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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탈북자 再입북 사례

‘고달픈 삶’과 ‘지옥 같은 삶’ 사이에서 그들이 ‘지옥’을 택한 이유

글 : 정광성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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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들의 월평균 소득은 204만7000원. 국민 월평균 소득(264만3000원)의 77.4% 수준이다. 탈북민의 고용률은 58.2%로 국민 고용률(61.4%)보다 낮았다. 직업군으로는 단순노무와 서비스직 종사자가 전체의 44%에 달했다.

⊙ 2012년 이후 再입북한 탈북자 28명
⊙ 再입북 탈북자 자진? 유인 납치?
⊙ 탈북자들 사이에서 도는 흉흉한 소문
⊙ ‘돌아간 자들’, 그들의 운명은?
  “오죽하면 그 생지옥으로 다시 돌아가겠나. 아마 그들은 죽을 각오로 다시 북한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2008년 탈북한 A씨의 말이다.
 
  지난 7월 19일 북한이탈주민(이하 탈북민) 김금혁씨가 강화 교동도 앞바다 한강 하구에서 헤엄을 쳐 월북했다. 김씨는 3년 전 같은 루트를 통해 탈북했다. 김씨의 재(再)입북으로 인해 그동안 북한으로 다시 돌아간 입북자들과 탈북민 문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통일부에 따르면 2012년 이후 재입북한 탈북민은 28명이다. 이는 북한 매체를 통해 확인된 수치다. 실제로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탈북민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2020년 3월 현재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은 3만3658명가량이다(통일부 홈페이지). 현재 정부가 소재를 파악하지 못하는 탈북민은 약 900명에 달한다.
 
  이에 대해 한 탈북민 대표는 “대부분 갑자기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연락이 되지 않아 주변에 알아보면 중국으로 갔다고 한다”며 “이후 장기간 연락이 되지 않으면 북한으로 들어갔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2016년 남한에 정착한 B씨도 여러 어려움으로 인해 가족이 있는 북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B씨의 말이다.
 
  “저는 홀로 남한에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힘들 때면 가족이 그리웠고, ‘여기서 홀로 뭐 하는 건가’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남한에 온 다음 해인 2017년 다시 북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이번 김씨 재입북과 관련해 탈북민 사회도 뒤숭숭한 분위기다. 기자는 최근 10여 명의 탈북민을 만나 재입북에 대한 그들의 솔직한 심정을 들어볼 수 있었다.
 
 
  北으로 다시 돌아간 탈북민들의 사례를 살펴보니…
 
(왼쪽부터) 탈북민 재입북자인 김만복, 김영희, 채은철, 강철우, 김연주, 박경은씨가 ‘조국의 품에 다시 안긴 주민들과의 좌담회’에 출연해 남한 사회에서의 비참한 생활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사진=우리민족끼리TV 캡처
  목숨을 걸고 사선을 넘어 남한에 내려왔다 다시 재입북한 최초의 탈북민은 최승찬씨다. 최씨는 1996년 7월 11일 자전거 고무 튜브를 몸에 감고 예성강을 따라 남한으로 넘어온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북한 특수부대인 38항공육전여단에서 제대한 후 벽돌공장에서 일하다 탈북했다. 북한에서 결혼해 딸 하나를 두고 있었다.
 
  그는 하나원(북한이탈북민정착사무소)을 나와 농협에 취업했다. 재입북하기 직전까지 농협중앙회 대리로 근무했다. 번듯한 직장을 둔 중산층의 삶을 누리며 비교적 순탄하게 살았다. 이런 최씨가 갑자기 농협에서 퇴직하고 재산을 정리했다. 퇴직금과 저축한 돈 등 약 1억원을 마련한 후 2005년 북한으로 다시 넘어갔다.
 
  서울 중계동 임대아파트와 개인 승용차는 처분하지 않은 채 그대로 두고 갔다. 여러 정황을 보면 최씨는 북한에 있는 가족들을 그리워하다 자진 입북한 것으로 보인다. 최씨는 가지고 간 돈의 일부를 북한 당국에 바쳤고, 탈북을 용서받아 가족들과 재회해 살고 있다고 전해진다.
 
  1989년 북한을 탈출한 허철씨는 고향인 평안북도 신의주에 아버지와 동생들을 두고 있었다. 허씨는 하나원을 나온 후 연세대 경제학과에 진학했다. 졸업 후에는 중국에서 PC방을 개업했지만 1년 정도 운영하다가 폐업했다. 이후 2010년부터 중국에 드나들다가 그대로 재입북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6년 3월 한국에 있는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탈북한 박인숙씨(본명 박정숙)는 북한 공작에 의해 재입북했다. 박씨는 중국으로 탈북했다가 같은 달 국내로 들어왔다. 박씨는 서울 송파구 임대아파트에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생활했다.
 
