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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사상 크로스 〈9〉

한비자와 마키아벨리 4

“法은 귀한 자에게 아첨하지 않는다”

글 : 임건순  동양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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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法家, 군주·국가의 對民직접지배체제 확립 통한 富國强兵 추구
⊙ 儒家는 治者-被治者, 法家는 군주-귀족-백성으로 이해
⊙ 마키아벨리, 군주의 측근 귀족들에게 인색하고 백성들에게 너그러울 것을 강조
⊙ 오늘날 한국에는 勞組와 公共부문 종사자들이 ‘중산층’으로 가장한 새로운 중간지배층으로 등장

임건순
1981년생. 서울시립대 행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수료 / 저서 《한비자, 법과 정치의 필연성에 대해서》 《제자백가 인간을 말하다》 《묵자: 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 사상가》 《손자병법: 동양의 첫 번째 철학》 《생존과 승리의 제왕학 병법노자》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 《순자: 절름발이 자라가 천 리를 간다》 등
14세기 유럽의 도시에 거주하던 다양한 신분 계층을 그린 필사화.
  법가(法家)사상의 핵심 내지 그들이 추구하는 청사진의 핵심은 무엇일까? 흔히 부국강병(富國强兵)이라고 하는데 부국강병을 위해서 반드시 관철해내야 한다고 법가사상가들이 역설하던 것이 있다. 바로 백성들에 대한 직접지배체제의 확립이다. 그들은 늘 민(民)을 직접적으로 다스리려고 했다. 동양사 연구의 태두(泰斗) 이성규 선생은 이를 제민지배체제(齊民支配體制)라는 말로 표현했는데, 백성들을 하나하나 직접 지배하고 동일한 원칙으로 그들을 다스리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군주 혹은 국가가 백성을 하나하나 직접 또 일원적으로 다스려야 쓸데없는 국력의 낭비가 없고 백성들에 대한 착취를 최소화시킬 수 있다. 그 직접지배체제가 확립되어야 백성들의 삶이 보호될 수 있고 구성원들의 재생산(再生産)이 활발해지며 국력이 강해질 수 있다.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었다. 훼방꾼들이 있다. 지방에는 토호(土豪)와 유지, 호족들이 있고 중앙에는 귀족과 벼슬아치, 관료, 무사, 사제(司祭) 계급이 있다. 넓은 토지를 가지고 사적(私的)으로 백성들을 취하려고 해서 국가 호적에 누락되게 하고, 나라만이 백성들에게 세금을 거둬야 하는데 사적으로 백성들에게 편취를 해서 이중으로 백성들이 시달리게 했다. 지방관이 부임을 하면 지방에서 지방관을 괴롭히는 인간들이 있고 또 그 지방관을 중앙무대에서 괴롭히는 인간들이 있다. 지방에 부임하면 법과 원칙대로 지방민을 다스려서 군주의 행정이 틀림없이 행해지게 하면 그만이지만, 토호들은 협조하지 않는다. 중앙의 귀족들은 군주보다는 자신을 섬기라고 종용하며 지방행정관을 압박하며 자신들의 사익(私益)을 꾀한다.
 
  법가는 그들을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민(對民) 직접지배에 거슬리는 세력들을 법으로 다스려야 한다. 귀족과 토호들을 엄히 다스려야 한다. 왕과 백성 사이의 직접적인 연결과 만남을 가로막는 놈들을 손봐줘서 언제든 직접적이고 효율적인 행정이 가능하고, 정보의 왜곡됨이 없게 하고, 새는 돈과 낭비가 없게 하며 백성은 오로지 국법과 왕의 명령, 국가의 다스림만 의식하게 해야 한다.
 
 
  고구려 賑貸法은 法家的 혁명
 
《상군서》의 저자 상앙.
  우리 역사에서도 이와 관련된 사례가 있다. 고구려 재상 을파소(乙巴素)가 실시했던 진대법(賑貸法)이 그것이다.
 
