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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Q의 시 읽기 〈36〉 에드거 앨런 포의 ‘애너벨 리’

현명한 이들의 사랑보다 우리 사랑은 더 강했다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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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너벨 리’는 포의 어린 아내를 기리는 悲歌… 2년 뒤 시인도 세상 떠나
⊙ 사랑은 기다림… 퍼붓는 눈,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치리(황동규의 ‘즐거운 편지’)
에드거 앨런 포의 서정시 ‘애너벨 리(Annabel Lee)’의 이미지.
  애너벨 리
  에드거 앨런 포
 
  오래고 또 오랜 옛날
  바닷가 어느 왕국에
  여러분이 아실지도 모를 한 소녀
  애너벨 리가 살고 있었다
  나만을 생각하고 나만을 사랑하니
  그 밖에는 아무 딴생각이 없었다.
 
  나는 아이였고 그녀도 아이였으나
  바닷가 이 왕국 안에서
  우리는 사랑 중 사랑으로 사랑했으나
  나와 나의 애너벨 리는
  날개 돋친 하늘의 천사조차도
  샘낼 만큼 그렇게 사랑했다.
 
  분명 그것으로 해서 오랜 옛날
  바닷가 이 왕국에
  구름으로부터 바람이 불어왔고
  내 아름다운 애너벨 리를 싸늘하게 하여
  그녀의 훌륭한 친척들이 몰려와
  내게서 그녀를 데려가버렸고
  바닷가 이 왕국 안에 자리한
  무덤 속에 가두고 말았다.
 
  우리들 행복의 반도 못 가진
  하늘나라 천사들이 끝내 시샘을 한 탓.
  그렇지, 분명 그 때문이지.
  (바닷가 이 왕국에선 누구나 다 알다시피)
  밤 사이 구름에서 바람이 일어나
  내 애너벨 리를 얼려 죽인 것은 그 때문이지.
 
  하지만 우리보다 나이 많은 사람,
  우리보다 훨씬 더 현명한 사람들의 사랑보다도
  우리 사랑은 훨씬 더 강했다.
  위로는 하늘의 천사
  아래론 바다 밑 악마들까지도
  어여쁜 애너벨 리의 영혼으로부터
  나의 영혼을 갈라놓진 못했다.
 
  그러기에 달빛이 비칠 때면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꿈을 꾸게 되고
  별빛이 떠오를 때 나는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눈동자를 느낀다.
  하여, 나는 밤새도록 내 사랑, 내 사랑
  내 생명 내 신부 곁에 눕노니
  거기 바닷가 무덤 안에
  물결치는 바닷가 그녀의 무덤 곁에.
 
 
에드거 앨런 포의 서정시 ‘애너벨 리(Annabel Lee)’의 이미지.
  Annabel Lee
  By Edgar Allan Poe
 
  It was many and many a year ago,
  In a kingdom by the sea,
  That a maiden there lived whom you may know
  By the name of Annabel Lee;
  And this maiden she lived with no other thought
  Than to love and be loved by me.
 
  I was a child and she was a child,
  In this kingdom by the sea,
  But we loved with a love that was more than love-
  I and my Annabel Lee-
  With a love that the winge`d seraphs of Heaven
  Coveted her and me.
 
  And this was the reason that, long ago,
  In this kingdom by the sea,
  A wind blew out of a cloud, chilling
  My beautiful Annabel Lee;
  So that her highborn kinsmen came
  And bore her away from me,
  To shut her up in a sepulchre
  In this kingdom by the sea.
 
  The angels, not half so happy in Heaven,
  Went envying her and me-
  Yes!-that was the reason (as all men know,
  In this kingdom by the sea)
  That the wind came out of the cloud by night,
  Chilling and killing my Annabel Lee.
 
  But our love it was stronger by far than the love
  Of those who were older than we-
  Of many far wiser than we-
  And neither the angels in Heaven above
  Nor the demons down under the sea
  Can ever dissever my soul from the soul
  Of the beautiful Annabel Lee;
 
  For the moon never beams, without bringing me dreams
  Of the beautiful Annabel Lee;
  And the stars never rise, but I feel the bright eyes
  Of the beautiful Annabel Lee;
  And so, all the night-tide, I lie down by the side
  Of my darling-my darling-my life and my bride,
  In her sepulchre there by the sea-
  In her tomb by the sounding sea.
 
 
시인 에드거 앨런 포.
  에드거 앨런 포(1809~1849)는 미국을 거대한 감옥으로 인식했다. 유랑극단 배우인 생부는 어느 날 종적을 감춰버렸다. 어머니마저 잃고 고아가 된 그는 양부의 손길을 거부하고 밑바닥 생을 선택했다.
 
