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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의 북한요지경

김정은이 격노한 ‘평양의대 범죄’는 무엇일까?

코로나 방역 관련 실책 혹은 入試 비리

글 : 장원재  장원재TV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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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국 확대회의, “평양의대 당위원회가 ‘엄중한 형태의 범죄행위’를 감행했다”
⊙ 의약품 빼돌리기 등 비리 적발, 고위층 의료사고 가능성도
⊙ 감염에 취약한 김정은에게 코로나 방역 실패는 반역행위
2020년 11월 16일 열린 제7기 제20차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김정은은 평양의대의 ‘범죄행위’를 강하게 질타했다. 사진=뉴시스/조선중앙TV 캡처
  2020년 11월 16일, 김정은이 평양의학대학의 ‘범죄행위’를 강하게 질타했다. 노동당 기관지 《로동신문》에도 기사가 실렸다. 이날 신문 1면 제7기 제20차 정치국 확대회의 소식을 전하는 글에서 “평양의대 당위원회가 ‘엄중한 형태의 범죄행위’를 감행했다”라고 비판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범죄가 있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북한 주요 회의에서 ‘범죄’라는 표현을 공식 문건에 명기한 것은 매우 특이한 일이다. 중앙검찰소장이 이례적으로 회의에 참석한 점도 주목할 사안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기사에 보면 단서가 있다. “교육기관과 사회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는 비사회주의적 행위들에 대하여 분석한 자료가 통보됐다. 이를 결정적으로 뿌리 뽑기 위한 문제가 심각히 논의되었다”라는 구절이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의약품 빼돌리기’다. 북한 의료시스템은 무너진 지 오래다. 구조적인 모순 때문이다. ‘무상(無償)의료’는 북한이 내세우는 가장 자랑스러운 성취다. 이른바 사회주의 헌법에도 명시했을 정도다. 하지만 무상의료는 그림의 떡이다. 무엇보다 보건일꾼들이 먹고살 수 없기 때문이다. 월급은 나오지만, 생존 불가능 수준이다. 월급은 배급이 이뤄지던 시절을 기준으로 책정되었고, 배급제가 실질적으로 붕괴된 지 수십 년이 지났어도 급여 인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국정가격으로 쌀 1kg 가격은 1원 내외다. 월급이 5000원인데 국정 상점에는 물건이 아예 없고, 장마당 가격은 쌀 1kg에 5000원 안팎이다. 먹고살려면 누구든 부수입이 있어야 하는 이유다.
 
 
  의료비리 百態
 
  보건일꾼들에게 가장 확실한 부수입원은 ‘정품 의약품 빼돌리기’다. 당국에서 내려보내는 의약품은 예전에 끊어졌지만, 최고위층을 위한 병원은 예외다. 북한 제1의 의과대학인 평양의학대학도 공급 대상 병원이다. 북한은 환자가 모든 약품, 심지어는 수술에 필요한 소독약이나 붕대도 자체 조달해야 한다. 약품이 없으니 민간에서 제조한 8·3 제품이라도 구해야 한다. 술이나 기타 기호품이라면 몰라도,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에는 돈을 아낄 수 없다. 정품 의약품과 8·3 제품 사이의 가격 차가 엄청난 이유다. ‘평양의대에서 나온 물건’이라는 한마디는 물건의 품질을 보장해주는 일종의 브랜드다.
 
  ‘빼돌리기’는 대개 두 가지 방식으로 이뤄진다. 하나는 허위진단서를 끊고 처방전만큼의 분량을 빼돌리는 고전적 수법, 두 번째는 내용물을 빼돌리고 식염수 등 대체물을 집어넣는 방법이다. 외형상 보관 분량이 서류와 일치하니 불시 검문이나 감사에도 걸리지 않는다. 사실은, 감사팀에게 이익금의 일부를 미리 찔러주고, 서로 알지만 알아서 피해 가는 것이 요령이다.
 
