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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의 ‘시사와 역사로 주역을 읽다 以事讀易’ 〈5〉

윤석열 검찰총장, “무리가 믿어주니 뉘우침이 없어진다”

글 :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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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의 윤석열, 명이괘(☷☲)에 해당, “빛이 땅 아래 들어가 있으니, 암흑기”
⊙ 2019년의 윤석열은 명이괘를 뒤집은 진괘(☲☷), “땅 위에 나와서 고분고분하며 큰 밝음에 붙고 부드러움이 나아가 위로 올라간다”
⊙ 명이괘에 해당하는 고려 현종은 어려움 겪은 후 즉위해 ‘聖君’ 소리 들어
⊙ 진괘에 해당하는 漢나라 주발·곽광은 혼란 수습하고 사직 안정시켜

이한우
1961년생. 고려대 영문학과 졸업, 同 대학원 철학과 석사, 한국외국어대 철학과 박사 과정 수료 / 前 《조선일보》 문화부장, 단국대 인문아카데미 주임교수 역임
  윤석열(尹錫悅) 검찰총장의 공직생활, 즉 환로(宦路)는 어떻게 될 것인가? 예부터 ‘환해풍파(宦海風波)’라는 말이 있었으니 공직의 길은 험한 바다와 같아 거센 바람과 격랑을 피해갈 수는 없다.
 
  ‘공무원에게는 영혼이 없다’는 자조 섞인 푸념이 한구석에서 나오고 있어도, ‘윤석열’ 이름 석 자는 적어도 영혼을 가진 공직자란 어떠해야 하는지 최근 몇 년 사이에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필자는 윤석열 총장과 일면식도 없으며 그에 대한 사적(私的)인 호불호(好不好) 감정 또한 철저하게 배제함을 미리 밝혀둔다. 그래야 《주역(周易)》은 우리에게 좀 더 명쾌한 길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주역》으로 윤석열의 길을 읽어내려면 먼저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별수사 제1부 부장검사로 있던 그는 같은 해 4월 18일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 특별수사팀장을 맡았다. 수사과정에서 채동욱 검찰총장이 혼외자(婚外子) 스캔들로 낙마했고, 윤석열도 국정원 직원에 대한 압수수색 및 체포영장 청구 사실을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사팀에서 배제됐다.
 
  이때 윤석열은 당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수사를 방해하고 있다는 취지의 언론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박근혜 정권 첫해에 정권을 향해 반기를 든 셈이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에 관한 국정감사장에서 유명한 말을 남겼다.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 정갑윤 의원이 “조직을 사랑하느냐? 사람에 충성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기 때문에 오늘 이런 말씀을 드린 것이다.”
 
  이후 그는 2014년 1월 대구고등검찰청 검사, 2016년 1월 대전고등검찰청 검사로 발령을 받았다. 고등검찰청 검사란 대부분 퇴직을 준비하는 자리로 여긴다. 명백한 좌천이었다. 그러나 그는 사표를 내지 않고 굴욕을 견디며 검찰에 남았다.
 
  반전(反轉)은 2016년 12월 1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박영수 특검팀의 수사팀장으로 지명을 받으면서 이루어졌다. 그는 다시 뉴스의 중심에 서게 됐다.
 
 
  ‘밝음이 상처를 입는다’
 
  우선 여기까지다. 거의 4년 동안 윤석열은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야 했는지 모른다. 《주역》의 명이(明夷)괘(☷☲)는 위쪽이 땅을 나타내는 곤(坤)괘(☷)이고 아래쪽은 밝음과 빛을 나타내는 이(離)괘(☲)다. 빛이 땅 아래에 들어가 있으니 암흑기인 것이다.
 
  주(周)나라 문왕(文王)은 이 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총론적으로 말했다.
 
  “명이(明夷)는 어렵게 여겨 반듯함이 이롭다[利艱貞].”
 
