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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수 교수의 우리 고전 비틀기 〈10〉 늙다리 양반을 사랑한 열일곱 유부녀

글 : 유광수  연세대 학부대학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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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수
1969년생.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졸, 동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문학박사) /
현 연세대 학부대학 부교수
그림=이경하, 《고전 사랑을 그리다》 에서
  옛이야기 중 남자가 여자를 꾀려고 껄떡대는 일은 꽤 많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여성이 기녀(妓女)인 경우 먼저 유혹하는 일이 있지만, 일반 여염집의 여성이, 그것도 유부녀가 남성을 먼저 유혹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런데 유부녀가 적극적으로 남성에게 대시할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제 남편에게 악을 쓰며 대들고, 끝까지 간통한 남자를 두둔하는 내용의 이야기가 있다. 조선후기 지어진 《포의교집(布衣交集)》에 나오는 이야기다.
 
  내용은 간단하다. 충청도에 사는 나이 마흔 넘은 늙다리 양반 이생(李生)이 연줄을 잡아 벼슬하려고 서울의 장 승지 집에 얹혀 지내는데, 그 집 행랑채에 세 들어 사는 초옥(楚玉)이란 열일곱 어린 유부녀와 눈이 맞아 불륜을 저지른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에서 쉽게 납득이 안 되는 점은 초옥이란 여인이 먼저 나서고 또 모든 불륜을 주도한다는 거다. 꽃다운 열일곱 여인이 마흔이 넘은 남자에게 말이다. 요즘처럼 웬만큼 나이를 먹어도 젊게 보이는 시대에도, 마흔 넘은 남자와 열일곱 여자의 사랑이라면 뭔가 찜찜한데, 조선시대에 그 나이 차는 엄청난 거였다. 아버지뻘을 넘어 할아버지뻘이니 말이다.
 
  ‘아하, 이생이 늙다리긴 해도 엄청난 부자라든가 아니면 준수한 용모, 그도 아니면 벼슬이 짱짱한가 보다.’ 그런데 모두 아니올시다이다. 이생은 재주도 신통치 않고, 벼슬도 없고, 돈도 없는 궁색한 시골 양반이었다. 풍채가 훤칠한 것도 아니고 문장이 뛰어나지도 않았다. 심지어 초옥이 가르쳐 줄 정도로 졸렬했다. 한마디로 눈만 높고 말만 많은 좁쌀영감이었다.
 
 
  찌질한 남자를 사랑한 여인
 
달빛을 받으며 은밀히 사랑을 나누는 연인의 모습을 포착한 신윤복의 〈월하정인〉.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끌릴 데가 없는 이런 인간에게 초옥이 반한 거였다. 반면 초옥은 절세 미녀였다. 그녀는 본래 남영위(南寧尉) 궁의 궁녀였는데, 시아버지 양씨가 속전(贖錢)을 많이 내고 속량(贖良)해서 데려와 자기 아들과 결혼시킨 거였다.
 
  ‘그럼 혹시 초옥의 남편 나이가 이생보다 많은 거 아냐?’ 아니다. 남편은 열아홉으로 열일곱인 초옥과 딱 맞을 나이였다. ‘아, 그럼 초옥이 본래 좀 바람기가 있는 여자로군.’ 이도 아니다. 그녀는 자색(姿色)이 워낙 뛰어나서 주변에서 찝적대는 사람이 많았다. 방물장수가 끊임없이 감언이설로 꾀고, 대갓집의 놈팡이들이 금과 비단을 산처럼 싸 들고 와서 껄떡댔지만,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심지어 주변 사람들과 말도 섞지 않고 눈길도 주지 않았다. 서릿발처럼 쌀쌀맞고 냉담했다.
 
  ‘혹시 초옥의 판단력이 조금 흐려서 그 늙다리와 ….’ 그도 아니다. 초옥은 이생에 대해 정확하게 알았다. 부자가 아니란 것도, 시골집에 처가 있다는 것도, 나이 마흔이 넘어 연줄을 찾아 서울에 올라온 형편없는 자라는 것도 명확히 알았다.
 
  얼굴과 풍채는 봐서 알았고, 문장 재주도 몇 마디 해 보고 그저 그렇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도 초옥은 그야말로 ‘온몸 바쳐서’ 이생을 사랑한다. 좋은 조건으로 여기저기 탐낼 때는 모두 마다하더니 이런 한심한 작자를 좋아하다니, 도통 이해되지 않는다. 심지어 당사자인 이생도 좋아하면서 의아해 할 정도였다.
 
