을 거칩니다. 낙하산도 타야 하고 서해안의 무인도에 가서 지옥훈련을 하면서 침투 과정을 겪기도 합니다. 북한에서 대한민국에 간첩을 보낼 때 시키는 밀봉(密封)교육과 그 훈련 내용이나 강도가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겁니다. 그리고 왜 대한민국을 지켜야 하는지 애국심과 철저한 정신교육을 받죠. 정예요원으로 사용하지 않을 인물들에 대해서는 그렇게 훈련시키지 않습니다. 용도에 따라 교육과정이 다 다르고 개별적으로 진행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면 저 같은 사람은 안 되겠네요. 몸도 따르지 못하고 그만한 의지도 없으니까요.”
 
  나는 생각이 달라지고 있었다.
 
  “엄 변호사 같은 엘리트 출신에게는 그런 훈련 과정 없이 지능을 필요로 하는 정보 분석 업무만 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정보기관 요원들이 실제로 어떤 일을 하는지 그 생리를 전혀 모르게 됩니다. 보안이라 제가 다 털어놓을 수는 없는데 한번 자청해서 정예요원들이 훈련받는 데 합류해보세요. 체력이 따르지 못하면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걸 얻을 수 있을 겁니다. 많은 걸 깨달을 수 있을 겁니다. 제 육사(陸士) 후배가 인사 파트에 있는데 말해둘게요. 연락이 갈 겁니다.”
 
  그는 안전기획부의 해외공작국 부국장 이병호였다. 후일 박근혜 정권에서 국정원장이 되어 김정은 암살을 지휘한 인물이다. 북의 김정은은 그를 끝까지 추적해서 죽이겠다고 보복을 선언하기도 했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고 김정은과의 평화무드가 조성되면서 이병호 국정원장은 구속됐다. 예전의 그 인연으로 나는 그의 변호사가 되어 법정에 서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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