  우리는 진대법이라고 하면 춘궁기(春窮期)에 백성들에게 곡물을 싼 이자로 빌려주고 가을에 받는 구휼(救恤)제도라고 배웠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진대법은 고구려가 부족(部族)국가, 씨족(氏族) 공동체의 연합국가에서 영토국가로 거듭나게 한 촉매제라고 볼 수 있다.
 
  우선 진대법은 국가에 의한 상시적(常時的) 대민(對民) 구휼제도라는 것이 중요하다. 봄에 곡식을 빌려준다. 국가는 사람 이름을 장부(帳簿)에 기록하고 가을에 곡식을 돌려받는다. 이런 일이 매해 일어나는데 그 과정에서 자연히 호구(戶口) 조사가 된다. 많은 사람의 호구가 국가에 등록이 된다는 것이다. 귀족들이 숨겨둔 백성들의 현황도 파악이 되는데 그러면서 국가는 인민들을 직접 지배할 수 있는 토대가 닦이게 되는 것이다. 쉽게 말해 직접 지배하고 싶으면 일단은 어디에 누가 사는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진대법을 통해 이를 파악하게 된 것이다. 진(秦)나라 상앙(商鞅)의 《상군서(商君書)》 거강(去强)편에도 이런 얘기가 나온다.
 
  〈백성들의 호구 수를 등록하되 살아 있는 사람은 기록해두고 죽은 사람은 삭제해야 한다. 그러면 백성들은 납세의 의무를 회피하지 않을 것이며 들판에는 황무지가 없게 될 것이니 그렇게 되면 나라가 부유해질 것이며 나라가 부유해지면 강해진다.〉
 
  한비자(韓非子)와 같은 법가사상가 상앙이 애를 쓴 게 호적 정비였다. 그는 그것이 국가 경영의 기본이라 생각했다. 국가 호적의 정비를 고구려는 진대법을 통해 해나간 것이다.
 
  또 진대법에서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백성들이 국가에 빚을 지게 된다는 것이다. 즉 국가가 그들의 빚쟁이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채권자(債權者)인 국가가 채무자(債務者)가 된 백성들을 직접 지배할 여지가 더 커지게 된다. 국가는 귀족들에게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된다. “백성들이 나라에 진 빚을 갚아야 하니 함부로 백성들을 착취하거나 사적인 일에 동원하지 말라”고. 채무자들은 당연히 채무를 갚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결과적으로 군주의 대민 행정력이 강해지게 되었다. 귀족지배·토호지배란 파라솔을 뚫어라. 그 파라솔을 뚫고 인민들을 이제 직접 국가가 지배하면서 조세와 병역자원으로 관리한다. 진대법을 통해 그런 결과가 나와버린 것이다. 대민지배체제의 확립!
 
  이렇게 진대법은 굉장히 법가적인 정책이었다. 귀족들의 기득권(旣得權)을 허무는 개혁이었는데, 진대법 시행 후 고구려가 동원하는 병력 자체가 크게 늘었고 국가예산 규모도 비약적으로 달라졌다고 한다. 진대법의 시행과 정착으로 고구려는 대민직접지배에 시동을 걸면서 드디어 원시적 때를 벗어던졌다. 귀족연맹 형태 국가라는 틀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영토국가로 발돋움하는 과정을 본격적으로 밟게 되었다. 진대법은 그런 위대한 변신을 만들어낸 법가적 개혁 혹은 법가적 혁명에 가까운 일로 봐야 한다.
 
  이렇게 법가는 간접지배체제에서 큰 이득을 누리는 이들의 기득권을 분쇄해야만 백성은 백성대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고 군주의 힘 혹은 국력이 강해질 수 있다고 본다. 그렇기에 법가는 늘 중간지배층을 보는 시각이 비판적이다. 날이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한비자가 그러했다.
 