  ‘아하, 꽃뱀이구나.’ 자꾸 아니라고 해서 미안하지만, 이 역시 아니다. 오히려 초옥이 이생의 궁핍한 삶에 이런저런 금전적 보탬을 주기까지 했다. 대체 초옥은 왜 이생을 좋아했을까? 이생의 어떤 점에 반해 빠졌을까? 그건 두 가지 사건 때문이었다.
 
 
  허세를 권위로 착각한 초옥
 
유비의 두 부인인 감(甘)부인과 미(糜)부인이 머물렀다는 감미이후궁(甘糜二后宮). 서기 199년 유비군이 서주에서 조조에게 대패해 유비 3형제가 뿔뿔이 흩어지고 하비성에 남은 관우는 조조에게 포위됐다. 조조는 관우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려 회유했고, 유비와 관우 사이를 이간질하기 위해 관우에게 유비의 두 부인과 한 방을 쓰도록 했다. 그러나 관우는 춘추를 읽으며 흐트러지지 않았고, 조조는 감탄해 그에게 큰 저택을 주고 두 부인을 모시도록 했다고 한다.
  시작은 이생이 행랑채 사람들을 크게 혼내 준 사건에서였다. 이생이 얹혀사는 장 승지 댁은 여느 양반가처럼 안채와 행랑채가 있었는데, 행랑채에 사는 상민(常民)들이 중문 안쪽의 널따란 안채 공간까지 아무나 거리낌 없이 들어와 바느질도 하고 다듬이질도 하고 물도 길어 가며 부산스럽게 왕래했다. 심지어 곰방대를 물고 담배를 피우며 떠들기까지 했다. 누구 하나 조심하거나 꺼리는 기색이 없었다. 이생은 이것이 질색이었다.
 
  ‘상것들이 주제를 모르고 ….’ 드디어 이생이 날을 잡았다. 행랑채 사람 몇을 잡아다가 깨진 기와 위에 무릎을 꿇리고 매를 쳤다. 시끄럽게 떠들며 무엄하게 행동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렇게 몇 번 위엄을 부리자, 행랑채 사람들이 중문 근처에 얼씬도 못했다.
 
  생각해 보면, 행랑채 사람들은 종이 아니라 세 들어 사는 하층민이고, 오래전부터 우물물을 뜨기 위해 그렇게 다녔었다. 물론 번잡스럽고 부산스럽게 한 측면이 있지만, 주인인 장 승지도 뭐라 하지 않는데, 얹혀사는 주제에 양반이랍시고 예의가 어떠니 반상(班常)의 질서가 어떠니 하며 호통을 친 거였다.
 
  꼴불견에 진상 짓이었는데, 일이 되려 그랬는지 초옥이 바로 이 일에 훅 반해 버린 거였다. 무뢰한 행랑채 것들에게 ‘양반답게’ 호통 치며 혼내는 행위에 매료된 거였다. 초옥이 장 승지 댁 계집종에게 물었다.
 
  “서방님이야말로 진짜 양반이시더구나. 오늘 물 긷는 놈들을 호령하시는 것을 봤는데 사대부의 기상이 아니라면 어찌 그렇게 하셨겠느냐?” 전해 들은 이생은 한껏 붕 떴다. 이생 입장에서 보면 호박이 넝쿨째 굴러 들어온 셈이었다. 전혀 의도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초옥이 이생에게 결정적으로 반하게 된 것은 두 번째 사건 때문이다. 이것도 역시 이생이 전략적으로 의도한 것이 아니라, 그냥 우물쭈물하다가 얻어걸린 거였다. 어느 날 이생이 초옥을 생각하다 잠이 들었는데 뚜쟁이 할미가 와서 그를 깨웠다. 할미를 따라가 보니 방 안에 초옥이 홀로 있는 게 아닌가. 남편 몰래 나온 거였다. 이미 초옥에게 홀딱 빠져 있던 이생은 그대로 덮칠 만도 한데, 막상 판이 벌어지자 남우세스러웠는지 이 어설픈 늙다리 양반이 엉뚱한 이야기부터 늘어놓았다.
 
