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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Q의 시 읽기 〈37〉 예이츠의 ‘낙엽’

“사랑이 이우는 시간… 이제 헤어집시다”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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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이츠의 ‘낙엽’… 한 폭의 그림 같은 낭만시
⊙ ‘헤어집시다’는 예이츠 詩語와 이형기 ‘낙화’의 ‘헤어지자’ 닮은꼴
예이츠의 ‘낙엽’은 가을 느낌이 물씬 풍기는 시다.
  낙엽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번역 장영희)
 
  우리를 사랑하는 긴 나뭇잎 위로 가을이 당도했습니다.
  그리고 보릿단 속 생쥐에게도
  머리 위 마가목은 누르슴히 물들고
  이슬 젖은 산딸기 잎도 노랗게 물들었습니다.
 
  사랑이 이우는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우리들의 슬픈 영혼은 이제 지치고 피곤합니다.
  헤어집시다. 정열의 시간이 우리를 잊기 전에
  수그린 당신 이마에 입맞춤과 눈물을 남기고….
 
 
  The Falling of Leaves
  by William Butler Yeats
 
  Autumn is over the long leaves that love us,
  And over the mice in the barley sheaves:
  Yellow the leaves of the rowan above us.
  And yellow the wet wild-strawberry leaves,
 
  The hour of the waning of love has beset us,
  And weary and worn are our sad s ouls now:
  Let us part, ere the season of passion forget us.
  With a kiss and a tear on thy drooping brow.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가을이다. 가을은 사랑의 계절이자 이별의 계절이다. 사랑의 계절에 겪는 쓸쓸한 별리(別離)만큼 아픈 것도 없다.
 
  20세기 영국 시의 거장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1865~1939)의 시 ‘낙엽’은 사랑과 이별을 가을에 비유한 시다. 2연 3행의 ‘헤어집시다(Let us part)’는 선언에 눈길이 머문다. 가슴 시린 표현이다.
 
  사랑이 이우는(저무는) 가을, (여름의) 정열을 잊기 전에 헤어지자는 것이다. 달이 차면 이지러지듯, 사랑도 그렇게 기울 바에야 차라리 헤어지자고 선언한다. 마지막 행(수그린 당신 이마에 입맞춤과 눈물을 남기고…)이 긴 여운을 남긴다. 이별의 아픔처럼.
 
  노벨문학상(1923) 수상자인 예이츠는 아일랜드 출신이다. 아버지는 화가인데 자신도 화가의 꿈을 꾸다가 시작(詩作)으로 전업했다. 그래서인지 시가 한 폭의 그림 같다. ‘보릿단’ ‘누르스름한 마가목’ ‘노란 산딸기 잎’ 같은 표현이 회화적이다. 그의 또 다른 시 ‘하늘의 옷감’도 언어로 옷감을 짜는 듯, 그림을 그리는 듯하다.
 
  ‘금빛 은빛 무늬가 있는/ 하늘’은 바로 낮과 밤, 태양과 별을 뜻한다. 태양과 별이 연출하는 컬래버레이션이 ‘하늘이 수놓은 옷감’이다. 어스름한 저녁이 되면 하늘빛은 검푸르게 어두워진다. 짙은 밤하늘 위로 화자(話者)는 꿈을 깔아놓았다. ‘내 꿈을 깔았으니/ 사뿐히 걸으소서’라는 표현은 간절한 사랑에 꿈에서조차 자기를 생각해달라는 바람이다.
 
  금빛 은빛 무늬가 있는
  하늘이 수놓은 옷감이
  밤과 낮 어스름한 저녁때
  푸르고 검은 옷감이
  내게 있다면
  그대의 발밑에 깔아줄 텐데
  가난하여 가진 것 오직 꿈뿐이었기에
  그대 발밑에 내 꿈을 깔았으니
  사뿐히 걸으소서,
  내 꿈 밟고 가는 그대여.
 
  -예이츠 ‘하늘의 옷감’ 전문

 
 
  예이츠의 ‘헤어집시다’, 이형기의 ‘헤어지자’
 

  ‘낙엽’의 ‘헤어집시다’와 유사한 느낌의 시어가 국내 시에도 있다. 중고교 교과서에 나오는 이형기(李炯基·1933~2005) 시인의 ‘낙화’가 그 예다. 꽃이 지는 모습을 아름답게 승화시킨 이 시는 표면적으로는 이별의 아픔을 노래하는데 속뜻은 삶의 본질, 생사(生死)의 초월을 담고 있다. 화자는 14행 ‘헤어지자’를 통해 ‘낙화’와의 ‘결별’을 극복하고 생사를 아름답게 승화하려 한다. 어쩌면 예이츠의 ‘낙엽’보다 행간(行間)의 폭이 훨씬 더 깊다.
 