  그가 탈북할 당시 북한에는 평양음대 교원인 외아들이 남아 있었다. 박씨의 아들은 어머니가 탈출한 후 탄광으로 추방됐다가 국가안전보위부에 체포됐다. 보위부는 이 아들을 볼모로 박씨를 협박했다. 한 달여 후인 같은 해 5월 말 박씨는 “아들을 살려야 한다”며 중국을 통해 재입북했다. 그해 6월 평양 기자회견장에 나오면서 재입북한 사실이 드러났다.
 
  2008년 탈북해 국내에 정착했다가 재입북한 김광혁·고정남 부부는 2012년 중국 선양(瀋陽)을 통해 재입북했다. 이들이 돌아간 이후 남한에서는 부부가 북한 간첩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탈북민 출신으로 방송에서 이름을 알린 임지현씨(본명 전혜성)도 재입북했다. 평안남도 안주 출신인 임씨는 19세던 2011년 가족을 두고 혼자 탈북했다. 그는 중국에서 탈북을 도운 남성과 3년여간 동거하다가 2014년 태국을 거쳐 혼자 남한에 왔다. 2016년부터 한 종편 방송에 출연하면서 유명해졌다. 그러다 2017년 4월 중국으로 출국한 후 재입북했다. 이 밖에도 김금혁씨 사건이 있기 전까지 재입북 탈북민이 여럿 있었다.
 
 
  그들은 왜 다시 北으로 돌아갈까?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탈북민들의 재입북 사유는 ▲체제 부적응 12건 ▲유인공작 11건 ▲가족 향수 7건 ▲탈북 지원 5건 등이었다. 그 외 사유는 ‘가족 향수 + 유인 공작’으로 중첩된다.
 
  체제 부적응 비율이 높은 것은 탈북민 상당수가 무직이거나 일용직으로 일해 경제 소득이 낮고 사회적으로 차별받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남북하나재단이 실시한 2018년 북한이탈주민 정착실태조사에서는 ▲가족과 떨어져야 해서(27.4%) ▲경쟁이 너무 치열해서(18.6%) ▲남한 사회의 차별·편견 때문(18.3%) 순이었다. 2019년 실태조사에서는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해서(27.6%) ▲경쟁이 너무 치열해서(19%)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남한사회의 차별·편견 때문에(15.4%) ▲경제적으로 어려워서(13.5%) ▲남한 사회에 적응이 어려워서(4.7%) 순이었다.
 
  2010년, 2011년에 각각 탈북한 C씨와 D씨는 초기 정착 과정에서 일자리를 찾지 못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C씨는 처음 서울이 아닌 지역 사회에 정착했다.
 
  C씨는 “처음 하나원을 나오니 정말 막막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 입구에 들어선 것 같았다”며 “처음 알바를 시작했는데 북한 사투리가 심한데다 잘 알아듣지도 못하니 얼마 못 가 일을 그만두게 됐다. 당시엔 정착금을 브로커에게 다 주다 보니 돈이 없어 밖에 못 나간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D씨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들어간 회사에서 얼마 버티지 못하고 나오게 됐다. 그 이후로 돈이 없어 친구와 함께 살게 됐다.
 
  재입북 추이를 보면, ‘체제 부적응’에 따른 입북이 다수인 가운데 최근에는 ‘가족 향수+유인 공작’에 따른 입북이 늘어나는 추세다. 북한은 최근 수년 동안 탈북민의 신상정보를 입수해 대남 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TV’에 가족을 출연시켜 ‘조국 어머니 품으로 돌아오라’고 호소하는 동영상을 제작, 유튜브를 통해 유포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 탈북한 E씨는 실제로 이런 경험이 있다. 북한이 E씨 가족들을 ‘우리민족끼리TV’에 출연시켜 “남한으로 간 것은 배신행위라며 빨리 조국의 품으로 돌아와서 용서를 받으라”고 호소했다. 울면서 애원하는 누나와 남동생의 모습을 본 E씨는 한동안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北 보위성, ‘가족 향수’ 이용한 유인 공작… 신설 팀까지 꾸려
 
2015년 5월 북한이 눈물로 그리움을 호소하는 자녀들의 영상을 내세워 탈북자 재입북을 권유하고 나섰다. 사진=조선DB
  특히 국정원이 ‘탈북 지원’으로 분류한 재입북자와 북한의 ‘유인 공작’에 따른 재입북자 일부는 북한이 ‘간첩 행위’로 체포해 공개 기자회견을 시킨 경우다. 이들은 국정원 ‘탈북 지원 공작’과 북한 국가보위성 ‘유인 공작’의 희생양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북한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 보위성은 2012년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 ‘해외반탐’ 전담부서인 3처 내에 ‘탈북자 귀환 공작팀’을 신설해 탈북민 대상 대남 공작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귀환 공작으로 체포·재입북한 탈북민의 일부는 대개 북한이 ‘간첩 행위’로 공개 기자회견을 시키거나 남한 체제를 비방하는 목적으로 쓰인다.
 