 
  術, 궁중사회의 인사행정학
 
  상앙의 《상군서》나 《한비자》를 보면 같은 법가사상의 텍스트라지만 차이가 드러나는 면이 있다. 상앙은 신하와 귀족들보다는 백성들을 대상으로 많이 이야기했다. 《한비자》는 신하·관료·귀족들을 대상으로 한 이야기가 많다. 상앙은 한비자와 달랐다. 그는 신하·귀족들을 빈틈없이 통제하는 것보다는 백성들의 힘을 짜내고 꼼짝없이 통제하는 데 관심이 많았다. 그런 상앙을 보고 한비자는 “상앙은 법(法)만 말했고 술(術)이라는 것을 몰랐다”고 비판했다.
 
  〈상앙이 십오로 연좌시켜 함께 죄를 묻고 상(賞)을 후하게 틀림없이 하고 형(刑)을 무겁고 확실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민은 일하여 지치더라도 쉬지 않았고 적과 싸워 위태로워도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나라가 부유해지고 군대가 강해졌습니다.
 
  그러나 술로써… 간신을 알아내지 못했기에 그 부강은 신하에게 도움을 줄 따름이었습니다. 효공(孝公)과 상앙이 죽고 혜왕(惠王)이 즉위함에 이르러 진의 법이 아직 폐지되지 않았는데도 장의(張儀)가 진(秦)을 가지고 한·위(韓·魏)로부터 이득을 취하였습니다. 혜왕이 죽고 무왕(武王)이 즉위하자 감무(甘茂)가 진(秦)을 가지고 주(周)로부터 이득을 취하였습니다.〉
 
  한비자는 법과 술 모두를 써야 한다고 했다. 법만 있으면 백성들의 통제와 관리는 가능하지만 군주가 술이라는 것을 모르고 시행하지 않는다면 신하와 관료, 귀족집단에 대한 통제가 제대로 가능하지 않다고 본 것이다. 한비자가 말하는 술은 궁중사회에서만 통용되는 것으로 백성들과는 상관이 없다. 어떻게 관료와 신하들을 빈틈없이 통제하고 그들의 실적을 관리할 것인지 고민하는 궁중사회의 인사행정학이 바로 술이다.
 
  한비자는 상앙이 법으로 백성들을 통제하는 것만 말했고 술을 몰랐기에, 즉 신하들의 통제는 잘 몰랐기에 장의와 감무, 그리고 양후(穰侯), 응후(應候) 등 신하 신분으로서 군주를 위협할 정도로 성장한 인물들이 나와서 정치의 안정을 크게 흔들었다고 말했다. 신하 된 자가 슬며시 국가의 힘을 취해 자기 봉토(封土)를 넓히고 사적 이득을 취하며 왕권을 위협했다.
 
 
  儒家의 二分法, 法家의 三分法
 
인간을 勞心者와 勞力者로 나눈 맹자.
  한비자가 보기에 그런 사례가 진(秦)에 많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백성은 백성대로 신하는 신하대로 다스려야 할까? 너무 뻔한 이야기겠지만 한비자는 그리 생각했다.
 
  일단 한비자는 국가를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보았다. 나라를 구성하는 3개의 층위(層位)가 있다고 본 것이다. 최고권력자 혹은 군주, 그 밑에 중간지배층, 그리고 뭇 서민과 백성들 이렇게 말이다.
 
  많은 사람이 2개로 나누어서 세상을 보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유가(儒家)가 그렇다. 군자(君子)와 소인(小人), 치자(治者)와 피통치자(被統治者) 이렇게 나누어놓고 논할 때가 많다. 치자그룹 내에서 왕과 신하 혹은 왕과 귀족 사이의 경계선을 흐릿하게 한 채 세상을 논한다.
 
  세상을 그저 양분(兩分)해서 보는 것은 참 심심한 일이다. 특히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세상을 나누어 보면 참 심심하다. 힘 있는 자와 없는 자 이렇게만 놓고 보아도 그렇다. 이런 단순한 이분법(二分法)으로 세상을 보는 것은 문제가 참 많다.
 
  하지만 적지 않은 사람이 단순한 이분법으로 세상을 본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시각이 강한 것 같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역시 유가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한국인들의 정신세계 표층(表層)은 유교, 심층(深層)은 무속(巫俗)이다. 유가에서는 군자와 소인,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을 받는 자, 그렇게 세상을 보게끔 가르쳐왔으니 한국인들도 양분해서 세상을 보는 시야가 강한 게 아닌가 싶다.
 