  명이란 밝음[明]이 상처를 입는다[夷=痍]는 뜻이다. 이(夷)는 곧 ‘상이(傷痍)’라고 할 때의 이(痍)와 같은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움직이려 하지 말고 반듯한 도리를 지키며 지내는 것이 이롭다는 뜻이다. 비슷한 처지의 동료들은 검찰을 떠났지만 윤석열은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래서 박영수 특검의 부름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 좀 더 구체적으로 2013년 당시 윤 총장이 처한 상황으로 들어가보자. 각 괘에는 여섯 개의 효가 있는데 이 여섯 효는 각각 위치에 따라 권력 서열에 해당한다. 맨 위는 상왕, 그다음은 임금이고, 이어서 재상이나 왕비, 세자 그리고 판서, 중간 관리, 신진 그룹 순이 된다. 당시 그는 부장검사였으니 위에서 다섯 번째 혹은 밑에서 두 번째 효에 해당한다. 육이(六二)가 바로 당시 윤석열 부장검사를 읽어내는 지침인 것이다. 이에 대해 먼저 주공은 이렇게 풀이했다.
 
  “육이는 밝음이 손상당하는 때에 왼쪽 넓적다리를 손상당하니 구원하는 말이 건장하면 길하다[明夷 夷于左股 用拯馬壯 吉].”
 
  먼저 공자는 이를 다음과 같이 풀어냈다.
 
  “육이가 길한 까닭은 고분고분함으로써 법도를 따르기 때문이다.”
 
  즉 공자는 욱하지 않고 도리에 순종해야만 길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먼저 육이의 처지를 보자. 음유한 자질[陰爻·음효]로 음위[짝수 자리]에 있어 (같은 음이니) 자리가 바르고 위아래 모두 친하며[有比·유비] 육오(六五)와는 같은 음효라 호응이 없다. 그런데 육이는 중정(中正)을 얻었고, 육오는 바르지 못하니[不正] 바르지 못한 임금으로부터 제재를 받는다. 왼쪽 넓적다리를 다쳤다는 것은 길을 가지 못할 만큼 크게 다쳤다는 뜻이 아니다. 또 왼쪽이라 오른쪽으로 버티고 서면 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 ‘구원하는 말이 건장하면 길하다’에 대해 정이천(程伊川)은 이렇게 풀이한다.
 
  〈그렇지만 또한 반드시 스스로 모면하는 데에는 방도가 있다. 구제하는 데에 건장한 말을 쓰면 빨리 모면할 수가 있고 길하다. 군자가 음암(陰闇)한 사람에게 손상을 당할 때 처신하는 데에 방도가 있으므로 빨리 모면할 수가 있다. 구제하는 방도가 건장하지 않으면 깊게 손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말이 건장하면 길하다’라고 한 것이다. 육이는 밝은 자질로 음암한 자들의 아래에 자리했으니, 길하다고 한 것은 손상과 피해를 모면한다는 것이지 이런 때에 무슨 일을 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박영수 특검이 내민 손길이 사실상 ‘구원하는 말이 건장하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명이괘의 육이에 처했던 역사적 인물, 고려 현종
 
  고려 8대 임금 현종(顯宗·992~1031)의 생애는 한 편의 드라마다. 현종은 아버지(王郁·왕욱)를 기준으로 보면 5대 경종(景宗), 6대 성종(成宗)과 함께 태조 왕건의 손자다. 그러나 어머니 헌정왕후가 경종의 비(妃)이기 때문에 어머니 기준으로 보면 헌정왕후의 친언니이자 마찬가지로 경종의 비인 헌애왕후(천추태후)의 자식인 7대 목종(穆宗)과 함께 태조의 증손자군에 속한다.
 