  “에헴, 언제 글을 배워 그토록 문장을 잘하느냐?” 이렇게 시작한 말이 밤새도록 읽은 책 내용과 시구 풀이, 고금 사적(史籍) 등을 말하는 것으로 줄줄 이어졌다. 그러는 통에 어처구니없게도 그만 날이 새 버렸다. 밖이 훤하게 밝아 오자, 초옥이 어쩔 수 없이 돌아가야 했다. 남편이 깰 시간이었다.
 
  이생이 속으로 생각하니 참 한심했다. ‘오늘 밤 만났을 때 관계를 맺었어야지 이게 무슨 짓인가? 헛되이 시간만 보내다니. 나도 정말 못난 놈이다.’ 이생이 주저한 이유는 간단했다. 제 주제를 알아서였다. 볼품없는 것도 그렇고 시골집에 처가 있는 것도 그렇지만, 손자 둘 나이에 어린 여자를 탐하다니, 하는 자책감이 생겨 우물쭈물했던 거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바로 이 머뭇거림이 초옥을 완전히 매료시켰다. 이날 보인 이생의 태도에 감동하고 탄복한 거였다. 편지를 보내 왔다. ‘변변치 않은 제가 몸을 가볍게 놀려 깊은 밤에 낭군과 손을 잡고 앉아, 옥에 티가 앉고 구슬이 이지러질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성적 결합이 있을 것을 예상했단 말이다.
 
  ‘그런데 낭군님은 옛날 항우(項羽)가 유방(劉邦)의 부인을 사로잡고도 예로 대한 것처럼, 관우(關羽)가 두 형수를 모실 때 예를 갖추었던 것처럼 저를 대해 주셨습니다. 그런 큰 의기와 절개는 옛날에나 있는 줄 알았는데, 바로 낭군님께 있었군요.’ 자신을 성적 대상으로만 보지 않았다는 것에 감동한 거였다. ‘낭군께서는 제 얼굴을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저의 어짊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원래 사랑이라는 것이 오해의 연속이기는 하지만 이 오해는 치명적이었다. 초옥은 자신이 꿈꾸는 진정한 사랑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깊이 맺어졌다. 물론 둘은 다음번 만남부터는 뜨겁게 돌아간다. 당연하게도 말이다. 밤이면 밤마다 만나 어울리지 않는 날이 없었다.
 
 
  초옥의 자살 시도
 
  세상에 비밀은 없다. 둘의 불륜 사실이 초옥의 남편 귀에까지 들어갔다. 남편은 초옥을 인정사정없이 마구 때렸다. 심지어 다듬잇돌로 쳐 죽이려 했다. 왜 안 그렇겠는가. 행랑채가 발칵 뒤집혀서 난리가 났고 사람들이 너도나도 달려 나와 남편을 만류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때마침 이생은 과거 공부를 하는 젊은이들과 어울려 절간에 들어가 있었기에 봉변을 피할 수 있었다. 초옥 남편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양반은 법도 없냐? 유부녀와 간통하고도 무사하겠느냐? 이놈이 오면 내가 반드시 사생결단을 내겠다.”
 
  아무리 양반이라 해도 불륜은 죄였다. 약자인 평민이 알아서 찌그러져 주면 모를까 이렇게 팔팔 뛰면 일이 커지지 않을 수 없다. 무마하려면 돈을 안겨 주든지 힘으로 눌러야 하는데, 둘 다 이생에겐 여의치 않았다. 돈도 벼슬도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일이 엉뚱하게 풀려 나갔다.
 
  초옥이 나선 거였다. 스스로 남편 화살의 표적지를 제 가슴에 가져다 붙여 놓고 ‘자 맘대로 쏴 봐!’ 하고 대들었다. 그녀는 불륜 사실이 발각되자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남편에게 대들고 덤볐다. 더 쌀쌀맞고 퉁명스럽게 굴었다. 거리낌 없이 불륜 사실을 말할 뿐만 아니라, 대놓고 이생을 그리워하는 시를 읊조리고 이생이 공부하러 들어간 산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기기까지 했다.
 
  남편의 눈이 뒤집혔다. 몽둥이를 들고 개 패듯이 때리고 발로 차고 죽일 작정으로 짓밟아 댔다. 시아버지 양 노인까지 나서 아들을 끌어내며 말렸지만 남편은 욕설을 퍼부었다. “네가 죽어도 그만두지 않겠다고? 그래 죽는 게 소원이구나. 이년!” 그러며 돌을 들어 찍으려고 던졌는데 빗나가 버렸다. 그러자 부엌칼을 들고 나와 초옥의 장딴지와 허벅지를 마구 찔러 댔다. 시아버지 양 노인이 만류하지 않았다면 정말 목을 찔렀을 거였다. 그런데 초옥은 조금도 후회하는 빛이 없었다. 더 심각해졌다.
 