  경남 진주 태생의 이형기는 고교 시절 《문예》(1949~1950)를 통해 등단했다.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했다. 시집으로 《적막강산》, 평론집으로 《한국 문학의 반성》 등이 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 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이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인 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이형기 ‘낙화’ 전문

 
  시인 박재삼(朴在森·1933~1997)의 시 ‘달밤이 어느새’는 이별가다. 그것도 무시무시한 이별가다. 화자는 사랑하는 이 앞에서 마치 달에 빌 듯이 한없이 빌고 싶다. 그러다 무참히 사랑이 깨어졌다. 이울 줄 모르던 보름달도 기울어져 갔다. 어느새 달밤이 피와 살에 젖더니 안개비 뿌리는 피범벅, 진눈깨비 날리는 살범벅이 된다. 정말이지 살벌한 시적(詩的) 전개다.
 
  박재삼의 고향은 경남 삼천포(지금의 사천)다. 고려대 국문과를 중퇴했으며, 1953년 《문예》를 통해 등단했다. 소박한 일상과 자연을 소재로 섬세한 여성적 가락으로 한국적 서정을 노래했다. 시집으로 《춘향이 마음》 《내 사랑은》 등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아
  네 눈은 늘 달밤이 되어 있었다.
 
  이울 줄 모르는
  보름달이 떠
 
  간혹은 기쁜 듯이
  소슬바람도 어리고
 
  나는 잘못도 없으면서
  한없이 빌고 싶었다.
 
  그런 달밤이 어느새
  피와 살에 젖어
 
  이제 눈앞에는
  안개비 뿌리는 피범벅이여.
 
  또한 사정없이
  진눈깨비 날리는 살범벅이여.
 
  -박재삼 ‘달밤이 어느새’ 전문

 
 
  박재삼의 情恨과 고려가요 ‘가시리’
 

  박재삼의 ‘울음이 타는 가을 강(江)’은 절창의 시다. 서정의 정한(情恨)을 전통적 운율의 가락으로 살려 현대시로 재구성했다. 시 ‘울음이 타는…’은 마지막 행 ‘소리 죽은 가을 강을 처음 보것네’로 완성되는 기승전결의 시적 건축물이다. ‘첫사랑 산골 물소리’로 시작해 ‘미친’ 바다에 와 닿는 이별의 전 과정을 노래한다. 노을이 불타는 가을 강물을 울음으로 파악하는 공감각적 심상도 엿볼 수 있다.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 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 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 질 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 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소리 죽은 가을 강을 처음 보것네.
 
  -박재삼의 ‘울음이 타는 가을 강’ 전문

 
  이별가 중에 고려가요 ‘가시리’만 한 노래가 또 있을까. ‘가시리’는 유리왕의 ‘황조가’, 정지상(鄭知常·?~1135)의 ‘송인(送人)’, 김소월(金素月·1902~1934)의 ‘진달래꽃’과 함께 이별의 아픔을 노래한 대표적인 서정시다.
 
  여성을 화자로 등장시켜 간결한 3.3.2조 3음보 형식과 소박한 시어로 애절하고 복잡한 감정을 드러낸다. ‘가시리’의 서사구조는 단순하다. ‘끝내 날 버리고 가시겠느냐’고 반문하며 ‘어찌 살라고 떠나느냐’고 한탄한다. 붙잡고 싶지만, 아예 안 올까 두렵다. 그런 ‘서러운 임’을 보내지만 가시는 듯 돌아오라고 애원한다.
 
  가시리 가시리이꼬
  버리고 가시리이꼬
 
  날러는 어찌 살라 하고
  버리고 가시리이꼬
 
  붙잡아 둘 일이지마는
  서운하면 아니 올세라
 
  설운 임 보내옵나니
  가시는 듯 돌아오소서
 
  -작자 미상 ‘가시리’ 전문

 
 
  이별의 詩說集 《너 없이도 잘 살 거야》
 
김백비의 詩說集 《너 없이도 잘 살 거야》
  젊은 작가 김백비가 시설집(詩說集) 《너 없이도 잘 살 거야》(천년의 시작 刊)를 최근 펴냈다. ‘시설’이란 장르가 낯설다. 김백비는 “책 속에 시와 소설(이야기)을 모두 담은 실험적 양식”이라 설명한다.
 
