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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의 북한요지경

북한 청소년들의 오늘

친한 친구들끼리는 존칭 없이 ‘김정은’ ‘이설주’라고 불러

글 : 장원재  (사)배우고나누는무지개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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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통생 출신 제대군인’이 돈 백 있는 북한 금수저의 상징
⊙ “이설주도 중국 갈 때 염색하는데 우리는 왜 못 해?” “어떤 놈은 배 안에서부터 왕자로 타고 나는데, 세상 불공평”
⊙ 北 여학생들의 우상 이민호가 여배우와 염문설 나오자, “우리 다 같이 남조선에 가서 그 여배우를 때려주자”

張源宰
1967년생. 고려대 국문학과 졸업, 영국 런던대학 연극학 박사 / 前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경기파주영어마을 사무총장, TV조선 〈돌아온 저격수다〉 진행. 現 (사)배우고나누는무지개 대표 역임 / 저서 《끝나지 않은 축구 이야기》 《오태석 연극: 실험과 도전의 40년》 《배우란 무엇인가》 등
2019년 9월 19일 평양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과 기념 촬영을 한 북한 학생들. 사진=공동취재단
  청소년기는 질풍노도(疾風怒濤)의 시기다. 신체와 정신의 변화가 급격하게 일어난다. 사람을 컴퓨터에 비유하자면, ‘업그레이드가 진행 중’인 시기일 수도 있다. 프로그램이 불안정하니 스스로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폴 존슨은 전쟁과 예측 불가능한 사건으로 점철된 고대사(古代史)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고대인의 평균수명을 고려하면, 병사(兵士)들의 대부분은 10대였을 것이다. 지휘관이나 장군들의 연령대도 현대에 비하면 턱없이 어렸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류사의 대부분은 비행청소년(非行靑少年)들이 만들어간 역사일 터이다.”
 
  한때 ‘김일성과 김정일이 남침을 못 하는 이유가 한국의 중2가 무서워서’라는 농담이 돌기도 했다. 그렇다면 북한 청소년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하며 살고 있을까? 무자비한 통제사회 속에서 그들은 반항심과 왕성한 활동력을 과연 어떻게 발산하고 있을까?
 
  북한 청소년에게는 꿈이 없다. 무엇보다도, 북한에는 다양한 직업이 없기 때문이다. 선택지가 좁고, 매스미디어도 발달하지 못했으니 롤모델도 있을 리 없다. 재능을 발휘할 기회가 없으니, 꿈꾸는 미래도 없는 것이다. 벼슬길에 나아가는 것 말고는 삶의 목표가 없었던 조선시대와 흡사하다. 조선에서 출사(出仕)는 오직 양반들에게만 허여(許與)된 특권(特權)이었다.
 
  북한은 더하다. 봉건적(封建的) 신분제보다 훨씬 더 강고한 출신 성분 검열, 이른바 ‘토대’가 발목을 잡는다. 개인의 능력은 절대로 ‘토대’를 넘어서지 못한다. 월남자(越南者) 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가족이나 친척이 외국에 있는 사람도 출세는 꿈꿀 수 없다.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대학 진학이나 입당(入黨)이 불가능하다. 농장원의 자녀는 아주 드문 예외를 제외하고는 대대로 농장원을 해야 한다. 광부의 아들과 딸은 어지간해서는 광산을 벗어날 수 없다. 농노(農奴)나 광산노예(鑛山奴隸)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다.
 
  반면에 김씨 일가와 관련 있는 이른바 백두혈통은 개인의 능력과는 상관없이 언제나 특권적 지위를 누린다. 공부를 못해도 좋은 대학에 가고, 권력 기관에서 간부로 일한다. 혈통이 능력에 우선하는 것이다. 그래서 북한 전역에서는 이런 농담이 돈다. 친구들과 간식을 나누어 먹는데 어쩌다 누군가를 빠뜨리면 그가 던지는 말이다.
 
  “너, 내 토대가 나빠서 이러는 거냐?”
 
 
 
  ‘영웅도 돈 밑에서 나온다’
 
  사정이 이러하니, 북한 청소년들의 목표는 ‘돈 벌어 잘살겠다’가 거의 전부다. 출세나 사회적 공헌은 포기다. 해봐야 어차피 되지도 않을 일에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느니, 차라리 부모에게 물려받은 돈으로 장사를 하겠다는 이야기다.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 주민들은 당국을 믿지 않는다. 배급만 믿다 수십만에서 수백만 명의 사람이 굶어 죽은 것이 불과 20여 년 전의 일이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이 인정한 영웅들도 숱하게 굶어 죽었다. 훈장과 영예증은 식량을 보장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온 말이 “영웅도 돈 밑에서 나온다”이다. 중·고교생들이 공개석상에서 미래 희망을 말하는 자리가 있다. 누군가가 “나중에 커서 비행사가 되겠다” “장군님이 아는 체육선수가 되겠다”고 하면 듣는 학생들은 마음속으로 두 마디 문장을 떠올린다. ‘쇼하는구나’와 ‘현실에 살아라’다.
 