  거친 생의 경계를 넘나들며 우울증과 도박, 마약에 빠져들었으나 문학적 세계관은 프랑스 보들레르나 말라르메가 동경할 정도의 참신한 것이었다.
 
시인의 아내 버지니아(Virginia Eliza Clemm).
  시 ‘애너벨 리’는 아내의 죽음을 애도하는 비가(悲歌)로 알려져 있다. 포가 쓴 마지막 시다. 사랑은 세월이나 지혜로도 갈라놓을 수 없을 만큼 강렬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흔히 서구문학에서 천사는 성스러운 대상이나, 이 시에선 사랑을 시샘하는 존재다. 포가 천사를 격하시킨 것은 초월적 신의 존재를 평소 부정했기 때문이다.
 
에드거 앨런 포의 시 ‘애너벨 리’의 만화 이미지.
  2연의 첫 행은 ‘나는 아이였고 그녀도 아이였으나’다. 실제로 포와 아내 버지니아(Virginia Eliza Clemm)는 14세 차이를 극복하고 결혼했다. 결혼 당시 포는 27세, 버지니아는 13세. 심지어 사촌오빠와 동생 사이였다. 연구가들은 “두 사람은 남매처럼 살았고 버지니아는 처녀로 죽었다”고 분석한다. 버지니아의 사인은 결핵으로, 그녀가 죽을 때 24세였다. 2년 뒤 포도 세상을 떠났다. 과음이 원인이었다.
 
 
  황동규의 사랑가, 박목월의 이별가
 

  교과서에 나오는 황동규(黃東奎·1938~)의 시 ‘즐거운 편지’는 연시(戀詩)다. 사랑의 간절함과 불변성에 대한 고백이다. 화자(話者)가 자신의 사랑을 사소하다고 말하고 그 사랑이 언젠가는 그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모두 반어적 표현이다. 사랑은 영원할 것 같지만 마치 눈과 같아서 얼마 후 녹아버리고 만다. 그러므로 순간의 격정적인 사랑보다 어쩌면 진정한 사랑은 기다림의 사랑이 아닐까. 눈이 그치고 꽃이 피고 낙엽이 떨어지며 다시 눈이 퍼붓는 그 기다림은 고통스러울지라도 어쩌면 아름다운 일일지 모른다. ‘즐거운 편지’는 《현대문학》(1958)에 실렸다.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황동규 ‘즐거운 편지’ 전문

 
  사랑과 이별은 동전의 앞뒤와 같다. 이별가도 실은 지독한 사랑가다. 박목월(朴木月·1916~1978)의 시 ‘이별가’는 이승(삶)과 저승(죽음)의 경계 기준인 ‘강’을 사이에 두고 죽음을 넘어서는 인연과 그리움을 노래하는 시다. 시어 ‘뭐락카노’는 경상도 사투리로 ‘뭐라고 하는 것이냐’다.
 
  화자는 저편 강기슭에 있는 상대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만 이승과 저승과의 거리가 너무 멀다. 그래서 연신 ‘뭐락카노’ ‘뭐락카노’를 반복한다. 어쩌면 ‘뭐락카노’라는 방언은 삶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자 탄식, 이별의 정한이다. 인연의 ‘동아밧줄’은 삭아내렸으나, 죽음 앞에서 허무하게 썩어내렸으나 ‘하직을 말자 하직 말자’고 외친다.
 
  6연에 이르러 저쪽(저승)에 있는 그의 말이 희미하게 들린다. 다시 만나자 한다. ‘오냐. 오냐. 오냐./ 이승 아니믄 저승에서라도……’
 
  죽음과 삶 사이의 강은 넓고 깊은 것이지만, 사람들이 맺은 인연의 ‘바람’은 이별도 넘어간다는 것이 이 시의 주제다. 박목월의 ‘이별가’는 시집 《경상도의 가랑잎》(1968)에 담겼다.
 
박목월의 시집 《경상도의 가랑잎》(1968).
  뭐락카노, 저편 강기슭에서
  니 뭐락카노, 바람에 불려서
 
  이승 아니믄 저승으로 떠나가는 뱃머리에서
  나의 목소리 바람에 날려서
 
  뭐락카노 뭐락카노
  썩어서 동아밧줄은 삭아내리는데
 
  하직을 말자 하직 말자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
 
  뭐락카노 뭐락카노 뭐락카노
  너 흰 옷자라기만 펄럭거리고……
  오냐. 오냐. 오냐.
  이승 아니믄 저승에서라도……
 
  이승 아니믄 저승에서라도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
 
  뭐락카노, 저편 강기슭에서
  니 음성은 바람에 불려서
 
  오냐. 오냐. 오냐.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박목월 ‘이별가’ 전문

 
 