  〈대인(大人)의 일이 있고 소인(小人)의 일이 있다.… 어떤 사람은 정신을 쓰고 어떤 사람을 육체를 쓴다. 정신을 쓰는 사람은 남을 다스리고 육체를 쓰는 사람은 남으로부터 다스림을 받는다. 남으로부터 다스림을 받는 사람은 남을 먹여 살리고 남을 다스리는 사람은 남으로부터 얻어먹는다고 했으니 이는 천하의 공통된 원칙이다.〉 (《맹자》 등문공 상편)
 
  맹자는 노심자(勞心者)와 노력자(勞力者) 이론을 주장하였다. 노심자, 즉 정신노동자는 누구일까? 글을 알고 지식을 소유한 사람이다. 정치의 주체이며 지배자 계급이다. 노력자, 육체노동자는 누구이겠는가? 육체를 쓰는 사람이다.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일 것이고 지배를 당하는 사람일 것이다. 맹자는 지식노동자는 육체노동자를 다스리고 육체노동자는 노동을 통해 지식노동자를 부양(扶養)하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유가는 이렇게 세상을 양분해서 본다.
 
  하지만 법가는 다르다. 유가는 왕과 신하, 혹은 왕과 관료와 귀족을 같은 지배층으로도 뭉뚱그리지만, 법가는 한 묶음으로 보지 않고 왕 대(對) 관료, 왕 대 신하·귀족 이렇게 분명히 나누어서 본다. 그리고 그들 사이의 이해관계(利害關係)의 대립에 대해 명확히 지적한다.
 
 
  법가, 군주와 백성을 연결시키다
 
  법가의 생각에 왕과 신하를 같은 지배계급으로 묶기에는 엇갈리는 이해관계의 지점이 많다. 단순히 대인·군자·노심자 계급이라고 하는 것은 무리다.
 
  유가는 군주가 아닌 신하 중심의 정치를 주장하면서 그저 군주는 국정 운영의 상징으로 머물러야 한다고 말한다. 정치라는 종목에서 직접 뛰는 필드플레이어는 신하이고 왕은 그저 심판에 준하면 된다는 식의 주장을 많이 한다.
 
  반면에 법가는 군주 중심이다. 단독의 주권자(主權者)로서 왕을 말한다. 유일하게 국가의 운명과 자신의 운명을 같이하는 존재가 군주라 하고, 국가의 흥망성쇠에 있어 신하로 대변되는 엘리트 계급과 차원이 다른 직접적 이해관계자라고 말한다. 왕과 신하, 군주와 귀족을 분명히 분리해서 놓고 본 다음 군주-귀족-백성 이렇게 삼분해서 세상을 본다. 그리고 군주와 백성은 이해관계에서 군주 대 신하 관계와 다르게 훨씬 접점(接點)이 크다고 말한다.
 
  쉽게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백성들이 잘살아야 국력이 세지고 왕이 이득을 본다. 백성들이 잘살아야 충실한 조세와 병역, 생산자원으로 기능할 수 있고 그래야만이 왕의 힘과 국력이 세진다. 그렇기에 왕과 백성은 왕과 신하, 왕과 귀족의 관계와 다르게 대립·대항적 관계가 아니다. 이해관계적 측면에서 모순적 관계가 아니며, 긍정적 거래관계 내지 운명공동체라고 말한다.
 