  현종은 자칫 친이모인 천추태후의 탄압으로 인해 천수(天壽)를 누리지 못할 뻔했다. 그가 열두 살 때 천추태후는 대량원군으로 책봉된 조카(훗날의 현종)의 머리를 강제로 깎아 개경 숭교사(崇敎寺) 승려로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2년 후인 목종 9년(1006년)에 삼각산(서울 북한산) 신혈사(神穴寺)로 내쫓았다. 이 무렵 이미 친아들 목종조차 폐위시키고 연인 김치양과의 사이에서 난 아들을 왕위에 올리려 광분하던 천추태후였기에 조카 따위는 파리 목숨에 지나지 않았다. 태후는 여러 차례 사람을 보내 대량원군을 죽이려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신혈사 노승이 방 안에 땅굴을 만들어 거기에 대량원군을 숨긴 다음 침상으로 덮는 기지를 발휘해 어렵사리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마침내 1009년(목종 12년) 강조가 천추태후 일파와 목종을 내쫓고 신혈사에 숨어 지내던 대량원군을 새로운 임금으로 추대했다. 그때 대량원군은 열여덟 살이었다. 그는 제왕학을 제대로 배우지는 못했지만 오랜 절 생활로 인해 불교에 대한 깊은 이해와 더불어 대궐 밖 민초들의 생생한 삶을 체득할 수 있었다.
 
 
  ‘길한 까닭은 고분고분함으로써 법도를 따랐기 때문’
 
  일반적으로 무장(武將)세력의 추대에 의해 왕위에 오르는 임금들을 보면 고려나 조선 모두 무능한 임금으로 전락하기 일쑤였다. 고려 때의 명종이나 조선 때의 중종이 대표적인 경우다. 그러나 현종은 훗날 사관(史官)들로부터 최고의 극찬을 받는 성군(聖君)이 된다. 여러 차례 거란의 침입을 받고 심지어 전라도 나주까지 몽진(蒙塵)을 가는 수모까지 겪음에도 불구하고 현종에 대한 평가는 이례적일 만큼 후하다.
 
  〈국사(國事)를 바로잡은 뒤에는 거란과 화친을 맺어 군사들을 쉬게 하고, 문학에 힘쓰며 부세와 요역을 경감하며 재주 있고 우수한 인재를 등용하여 정사를 공평하게 했다. 백성을 편안하게 하여 안팎이 무사했으며, 해마다 농사가 잘됐으니 현종을 주나라의 성왕·강왕, 한나라의 문제·경제에 비기더라도 손색없을 것이다.〉
 
  현종은 그 후에 서경·개경 등의 전략요충지에 새로운 성곽을 쌓거나 기존 성을 대대적으로 보수했고, 병력을 강화했으며, 뛰어난 인재들을 찾아내 요직에 배치했다. 그래서 현종 5년과 9년에 또다시 거란이 대규모 군사를 보내 침략했을 때 당당히 맞설 수 있었다. 특히 현종 9년의 침입 때는 강감찬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귀주대첩의 신화를 창조할 수 있었다. 세 차례의 대규모 침입에도 불구하고 현종의 완강한 저항에 뜻을 이루지 못한 거란은 결국 현종 11년 사실상의 평화협정을 맺고 이후 거란이 망할 때까지 100년 동안 화친을 맺게 된다. 이때부터 고려는 더 이상 거란의 눈치를 보지 않고 바다 건너 송(宋)나라와 활발한 교류를 하며 문화국가로 성장해가게 된다. 현종에 대한 사관의 평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이후 고려 왕실은 모두 그의 자식과 후손들에 의해 계승된다. 이런 점에서도 현종은 역사의 승자였다.
 
  ‘길한 까닭은 고분고분함으로써 법도를 따랐기 때문’에 현종은 뒤에 왕위에 올라 선정(善政)을 베풀 수 있었다.
 
 
  2019년의 윤석열, 晉卦에 해당
 
  2017년 5월 19일 문재인 대통령은 윤석열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임명했다. 그 후로 아는 바와 같이 박근혜 전 대통령은 물론 이명박 전 대통령이 그에 의해 구속됐다. 사법농단 수사로까지 이어지며 윤석열은 마치 문재인 정권의 저승사자로 인식되기까지 했다.
 
