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유광수 교수의 우리 고전 비틀기 〈11〉 김유신의 말(馬)

글 : 유광수  연세대 학부대학 부교수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유광수
1969년생.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졸, 동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문학박사) /
현 연세대 학부대학 부교수
화랑 김유신이 천관녀 집 앞에서 애마의 목을 칼로 쳐 죽이는 모습. 그림=천관사지 안내문
  김유신(金庾信)은 삼국을 통일한 장군이자 명신이며 태종무열왕(김춘추)의 친구이자 그를 훌륭히 보좌한 영걸이다. 그의 탁월함은 《삼국사기(三國史記)》를 편찬한 김부식(金富軾)이 열전 총 10권 중 3권을 그에게 할애하고 나머지 7권에 68명을 몰아 서술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김부식 생각에 김유신이 왕이나 다름없다고 여겼던 것 같다. 본기(本紀)에 서술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김유신을 대단하게 키운 것은 어머니 만명부인(萬明夫人)이다. 만명부인은 엄하기로 유명한 여걸이었는데, 그녀의 훈육이 없었다면 김유신은 김유신이 아니었을 것이다.
 
  젊은 시절 김유신이 천관녀(天官女)라는 기녀(妓女)와 친하게 지냈다. 하루는 어머니 만명부인이 불러 엄히 질책한다. “임금을 받들고 나라를 세워야 할 자가 밤낮 천한 기생과 음탕하게 시시덕거리기만 하다니 도대체 무슨 짓이냐!”
 
  아들 김유신은 어머니의 꾸중에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는 발걸음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어느 날 술에 잔뜩 취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는 말 위에서 인사불성이 되어 쿨쿨 자고 있는데, 영특한 이 말은 언제나처럼 노상 다니던 길을 따라 터벅터벅 걸어 천관녀의 집에 가고 만다.
 
  천관녀의 목소리에 술에서 깬 김유신은 ‘아뿔사!’ 탄식을 한다. 자신의 의지는 아니었지만, 다시는 발걸음을 하지 않겠다고 한 약속과 맹세를 깬 거였다. 결국 그는 칼을 들어 단호하게 자신이 사랑하는 이 명마의 목을 자른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천관녀의 집을 떠난다.
 
 
  말의 목을 베는 아버지와 구질구질하게 돌아온 아들
 
  이렇게 단호하고 과단성 있는 김유신이기에 온갖 역경을 헤치고 큰 공훈을 세우게 된 것일 게다. 김유신이 장가를 들어 자식을 낳는다. 아버지를 닮아 하나같이 걸출하다. 그중에 우리가 아는 유명한 아들이 있다. 우리에겐 유명해도 아버지 김유신은 마뜩지 않아하는 못난 아들 말이다. 《삼국사기》에 원술(元述) 이야기가 이렇게 전한다.
 
  원술은 김유신의 5남4녀 중 둘째 아들이다. 그 역시 훌륭한 아버지를 본받아 탁월한 용력을 지닌 무장(武將)이었다. 당나라 군대가 쳐들어오자 용감하게 나가 싸운다. 하지만 중과부적이어서 장군 의문(義文)과 효천(曉川)이 죽고 만다. 비장(裨將)이었던 원술은 배운 대로 몸을 날려 죽을 작정으로 적진에 달려든다. 이때 원술의 보좌관 담릉(淡凌)이 그를 붙잡고 만류한다.
 
  “대장부는 죽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죽음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어려운 것입니다. 만약 지금 죽는다면 아무 공도 이루지 못하고 그냥 끝내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차라리 살아서 뒷날 충효를 꾀하는 것이 낫습니다.”
 
  하지만 원술은 보좌관 담릉을 뿌리친다. “남자는 구차하게 살아서는 안 된다. 지금 살아서 앞으로 무슨 얼굴로 아버지를 뵙는단 말이냐?” 원술은 분명히 죽으려 했다. 그 충심은 분명했다. 다만 그가 한 말을 잊지 말도록 하자. 《삼국유사(三國遺事)》 열전에는 그가 분명하게 ‘아버지를 뵐 낯이 없음’을 이유로 내세웠다는 것 말이다.
 
  어떻든 말을 채찍질해서 적진에 뛰어들어 장렬히 산화하려는 원술을 부하 담릉은 말고삐를 쥐고 놓아 주질 않는다. 원술은 결국 죽지 못한다. 이렇게 실랑이를 벌이는 와중에 곁에 있던 늙은 장수 아진함(阿珍含)이 이렇게 말한다. “내 나이 벌써 일흔이다. 살면 얼마나 더 살겠는가? 오늘이 바로 죽을 날이다.” 그러고는 창을 비껴들고 적진을 향해 달려 들어가고 그의 아들 역시 따라 달려가 같이 죽고 만다.
 