  지금까지 북한 보위성 유인 공작에 넘어가 재입북한 탈북민은 다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2012년 당시 재입북 탈북민이 속출하자 탈북민 사회에서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김정은 체제 들어 남한에 있는 가족들을 모두 데려오라” “자진해서 오는 사람은 살려준다” “돌아오지 않으면 가족이 위험해진다” 등의 말이 돌았다. 이 소식을 들은 당시 탈북민들은 북한의 가족이 걱정되어 하루하루를 살얼음판 위 걷는 심정으로 살아갔다고 한다.
 
  2009년 탈북한 F씨는 “가족이 모두 북한에 남아 있어 매일을 공포 속에 살아갔다”며 “그때 나는 먹으면 바로 죽을 수 있는 독약을 구입해 항상 주머니 속에 넣고 다녔다. 만약 북한에 잡혀가면 바로 먹고 편한 곳으로 가려고 했다”고 증언했다.
 
  2007년 탈북해 브로커로 활동한 G씨는 당시를 이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G씨의 말이다.
 
  “당시 중국에 있는 탈북 브로커들을 이용해 유인 납치를 하기도 했다. 한 조선족 탈북 브로커는 중국 공안에 잡혔는데 ‘남한에 있는 탈북민을 중국까지 유인해오면 교도소에 보내지 않겠다’는 제안까지 받았다고 한다. 이 사람뿐만 아니라 여러 브로커가 협박을 받아 탈북민들을 중국까지 유인하려 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실제 탈북민 H씨는 북한 보위성에 유인 작전을 당한 경험이 있다. H씨의 말이다.
 
  “2012년 11월 북한에 있는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는 기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조금 이상했다. 아버지는 북한 정권에 충성하는 사람이어서 내가 남한에 온 뒤로 한 번도 통화를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버지가 돈이 필요하다고 하시면서 돈을 가지고 중국으로 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당신이 직접 중국으로 넘어오겠다고 하셨다. 거기서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했다. 일단 ‘알았다’ 하고 전화를 끊고 다른 경로를 통해서 집 소식을 알아봤는데, 예상대로 보위부가 아버지를 협박해 전화하게 한 것이었다.”
 
  또 다른 이는 보위부 반탐과장이 전화해 “지금 다시 북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부모님이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협박도 받았다.
 
 
  신변보호담당관 유명무실… “경찰관 1명에 50~60명 보호”
 
  북한의 공작이나 신변 위협 등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하나원을 수료한 탈북민들에게는 경찰 ‘신변보호담당관’(이하 경찰관)들이 배정된다.
 
  이후 탈북민은 정착 초기 5년 동안 경찰의 신변 보호를 받는다. 경찰관은 탈북민이 거주하는 지역의 관할 경찰서 소속 경찰이 맡는다. 탈북민이 정착에 어려움은 없는지 정기적으로 확인하게 돼 있다. 북한의 위협 등으로부터 탈북민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시작됐다. 하지만 제 기능을 못 하고 있을 뿐 아니라 부작용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재입북한 김씨는 정착한 지 5년이 지나지 않아 경찰의 신변 보호 대상이었다. 하지만 담당 경찰관은 재입북 동향을 탐지하지 못했다. 김씨가 월북하기 한 달 전 성폭행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이후 별도로 접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담당 경찰관이 김씨와 지속적으로 연락하면서 상황을 파악했다면 ‘탈북민 관리의 구멍’으로 재입북하는 일을 막을 수 있었다는 비판이 적잖았다.
 
  경찰관들도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먼저 2006년 이후 탈북민 수가 급증하면서 경찰관 한 명당 탈북민 50~60명을 담당하게 됐다. 특히 경찰관이 전화나 문자로 안부를 물으면 자신들을 감시한다고 생각하는 탈북민들도 있다. 이런 이유로 탈북민들에 대한 신변 보호가 쉽지 않았다.
 
  한 경찰관은 이렇게 말했다. “경찰관 한 명이 탈북민 50~60명을 보호해야 한다. 업무 과중이다. 이런 형편에서 무슨 보호가 되겠나.”
 