  급반전은 2019년 7월 25일 윤석열이 마침내 청문회를 거쳐 검찰총장에 임명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임명식에서 정치검찰 탈피 등 ‘검찰 개혁’을 강조하면서도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에게 “청와대와 행정부, 집권 여당을 가리지 말고 살아 있는 권력에도 권력형 비리가 있다면 엄정하게 수사할 것”을 직접 주문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말은 그저 의례적인 것으로 치부됐다.
 
  그 후 조국(曺國) 전 법무부 장관과 그 가족에 대한 전격적인 수사가 있었다. 이어서 유재수 감찰 무마와 울산시장 선거를 둘러싼 청와대의 정치공작 관련 수사가 이어지면서, 정치권에서 기대할 수 없는 공명정대함의 표상처럼 떠올랐다. 정파 싸움으로 공적(公的) 영역이 파탄 난 상황에서 윤석열의 검찰은 거의 유일한 공공(公共)의 수호자가 됐다. 특이하게도 이번에는 여권이 윤석열 검찰을 공격하고 야권이 그를 방어하는 기이한 장면까지 연출됐다.
 
  흥미롭게도 명이(明夷)괘(☷☲)를 180도로 뒤집으면 그것은 진(晉)괘(☲☷)가 된다. 땅 위로 빛이 솟아오른 모양이다. 주나라 문왕은 이 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총론적으로 말했다.
 
  “진(晉)은 (천자가) 나라를 평안케 하는 후[康侯]에게 말을 내려주기를 많이 하고 하루에 세 번 접견한다[康侯 用錫馬蕃庶 晝日三接].”
 
  이게 무슨 말일까? 먼저 공자의 도움을 청해보자.
 
  “진(晉)은 나아감[進]이다. 밝음[明=離卦]이 땅 위에 나와서 고분고분하며 큰 밝음에 붙고[順而麗乎大明] 부드러움이 나아가 위로 올라간다[柔進而上行]. 이 때문에 나라를 평안케 하는 후[康侯]에게 말을 내려주기를 많이 하고 하루에 세 번 접견하는 것이다.”
 
 
  ‘무리가 믿어주니 뉘우침이 없어진다’
 
  아직도 모호하다. 다시 송나라 학자 정이천의 도움을 빌려야 한다.
 
  “진(晉)괘의 전체 모습이 밝은 인재가 나아가 성대해지는 것이다. 밝은 해가 땅에서 나와 더욱 나아가 성대해지기 때문에 그래서 진(晉)이 되는 것이다. 진(進)자는 앞으로 나아간다는 뜻만 있지 밝음이 성대하다는 뜻을 포함하지는 않는다. ‘밝음이 땅 위에 나왔다’는 말은 밝음을 상징하는 이괘가 곤괘의 위에 있다는 것이다. 곤괘가 이괘에 붙어 있는[麗] 모습은 고분고분하면서 큰 밝음에 붙어 있는 것이니 이는 고분고분하는 다움[德]을 갖춘 신하가 위로 크게 밝은 군주에게 붙어 있는 것과 같다.”
 
  크게 밝은 군주는 오늘날 대통령일 수도 있고 눈 밝은 국민들일 수도 있다. 이런 군주이기에 ‘나라를 평안케 하는 후[康侯]에게 말을 내려주기를 많이 하고 하루에 세 번 접견하는 것이다’.
 
  공경(公卿)이라고 하지 않고 후(侯)라고 말한 것에 대해 정이천은 “천자는 위에서 다스리는 자이고 제후는 아래에서 다스리는 자이니, 아래에 있으면서 크게 밝은 군주에게 순종하고 따르는 것이 (공경보다는) 제후의 모습이다”라고 풀이했다.
 