  그러다 보니 법가의 문제의식은 앞서 말한 대로 중간지배층이 되는 귀족들의 특권과 발호(跋扈), 횡포를 어떻게 제어할지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들의 수가 일정비율 이상 늘지 못하게 해야 하고, 법은 백성보다 그들에게 더욱 엄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당대에 법가가 종실(宗室)과 귀척(貴戚), 귀족들의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첫 번째 통일제국 진(秦)이 일찍 무너진 이유, 그리고 삼국시대의 조위(曹魏)가 호족과 사대부(士大夫)들을 배경으로 한 사마(司馬)씨 정권에 찬탈당한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진과 조위는 중간지배층들, 왕과 백성 사이에 있는 이들의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귀족에게 인색해야 백성에게 좋은 군주
 
  마키아벨리는 군주의 조건으로 인색함과 잔인함, 교활함을 이야기했다. 《군주론》 16장에서 인색함을 말했고, 17장에서 잔인함을 18장에서 교활함을 말했다. 잔인함과 교활함은 차치하고 그는 왜 인색함을 말했을까? 16장을 보면 돈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너그럽거나 관대하지 말고 인색하라고 계속 강조한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그리고 누구에게 인색하라는 것일까? 인색함과 관대함을 논하는 《군주론》 16장을 보면 법가와 비슷한 세계 인식의 틀이 잘 드러난다. 그리고 비슷한 틀의 인식에서 내리는 결론 역시 아주 흡사함을 알 수 있다.
 
  〈사람들 사이에서 너그럽다는 평판을 간직하고 싶다면 당신은 값비싼 과시조차 감수해야 한다. 따라서 그런 일을 벌이는 군주는 항상 자신의 자산을 모두 탕진하게 된다. 만일 씀씀이가 너그럽다는 평판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군주는 민중에게 엄청난 부담을 지우고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게 되며 돈이 되는 일은 무엇이든 하게 된다. 이는 신민(臣民)들 사이에서 증오심을 야기하고 군주 자신을 가난하게 만들기 때문에 군주는 누구로부터도 존경을 받지 못하게 된다.〉
 
  이런 너그러움은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고 소수(少數)에게만 혜택을 주기 때문에 군주는 계속해서 곤경에 처하게 되고 끊임없이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군주가 이를 깨닫고 그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면 곧바로 그는 인색하다는 오명을 쓰게 된다.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너그러움의 비르투(Virtu)를 사용할 수는 없기 때문에 현명한 군주라면 애당초에 인색하다는 평판에 신경 쓰지 않아야 한다.
 
  마키아벨리는 관대하고 너그러운 군주는 안 된다고 못 박았다. 너그러운 평판을 얻으려면 퍼주면서 과시해야 하는데 결국 자신이 가진 것을 탕진하게 된다. 그러하면 주변인들에게 무시받을 공산이 크다. 가장 큰 문제는 과시와 탕진이 백성들의 희생을 대가(代價)로 한다는 것이다. 하늘에서 재물·재화가 떨어질 일은 없을 것이고, 결국 ‘너그럽다’ ‘관대하다’는 평판을 얻기 위해 애쓰면 백성들을 쥐어짤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면 그들에게 증오심밖에 받을 것이 없다.
 
  그럼 군주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마키아벨리는 말한다. 인색해야 한다고. 누구에게? 바로 소수에게, 주변인에게. 《군주론》 16장에서 마키아벨리는 ‘소수’라는 이름으로 그 대상을 명명(命名)하는데 그들은 바로 왕 주변의 귀족을 말한다. 그들에게 인색해야 한다. 그래야 백성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을 수 있고 민중에게 관대하고 너그러울 수 있다. 인색해야 관대하다. 인색해야 너그럽다. 마키아벨리적 역설(逆說)일까? 아니다. 역설이 아니다. 당연한 것이다. 귀족들에게 인색한 사람이 백성들에게는 좋은 군주일 수밖에 없다.
 