  원술은 돌아왔지만 패전(敗戰)이었고, 그야말로 얼굴이 서지 않는 짓을 하고 말았다. 문제는 돌아온 다음에 터졌다. 패전으로 걱정하는 왕이 김유신을 불러 상황을 의논할 때 김유신은 이렇게 상주(上奏)한다. “당나라 사람들의 꾀는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일단 군사를 시켜 요충지를 지키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리고 김유신이 정말 자기가 아끼던 명마의 목을 베는 것과 똑같은 말을 내뱉는다. “다만 원술은 왕의 명령을 욕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집안의 교훈마저 저버렸습니다. 마땅히 목을 베야 합니다.”
 
  김유신의 비분강개는 이해할 수 있다. 김유신 입장에서 원술의 패전으로 인한 귀환은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자식이 못난 꼴은 창피한 것을 넘어 정치적으로 매우 위험한 상황을 끌고 들어온 거였다. 늙은 장수 아진함과 그 아들은 과감히 산화했다지 않은가. 그런데 자신의 못난 아들은 무슨 낯짝으로 살아 돌아와 이런 정치적 부담을 준단 말인가. 그야말로 난처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아들의 목을 베어야 한다고 한단 말인가? 훌륭한 말이야 또 구할 수 있지만 아들은 낳는다고 그 아들이 아닐 텐데 말이다. 옛날 사람은 자식에 대한 생각이 지금과 달라서 그랬을까? 아니면 김유신은 피도 눈물도 없는 작자란 말인가?
 
 
  젊은 대위와 정치가 김유신
 
김유신 영정. 사진=경주통일전
  군대에 있을 때, 예고 없이 순시를 나온 연대장을 이등병이 얼어붙어 경례를 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연대장의 표정이 고약하게 바뀌려는 찰나였다. 갑자기 연대장 뒤에서 수행하던 장교 하나가 번개같이 뛰어나와 그 이등병을 발로 차며 욕을 해댔다. 연대장은 그 광경에 인상을 찌푸리고 현장을 떠났다. 영민한 대위의 요란스런 행동으로 어리벙벙한 이등병이 어려운 국면을 넘어갈 수 있었던 거다.
 
  김유신도 이랬을지 모른다. 패전에도 불구하고 살아 돌아온 원술을 두고 목을 베야 한다고 강한 어조로 왕에게 상주한 김유신의 행위는 그 대위의 발차기와 다름없는 전략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아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이쯤 말하면 목숨은 살려줄지도 모른다는 고도의 정치적 계산에서 나온 의도적 행동일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아버지 김유신보다 왕이 먼저 원술 문제를 입에 올린다면, 그야말로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연대장 뒤에 서 있던 젊은 대위도 아는 이런 생리를 노회한 정치가 김유신이 모를 리 없다. 결국 왕은 “원술은 겨우 비장인데 그에게만 중벌을 내릴 순 없소”라며 용서한다.
 
  그렇다면 이등병을 위해서 욕설을 내뱉은 젊은 대위처럼 김유신도 아들을 위해서 목을 베어야 한다는 극간(極諫)을 한 것일까? 아니면 저런 못난 자식은 죽어 마땅하다는 생각에서 한 진담일까? 《삼국사기》는 역사기록이다 보니 설명이 그리 친절하지는 않으니 앞뒤 상황과 기록된 말들을 곱씹어 봐야 한다.
 
  김유신이 아들의 목을 자르라고 한 간언은 진담 같다. 젊은 대위처럼 페이크가 아니었다. 패하고 살아 돌아온 것이 원술만이 아닌데도 김유신은 유독 원술만을 엄하게 대했다. 그는 “왕의 명령을 욕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집안의 교훈마저 저버렸다”며 아들의 목을 베야 한다고 주청했다. ‘왕의 명령’만큼이나 ‘집안의 교훈’을 어긴 것이 크다는 말이다.
 
  왕은 왜 원술을 용서했을까? “원술은 겨우 비장이다”며 살려준 것에 답이 있다. 원술을 죽이면 원술보다 더 상급에 있는 다른 장수들도 모두 목을 베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왕의 용서를 받았으나, 원술은 부끄럽고 두려워서 감히 아버지를 보지 못하고 시골에 숨어 살다가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러자 원술은 어머니를 찾아간다. 어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부인은 삼종의 도리[三從之道]가 있다. 지금 남편이 죽어 과부가 되었으니 마땅히 아들을 따르는 것이 옳으나, 너 같은 자는 이미 아비에게 자식 노릇을 못했으니 내 어찌 너의 어미가 되겠느냐.”
 