  그래서 돈이다. 돈은 토대를 뛰어넘기 때문이다. “돈이 많으면 얼굴이 묻힌다”는 말도 있을 정도다.
 
  빈부(貧富) 격차가 가장 심하게 드러나는 지점은 군사복무(병역)다. 2020년 현재 일반병은 11년, 특수병은 13년이 복무기간이라고 한다. 과거에는 군(軍)복무를 마쳐야 사회적으로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무엇보다도, ‘사회적 인정’의 크기가 너무 작다. 곳간이 비어버린 북한 당국이 그럴듯한 직장 배치나 주택 제공 등 제대 장병을 챙길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군사복무 기간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능력자’라는 풍조가 생겼다. 예전에는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대학에 진학하는 ‘직통생(直通生)’을 백안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공동체의 이익보다 개인의 이익을 앞세운 자’라는 묵시적 평가가 뒤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은 직통생이 능력의 상징이다. 일단 군사복무 기간을 대폭 줄일 수 있다. 대학을 4년 다니고 졸업 후에 입대하면 3년 복무 후 만기제대다. ‘부대에 필요한 물자를 조달하겠다’고 하면 그 3년 가운데 많은 시간을 병영이 아니라 집에서 보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코스는 ‘돈주’ 중에서도 특급 돈주나 특급 돈주와 연결된 최고위층 권력자가 아니면 구사할 수 없는 방법이다. 북한에서는 대학 진학부터가 부모의 재력(財力)과 입시생의 학력(學力)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거대한 암시장(暗市場)이기 때문이다.
 
  일단 진학 자체가 성적만으로 판가름 나지 않는다. 위에서는 각 지방 및 학교로 특정 대학, 특정 학과 입학 정원을 내려보낸다. 이 입학추천서, 이른바 ‘폰트’를 받아야만 시험이라도 볼 수 있다. 폰트를 어떻게 획득하느냐, 어느 학교 폰트를 잡느냐가 일차 관문이다. 이 과정에서 온갖 뇌물이 횡행하는 것이다. ‘직통생 출신 제대군인’이라는 신분 자체가 상위 1% 부잣집 아들, 돈 있고 백 있는 북한 금수저의 상징이라는 뜻이다.
 
 
  절대적 충성·존경 대상 없어
 
  이런 ‘직통생 복무’를 보고 듣고 자란 청소년의 가슴속엔 불만과 분노가 깃든다. 여학생들도 오빠와 남동생의 심정에 감정 이입(移入)을 한다. 무의식적인 억울함이 구체적인 반항 행동으로 바뀌는 지점은 의상과 염색이다. 개성(個性)이 살아나면 의식(意識)도 깨어난다. 북한 당국이 전 지역 모든 학교 교복의 디자인을 통일해 통제를 강화하는 이유다. 그렇게 감시·감독의 눈길을 부릅떠도, 바짓단을 수선하고 허리를 접어 치마를 무릎 위로 짧게 입는 유행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요즘은 북한에서도 교복을 돈 내고 사야 한다. 예전처럼 배급으로 나눠주지 않는다. 그래서 ‘입기 불편하다’ ‘재질이 엉망이다’라는 품질에 대한 불평이 청소년 사이에서 끊이지 않는다. ‘소비자 권리’에 눈을 뜬 것이다.
 
  사복(私服)도 그물 옷, 속이 조금이라도 비치는 옷, 글자 새겨진 셔츠, 가슴이 살짝이라도 파인 옷 등 ‘이상한 옷’은 착용을 금지한다. 목걸이나 귀고리도 눈에 띄는 디자인은 착용 금지다. 규찰대(糾察隊)가 나타나면 귀고리를 귓구멍에 넣어 단속을 피해보지만 매번 그럴 때마다 짜증이 솟구친다. 색조화장은 예술인들에게나 허용된 것이며, 머리 염색은 ‘자본주의 날라리풍’이라며 절대 금지하는 것도 이해 불가(不可)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것은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한 청소년들의 영원한 로망이 아니던가. 조선중앙TV의 뉴스 화면을 보고 여학생들은 “이설주도 중국 갈 때 염색하는데 우리는 왜 못 해?” “이설주가 입은 블라우스는 규찰대가 왜 단속 안 해. 너무하는 것 아냐?”라며 반발한다. 남학생들은 “어떤 놈은 배 안에서부터 왕자로 타고나는데, 세상 불공평하다”고 욕한다. 친한 친구들끼리는 존칭 없이 “김정은” “이설주”라고 부르는 것이 최근 추세다. 나이 든 사람들의 눈에는 경천동지(驚天動地)요, 천지개벽(天地開闢)이다.
 