 
  군주는 백성들에게 너그러워야
 
프랑스의 루이 12세.
  왕이 있고 왕 주변의 사람들이 있다. 관료·신하·귀족·사제·무사들이다. 그들이 바로 중간지배층일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너무 많이 가져가고 누린다면 백성들은 쪼들릴 수밖에 없다. 그들이 너무 많이 가져가는 것을 왕이 방조하거나 그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해 그들의 독식을 부추긴다면 결국 백성들에게는 한없이 인색해질 수밖에 없다. 백성들의 증오심을 사게 되고 결국 권력은 기초에서부터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는 인색해지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는 위대한 업적을 성취한 군주들 가운데 인색하다는 평판을 듣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하면서 강조했는데, 교황 율리오 2세와 프랑스왕 루이 12세, 에스파냐 국왕 페르난도 2세를 예로 들었다. 그 위대한 군주들은 소수인 귀족에게 좋은 평판을 듣지 않기 위해 다수인 백성을 혹사·착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왕이 존재하고 왕 근처에 주변인들이 있다. 그리고 성 밖에 백성들이 있다. 왕 근처 주변인은 귀족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소수다. 성 밖에 백성들이 있다. 그들은 다수다. 소수를 위해 다수를 희생시키지 마라. 반대로 다수를 위해 소수에게 인색하라! 마키아벨리의 주문이다. 이런 마키아벨리의 생각을 보면 그가 세상을 보는 인식의 틀이 법가와, 특히 한비자와 유사함을 알 수 있다. 세상을 양분화해 보는 게 아니라 삼분화(三分化)해 보는데, 군주는 중간에 있는 소수가 아니라 소수 밑의 사람들인 다수를 봐야 한다. 그래야 군주의 권력과 국가의 힘이 단단해질 수 있다. 중간지배층들에 인색하고 백성들에게 너그러워야 한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 16장과 17장에서 ‘경멸’과 ‘증오’라는 것도 말했다. 거기서도 그의 삼분화된 세계 인식이 잘 드러난다. ‘너그럽다’ ‘관대하다’는 평판에 군주가 목을 매면 경멸과 증오를 받는다고 했는데, 그 경멸과 증오의 주체가 같지 않다. 경멸하는 자가 따로 있고 증오하는 자가 따로 있다.
 
  경멸하는 자는 누구인가? 귀족들이다. 마키아벨리의 입장에서 보기에 그들은 군주와 대등한 위치에 있다. 대등한 혈통적(血統的) 권리를 지녔고 경제적으로도 큰 차이가 없다. 군주가 너무 퍼주다 보니 결국 가진 것들을 탕진해 귀족들에게 줄 재산과 영토가 없어진다면 귀족들은 군주를 경멸하고 멸시한다. 반면에 인민들은 군주를 증오한다. 군주가 귀족들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빈털터리가 되는 과정에서 너무 많은 것을 군주에게 빼앗겼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는 ‘경멸’이라는 표현을 왜 썼을까? 간단한다. 군주와 귀족을 서로 경쟁관계로 본 것이다. 군주와 귀족을 한비자와 마찬가지로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대립관계로 본 것이다.
 
  ‘증오’라는 표현은 왜 썼을까? 군주와 백성을 시혜(施惠)와 우정의 관계, 긍정적 교환관계로 본 것이다. 동일한 이해관계를 가질 수 있는 사이로 본 것이다.
 
  한비자와 마키아벨리는 삼분해서 보는 것도, 군주와 귀족관계·군주와 백성의 관계를 보는 관점도, 누구에게 엄하고 누구에게 관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내린 결론까지 흡사하다. 아니 똑같다고 볼 수 있다. 한비자와 마키아벨리의 관점이 이렇게 비슷하다.
 
 
  마키아벨리의 顚覆
 
  마키아벨리에게는 다수가 소수이고 소수가 다수이다. 왜 그럴까? 귀족들은 수가 적지만 힘이 강하다. 발언권과 누리는 권력 등을 생각하면 질적(質的)으로 다수라고 할 수 있다. 그 질적 다수는 군주를 경쟁관계로 생각하고 권력을 공유(共有)하려고 하며 기회만 되면 언제든 빼앗으려고 한다. 반면 다수는 소수다. 백성은 수가 많다. 하지만 백성은 힘이 없다. 정치적 반역은 꿈도 꾸지 못한다. 학대하거나 착취하지 않고 조금씩이라도 삶을 개선해주면 그들은 하나가 된다. 하나가 되어 군주를 따른다. 그렇기에 마키아벨리가 보기에 그들은 양적(量的) 다수지만 질적 소수다. 양이 아니라 질로 판단하니 소수가 다수가 되고 다수가 소수가 된다. 이것이 바로 마키아벨리의 전복(顚覆)이다.
 
