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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의 북한요지경

허세의 공화국 북한

글 : 장원재  장원재TV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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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식점에서 국수를 시킬 때 ‘국시’라고 발음하는 것은 금니를 보여주기 위해서
⊙ 김정일, “酒量은 度量”… 술 대신 보리차 마시면서 자기는 절대 술에 취하지 않는다는 거짓 신화 유포
⊙ 사랑을 고백할 때 여학생이 거부하거나 답하지 않으면 주먹으로 피가 나올 때까지 나무를 치며 “이래도? 이래도?” 하며 소리쳐
2018년 10월 5일 평양 5·1경기장에서 열린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빛나는 조국’의 한 장면. ‘허세의 공화국’ 북한을 보여주는 듯하다. 사진=공동취재단
  북한이 세계 최고인 분야가 있다. 허세(虛勢)다. 규정보다는 뇌물이 앞서고 법보다는 주먹이 가까운 곳에선, 남들에게 만만하게 보이면 바로 당한다. 끝없이 당한다. 간부들에게 시달리고 동네 건달들에게 무시당하며, 사기꾼들에게 이용당한다.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센 척, 강한 척, 있는 척을 해야 한다. 그래서 북한에서 허세는 자기 보호 수단이자 생존 방식이다.
 
  허세의 출발점은 의복이다. 집에선 풀죽을 먹어도 밖에 나갈 때는 차려 입고 나서야 한다. 못 먹은 건 눈에 안 띄어도 못 입은 건 바로 눈에 띄기 때문이다. 남자라면 흰 셔츠와 러닝셔츠를 입으려 한다. 잘 다림질한 깨끗한 옷은 잘사는 사람의 상징이다. ‘나는 막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을 굳이 내 입으로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한 손에 생수통을 드는 것이 포인트다.
 
  배가 나왔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다. 살찐 사람이 부(富)와 권력의 상징인 곳이 북한이다. 멜빵이 간부들의 전용 패션인 이유다. 그래서 마른 체형인데도 ‘있어 보이려고’ 일부러 멜빵을 착용하고 다니는 사람이 많다.
 

  북한에선 셔츠를 바지 밖으로 늘어뜨려 입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중국제 봉황 장식 허리띠를 구입한 다음 날은 사정이 다르다. 상의를 하의 속으로 넣고 바지를 최대한 추켜올려 입는다. 길 가는 사람, 직장 동료들이 모두 쳐다봐야 하기 때문이다. ‘멋있다’ ‘보여달라’고 다가오는 사람들이 꼭 있게 마련이다. 그럴 때 ‘별것 아니다’라고 무심한 척해야 있어 보인다.
 
  음식점에서 “국시 두 그릇 빨리 달라. 시간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국수’가 아니라 ‘국시’라고 하는 건 금니 때문이다. 국수라고 발음하면 금니가 보이지 않는다.
 
  “시간 없다!”는 대사의 핵심은 손목시계를 접대원 코앞에 들이미는 동작이다. 왼손을 한껏 올리고 오른손으로 시계를 여러 번 가리키면 주변의 다른 손님들도 눈길을 준다.
 
  음식점에서 돈을 좀 쓸 요량이라면, 외화식당에 가서 메뉴판을 마다하고 “다 가져오라”고 말하면 된다. 함께 간 일행의 시선이 달라진다. 자금이 부족하다면 장마당에서도 비슷한 연출을 할 수 있다. 인조고기밥, 꽈배기, 삶은 달걀, 떡 매대에 가서 딱 두 마디만 하면 된다. “이거 다 얼마요?” “담으라” 하며 반드시 명령문을 써야 하고, 흥정을 하거나 값을 깎지 않는 것이 동행자에게 허세 보이는 효과를 극대화하는 요령이다.
 
 
  김정일의 허세
 
  허세 하면 술 얘기가 빠질 수 없다. 술은 남성성(男性性)을 사수(死守)하는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집으로 술친구들을 데려오면 “○○ 에미, 사발 들여오라!” 하고 소리친다. ‘첫 잔은 사발로!’가 북한식 주도(酒道)의 상식인 까닭이다. 한 손에 들어오는 한국식 소주잔은 ‘제사상에나 쓰는 물건’이지 실전용이 아니다.
 