  북한 청소년들에게는 절대적인 충성과 존경의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다. 2018년 남북 정상회담 뉴스에 나온 기념 식수 비석을 보고는 ‘글자 길게 새기느라 힘들었겠다’며 김정은을 ‘까는’ 정도다.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에 비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 김정은’의 글자 수가 두 배 가까이 많았기 때문이다.
 
 
  북한 여학생들의 우상 이민호
 
북한 여학생들의 우상인 배우 이민호. 사진=조선DB
  말이 난 김에 말하자면, 남북 정상회담이나 미북 정상회담 때 북한의 거의 모든 청소년이 열광했다고 한다. ‘곧 통일이 된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북한 청소년들이 바라는 통일은 남쪽에 흡수되는 통일이었다. 남한의 드라마와 가요가 보여주는 세상은 곧 ‘자유의 낙원’이기 때문이었다. USB, SD카드, 휴대폰에 저장해 콘텐츠를 보고 듣는 ‘한류(韓流)’는 북한 청소년들에게 삶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통일된 조국에서, 그런 것들을 방해나 단속 없이 편한 마음으로 실컷 누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황홀한 상상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북한 여학생들이 가장 사랑하는 배우는 압도적으로 이민호다.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재구성한 고등학생판 신데렐라 스토리인 TV드라마 〈꽃보다 남자〉(2009) 이후 이민호는 북한 여학생들의 우상이 되었다. 일본 여성들이 욘사마에 열광했던 배용준 신드롬 이상이다. 〈신의〉 〈상속자들〉 〈푸른 바다의 전설〉 등 이민호가 출연한 드라마는 아직도 북한 전역에서 널리 소비되는 영원한 스테디셀러다. 수많은 여학생이 드라마 속 대사를 외우고, 몇 부에 누가 죽고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화제에 올린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민호 얼굴이 인쇄된 과자 포장지는 버려서는 안 되며 고이 오려 간직해야 하는 기념품이다. 이민우가 1987년생이라는 신상정보를 공유하며, 2015년 모(某) 여배우와의 열애설이 터졌을 때는 “우리 다 같이 남조선에 가서 그 여배우를 때려주자”는 심각한(?) 논의를 하기도 했다. 2017년 11월 남조선 뉴스에 나온 결별설을 전해준 친구는 소녀들 사이에서 우상이 되었다. 함께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2010년대 북한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탈북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공감하는 평가가 있다. “북한 청소년, 특히 여학생 사이에서는 김정은보다 이민호가 더 영향력이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이민호가 예술단 일원으로 방북(訪北)해 “서울에서 너희를 기다리겠다”고 한마디만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韓流와 자유주의가 결합할 때…
 
  청소년 사이에서 들불처럼 번져가던 통일 열기는 ‘통일을 바라지 말라’는 김정은의 방침이 내려오며 급속도로 가라앉았다. 어쩌면 한류의 열풍이 통일의 열망과 합쳐지며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거대하게 번져나가는 것을 북한 권력자들이 견딜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이민호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김정은이 북한 청소년 사이에서의 한류 열풍을 보며 위험신호를 느낀 것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한류 열풍이 반항심, 자유주의와 섞이며 융합하면 얼마만큼의 폭발력으로 불타오를지 예측 불가능이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자의 시선으로 보자면, 충성심 자체가 없고 돈에 민감하며 외부 정보에 열광하는 청소년들은 비행 청소년에 다름없을 터이다. 비행청소년들이 만들어간 역사의 묘미는 그들이 항상 예측 불가능한 사건들을 일으켰다는 데 있다. 장기적으로 보자면, 비행청소년들이 만들었던 예측 불가능한 사건들은 인류 문명의 발전 속도를 앞당겼다. 소생이 북한의 비행청소년들을 주목하는 이유다. ‘모든 청소년이 인권을 침해당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적절한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은 전 세계 모든 어른의 의무다’라는 빌려온 문장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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