  이렇게 전복시켜놓은 상태에서 마키아벨리는 알고 보면 소수에 불과한 양적 다수를 위한 정치를 행하라고 한다. 그런 정치를 행하는 군주가 좋은 군주이고 그래야만이 군주는 권력을 장시간 안정되게 누릴 수 있다. 반대로 양적으로는 소수지만 질적으로는 다수인 이들을 위한 정치를 하는 군주는 절대로 권력을 오랫동안 가져갈 수가 없다.
 
  폭력의 미학으로 유명한 《군주론》 17장에서도 소수와 다수 이야기가 나온다. 사랑의 대상이 되는 것보다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것이 낫다고 말한 마키아벨리는 “현명한 군주라면 자신의 신민을 통일시키고 충성심을 유지하기 위해서 잔인하다는 비난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폭력 자체를 경원시하고 폭력의 힘을 빌리는 데 있어 주저함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한 것이다. 쉽게 말해 군주는 무릇 잔인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두에게 잔인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소수에게만 잔인하면 된다. 자신에게 도전할 만한 이들, 백성을 착취하고 특권을 가진 자들에게만 폭력을 휘두르면 된다. 다수에 잔인하고 다수를 늘 공포에 휩싸이게 하면 그런 권력은 곧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양적 소수이자 질적 다수에게만 잔인하자. 양적 다수이자 질적 소수에게 매를 들어선 안 된다. 중간지배층에게만 이따금씩 철퇴를 들자는 것인데 한비자도 비슷한 주장을 했다. 한비자가 법불아귀(法不阿貴)라고 하지 않았나. “법은 귀한 자에게 아첨하지 않는다”고. 법은 누구에게든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하지만, 특히 신하와 관료, 귀족이라면 더욱 엄하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가의 질서를 잡고 강건한 기풍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리더라면 양적 다수를 존중해라. 그들을 아껴라. 질적인 소수인 그들을 늘 생각해라. 반대로 양적 소수를 경계하고 질적인 다수에게는 언제든 단호히 칼을 휘두를 준비를 하라. 중간지배층과 나는 경쟁관계이고 투쟁의 관계임을 명심하라. 이것이 법가와 마키아벨리가 공유하는 부분이다.
 
 
  한국 사회의 새로운 중간지배층들
 
  지금 현재 잘 팔리거나 화제가 되는 책, 담론의 장에서 소비가 되는 책들을 보면 사회의 트렌드,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주된 모순(矛盾)들이 읽히곤 한다. 최근에는 《세습 중산층 사회》라는 책이 화제가 되고 많이 읽히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은 새삼스러운 주장을 하는 책이 아니다. 작년, 재작년에 다른 책이나 지식인들의 입에서 이야기된 바를 이 책도 이야기한다. 그런데도 주목받는 것은 확실한 수치와 데이터적 근거로 무장해 주장하기 때문이다. 《20 vs 80의 사회》 《엘리트가 버린 사람들》 《불평등의 세대》 등의 책에서 《세습 중산층 사회》와 비슷한 주장과 문제의식을 먼저 볼 수 있었다. 기존에는 많은 사람이 1대 99의 사회를 말하면서 1%가 너무 많이 가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 1%와 99% 사이의 불평등을 말했으며 1%가 가진 부(富)의 독식과 편중을 말했다. 이제는 1%가 아니라 10%가 문제다, 혹은 20%가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들이 불평등의 수혜자인데 잘못된 구조에서 보통의 국민들을 직간접으로 착취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사람들, 이들의 위선과 무책임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10%와 20%가 너무 많이 가져간다. 사실상 상위층이고 상류층인데, 스스로 중산층이란 허위적(虛僞的) 겸사(謙辭)로 자칭하며 져야 할 책임을 외면하고 있다. 담론장(談論場)에서 이들의 목소리가 너무 크고 정치는 이들을 과잉대표(過剩代表)하고 있다. 그 때문에 80%의 국민은 소외당하고 갈수록 삶이 쪼들려가는데 양적 다수이자 질적 소수인 뭇 국민의 삶은 날이 갈수록 팍팍해져가고 정치는 그들을 대변하지 않는 실정이다. 그 때문에 성 밖 80%의 국민은 저출산, 출산파업으로만 저항하는 실정이다.
 