  정치국 확대회의 안건에 오르고 《로동신문》에 기사가 날 정도로 문제가 커졌다면 필수 약품 부족으로 최고위층과 관련한 수술 중 의료사고가 났거나, 코로나19 바이러스 관련 백신 등을 포함해 받은 의약품을 아예 전량 가까이 빼돌렸거나, 아니면 둘 다에 해당하는 경우일 터이다.
 
  약품뿐만 아니라 장비나 방역 관련 지원금을 관련자끼리 착복했을 수도 있다. 장비는 중고품을 구해서 비치한 후 신품을 내다 팔기도 하고, 겉모양만 두고 내부 부품을 뜯어 상인에게 넘기기도 한다. 생필품도 아니고 의료장비 부품을 누가 왜 구입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파는 사람이 있고 사는 사람도 있다. 북한 암시장에서는 상상을 초월한 모든 물건이 상품으로 거래된다. 물론 서류상으로는 완벽하게 앞뒤를 맞춰두었겠지만, 마음먹고 조사를 하면 빠져나갈 수 없다. 김정은 지시사항이라면 조사하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목숨이 달린 일이기 때문이다.
 
 
  수술 전후 의사에게 뒷돈 찔러줘
 
  큰 건이 걸리면 그동안 관행처럼 눈감아주던 일도 문제가 된다. 먼저 진단서 비리다. 진단서를 받으면 경제활동에 유리하다. 합법적으로 직장에 출근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 내내 자체 벌이 사업에 나서는 것이 가능하다. 중국에서 잡혀 온 탈북자들도 진단서만 있으면 수감생활을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할 수 있다.
 

  개인 의료행위도 있다. 북한에서는 수액주사가 만병통치라는 믿음이 있다. 환자가 수액을 구해오면 주사를 놔주고 사례비를 받는다. 정품을 놔주는 경우는 사례비가 몇 곱절로 올라간다. 이것만이 아니라 다양한 의료행위가 병원 밖에서 개인 간의 거래로 이루어진다. 수술 전후 환자 가족이 의료진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뒷돈을 찔러주는 것은 북한 기준으로는 비리도 아니다. 개인 진료의 고객은 대부분 고위층이다. 정기적으로 진료를 받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개인 진료를 잘한다고 소문이 나면 찾는 사람이 늘어나고, 기존 고객이 다른 고객을 소개해주는 일도 생긴다. 이렇게 구축한 네트워크는 또 다른 비리의 온상이 된다. 일반인들이 의료진을 통해 의료진이 잘 아는 고위층에게 선을 대고 부탁하는 것이다.
 
  의사를 포함한 보건일꾼은 ‘고난의 행군’ 이전만 해도 그렇게 인기 있는 직업이 아니었다. 북한에서는 모든 노동자의 임금을 시간으로 계산한다. 의료진의 1시간과 농장원의 1시간이 같은 임금이다. 보건일꾼이 인기가 덜한 이유가 있었다. 사회적으로 존중을 받는다는 점은 있지만, 일이 고된 것에 비해 ‘먹을 알’이 그다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능력 있는 의사들이 배출되기는 했다. 재일동포나 토대가 썩 좋지 않은 계층의 엘리트들 덕분이다. 그들은 그래도 실력으로 승부하고 차별을 덜 받는 직종이라는 생각에 의료계에 투신했다. 뒷배경이 약하니, 비리를 저지르지 않고 성실하게 근무했다.
 
 
  평양의대 진학 위한 사교육 등장
 
  장마당 자본주의 시대 이후 세상이 바뀌면서, 보건일꾼 직종을 돈으로 보고 접근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사회적으로 존중도 받고 돈도 벌 수 있으며 평생을 벌어먹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북한 대학입시는 출신 성분과 성적으로 학생을 뽑는다. 평양의학대 진학을 위한 사교육이 등장한 것이 2000년 무렵이다. 특권층 자녀를 위한 과외, 입주교사 등이 이때부터 생겼다. 특권층 자녀들이 의대를 선호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변화의 조짐이다. 입학을 위해 의대 교수와 만나 미리 손을 쓰는 것은 북한에서는 상식이다. 학교 고위층과 학부모 사이를 연결해주는 브로커가 있을 정도다. 북한판 입시 전문가인 셈이다. 재학 중에도 특권층 학생의 부모와 의대 교수 사이에는 다양한 방식으로 금품이 오간다. 의술(醫術)이 아니라 면허(免許)가 목적이기 때문이다. 면허만 의료인인 사람들이 늘어나니 각종 의료사고가 터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뇌물을 건넬 여력이 없다면 다른 방법을 쓰기도 한다. 여학생 대상 추문이 끊이지 않고 터지는 이유다.
 