  원술은 통곡하고 몸부림을 치며 차마 떠나질 못했지만 어머니는 끝내 만나 주지 않았다. 원술은 ‘보좌관 담릉 때문에 신세를 그르쳐 이 지경이 되었구나’ 하며 태백산으로 들어갔다. 성덕왕 15년 당나라 군대가 매소산성을 공격했는데, 그 소식을 들은 원술이 예전의 부끄러움을 씻으려고 죽기를 각오하고 나가 싸웠다. 큰 공을 세우고 상까지 받았다. 하지만 부모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을 한탄하며 벼슬을 하지 않고 세상을 마쳤다.
 
  큰 공을 세워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인생은 완전히 끝난 거였다. 그러니 정말 죽음을 만류했던 보좌관 담릉을 두고두고 원망할 수밖에 없는 일인 것이다. 원술은 그 전쟁에서 죽었어야 했다. 세속오계(世俗五戒)의 임전무퇴(臨戰無退)는 정말이었던 거다. 퇴각은 죽음보다 못한 꼴이 되는 거였다.
 
 
  아랍소년과 화랑소년
 
16세의 화랑 관창이 황산벌에서 계백의 결사대에 사로잡히는 장면(위)과 두 번째 관창을 사로잡은 계백은 그의 머리를 베 말안장에 매어 돌려보냈다(아래). 사진=KBS 1TV 〈역사저널 그날〉 발췌
  전쟁터에서 힘에 부치더라도 싸워야 하고 그러다가 죽어야 한다고 아버지 김유신이 생각했는데, 김유신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삼국사기》 열전을 펴면 대부분이 그런 얘기들로 채워져 있다. 관창(官昌)의 아버지는 신라 장군 품일(品日)인데, 황산벌에서 백제 장군 계백(階伯)의 결사대와 마주쳐 고전을 하게 된다. 이때 품일은 16살 아들에게 다음처럼 말한다.
 
  “네가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의로운 기백이 있다. 오늘이야 말로 공을 세워 부귀를 얻을 때다. 어찌 용기를 내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관창은 곧바로 말에 올라 창을 비껴들고 적진으로 달려 들어갔다.
 
  여러 사람을 죽였으나 적에게 사로잡혀 백제 원수 계백 앞에 보내졌다. 관창의 투구를 벗겨 본 계백은 그가 어리고 용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백은 차마 죽이지 못하고 탄식했다. “신라에는 기특한 사람이 많구나. 소년도 이런데 하물며 장부들이야 어떻겠는가?”
 
  계백은 그를 살려 돌려보냈다. 관창이 돌아와 말했다. “아까 내가 적진에 들어가 장수를 베고 깃발을 빼앗지 못한 것이 매우 한스럽다. 다시 들어가면 성공할 것이다.” 관창이 우물물을 움켜 마시고 다시 적진에 돌입하여 용감하게 싸웠다. 계백은 그를 다시 사로잡아 머리를 베고는 말안장에 매어 돌려보냈다. 아버지 품일은 아들의 머리를 잡고 소매로 피를 씻으며 말했다.
 
  “내 아들의 얼굴이 살아 있는 것 같구나. 기꺼이 나라를 위해 죽을 줄 아니 후회할 것이 없다.” 신라군은 그것을 보고 비분강개했다. 싸울 의지를 다진 후 백제를 공격해 크게 이겼다. 대왕은 관창에게 급찬(級飡) 벼슬을 추증(追贈)하고 예를 갖추어 장사 지냈다.
 
  관창을 희생해서 큰 전적을 올린 것이다. 아버지 품일은 아들 관창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러는 것이 대장부답고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를 부추겼다. 유미적 낭만성과 구국을 위한 희생이란 숭고미가 돋보이며 멋들어질지 모르지만, 그건 자꾸 그런 쪽으로 보라고 강요해서 그럴 뿐이다.
 
  “죽은 관창은 가만히 있는데 왜 네가 난리야?” 글쎄, 이러실지 모르지만 아무리 보고 또 봐도 관창의 행동과 그 처절한 끔찍함이 머릿속에서 가시질 않는다. 저절로 자살 폭탄테러를 벌이는 일부 아랍인들의 행동과 부추김이 떠오른다.
 
  아무리 생각해도 폭탄을 가슴에 두르고 검색선을 통과해서 목표물에 다가가는 아랍 소년들이나 나라를 위해 창을 꼬나들고 적진에 달려드는 화랑 소년들의 행동은 조금도 달라 보이지 않는다. 꼭 일란성 쌍둥이를 보는 것 같다.
 