  이제는 사회의 정치권력을 쥐게 된 386들, 그 386들이 현재 중산층을 구성하는 이들의 주류라 할 수 있다. 담론장을 장악한 사람의 대다수가 386이고, 이른바 성안에 사는 사람의 주류는 386들이다. 그들은 권력만이 아니라 문화·예술·출판에서 강한 힘을 휘두르며 이른바 지식권력과 언어까지 장악해버렸다. 중산층의 핵심인 386은 중산층의 이익만 대변한다. 386의 정권인 문재인 정부는 지나칠 정도로 10% 혹은 상위 20%의 이익만을 노골적으로 추구했고, 성안과 성 밖의 격차는 더욱 심해져 양극화(兩極化)는 더욱 악화된 상태이다.
 
  그들은 양적으로는 다수가 아니다. 양적으로는 소수이다. 하지만 질적으로는 다수이다. 그들은 중산층이라고 자칭하지만 어떤 때는 스스로를 서민이라 부르면서 약자 흉내도 잘 낸다. 그렇게 책임과 비판을 피해간다. 때로는 자주 국민이란 이름으로 여론을 조성, 선동하며 정책과 제도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들어내고 또 비틀기도 하는데 정말 그들이 중산층일까? 그들이 딱 우리 사회의 중간일까? 여론을 선동하고 정책을 강제할 때는 국민이라는 이름을 쓰는데 중산층이란 이름도 그렇고 국민이란 이름도 적절치 않은 듯싶다. 나는 그들을 ‘중간지배층’이라고 부르고 싶다. 언어까지도 장악해서 정치권력과 문화권력 모두 갖추고 있는데 수와 비율도 유사하고 언어적·문화적 헤게모니까지 쥐고 있는 점을 보면 조선시대 양반의 환생(還生)이라고 해도 될 정도이다.
 
 
  공공부문과 노조
 
  중간지배층들의 구성을 자세히 살펴보자면, 세대로 보면 386이 많은 것 같고, 다른 관점에서 보면 공공(公共)부문 사람들, 그리고 노조(勞組)로 대변되는 조직노동자들이 많아 보인다. 기존의 한국 사회 주류(主流)를 대신해 새로운 메인스트림이 된 공공부문과 노조로 중간지배층들이 구성된 것으로 보인다.
 
  그 중간지배층의 수가 지나치게 많은 나라, 그들의 가져가는 몫이 너무 많은 나라, 이런 한국 사회에 지속 가능성이 있을까? 그럼에도 사회 구성원의 재생산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그들의 횡포가 너무 강해 적신호(赤信號)가 여기저기 켜지고 있는 실정에서 정말이지 마키아벨리와 한비자, 두 사람처럼 삼분화된 사회인식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중간지배층과 싸울 수 있는 사람들이 정치를 맡아야 할 것이다.
 
  이중화(二重化)된 노동시장에서 과도한 이익을 누리는 사람들, 방만한 공공부문에서 국민 세금으로 호의호식하는 사람들, 쓸데없이 많은 대학교에서 지식인입네 하면서 너무 많은 것을 누리며 국민들을 직간접적으로 착취하는 인간들, 한국 사회 중간지배층들의 횡포와 착취, 수탈 이제는 좌시할 단계가 지났다고 생각한다. 한비자도 마키아벨리도 한국 사회에 오면 소리 높여 말할 것이다. 이제는 그들과 싸워야 한다고! 그것이 한국 사회 정치의 방향이 되어야 한다고! 우리는 더욱 간절히 소환해야 한다. 한비자와 마키아벨리를, 그들의 문제의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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