  서정주와 황지우의 두 시선
 

  시샘하는 천사로 묘사한 시 ‘애너벨 리’와 달리 서정주의 ‘신선 재곤이’는 우주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신적인 속성을 지닌다고 노래한다. 서정주는 세계와 우주를 범신론적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앉은뱅이 재곤이를 보살피는 마을 사람들은 어느 날 재곤이가 사라진 것을 발견한다. 재곤이가 제 목숨대로 다 살지 못하게 된다면 천벌을 받을까 봐 걱정한다. 어느 날 조선달 영감은 재곤이가 죽은 게 아니라 신선놀이를 하러 하늘에 갔다고 말한다. 그제야 마을 사람들도 걱정을 놓는다. 이 시는 《질마재신화》(1975)에 실렸다.
 
서정주의 시집 《질마재신화》(1975).
  땅 위에 살 자격이 있다는 뜻으로 ‘재곤(在坤)’이라는 이름을 가진 앉은뱅이 사내가 있었습니다. 성한 두 손으로 멍석도 절고 광주리도 절었지마는, 그것만으론 제 입 하나도 먹이지를 못해, 질마재 마을 사람들은 할 수 없이 그에게 마을을 앉아 돌며 밥을 빌어먹고 살 권리 하나를 특별히 주었습니다.
 
  “재곤이가 만일에 제 목숨대로 다 살지를 못하게 된다면 우리 마을 인정은 바닥난 것이니, 하늘의 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
 
  마을 사람들의 생각은 두루 이러하여서, 그의 세 끼니의 밥과 추위를 견딜 옷과 불을 늘 뒤대어 돌보아 주어 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갑술년이라던가 을해년의 새 무궁화 피기 시작하는 어느 아침 끼니부터는 재곤이의 모양은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일절 보이지 않게 되고, 한 마리 거북이가 기어다니듯 하던 살았을 때의 그 무겁디무거운 모습만이 산 채로 마을 사람들의 마음속마다 남았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하늘이 줄 천벌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해가 거듭 바뀌어도 천벌은 이 마을에 내리지 않고, 농사도 딴 마을만큼은 제대로 되어, 신선도(神仙道)에도 약간 알음이 있다는 좋은 흰 수염의 조선달 영감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재곤이는 생긴 게 꼭 거북이같이 안 생겼던가. 거북이도 학이나 마찬가지로 목숨이 천 년은 된다고 하네. 그러니, 그 긴 목숨을 여기서 다 견디기는 너무나 답답하여서 날개 돋아나 하늘로 신선살이를 하러 간 거여…….”
 
  그래 “재곤이는 우리들이 미안해서 모가지에 연자 맷돌을 단단히 매어 달고 아마 어디 깊은 바다에 잠겨 나오지 않는 거라.” 마을 사람들도 “하여간 죽은 모양을 우리한테 보인 일이 없으니 조선달 영감님 말씀이 마음적으로야 불가불 옳기사 옳다”고 하게는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도 두루 그들의 마음속에 살아서만 있는 그 재곤이의 거북이 모양 양쪽 겨드랑에 두 개씩의 날개들을 안 달아 줄 수는 없었습니다.
 
  -서정주의 ‘신선 재곤이’ 전문

 
  에드거 앨런 포와 서정주의 초월적 존재에 대한 긍부정의 시선과 별개로 황지우의 시선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냉소적이다.
 
  정치적 현실의 고통 앞에 신이 개입할 틈이 없다. ‘심인(尋人)’은 사람을 찾는다는 의미다. 신문에 난 작은 광고를 인용하여 시적 화자의 인식을 드러낸 파격적 형식의 시다.
 
  3연에 걸쳐 찾고자 하는 이의 이름과 사연이 무심한 듯 절절하게 제시된다. 4연에 이르러 반전이 일어난다. 화자는 화장실에 쭈그리고 앉아 화장지로 쓸 신문지를 심심풀이 삼아 읽고 있는 것이다.
 
  시대적 고통, 예컨대 억압적 사회에 대한 좌절감, 무기력 같은 감정을 역설적으로 풍자한다. 이 시는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1983)에 실렸다.
 
황지우의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1983).
  ‘김종수’ 80년 5월 이후 가출
  소식 두절 11월 3일 입대 영장 나왔음
  귀가 요 아는 분 연락 바람 누나
  829-1551
 
  ‘이광필’ 광필아 모든 것을 묻지 않겠다
  돌아와서 이야기하자
  어머니가 위독하시다
 
  ‘조순혜’ 21세 아버지가
  기다리니 집으로 속히 돌아와라
  내가 잘못했다
 
  나는 쭈그리고 앉아
  똥을 눈다
 
  -황지우 ‘심인’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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