 
  탈북민 남한 정착 첫 단추 ‘하나원’
  “도움 안 돼”

 
  물론 재입북한 탈북민 모두가 북한의 유인 공작이나 가족이 그리워서 간 것은 아니다. 남한 사회 부적응도 재입북의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탈북민들은 한국에서 초기 5년이 정착의 ‘골든타임’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때를 놓치면 한국 사회에 적응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 5년간 ‘언어만 통하는 외국인’으로서 한국에 가족도 없이 혼자 삶을 꾸려나가야 한다. 익숙지 않은 문화로 주변과 마찰을 겪거나 범죄에 연루되기도 한다. 저임금 노동으로 생활고를 겪는 이들도 많다. 이번에 재입북한 김씨도 이 시기를 넘기지 못하고 3년 만에 북한으로 돌아갔다.
 
  골든타임의 첫 단추는 하나원이다. 탈북민들은 하나원에서 처음 한국 사회를 배운다. 남한으로 와서 약 3개월 동안 ‘임시 보호’ 속에 조사를 받은 후 하나원에 입소하게 된다. 12주 동안 합숙하며 한국 사회 적응을 위한 기초 교육을 받는다. 민주주의, 시장경제, 인권 등 사회 이해를 위한 수업을 듣고 직업 체험 훈련을 한다.
 
  얼핏 잘 짜인 ‘속성 수업’처럼 보이지만 “큰 도움이 안 됐다”고 말하는 탈북민이 많다. 2019년 탈북한 I씨는 “하나원에서 들은 내용이 지금 내게 도움이 되는 것은 없다”며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내용을 주입식으로 교육한다. 그런 교육을 듣고 있으면 한국 사회에 대한 희망이 아니라 절망만 안겨준다”고 말했다.
 
  D씨는 하나원에서 나온 다음이 더 막막했다고 말했다. “하나원에서 ‘앞으로 무슨 일을 하고 싶냐’고 묻는데 어떤 직업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네일아트나 제빵 같은 직업교육이 있지만, 실제론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구직 활동을 해본 적 없는 D씨는 이력서도 없이 ‘직원 구함’이라고 쓰인 가게마다 들어가 “사람 구하냐”고 물었다. 완곡한 거절인 “연락 주겠다”는 말만 믿고 다시 찾아가 “왜 연락을 안 주냐”고 따져 물었다. 그만큼 한국의 구직 현실에 이해가 부족했다.
 
  빨리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탈북민들은 질 낮은 일자리로 내몰린다. 통일부에 따르면 지난해 탈북민들의 월평균 소득은 204만7000원. 국민 월평균 소득(264만3000원)의 77.4% 수준이다. 탈북민의 고용률은 58.2%로 국민 고용률(61.4%)보다 낮았다. 직업군으로는 단순노무와 서비스직 종사자가 전체의 44%에 달했다. 브로커에게 탈북 비용을 내야 해 유흥업소로 내몰리는 여성도 비일비재하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지속되면 마음이 동요하기 쉽다. 한국에 환상을 갖고 왔지만 여기서도 경제적으로 최하층을 벗어나지 못하자 “차라리 북한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살고 싶다”는 탈북민들도 있었다.
 
 
  “재입북한 탈북민 가족
  끝내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

 
국내 종합편성채널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재입북한 탈북 여성 임지현(본명 전혜성. 가운데)씨가 북한 대외선전용 매체 우리민족끼리가 2017년 8월 18일 게재한 유튜브 영상에 출연한 모습. 사진=조선DB
  앞에서도 밝혔지만 현재 남한으로 들어온 탈북민 3만여 명 중 900명이 행방불명이다. 재입북한 28명 외에는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았지만, 행방불명된 900명 중에는 북한으로 다시 돌아간 이들도 있을 것이다. 북으로 돌아간 탈북민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재입북한 탈북민 박인숙·김광혁 부부나 임지현씨처럼 공식적으로 북한 매체에 등장한 이들은 섣불리 처벌하지 못할 것이다. 반면 그렇지 않은 재입북자들은 북한 정권이 언제든 처벌이 가능하다.
 
  I씨는 탈북 전 자신의 마을에 살던 재입북 탈북민이 2016년에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는 모습을 봤다고 한다.
 
  “김종신(가명)씨는 20대 초에 실종됐다가 5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알고 보니 남한에 갔다가 온 것이다. 그런데 돌아와 얼마 지나지 않아 가족 전체가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갔다. 김씨가 남한에 대해 친구들에게 이야기한 것이 죄가 되어 끌려갔다.”
 
  우리는 흔히 탈북민들을 ‘먼저 온 통일’ ‘통일의 징검다리’라고 말한다. 현시점에서 우리 사회가 탈북민들을 ‘먼저 온 통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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