  김정일(金正日) 어록 중엔 “주량(酒量)은 도량(度量)”이라는 황당한 것도 있다. 남들은 취하도록 사발에 술을 부어주고 취중진언(醉中眞言)하게 하는데 부하들을 감시하기 위해 본인은 보리차를 마셨다고 한다. 이러면서 본인은 아무리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는 거짓 신화(神話)를 유포했다. 이게 ‘김정일의 허세’다.
 
  주당(酒黨)들의 다음 대사는 “야! 라이타!”다. 40도짜리 독주(毒酒)를 마신다는 걸 자랑하기 위해 술에다 불을 붙이는 것이다. 누군가 “농태기술(개인이 만든 옥수수술) 19도짜리야 그저 맹물이지” 해야 주흥(酒興)이 돋운다. 다른 사람을 깎아내려야 술맛도 나고 위로받는 느낌도 든다.
 
  남성성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마디 더 하자면 ‘고난의 행군’ 때 실제로 쫓겨난 남편이 하나둘이 아니다. 가정 살림에 도움이 되지 않고 눈치조차 없기 때문이었다. 남편들의 “그래도 내가 바지 입었는데”라는 가부장적 발언은 이제 설 자리가 없다. 과거에는 ‘화목(火木) 패기’ 등 생활에 근력(筋力)이 꼭 필요한 일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남편이 “술 한잔 사주기 전엔 나무 안 패겠다”고 어깃장을 놓으면, 아내들은 아무 말 없이 장마당에 가서 ‘팬 나무’를 사온다. 1990년대 후반 장마당이 생긴 이후에 벌어진 현상이다. 권력 없고 돈 없고 공부도 하지 못한 남자들에겐, 안까이(아낙네)에게조차 밀린다는 건 견딜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밀린 사람들은 어떻게든 시비를 걸어 ‘잘나가는 놈들’을 팬다. 일상에 폭력이 난무하는 이유 중의 하나다.
 
  ‘고난의 행군’과 ‘폭력’으로 북한에 새로 등장한 직업(?) 이야기를 하려 한다. 해결사다. 이들은 대신 빚을 받아주고 수수료를 받는다. 북한의 특징은 채무자 쪽에서도 방어사(?)를 동원한다는 점이다. 이들이 서로 만났을 때도 허세 작렬이다. 선글라스를 끼고 통성명한 뒤 선글라스를 살짝 내리고 상대를 노려보며 기싸움을 한다. 손에 박인 굳은살을 과시하고 손바닥이나 주먹으로 콘크리트 바닥을 긁으며 대화를 이어간다. 굳은살은 거친 노동이나 격투의 흔적이 아니다. 직업(?)을 위해 무른 살을 뜯어내며 만든 인공 결과물이다.
 
 
  청춘의 허세
 
  북중(北中) 접경지대 세관(稅關) 앞도 허세의 경연장이다. 손전화(휴대전화)를 들고 주변 사람이 다 듣도록 “여보시오!”를 외치는 사람은 초짜다. 비즈니스 통화인 척, 하지만 주변에 다 들리게 계산한 성량(聲量)으로 통화를 하는 사람이 일류 사기꾼이다. “단동? 알갔다. 내가 차 끌고 들어가면 되니?”라는 식으로 전화기에다 대고 말하는데, ‘나는 중국까지 기차 몇 량을 운행할 수 있는 능력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통화 내용은 물론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위압형(威壓形) 통화도 있다. “여보시오? 누구야? 시끄럽다. 좀 있다 다시 하라!”고 나지막하게, 하지만 다소 노기(怒氣) 어린 음성으로 전화를 끊는 것이 포인트다. ‘갑질할 만한 사람’이라는 걸 돌려 말하는 것이다.
 