  전체 195쪽 중에 짝수 쪽은 시, 홀수 쪽은 이야기(소설)가 담겨 있다. 활자체(글꼴)도 양쪽이 다른데 짝수 쪽은 명조체, 홀수 쪽은 고딕체다. 이런 홀짝의 대칭이 5부(‘갈림길’ ‘일방통행로’ ‘교차로’ ‘내리막길’ ‘다시 교차로’ 순이다)에 걸쳐 이어진다. 마치 사랑과 이별에 관한 의식의 흐름이 통과제의(通過祭儀)의 성장통처럼 촘촘히 묘사돼 있다. 뜻밖의 이별에서 새로운 사랑을 준비하는 과정이랄까.
 
  최선의 선택을
  최악의 선택으로 바꾸는 것은
  고작, 한마디 말이면 충분하다
  -김백비 시 ‘이별통보’ 전문(p.22)
  “B. 널 만난 것을, 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해. 그때 너에게 말을 건 선택은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어.”
  “그때 말을 걸지 말걸. 그럼 널 보며 웃지도 않았을 테고, 그 기억으로 이렇게 아파할 일도 없었을 텐데.”
  달빛 아래 A의 눈은, 달을 반쯤 가린 금빛 먹구름을 닮아, 물기가 짙게 묻어 있었다.
 
  -김백비 소설 ‘이별통보’ 전문(p.23)

 
  시인은 “홀수 쪽의 이야기 내용을 짝수 쪽의 시로 표현해낸 것”이라 설명한다. 그 역(逆)도 성립한다. 읽는 이에 따라 시를 이야기로 풀어낸 것이라 느낄 수 있다. 또한 홀수 쪽만 읽어도, 짝수 쪽만 읽어도 무방하다.
 
  당신을 지운 내 삶은
  한없이 평온하리다
  웃음도, 가쁜 호흡도, 가슴 찌르는 먹먹함도
  무엇 하나의 격정 없이
 
  이따금 흘러나리는 눈물은
  그대 이름 지워 나온
  검게 변한 지우개 부스러기니
  끊임없이 다시 쓰는 추억의 검댕에
  한없이 묻어 나오는 후회이리다
 
  당신을 지운 내 삶은
  하얗고, 하얗게, 더 하얗게
  그렇게 평온하리다
 
  -김백비 ‘여백’ 전문

 
가을이다. 가을은 사랑의 계절이자 이별의 계절이다. 사랑의 계절에 겪는 쓸쓸한 別離만큼 아픈 것도 없다.
  ‘여백’은 이별의 고통을 노래하고 있다. 사랑의 기억을 지우며 ‘한없이 평온하리다’라고 쓴 표현은 일종의 역설이다. 소월의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와 같은 의미다. 이별 후 고통의 상처는 ‘검게 변한 지우개 부스러기’ ‘추억의 검댕’ ‘후회’다. 그러나 화자는 ‘하얗고, 하얗게, 더 하얗게/ 그렇게 평온하리다’고 거짓말을 한다. 이런 역설은 절규에 가깝다.
 
  136쪽에 나오는 시 ‘이해라는 이름의 죄’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해(理解)는 앎이다. 그러나 서로의 상처를, 아픔을 바라보는 이해란 결국엔 요령부득, 이해할 수 없는 간격(간극)이 존재한다. 화자는, ‘너와 나의 간격에서 이해는/ 쓸모없는 지능의 향연’이라 규정한다.
 
  분명 나는 이해한다고 했다.
  그 끝의 도달이 어떤 형태이든 간에 나는 너를 이해한다고, 그렇게 단정했다. 눈발이 휘날리던 그 계절의 끝에서, 너무나도 커져 버린 내 안의 너를 조각조각 잘라내어 그 단면을 보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냉기의 거인이 주는 축복은 조각난 하늘, 휘몰아치는 눈보라. 그렇게 나는 너를 축복 속으로 몰아넣으며 끝끝내 얼려 버리고 죽여 버렸다.
  그것이 나의 이해. 숨길 수 없는 단죄로—
  아, 아.
  너와 나의 간격에서 이해는 불필요한 치장이었음을.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 충분했을 그 광경을 기어코 난도질해 버린, 그 쓸모없는 지능의 향연을. 난 저주한다.
 
  -김백비의 시 ‘이해라는 이름의 죄’ 전문

 
  시설집을 읽노라면, 가장 아름다웠던 나날이 가장 슬픈 추억으로 변하는 과정을 느낄 수 있다. 비극적 과정을 겪으며 가슴속 말들이 한 편의 시나 소설로 변화한다. 시가 응축의 발산이라면 소설은 논리적 되새김이다. 작가는 쉽사리 꺼내기 힘든 자신의 이야기를 응축과 되새김의 방식으로 들려준다. 책장을 넘기다가 보면 어느덧 그의 슬픔은 우리의 이야기, 나의 이야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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