  2013년의 윤석열과 2019년 윤석열의 달라진 점은 효의 순위가 밑에서 두 번째에서 세 번째로 올라왔다는 것이다. 그러면 진괘의 육삼(六三)에 대해 주공과 공자는 뭐라고 했을까? 먼저 주공이다.
 
  “육삼은 무리가 믿어주니 뉘우침이 없어진다[衆允 悔亡].”
 
  이에 대해 공자는 “무리가 믿어주는 뜻은 위를 향해 가는 것이다[衆允之志 上行也]”라고 풀었다. 이를 주공의 효사와 비교해보면 결국 뉘우침이 없어지는 이유는 위를 향해 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건 무슨 뜻인가?
 
 
  ‘도모할 때 여러 사람의 뜻을 따르면 天心에 부합’
 
  육삼은 음효로 양위[홀수 자리]에 있어 자리가 바르지 못하고 가운데를 지나쳐 있어 여러 가지로 뉘우침이 생겨나기 쉬운 처지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고분고분한[柔順] 성질을 가진 곤괘의 맨 위에 있기 때문에 오히려 고분고분함이 지극하다는 긍정적 요소를 갖고 있다. 게다가 고분고분한 효 세 개를 자신이 위에서 거느리고 있다. 무리[衆]는 거기에서 나온 것이고, 믿어준다는 것도 세 개의 음효가 모두 다움을 같이하고 있으니 믿어줌이 지극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위를 따르고자 하니 뉘우침이 사라지게 된다.
 
  조금은 미묘한 효다. 즉 신하로서 신하들의 신망을 전폭적으로 받고 있는 사람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중정을 잃고 지나치면서[過] 무리까지 거느리고 있으면 지극히 위태로울 수 있다. 윤석열 총장으로서는 검사들의 지지일 수도 있고 눈 밝은 국민들의 지지일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 정이천은 일단 이렇게 말한다.
 
  “무리가 믿는 것은 반드시 지당한 것이다. 하물며 위에 있는 대명(大命)에 순종하니 어찌 좋지 못함이 있겠는가? 이 때문에 뉘우침이 없는 것이니 중정하지 못해서 생기는 잘못은 없다. 옛사람의 말에 ‘도모할 때 여러 사람의 뜻을 따르면 천심(天心)에 부합한다’고 했다.”
 
 
  漢나라를 구한 주발
 
여씨들을 주살하고 漢나라 황실을 안정시킨 주발.
  이는 실은 비상상황이다. 즉 일시적으로 왕위가 비었을 때 만일 일을 주도하는 신하가 자신이 권세를 쥐려 한다면 이는 뜻이 위로 올라가려는[上行]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곧 반역이다. 그러면 아래에서도 믿음을 갖고서 따르지 않는다. 아래에서 믿고 따르는 것은 신망을 얻은 신하가 진심으로 밝은 임금을 찾아서 세우려고 할 때다. 전형적인 상황이 중국 한(漢)나라 때 두 차례 있었다. 이때 육삼의 처지에 놓였던 인물이 주발(周勃·?~기원전 169년)과 곽광(霍光·?~기원전 68년)이다.
 
  먼저 주발은 유방(劉邦)을 좇아 패에서 일어나 여러 차례 진(秦)나라 군대를 격파했으며, 항우(項羽)를 공격하는 데 따라가 천하를 평정했다. 고조(高祖) 6년(기원전 201년) 강후(絳侯)에 봉해졌으며, 한나라 초기 유방을 따라 한신(韓信)과 진희(陳豨) 및 노관(盧綰)의 반란을 진압했다. 사람됨이 질박하면서도 강직했고, 돈후(敦厚)하여 고조가 큰일을 많이 맡겼으며, 혜제(惠帝) 때 태위(太尉)에 임명됐다.
 
  여후(呂后)가 죽은 뒤 여씨들이 유씨(劉氏)들을 위협할 때 진평(陳平)과 함께 여씨들을 주살(誅殺)하고 한나라 왕실을 안정시켰으며, 문제(文帝)를 옹립한 뒤 우승상(右丞相)에 올랐다. 공이 높으면 재앙을 초래한다고 여겨 차츰 정치를 등한시하다가 병을 핑계로 사직했다.
 