  그들이 그렇게 스스로를 희생해서 무엇을 얻을지는 모르겠으나, 무엇보다 본질적 문제는 어린 소년들이 자기는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결심한 것이라고 믿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고, 그걸 그들만 모른다는 점이다. 그들의 희생으로 이득을 얻을 자는 대부분 엉뚱한 곳에 있는, 전혀 예상도 못한 일부 소수란 사실을 그들은 결코 모를 것이다.
 
  자살 폭탄테러를 감행하는 아랍소년들과 적진을 향해 몸을 날렸던 화랑소년들의 차이점을 굳이 찾는다면, 그렇게 하라고 부추기고 사주한 당사자들이 누구냐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아랍소년들 가슴과 배에 폭탄을 둘러준 사람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화랑소년들에게 창을 들고 달려들라고 한 사람이 누군지는 분명하다. 그들의 아버지들이다.
 
  물론 이 아버지들이 자신들의 개인적 입신양명을 위해 자식을 희생했다고만은 생각지 않는다. 국가를 위해, 가문을 위해 그리한 측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어쩌면 국가를 위한다는 그런 충심이 더 강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
 
 
  “나 대신 네가 죽어 줘”
 
2015년 개봉한 영화 〈베테랑〉 포스터. 베테랑 광역수사대 형사 서도철(황정민)은 의문의 실족사건을 쫓다 재벌3세 조태오(유아인)와 그의 오른팔 최상무(유해진)의 배후에 거대한 범죄가 있음을 직감한다. 서도철의 집념의 추적에 코너에 몰린 조태오는 모든 범죄를 최상무에게 뒤집어 씌우고 본인은 도주하려 한다.
  아버지에게 전쟁터에 나간, 아니 전쟁터에 나가도록 부추김을 받은 아들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냉정하게 말해 그냥 ‘소모품’ 그 이상이 아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들이 나간 전쟁이 승전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본심은 개개인이 다르겠지만, 그 본심에는 ‘승전하면 아들이 무사히 귀환할 수 있겠다’는 것은 아니란 것은 분명하다. 어쩔 수 없는 전쟁에 나간 귀한 아들이 행여나 다치지 않고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절대 아니란 말이다.
 
  전쟁에 이기면 국가와 가문이 번성하게 되니, 승전을 바랐을 뿐이다. 아들의 목숨? 아들의 무사귀환? 그건 전혀 문제가 아니다. 그깟 아들은 여럿 있다. 없으면 까짓것 또 낳으면 된다. 전쟁에 나간 아들이 할 일은 단 하나다. 이기든 지든 ‘잘’ 죽어 줘야 되는 거다. 그래야 가문이 사는 것이니까. 관창이 죽자 왕은 관창을 급찬 직위로 추증했다. 그 아버지와 그 가문은 역사에 기록될 정도로 찬란히 빛나게 되었다.
 
  이런 상황인데 김유신의 못난 아들 원술은 대체 무슨 낯짝으로 돌아왔단 말인가. 그야말로 가문의 치욕인 것이다. 그러니 원술의 목을 베어야 마땅하고 완전히 버려야 마땅한 것이다. 화랑 관창은 죽어서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기에 영웅이 되었지만,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온 원술은 집안의 역적이 되었다. 그건 죽음보다 더 나쁜 거였다.
 
  결혼하면 ‘세상에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식을 낳으면 ‘세상에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된다. 배우자는 선택이지만 자식은 선택이 아니다. 그건 부모 입장에서도, 또 자식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또 배우자는 대등하지만 자식과는 대등할 수 없다. 주로 ‘있는 자’가 ‘없는 자’에게 이런 저런 압력을 가한다. 그것이 직접적이기도 하고 간접적이기도 하다. 폭력을 쓰든 부드러운 말로 꾀든, 결국 내세우는 것은 “국가를 위하여”, “우리 가족을 위하여” 같은 거창한 것들이다.
 
  솔직하게 이렇게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들어 본 것 같다. 영화에서 들어 봤다. 전에 없이 친근하게 아랫사람의 등을 뚜덕여 주며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하는 것을 들어 봤다. 조폭 영화에서 말이다. 마음이 복잡한 것은 ‘없는 자’가 억지로 그런 것이 아니라고 ‘있는 자’가 강변하고, 또 그 자의 말에 ‘없는 자’가 맞는 말이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적극 옹호한다는 점이다. 자신이 지금 속고 있다는 것도 모르면서 말이다. “아니, 감히 아버지를 조폭에 비유하다니!” 이런 말씀을 하며 흥분하신다면 정말 좋겠다.
 
  앞서 말한 뒤숭숭한 이야기들이 정말 조폭들만의 이야기로 끝났으면 좋겠기 때문이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202108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북스토어
프리미엄결제
2020년4월부록
정기구독 이벤트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 월간조선 2018년 4월호 부록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