  초일류는 동원하는 장비와 인력의 수준이 다르다. 외화(外貨)를 만지는 회사 사장인 척하는 경우로, 자동차를 타고 모임에 온다. “야, 운전수 오라!”로 경제적 능력을, “야, 지도원 오라!”로 정치적 배경을 과시한다. 목소리를 최대한 깔고 느리게 말하며 헛웃음을 터뜨리는 것이 남들 눈을 혹하게 만드는 요령이다.
 

  마른 체형이어서 외모가 밀리거나, 손전화 보유 등 기초투자(?)가 불가능한 사람은 과거 경력으로 허세를 부린다. “내 한마디면 4여단, 5여단 다 나와서 줄 쫙 서고…”의 군대회고형, “사형장 끌려가다 안전원 까고 튀어서 살았다. 지금은 장군님이 직접 오해를 풀어주셨다”는 인생과장형, “대남연락소에서 밀선(密船) 타고 어디 좀 여러 번 갔다 왔다”는 확인불가 비밀기관 근무설 유포형 등이 있다. 이 중 마지막 유형은 “그때 공작금 남은 게 어디 해안에 묻혀 있는데…”라며 사람들을 유혹하기도 한다.
 
  청춘들의 허세도 있다. “나 누구다”라고 말하며 오른손으로 머리를 쓸어넘기는 것이다. 고개도 동시에 뒤로 확 젖혀주는 것이 포인트다. 1980년대 초반 영화에 나온 뒤 아직까지 북한 전역에서 유행하는 동작이다.
 
  사랑 고백도 특이하다. 좋아하는 여자를 자전거에 태워 산으로 간 뒤 “나 너 좋아한다. 너 나 좋아하나?” 식으로 직진한다. 여학생이 거부하거나 답을 하지 않으면 주먹으로 나무를 친다. 피가 나올 때까지 친다.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이래도? 이래도?” 하며 사자후(獅子吼)를 토해야 한다. 영화에서는 여학생이 “나 같은 게 뭐라고…”라며 눈물을 흘리고, 손수건으로 남학생 주먹의 상처를 싸매준다.
 
 
  김씨 일가의 일그러진 자화상
 
  최고 권력층이라고 허세가 예외는 아니다. 오진우(吳振宇·1917~1995년) 전 인민무력부장이 남긴 전설적인 일화가 있다. 특수부대를 방문한다고 예고하고 “너희 부대 주방 좀 돌아보갔어”라고 따로 전언한다. 오진우가 오는 날, 부대장과 부대원들은 살점이 일부 붙어 있는 고기 뼈를 뜨물 버리는 통에 담가놓는다. 퍼포먼스를 위한 사전(事前) 준비다.
 
  오진우가 뜨물 버리는 통에서 고기 뼈를 맨손으로 꺼내는 것이 공연의 시작이다. “수령님께서는 병사들 먹이겠다고 고생하시는데, 우리가 이렇게 낭비하면 충성스러운 전사가 아니다” 운운하는 것이 기승전결(起承轉結)의 ‘승(承)’이다. 오진우가 현장에서 고기를 뜯어 먹는 오버(?)를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오진우의 충성스러운 언행은 상부에 보고되고, 부대장과 부대원은 ‘알아서 행사를 잘 조직한 공로’를 인정받아 각종 이익을 누린다. 김씨 일가의 기분에 기생(寄生)한 ‘허세 충성’의 끝판왕이다.
 
  무엇이 북한 사람들을 ‘허세’로 내모는가? 북한 체제의 모순이다. 김씨 일가는 감추고 싶은 비밀이 많다. 남북회담에서 보이는 정치적 허세는 비밀을 감추려는 위장막(僞裝幕)이다. 북한 주민들도 허세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서로 속고 속이며,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 권모술수(權謀術數)와 배신이 난무하는 것이 북한의 일상이다. 수십만, 수백만명이 굶어 죽는 곳에선 체면이 밥을 먹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속지 않으려면, 당하지 않으려면 필사적으로 잘사는 척, 권력 있는 척을 해야 한다. 그래야 불이익을 당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 그래서 북한 전역에서 보이는 각종 허세는 김씨 일가의 일그러진 자화상(自畵像)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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