  반고(班固)는 《한서(漢書)》 주발전(周勃傳)에서 그를 이렇게 평가했다.
 
  〈주발(周勃)은 포의(布衣) 시절 비루하고 소탈하며 평범한 사람이었으나, 천자를 보좌하는 자리에 올라 국가의 어려움을 바로잡고[匡] 여러 여씨(呂氏)들을 주살해 효문(孝文)을 세워 한나라의 이윤(伊尹)이자 주공(周公)[伊周]이 됐으니, 어찌 그보다 성대하겠는가!〉
 
 
  국가를 바로잡고 사직을 안정시킨 곽광
 
  곽광은 표기장군(驃騎將軍) 곽거병(霍去病)의 이복동생으로, 10여세 때부터 무제(武帝)를 측근에서 섬기다가 무제가 죽을 무렵에는 대사마대장군(大司馬大將軍) 박륙후(博陸侯)가 됐으며, 김일제(金日磾)・상관걸(上官桀)・상홍양(桑弘羊) 등과 함께 후사(後事)를 위탁받았다. 무제가 죽자 8세로 즉위한 소제(昭帝)를 보필하여 정사(政事)를 집행했으며, 기원전 80년 소제의 형인 연왕(燕王) 단(旦)의 반란을 기회 삼아 상관걸·상홍양 등의 정적(政敵)을 타도하고 실권을 장악했다. 소제가 죽은 후에는 그를 계승한 창읍왕(昌邑王)의 제위를 박탈하고, 앞서 ‘무고(巫蠱)의 난’ 때 죽은 여태자(戾太子)의 손자를 옹립해 선제(宣帝)로 즉위하게 했으며, 그 공으로 증봉(增封)됐다.
 
  반고는 《한서》 곽광전에서 그를 이렇게 평가했다.
 
  〈곽광(霍光)은 머리를 묶은[結髮=冠禮] 이래 궁정에서 뽑혀 일어나 굳건한 의지를 갖고서 주군에게 도의를 보여주었다. 포대기에 싸인 어린 소제(昭帝)를 보필하라는 부탁을 받아 한나라 황실을 보전하는 임무를 맡았다. 조정을 주도하고 어린 군주를 옹립했으며, 연왕(燕王)을 꺾고 상관걸 부자를 제거했으며, 권력을 이용해 정적을 제압함으로써 충성을 이루어냈다. 창읍왕을 폐위시키고 선제(宣帝)를 옹립하는 위기에 처해서는 곧은 절개를 내세우고 굽히지 않아 마침내 국가를 바로잡고 사직을 안정시켰다. 소제를 옹립하고 선제를 세우는 계기에 광은 황제의 스승 노릇을 했으므로 주공(周公)과 이윤(伊尹)이라도 그보다 낫겠는가!〉
 
  이상의 풀이를 감안할 때 윤 총장이 함께 가야 할 동지는 눈 밝은 국민, 국민의 눈 밝음뿐임을 쉽게 알 수 있다.
 
 
  2020년 윤석열의 운명은?
 
  《주역》을 지배하는 원리가 하나 있다면 그것은 궁즉통(窮則通), 통즉궁(通則窮)이다. 우리는 2013년과 2019년의 윤석열을 대비해 각각 그 운이 명이괘와 진괘에 해당함을 보았다. 이는 현실을 먼저 보고서 그에 해당하는 괘와 효를 찾아내는 방법이다.
 
  그런데 《주역》의 괘에는 그 자체의 순서가 있다. 이를 서괘(序卦)라고 한다. 흥미롭게도 서괘에 따르면 명이괘에 이어 진괘가 아니라, 진괘 다음이 명이괘다. 새해 들어 이미 윤석열은 크게 상처를 입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윤석열의 운명은 어찌될 것이며 그는 또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마땅히 그 실마리는 명이괘의 아래에서 세 번째[九三]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먼저 주공은 명이괘의 구삼(九三)을 이렇게 풀이했다.
 