 
  코로나19 방역 관련 실책?
 
북한은 2020년 11월 20일 현재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고 공식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AP
  일각에서는 코로나19 관련, 평양의대가 심각한 방역(防疫) 실책을 범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회의의 주요 안건 중 하나가 ‘국가비상방역체계 보강’이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체형, 과도한 흡연 습관 등 여러 요인 때문에 감염에 취약할 터이다. 그래서 방역 관련 비리가 평양에서 터졌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반역 행위와 다름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20년 11월 16일 “북한에 코로나19 의심 증상자가 6173명”이라고 밝혔다. WHO의 최신 ‘코로나 주간 상황 보고서’의 기록이다. 의심 증상자 가운데 8명이 외국인이고 나머지는 북한 주민들이며, 6173명 중 805명은 10월 22일에서 29일 사이 의심 증상자로 확인되었다고 한다. 이와 함께 10월 29일까지 격리된 누적 인원은 3만2356명이며, 실시간 유전자 증폭(RT-PCR) 방식으로 검사한 사람은 1만2072명이라고 밝혔다. WHO는 2020년 11월 5일까지 북한이 보고한 공식적인 확진자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북한 내부에서 돌고 있는 소문은 다르다. 확진자와 사망자가 모두 있다는 소문이 북한 주민 사이에 파다하게 퍼졌다. 그렇다면 이번 일이 터진 배경이 무엇인지 추측할 수 있다. 코로나19 역학조사 및 방역 관련 사업에서 평양의대 간부진의 ‘비리’가 적발되었고, 조사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연이어 터졌을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의 육성을 들어보자. 11월 11일 조선중앙TV는 김정은이 평양의대 간부들을 강하게 질타했다며 “엄중한 형태의 범죄행위를 감행한 평양의학대학 당위원회와 각 기관의 무책임성과 극심한 직무태만 행위에 대해 신랄히 비판됐다”며 당중앙위원회 부서와 사법검찰기관, 안전보위기관을 향해 “당적 지도와 신소 처리, 법적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지 않아 범죄를 비호·묵인·조장시켰다”고 했다. 무책임한 직무태만 행위가 있었다는 뜻이다.
 
 
  고위층 연루 가능성 높아
 
  국정원은 국회 보고에서 ‘최근 평양의과대학 소속 한 간부가 직위해제를 당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했다. 하태경 국민의힘 국회의원은 “총살이나 처형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 아닌 것 같다. 평양의대 간부의 직위해제가 있었는데 이유는 입시 비리가 있었고, 지금 조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전면적으로 조사 강도를 높이고 대규모 총살과 처형을 하기에는 북한의 부담도 상당하다. 입시비리와 매관매직(賣官賣職)은 워낙 오랜 관행이고, 연루자의 규모가 크며 사안의 본질상 다수의 고위층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원칙대로 칼을 대기엔 도려내야 할 범위가 너무 넓은 것이다.
 
  그래서 김정은은 초조하다. 코로나 사태와 경제난을 단시일 내에 해결할 길이 없는 까닭이다. 환율 급락을 이유로 평양의 거물 환전상을 처형하고, 북-중 접경지대의 밀무역을 원천차단하고, 코로나19 감염을 막는다며 고기잡이와 소금 생산까지 제한해도 사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별짓을 다 해도 차도가 없다. 비상식적인 땜질 처방만으로는 아무것도 개선할 수 없다는 것을 본인도 모르지 않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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