  이생이 절에서 내려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동안 하지 않던 고운 단장을 하고 이생을 찾는다. 이생은 남편이 칼을 들고 설친 일을 들었기에 꺼림칙했지만 초옥은 달랐다. “상관없어요. 제가 낭군과 이러는 것을 온 동네가 다 알고 있는데 무슨 일이 생기겠어요?” 당당하다 못해 놀랄 정도로 대담하다. 이쯤 되면 무서울 지경이다.
 
  또 다시 둘이 밤마다 붙어먹는다는 소식을 들은 남편은 그야말로 꼭지(?)가 돌았다. 이번엔 아예 방문을 걸어 잠그고 초옥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이리저리 패대기를 쳤다. 그녀가 쓰러지자 배 위에 걸터앉아서는 커다란 식칼로 찔러 죽이려 했다. 그러자 초옥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낮고 준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죽이세요. 제 죄가 큰 줄은 저도 알아요. 그러니 죽이세요. 원망하지 않겠어요.” 남편은 멈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칼을 제게 주세요. 조용히 자결하겠어요. 서방님이 아내 죽인 사람이란 소리를 들으시면 안 되니까요. 어서 주세요.”
 
  초옥의 진심에 분위기가 묘해졌다. 남편은 한 방 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이때 시아버지 양 노인이 문을 부수고 들어와 남편의 칼을 빼앗아 땅에 던지고 깔려 있던 초옥을 풀어 주었다. 그러자 초옥이 땅에 떨어진 칼을 주워 대뜸 제 목을 찌르려 했다. 놀란 양 노인이 칼을 뺏자, 또 다시 옆에 있는 작은 칼을 들어 목에 댔다. 그것까지 억지로 만류했다.
 
  그렇게 끝난 줄로 알았는데 초옥의 자살 시도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시렁에 목을 맸다가 발각되었고, 우물에 몸을 던졌는데 날이 추워 얼음이 낀 탓에 실패했다. 그래도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우물 투신과 목매는 일을 수시로 감행했다. 우물에 빠져 거의 죽게 된 것을 사람들이 가까스로 건져 내 살리기도 했다. 목매는 것도 감시를 당하자, 이젠 아예 굶어 죽으려 했다.
 
  초옥이 정말 죽으려 하자 상황이 뒤집혔다. 남편이 애걸을 했다. 왜 안 그렇겠는가. 시아버지 양 노인은 물론 멀리 있는 초옥의 친정어머니까지 달려와 그녀를 구슬렀다. 꾸짖고 애걸하고 달래기를 수없이 했지만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어지럽게 풀어헤친 머리카락에 썩은 생선 비린내가 나는 초옥의 몸이 꼭 풍에 걸린 듯 떨리기까지 했다. 완전히 미친 귀신의 몰골이었다. 두 손 두 발 다 든 양 노인이 탄식조로 애걸했다.
 
  “얘야, 내가 너를 야박하게 대한 적이 없는데 왜 이러니?” 초옥은 미친 것도 정신을 잃은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사태파악을 분명하게 했다. “아버님과 남편이 저를 야박하게 대하지는 않으셨어요. 제가 죽으려는 것은 시댁을 원망해서가 아니랍니다.”
 
  이러면 정말 답이 없는 거다. 결국 양 노인은 이생을 데려다가 초옥과 만나게 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렇게 초옥과 이생은 다시 만났다. 그리고 이젠 아무도 막을 수 없는 공식적인 관계가 되어 버렸다.
 
 
  이생의 야비한 행동
 
  초옥이 이토록 무섭고 처절할 정도로 이생을 사랑했는데, 이생은 어땠을까? 초옥처럼 사랑했을까? 미안하지만 아니었다. 이생은 물론 초옥을 좋아하기는 했다. 하지만 정확하게 말해 사랑한 것은 아니고 그냥 한 번 가지고 놀았을 뿐이었다. 여전히 초옥은 아름답고 매력적이었지만 이생에게는 단물 빠진 껌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이렇게 무섭도록 들러붙으니 ….
 