  〈구삼은 밝음이 손상당하는 때에 남쪽으로 사냥을 가서 큰 괴수를 얻으니 빨리 바로잡아서는 안 된다[明夷于南狩 得其大首 不可疾貞].〉
 
  이에 대해 공자는 일단 앞쪽에 강조점을 두고서 “(구삼은) 남쪽으로 사냥을 가는 뜻은 마침내 크게 얻었기 때문이다[南狩之志 乃大得也]”라고 말했다. 마땅히 갔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구삼의 처지를 보면 강양의 자질로 양위에 있어 자리가 바르고 위아래 모두 친하며 상륙과 호응한다. 그런데 상륙과 호응관계가 오히려 밝음이 손상당하는 때에는 정반대로 보아야 한다. 즉 구삼은 아래에서 밝은 세력을 굳센 자질로 이끄는 자이고 상륙은 위에서 어둠의 세력을 음암한 자질로 이끄는 자다.
 
  이것만 보아도 양의 세력과 음의 세력이 마침내 일전을 앞두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흐름으로는 양이 아래에 있고 음이 위에 있으니 결국은 양이 이기는 싸움이다.
 
  그래서 정이천은 이를 탕왕(湯王)과 무왕(武王)의 일이라고 했다. 해당 인물에 대한 상세한 검토는 조금 미루고 ‘남쪽으로 사냥을 가서 큰 괴수를 얻으니’가 무슨 뜻인지 알아보자. 이 부분이 구삼에서 핵심이기 때문이다.
 
  남쪽은 밝은 방향이다. 사냥을 한다는 것은 해악을 제거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큰 괴수를 얻는다고 했다. 큰 괴수란 당연히 상륙이다. 정이천은 “상륙은 원래는 임금 자리가 아니지만 상괘의 맨 위에 있어 어둠의 극이기 때문에 어둠의 주인이 되니 큰 괴수라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왜 ‘빨리 바로잡아서는[疾貞] 안 된다고 한 것일까? 이때 바로잡는다는 것은 큰 괴수가 오랜 기간 만들어놓은 인맥을 비롯해 그릇된 풍속 등을 말한다. 《논어(論語)》 자로(子路)편에 나오는 말 그대로다.
 
  공자가 말했다.
 
  “(옛말에) ‘훌륭한 임금[善人]이 1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려야 겨우 잔학한 자를 교화시키고 사람을 살해하는 습속을 없앨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더니 진실이로다, 이 말은!”
 
  ‘남쪽으로 사냥을 가는 뜻은 마침내 크게 얻었기 때문이다’라는 공자의 상전에 대한 정이천의 풀이는 아주 섬세하다. 흔히 천명을 바꾼 임금들이 누누이 강조하는 말이기도 하다.
 
  “아랫자리의 밝음으로 윗자리의 어둠을 제거할 때에는 그 뜻이 해악을 제거하는 데에 있을 뿐이다. 은나라의 탕왕과 주나라의 무왕이 어찌 천하를 탐하는 것[利]에 뜻이 있었겠는가? 괴수를 얻는 것은 해악을 제거해 그 뜻을 크게 얻는 것이다. 뜻이 만일 그러하지 않다면 이는 하늘의 뜻을 어기고 천하를 어지럽게 하는[悖亂] 일이다.”
 
  이제 윤석열의 마음에 모든 것이 달렸다. 조금이라도 사사로운 욕심을 드러낼 경우 자칫 큰 환란을 만날 수도 있다. 그러나 초심을 잃지 않고 공명정대한 당당함으로 일관할 경우 오히려 그에게는 더 큰 기회가 올 수도 있다. 필자의 사사로운 의견이 아니라 《주역》이 제시하는 서괘의 길이 그렇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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