  친구들이 이생에게 그녀와 딴살림을 차리라고 했다. 돈도 빌려준다고 했다. 하지만 쫀쫀한 이생은 거절했다. 주변에서 도와준다 해도 돈을 긁어모아 딴살림을 차리는 것이 금전적으로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볼 일 다 본 상황에서는 더욱 그랬다. 그는 훌쩍 고향으로 내려갈 생각이었다. 그러자 친구가 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대로 그냥 가면 그 여자는 봉변을 당할 겁니다.”
 
  “응?”
 
  “젊은 애들 중에서 군침을 흘리던 자가 전부터 많았습니다. 이미 손을 탔는데 ….”
 
  맞는 말이었다. 이생을 만나기 전이라면 함부로 넘볼 수 없었겠지만, ‘이미 이생과 볼 장 다 봐 놓고 왜 나한테 이래?’ 하며 덤벼들면 방법이 없었다. 사실 친구의 말은 ‘당신이 신경 안 쓰면 내가 어떻게 좀 ….’ 이런 의미였다. 알아들은 이생이 답한다.
 
  “행랑에 있는 물건이니 뭐가 어렵겠나.”
 
  충격적인 대답이다. 결국 이생은 초옥을 그냥 데리고 놀다 버리는 여자쯤으로 여겼던 거다. 그렇게 이생은 훌쩍 고향집으로 가 버리자 홀로 남겨진 초옥은 난관에 봉착했다. 남자들이 마구 들이댔다. 먼젓번 기둥서방인 이생의 허락도 얻었겠다, 행랑채에 세 들어 사는 아랫것이겠다, 군침을 마구 흘렸다. 하지만 초옥은 모두 쌀쌀맞게 거절했다. 얼마나 그 거절이 심했으면, 달려들던 남자 하나는 이렇게 이를 부득부득 갈았을까.
 
  “내 이년을 반드시 찢어발기겠다.” 이렇게 초옥이 핍박당하는 동안, 이생은 여기저기 잘 비빈 덕에 자그마한 관직을 얻어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다. 하지만 초옥을 찾지는 않았다. 이미 다른 남자와 붙어먹었을 거라 생각해서였다. 왜 안 찾아보느냐는 말에 이렇게 답했다.
 
  “이미 남이 먹은 여자를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 이쯤 되면 정말 뭐라 말하기 민망할 정도다. 자신도 사통하다 씹던 껌처럼 버렸고, 남에게 가지라고 해 놓고서는 결국 이렇게 말하다니! 파렴치하다는 말로는 설명이 부족할 지경이다. 정말 초옥의 생각과는 어긋나도 한참 어긋났다.
 
 
  혼자만의 착각 끝에 찾아오는 슬픔
 
  이생과 초옥의 관계는 불륜이다. 동네방네 소문난 불륜이다. 이생은 자신이 하는 짓을 불륜으로 여겼지만 초옥은 달랐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진정한 사랑, 그녀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진정한 포의지교(布衣之交)를 나눌 상대’를 만났다고 생각했다.
 
  포의지교란 가난해서 가진 것 없고 한미해서 베잠방이[布衣]나 입고 지낼 수밖에 없던 시절의 사귐[交]을 뜻하는 말로, 서로가 서로에게 바라는 것이 없기에 이기적이지 않은 순수하고 진정한 사귐을 의미한다. 빌붙지도 덕을 보려고도 하지 않는, 그야말로 가식 없는 사귐이 바로 포의지교이다.
 
  초옥이 보기에 이생은 꼭 그렇게 사귈 만한 격 있는 선비였다. 위아래 모르고 함부로 다니는 천한 행랑것들을 준엄하게 징치(懲治)했고, 한밤에 자신을 만나서도 예의를 다해 대우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건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이생은 초옥을 포의지교로 대하지 않았다. 벼슬을 해서 서울에 올라와서도 찾지 않던 이생이 ‘친구의 부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초옥을 찾아 만난다. 그가 초옥에게 한다는 첫마디가 이랬다.
 
  “그자를 한번 만나 주지 그래.” 물론 ‘그자’란 초옥에게 계속 들이대며 껄떡대는 그 놈팡이 친구였다. 자신에게 부탁을 한 그 친구 말이다. 참 민망하고 낯 뜨겁다. 초옥은 기가 막혔다.
 
  그리고 비로소 환상에서 깨어났다. 이생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 한참 동안 낯빛이 변한 채로 앉아 있더니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흘렸다. 포의지교를 꿈꾸며 아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못난이 이생을 죽자 살자 사랑했던 초옥은 그야말로 끈 떨어진 뒤웅박 신세가 된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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